| 연필로 슥슥 그렸을것 같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모습부터 금방이라도 종이에서 튀어나와 힘차게 뛸것 같은 황소의 그림까지 이중섭은 그의 그림속에서 자신의 삶과 가족과 그리고 조국을 그리려고 했다. 단순히 교과서에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황소나 흰소정도가 이중섭의 작품이 다인줄만 알았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또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들을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들이 그의 또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구상씨네 가족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세발자전거를 태우며 행복해하는 친구구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중섭의 모습은 가족과 떨어져 힘겹게 살아야하는 그의 모습이 더욱 측은하게 다가온다. 시대와의 불화라고 할까 자신의 신념이 확고했던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끊임없이 아이들과 아내에게 자신의 그림과 편지를 보내면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달랜다. 하지만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채 시대와 그를 질시하던 사람들에 의해 그는 정신병자로 몰리게 되고 그를 반증하려고 이중섭은 자화상을 그리게 된다. 한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을 미루어 본다는것은 그림을 보는 또다른 즐거움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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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다. 화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9월 한 달 동안 많은 화가를 만났다는 생각에 나름 행복하다. 다양한 세계를 접한 만큼 조금 성장했다는 느낌, 그림과 조금 친숙해졌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 한 편에선 조바심도 생긴다. 욕심 때문이지 기억하고 싶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도 걱정할 것은 없는데. 다시 보면 되고 또 기억하지 못한다 해서 문제될 것도 없는데. 아무튼 여유를 가져보려 애쓰며 글을 쓴다. 아무래도 글쓰기에 대한 부담 때문에 느끼는 감정인지도…. 이중섭 하면 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도 그랬으니까. 교과서를 통해 만난 청소년 역시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생애 위주의 책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의 생애, 시대적 상황이 어우러져 있어서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질 거란 생각이다. 1장은 유년기부터 일제 치하에서 성장하고 미술에 입문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 2장은 다니던 미술학교의 후배로 만난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 그림들이 담겨 있다('사랑의 엽서 그림'). 3장은 한국전쟁, 이념의 갈등, 가족과 헤어지는 현실, 고통의 순간에 그린 작품('떠도는 삶 속에서 피운 꽃')이 담겨 있다. 4장은 불행한 삶 가운데서도 작품에 몰입했던 전쟁 후 몇 년간의 작품을 다뤘다(.'쏟아진 걸작들) 5장에는 부조리한 현실과 병마와 싸워야했던 불행한 삶, 어긋난 운명의 회오리 속에서 끝내 가족과 재회하지 못한 채 홀로 죽어가는 말년의 모습이 담겼다.('돌아오지 않는 강') 이중섭 하면 ‘비운’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자신의 뜻과 달리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과 생이별을 한 것, 시대적 이념 갈등의 회오리 앞에서 겪는 고통,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현실, 그 어떤 현실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움에 사무쳐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비운의 사나이가 되고 만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의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그림,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담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일이 바로 그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시름을 다 내려놓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귀포 피란시절과 통영에서 보내며 그린 그림이 가장 맘에 든다. ‘서귀포의 환상’이나 ‘도원’을 보고 있으면 평화, 자유, 여유가 느껴져 마음이 화안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나도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반면 그의 간절함이 묻어나 애잔한 마음이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아주 사소인 일이 아닌가.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림에만 담아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현실, 쓸쓸히 죽어가는 그의 모습이 겹쳐져 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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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맛비의 위세가 대단하던 날들에 폭우보다 더한 영감의 세례가 내게 쏟아졌다. 모처럼 들른 책방에서 이중섭과 만난 것. 이중섭은 저항할 수 없는 홍수처럼 내 심연의 둑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며 들이닥쳤다. 이중섭이 퍼부은 예술혼의 물벼락에 나는 허우적거릴 수도 없었다. 그의 그림 속에 빠져들어 이대로 숨이 멈추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걱정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홍수처럼 나를 무너뜨린 이중섭의 예술혼 누구나 이중섭이란 이름 석 자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중섭을 알고 있다 말하자니 켕기는 구석이 많아 이내 불안해진다. 사실 기자 역시 언론에 보도되는 단편적인 수준의 이중섭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게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시리즈 한국편 2>은 이중섭의 그림에 담긴 영혼의 울부짖음과 처절한 몸부림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책은 위인전 형식을 탈피했으며 서양 사람이 쓴 책의 번역본도 아니다. 우리 미술학자의 눈으로 보고 우리 감성으로 느낀 미술책이다. ‘미술이란 무엇일까’, ‘그림이란 어떤 예술적 영감과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되었나’ 하는 물음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다. 작품, 작가의 생애, 창작 당시 사회 배경이 이 책의 세 축이다. 이 책은 그 셋의 관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작품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 화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들을 수록, 감상의 폭을 넓히도록 편집돼 있다. 책은 이중섭의 연대기 형식이면서도 생애보다는 작품 관련 내용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해설을 쓴 저자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책의 중간 중간에 미술사조, 예술의 경향, 관련된 이들에 대한 소개와 짧은 해설 등을 삽입해 미술 전반에 눈뜰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1장은 유년기부터 일제 치하에서 성장하고 미술에 입문한 시기를 다고 있으며('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 2장에는 다니던 미술학교의 후배로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의 그림들이 담겨 있다('사랑의 엽서 그림'). 한국전쟁에 따른 피난과 이념의 충돌에 갈등하는 이중섭의 모습은 3장('떠도는 삶 속에서 피운 꽃')에 담겨 있다. 불우한 가운데에서도 작품에 몰두하던 전쟁 후 몇 년간을 다룬 4장('쏟아진 걸작들)과, 부조리한 현실과 어긋난 운명의 회오리 속에서 끝내 가족을 잃어버린 채 요절하는 말년의 모습이 담긴 5장('돌아오지 않는 강')이 그 뒤를 잇는다.
그림, 불우함에 맞선 예술혼의 결정체 기자는 이중섭의 불우한 생애와 처참한 삶의 이력에 대해서는 독자들 스스로 책을 읽고 파악해야 할 몫으로 남겨놓을 작정이다. 미술에 관한 책이고 다루는 주제가 이중섭의 그림에 관한 것이기에, 이중섭의 중요한 작품 몇 편에 대한 기자 나름의 인상을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중섭의 작품을 소재별로 구분하면 일제 치하와 분단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민족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소를 비롯해 닭이나 까마귀 같은 새를 그린 그림, 피난 시절 및 정서적 안정기이던 통영 시절에 그린 풍경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제별로 구분할 경우 작품들은 그의 생애의 파고와 부침에 따른 시기적 구분과도 맥을 같이한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수난과 저항 정신을 담은 그림, 분단과 이념의 충돌에 아파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한 그림, 전쟁 후 이승만 독재의 현실을 비판하는 그림, 마사코를 향한 연정과 북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나타내는 그림, 어긋난 운명으로 일본의 가족들과 생이별한 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섭하면 떠오르는 게 소 그림이다. 이중섭의 분신 같기도 한 소 그림은 이 땅의 굴곡진 역사의 분노와 오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책에서 맨 처음 만나는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는 다음에 나오는 '흰 소'나 '떠받으려고 하는 소'와 마찬가지로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대비되며 소의 힘찬 역동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또한 부릅뜬 눈이며 벌어진 콧구멍에서는 대상을 향한 분노와 거친 호흡이 느껴진다. 아마도 분단과 전쟁, 독재 치하에서 살아야 했던 이중섭 자신의 분노이자 저항이었을 것이다. 핏빛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는 이념을 맹신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것이자, 출세를 위해 협잡하는 무리들에 대한 통렬한 일갈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저항이 소의 전신에서 묻어나고 배어난다면, 서귀포 피난 시절에 그린 '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모처럼 찾은 정신적 안정을 반영하듯 순박하고 온순하기 그지없다. 다음에 나오는 '부부' 혹은 '투계'라 불리는 그림을 이 책의 저자는 '봉황'이라 이름 지었다. 기자 역시 이 그림을 보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의 현실, 분단에서 비롯된 이산의 아픔을 느낀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향한 이산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프게 경험한 이중섭이었기에 '어머니가 있는 가족'이어야 온전한 가정이라고 화가는 말한다.
또한 그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생이별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보낸 부인과 자식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았던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닭과 가족', '꽃과 새와 물고기, 끈이 있는 가족'으로 혹은 친구인 소설가 '구상네 가족' 같은 작품으로 태어난다. '달과 까마귀' 역시 가족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고 무엇일까. 엽서 그림 혹은 은박지를 긁고 그 위에 색을 덧입힌 그림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그림들에는 대부분 아이들과 새와 게 등이 등장한다. 이중섭이 꿈꾸던 세상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소박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운명은 그 소박한 꿈마저 이중섭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중섭 작품 속의 인물들은 고개가 모두 젖혀져있거나 꺾여 있다. 좌절된 꿈 혹은 비틀어진 운명의 장난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그의 앞에는 언제나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돌개바람이 불었다. 그가 의도하지 않은 현실들이 그를 정신병자 같은 지경에 빠지도록 몰아갔다. 그래서 그는 똑바로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물들에게 목이 없는 것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져다준 절망 혹은 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기다린다. '세 사람'에서처럼 잠들지 못하고 '소년'에서처럼 그 앞에 난 길에 앉아서. 서귀포 피난시절과 전쟁 후 통영에서 보낸 시절은 모처럼 이중섭이 심리적 안정을 찾은 시간이었다. 그 때 많은 풍경화들이 탄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 특히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남해의 '충렬사 풍경'과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었다. '서귀포의 환상'과 이중섭 그림 중 가장 대작인 '도원'은 바로 그와 가족들이 함께 가고자 한 파라다이스였음이 분명하다. 그림을 보는 눈과 느낌이 다 같을 수도,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발 디디고 섰던 시대 배경 등을 참고삼아 작가의 의도를 훔쳐보려는 노력은 의미 있다 할 것이다. 어차피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들의 것이며 시대가 지나면 지나는 대로 해당 시대의 숨결과 정신에 따라 이해되고 해석되면 족한 것. 그림에 대한 기자의 인상을 감히 드러내는 것 또한 위에서 말한 이유에서 용기를 얻었음이다. 그림과 더 가까워지는 일상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리라 확신한다. 이중섭이 내게 퍼부은 영감의 세례가 여러분의 것이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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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단순하게 인문이야기책에서 이중섭이 아닌 인간 이중섭에 대해서 읽을 수 있고
그의 많은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세세하고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는지....
왜 이중섭은 소를 많이 그렸을까??
여기에는 이중섭에게 미술에 관한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 작품들..
인물이야기책에서 본 화가 이중섭이 아닌 새로운 이중섭과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몇 가지 작품이외에 정말 많은 좋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중섭과 이중섭의 그림의 세계로 빠지고 싶다면 이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책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이 책 또한 울 중딩 아들의 필독서다
http://lkh0618.blog.me/11013688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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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씨는 소그림 하면 생각나는 작가이다. 힘차게 그은 붓질에 소가 살아나올 것 같은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아이세움에서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시리즈 중 한국편 두번째 작가인데, 역시 기대했던 만큼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이 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가지 그림들을 보면서 사라진 그의 그림들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
| 아주 가끔 그림을 보러갈 때가 있면 요즘 유행하는말로 눈앞에 놓인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의문스러울때가 많다. 미술교과서에 나온 화가들의 대표작이라 일컫는 그림이나 보았으니 생전 처음보는 그림에 낯설어하는 것이리라.. 유명한 화가 이중섭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엔가 현대화가7인전을 하길래 갔더니 이중섭의 그림이 단 세 점 걸려있었다. 물론 그 중에도 모르는 그림이 있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그보다 더 적은 수였다. 그리고 작년 대구연극제에서 이중섭의 생애를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이란 작품을 참 인상적으로 보았으면서도 동명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 이렇듯 그림으로 다가서기엔 참 여러가지 난관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미술전공도 아닌 사람이 전문서적을 보자니 손이 가질않구.. 또 화집이 잘 나와있는 것두 아니구.. 그래서 스스로가 좋아하는 색감은 강렬한 색체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했었다. 이중섭의 생애와 함께 작품을 실어놓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제일 좋은 점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소] 이외의 작품도 알게 되었고 ^^; 작은 보폭이지만 한 발 내딛은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