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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 신간, 대니얼 챈들러 <자유와 평등>은 존 롤스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불평등과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현대 사회의 위기를 넘어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다. 출간 직후 파이낸셜타임스, 뉴스테이츠먼, 워터스톤스 등 유력 매체와 서점으로부터 202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내 주요 온라인 서점과 독서 커뮤니티에서도 토마 피케티, 아마르티아 센, 앵거스 디턴 등 세계적 석학들이 극찬한 필독서로 입소문을 타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비전을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저자 대니얼 챈들러는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경제학, 철학, 역사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아마르티아 센에게 수학한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다. 영국 총리 전략기획실과 부총리실에서 정책 자문관을 지냈으며 주요 경제 싱크탱크에서 활동했다. 그는 심오한 철학적 논의를 현실 정치의 정책 입안으로 연결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최근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심한 불평등을 비판하며 존 롤스의 사상이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현재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공익에 기여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결속력 있는 자본주의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의 핵심 기반은 20세기 대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지금 이 시대에 롤스의 사상이 다시 강력한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수십 년간 이어진 신자유주의는 극심한 부의 양극화를 낳았고 경제적 박탈감은 포퓰리즘의 득세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불러왔다.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기존의 낡은 이념에 갇혀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다. 저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통제라는 과거의 실패를 피할 돌파구로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소환한다. 롤스가 제안한 무지의 베일 개념, 즉 자신이 어떤 사회적 지위나 조건을 타고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합의하는 원칙은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혐오로 분열된 현대 사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공정성의 감각을 일깨운다. 책의 1부 정의의 원칙은 이러한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새로운 사회계약 개념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2부 정의의 실천은 이 원칙을 현대 사회의 첨예한 쟁점들에 직접 적용한다. 목차를 살펴보면 4장 자유의 충돌과 문화 전쟁, 5장 위기의 민주주의, 6장 공정한 기회균등, 7장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 8장 노동의 민주주의 등 현실의 굵직한 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자유와 평등>은 롤스의 관점을 빌려 포퓰리즘의 득세 원인을 돈과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로 진단하며 돈의 정치에서 시민의 정치로 나아가는 선거 민주주의의 회복을 촉구한다. 젠더 및 소수자 차별 문제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원칙에 따라 혐오 표현 규제와 차별 금지법의 정당성을 역설하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주자 및 기후 위기 앞에서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공정한 자원 분배와 생태계 보호의 의무를 도출해 낸다. 가장 논쟁적인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해서는 무임승차 논쟁과 막대한 비용 문제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며 최저임금제, 보편적 최소 상속, 국부 펀드 등 현실주의적 유토피아를 향한 대안적 분배 방식을 제안한다. 6장 공정한 '기회 균등'에서 강조하듯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가난을 끊기 위해 유아기부터 평등한 교육과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구조적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나아가 8장에서는 주주 우선 모델을 넘어 노동자 협동조합이나 공동 경영 모델을 통해 일터의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자유관을 지키고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가 조직된 방식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낡은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되 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 때만 허용된다는 차등의 원칙을 굳게 인지해야 한다. 능력 제일주의의 함정을 경계하고 소수 부자들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와 기회의 불평등에 맞서 공정한 제도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에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해야 한다. 책 속의 인상적인 문장들은 롤스의 철학이 현실에서 왜 중요한지 명확히 짚어준다. 1장에서 저자는 롤스의 통찰을 직접 인용하며 제도의 변화를 촉구한다. "정의는 사회 제도가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며, 이는 사유 체계가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 진리라는 점과 같다. (..) 법률과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더라도 정의롭지 않다면 개혁하거나 폐지해야 한다."_43p #자유와평등 #대니얼챈들러 #교양인 #존롤스 #정의론 #정치철학 #올해의책 #책리뷰 #서평 #평등주의적자유주의 #민주주의 #불평등 #시대정신 #신자유주의극복 #공정성 #기본소득 #노동민주주의 #기후위기 #추천도서 #신간도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기록 #신간추천리뷰 #책추천리뷰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홍기빈옮김 #우주서평단 * 이 책은 인스타 @woojoos_story 진행, 교양인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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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은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소행(16520 Johnrawls)이 존재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이론을 활용해 '현실주의적 유토피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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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권리처럼 느껴졌고, 굳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라고 여겼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투표 역시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누가 되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체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도 함께 읽고, 관련 영상까지 찾아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초반에는 “그래서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2장을 지나면서부터 내용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비로소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존 롤스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 즉 공정한 기회와 균형 잡힌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고, 자유조차 조건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자유와 평등이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지나 점점 더 강해지는 포퓰리즘, 그리고 새로운 냉전 구도 속에서 이 두 가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속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왜 자주 언급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평등에 대한 관점도 새롭게 다가왔다. 다소 이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이 책은 그것을 매우 현실적인 질문으로 끌어내린다. 자유를 강조하면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고, 평등을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 이 미묘한 균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후반부를 지나며 나는이 문장에 멈출수밖에 없었다. 👉 사회는 오직 사람들이 모두 변화를 요구할 때만 비로소 변화하며, 우리 각자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p.417) 이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우리의 촛불집회였다. 개인의 작은 참여가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은, 이 책에서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와 맞닿아 있었다.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무관심한 태도로 머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움직임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여전히 롤스가 말한 세계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결국 우리의 선택과 참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 @woojoos_story 모집 @gyoyanginbooks 도서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자유와평등 #대니얼챈들러 #교양인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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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20세기 철학자. 1971년 ‘정의론’, 모든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는다(제 1원칙 기회 균등의 원칙), 최소 수혜자의 몫이 극대화 되도록 (제 2원칙 차등의 원칙)내 머리에 들어있던 존 롤스에 대한 모든 것이다. ⠀ 달달 외우기만 했지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그 자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취업준비의 목적이나 전공이 아니라면 이 정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 우리나라가 의대지상주의로 자녀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몰아붙이는 동안, 중국은 과학, 공학에 집중하여 미국를 긴장시키는 열강이 되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내가 학생일때부터 아무 쓸모없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순수(자연)과학에 투자한 것이 그렇게 큰 성과로 돌아온 것이다. ⠀ 존 롤스도 그런 정치철학저였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정립해나갔던 것들은 말그대오 기초개념이었다. 그 자체로 정책에 바로 써먹거나 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제 정치판에서는 그의 명성이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 기본적인 틀도 없이 응용과 실천으로 넘어가면, 싱크홀처럼 무너져내려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지금 우리가 정치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기피하며, 정치색을 가지는 것을 비정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그런 커다란 구멍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 기초부터 다시 그 구멍을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것이다. ⠀ 이미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듣는 진보, 보수, 자유주의는 처음 그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의 본래의미를 잃은 상태다. 빨갛고, 파랗고, 시장자유주의를 완전히 인용할 것이냐, 완전히 거부할 것이냐.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다보니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는 왜곡을 낳는다. ⠀ 오해와 왜곡이 가득한 것을 누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겠나. 국민의 관심이 사라지니 대변자의 권리를 받은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이라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과연 그들도 진보, 보수, 자유, 평등의 진짜 의미를 알고있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이다. ⠀ #자유와평등 (#대니얼챌든러 씀 #교양인 출판)은 그 어느때보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큰,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을 방법으로 존 롤스를 가져왔다. 위에서 언급한 롤스의 개념들을 가져와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고 있다.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를 확대시키는 ‘정치적 평등’, 부의 재분배가 아닌 수익이 발생하기 전 부와 기회를 분배하는‘사전분배’, 기업의 소유자에게 권한이 몰려있는 것이 아닌 노동자의 존엄을 위하는 일터에서의 권력 재분배가 대니얼 챌들러가 존 롤스에게서 길어올린 해결책들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대부분은 이미 학문적으로 완성돠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보다 학계에서만 계루되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우리 세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 그렇게 켜켜이 인류의 문제와 해결책들이 쌓여 역사가 되었다. 역사와 고전에서 여전히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는 증거이다. ⠀ 우리가 오늘과 미래를 위해 힘을 쏟아야하는 방향성을 잡아주는 나침반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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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 대니얼 챈들러 지음 | 교양인 출판사 @gyoyanginbooks ☕️ 어떤 책은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이미 믿고 있던 ‘정의’라는 말을 조용히 흔든다. 자유와 평등은 바로 그런 책이었다. 나는 이미 정의란 무엇인가와 공평하다는 착각을 통해 ‘정의’라는 단어를 충분히 해부했다고 생각했다. 공리주의의 한계, 자유지상주의의 오만, 능력주의의 잔혹함까지. 그러나 대니얼 챈들러는 그 모든 논쟁 위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의 특징은 논쟁을 ‘정리’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흩어진 정의론들을 하나의 현실로 끌어내린다. 마이클 샌델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였다면, 챈들러는 그 질문 이후를 책임지려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공정함’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 다시 보았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노력조차 출발선의 차이에 의해 이미 기울어져 있다면? 그때의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 그때의 ‘평등’은 무엇을 평등하게 만드는가. 이 책은 말한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를 침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조건이라고.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더 자유롭기 위해 덜 평등해도 된다고, 혹은 더 평등하기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였다. 결국 이 책은 정의를 ‘믿음’에서 ‘구조’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 우리가 동의한 결과인가.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같은 방식으로 ‘공정’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정의란 정답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설계하려는 의지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 @woojoos_story 우주님의 서평단 자격으로 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서평단 #자유와평등 #대니얼챈들러 #교양인 #도서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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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와 평등 대니얼 챈들러 / 교양인 ⠀ ⠀ ⠀ 노력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상, 정말 공정한 걸까 ⠀ ⠀ 분명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스포츠카에 타고 있다는 걸 ⠀ ⠀ ⠀ 이 책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출발선의 차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 ⠀ 철학자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바탕으로 저자는 묻는다 ⠀ 내가 어떤 조건에서 태어날지 모른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하게 될까 ⠀ ⠀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공정함은 결과가 아니라 출발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닿게 됐다 ⠀ ⠀ 자유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고, 사회적·경제적 격차는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 ⠀ ⠀ ⠀ 그리고 이 책이 더 인상 깊었던 이유는 ⠀ 여기서 멈추지 않고 ⠀ 민주주의 바우처, 기초 자산처럼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대안까지 함께 제시한다는 점이었다 ⠀ ⠀ 읽다 보니 이건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설계도처럼 느껴졌다 ⠀ ⠀ ⠀ 부모 찬스 없는 세상, 정말 가능할까 ⠀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 ⠀ 함께 읽으면 좋은 분들 ⠀ - 공정함과 평등의 기준이 궁금하신 분 - 요즘 사회 구조에 대해 고민해보신 분 - 존 롤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해보고 싶은 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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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를 설계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핵심 가치를 탐구하고 있는 대니얼 챈들러의 「자유와 평등」 챈들러는 현대 민주주의의 모습을 정의의 원칙과 정의의 실천 두 가지 방면으로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평소 정치나 사회 분야에 큰 관심이 없어 「자유와 평등」을 읽을 때 난해한 이론에 책이 얼른 이해되는 편은 아니었다. 몇 번을 다시 읽고 곱씹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어떤 부분에서는 여러 번 고개가 갸우뚱거리기도 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6장 ‘공정한 기회 균등’에서는 책에 무섭도록 빠져들었다. 평소 많이 고민하고 있던 분야였던 터이다.
경제와 교육에 대한 문제는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적인 벽을 많이 느끼고 있는 분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모습을 보면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교육 기회가 주어진 것 같지만 출발점이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공교육 이전 많고 다양한 경험을 갖게 되는 아이들이 더 좋은 기회와 더 큰 부를 갖게되는 현실. 부의 대물림은 당연시 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기회의 불공정성에서 오는 가난의 대물림. 챈들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물론 챈들러가 예시를 들고 있는 서양권 나라와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안의 핵심 개념 예를 들어 공정한 ‘기회 균등’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분명 다른 모습으로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가 모두 진정으로 자유롭고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는 우리 개인에게, 또 우리 전체에 달려있다’라는 메시지이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역동적인 지금의 사회 모습을 볼 때 단정지어 ‘된다/안된다’로 예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만나기 이전 내 모습 같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아간다면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의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해 사회에 관심을 갖고 정의로운 나라 구축을 위해 나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일. 모두가 함께 시작한다면 정의로운 나라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 교양인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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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서평단에서 책을 받아 시작하게 된 자유와 평등..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땐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어렵겠다. 정치철학이라니 ..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었지만 천천히 조금씩 읽어가며 도전했다.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하는 사회는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단순한 철학 설명이 아닌 현실 정책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교과서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존 롤스의 대표 이론인 정의론을 현대사회에 맞춰 다시 풀어 냈는데 자유, 평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함께 설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보통 우리는 자유를 강조하면 평등이 줄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왜 그렇게 해야하나. 에 답하려면 철학적 근거와 주장이 있어야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불평등과 공정한 사회란 무엇일까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냥 만들어진 사회에서 주어진대로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서 제시하는 핵심 정책들은 꽤 구체적이다. 기본소득, 시민배당, 직장 민주주의 같은 제안들은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고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과연 한국사회에 적용하면 어떤 부분이 제일 부딪힐까? 라는 고민도 생기고 다른이들의 생각또한 궁금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하게 된다. 평등이라는 개념도 결과가 평등해야하는지 기회가 평등해야하는지 생각이 모두 다른 것 처럼 나 스스로의 성향과 생각을 재정립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고민할 것이다 나는 어떤 평등과 자유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우주서평단 #자유와평등 #대니얼챈들러 #교양인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 교양인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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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찬 긍정.. 정의로운 국제사회는 정말 가능할까요? 저는 어느 전제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운 국제사회를 원하는 구성원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그 열망이 시스템을 바꿀 거라 믿습니다. 특히 지금은... 정의의 도약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체로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비극 속에서.. 인류가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아픈 감각이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김누리 교수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봤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국제사회에.. 미국의 민낯을 비췄다는 내용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TV 보급이 민중의 눈을 뜨게 했듯, 지금의 초연결 사회도 우리를 깨우고 있죠.) 저는 몽상가여서.. (비록 요즘은 희망 회로가 고장이 난 느낌도 크지만...) 여전히 우리의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솔직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당위가 실재를 만드는 법이니까요.)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따른다는 법칙을 좋아합니다. <원칙>, <빅 사이클>의 저자 레이 달리오는.. 지금이 거대한 변곡점의 한가운데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한 '빅 사이클'의 정점은.. 확 꺾일 수 있는 불안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질서를 세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정의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합니다. 아주 큰 틀에서 본다면... 우리가 '무지의 베일'을 쓴 것처럼 상대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감각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에 쓰레기를 함부로 투기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동네가 조금 더 쾌적해지듯이, 정의에 대한 인식도 얼마든지..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해 사회 구조로 확장이 가능합니다. 인식해야 할 집단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진 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도 아주 긴 흐름에서 보면.. 인류는 비관과 냉소를 딛고 꾸준히 진보해온 게 사실이니까요.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동안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의 기본 구조에 대해 공동의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적 책임(HSR)'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입니다. 그래서 대니얼 챈들러의 이 책이 더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비관과 분노, 소외가 가득한 시대에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찬 긍정"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책은 두껍지만.. 추상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풀어낼 구체적인 사유의 틀을 매우 친절하게 제시해 줍니다. 마감 기한이 있어 조금 급하게 읽긴 했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는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만족도가 컸던 만큼..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은 많은 분께 꼭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롤스의 정의론은 유튜브에도 좋은 영상들이 참 많습니다. (어제 스토리로 추천해 드린 영상은 꼭 한 번 보시길 권해드려요. 캡처 사진을 한 번 더 남겨놓겠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우주서평단 #자유와평등 #대니얼챈들러 지음 #홍기빈 옮김 #교양인 교양인의 사회적 책임...?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법공부 #바닿늘인류학 #바닿늘정치 #바닿늘철학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 교양인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왜 지금 다시 롤스인가?(머리말) 내가 종종 인용하는 문장이 있다. 1973년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sel)이 《정의론》 서평으로 쓴 것인데, 롤스의 사상이 지닌 독창성과 힘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관점은 이 시대의 특징과는 어긋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비관적이지도 않고, 소외를 호소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고, 감상적이지도 않고, 또 유토피아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오늘날 사람들이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 어떤 정서를 전한다. 바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찬 긍정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러한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바로 그러한 정신을 불어넣길 희망한다. 그래서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확신과 함께 이를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에너지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p. 39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회의 기본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서, 또 그러한 구조가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공동의 도덕적 책임을 진다. 롤스에게 정의의 본질이란 바로 이것이며, 롤스는 이러한 제도들을 설계할 때 지침이 될 수 있는 명확하고 일관된 원칙들을 도출하는데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 그의 출발점은 사회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이론을 '공정으로서의 정의 (justice as fairness)'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일생에 걸친 작업은 사실상 이 기본적인 생각을 풀어내는 시도였다. 즉 모든 사람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내는 것이었다. 머리말에서 보았듯이 롤스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원초적 입장'이라고 부른 강력하고도 직관적인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공정한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자 한다면, 마치 '무지의 메일'을 쓴 것처럼 우리 자신의 여건을 전혀 모른 채,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기로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에 따르면 '원초적 입장'에서 우리는 정의에 관한 두 가지 대원칙(자유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을 선택할 것이고, 더 나아가 세대 간 정의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원칙도 추가로 선택할 것이다. 이 책 전체에 걸쳐 살펴보겠지만, 이 원칙들은 표현의 자유, 정치에서 돈의 역할, 빈곤과 불평등, 기후 · 생태 위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도전적인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데 도움 될 수 있는, 놀랄 만큼 명확하고 강력한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이 책 2부에서는 이러한 원칙들을 기초로 삼아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의제들을 제안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 세계의 도전들에 맞서기 이전에 먼저 그 원칙들 자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롤스의 원칙들은 영어 원문 기준 백 단어 남짓에 불과하지만, 롤스 이론의 정수라 할 수 있으며 엄청나게 풍부한 생각들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정의에 관한 두 원칙 제1원칙: 각 사람은 평등한 기본적 권리와 자유에 입각한 충분히 적정한 체계(scheme)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이 체계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동일한 체계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체계에서는 평등한 정치적 자유, 오로지 그러한 자유만이 공정한 가치를 보장받아야 한다. 제2원칙: 사회적 · 경제적 불평등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지위와 직책과 결부되어야 한다. 둘째, 정의로운 저축의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어야 한다. 얼핏 보면 이 원칙들은 이해하기 상당히 어럽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왜 그렇게 특별한 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 장에서는 바로 이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원칙들이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또 우리가 친구와 가족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지와 같은 포괄적인 도덕적 질문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회 제도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정치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사회 정의', 다시 말해 개인행동의 정의와 대비되는 제도의 정의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롤스는 자유주의 전통의 다른 많은 사상가들과 구별된다. 한 저명한 철학자는 롤스 이론의 이 측면을 두고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성숙'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p. 44~46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뢰 헌법 구조를 아무리 잘 설계한다 하더라도,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존속과 번성은 시민들이 일정한 기본적인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고, 또 최근 들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는 것처럼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제도들이 공격받을 때 기꺼이 수호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은 시민들 스스로가 일상적인 행위와 상호 작용 방식 속에서 이러한 가치들을 구현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즉 시민들은 합당하고 관용적이며, 공정과 타협의 정신으로 정치에 임하고,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기꺼이 공적 이성에 호소할 수 있어아만 한다.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권위주의적 정치 운동의 발호는, 이 모든 것을 이제 더는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절실하게 일깨워주었다. 비록 유럽과 북미의 대다수 사람들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지만, 약 40퍼센트는 '기술관료제' 역시 좋은 정부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6명 중 1명 꼴로 군사 통치어 대해서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사 람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유럽인 가운데 자유롭게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57퍼센트에 불과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은 약 75퍼센트에 그쳤다. 더 우러스러운 점은, 20세기 권위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지지가 더 약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1930~194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들 가운데 약 3분의 2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그 비율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기본적인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건강한 민주주의의 생명줄과도 같은 태도나 '정치적 미덕'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롤스에게 이것은 '안정성(stabilit)' 이라는 더 광범위한 문제, 곧 사회가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지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시민들이 그 사회에서 살아가며 실제로 어떤 이득을 얻는가이다. 즉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자유, 동등한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기회 자원의 공정한 몫을 얻을 가능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의가 식어 가는 문제에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대응은 기존 제도들의 결함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부유층이 정치 과정을 장악할 수 있는 방식이나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빈곤, 불평등, 불안정을 직시하고 사람들의 충성심을 얻어낼 가치가 있는 제도들로 변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면서 이미 언급했듯이, 국가는 '표현적' 권력을 활용하여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태도에 대한 지지를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는 기념비 건립과 국경일 지정, 영국의 기사 작위, 프랑스의 명예 훈장, 미국의 대통령 메달 같은 공적 훈장 제도가 있다. 하지만 아마도 국가가 이러한 가치와 미덕을 장려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교육 제도일 것이다.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가들은 오래전부터 교육 제도가 시민을 길러내는 데 지극히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왔다. 이러한 생각은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대중화되었으며 조지 워싱턴과 제임스 매디슨 같은 인물들이 미국에서 공교육 제도의 발전을 지지한 이유이기도 했다. 롤스 역시 시민들을 "완전히 서로 협력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합당한 태도와 상호 존중 같은 "정치적 미덕을 장려하는" 교육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민 교육의 중요성은 원칙적으로 오래전부터 인정되어 왔지만, 현실에서는 갈수록 무시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교육 제도의 초점은 압도적으로 경제 생활을 대비시키는 데 쏠려 있다. 물론 이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며, 모든 아이가 진정으로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 교육이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버렸다. 미국의 경우, 공교육의 전반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초당적인 '미국 공통 핵심 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 Initiative)'은 교육이 모든 학생을 "세계적 경제 현장"에 대비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시민적 삶에 참여하도록 역량을 준비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1년 과정의 시민 교육을 의무화한 주는 9곳에 불과하고, 시민 교육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 제도를 갖춘 주는 8곳 뿐이다. 연방 정부가 시민 교육을 위해 학생 1인당 지출하는 돈은 과학 · 기술 · 공학 · 수학(STEM) 과목에 지출하는 돈의 0.1퍼센트도 안 된다. 영국에서는 2000년대 초 시민 교육을 강화하려는 시도기 있었지만, 2017년의 초당적 보고서는 "현재의 시민 교육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Europen Commission)의 한 보고서는 EU 국가들의 거의 절반이 교사 양성 과정에 시민 교육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3분의 1 이상의 국가가 시민 교육과 관련하여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그 지침조치 갖추고 있지 않다고 보고했다. 교육 제도가 시민을 길러내는 기능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변혁이 필요하다. 최소한 모든 젊은이에게 자신의 권리와 자유가 무엇인지, 정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회 내 종교적 · 도덕적 · 정치적 신념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일깨워주어야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민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한 기술과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민들은 사회의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개발할 수 있는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소통 능력도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사회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직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 관계적 능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신념을 키우고 그 가치를 반영하는 태도와 성품을 함양해야 한다. 시민 교육만 전담하는 수업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수업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말고, 다양한 정치적 역량을 적극적으로 함양할 수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논란이 되는 사회적 · 정치적 이슈에 대해 존중에 기반한 토론을 장려하거나 '모의 선거'를 실시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나와 사회적 배제나 인종적 불평등 같은 문제를 직접 배울 수 있도록 '봉사 학습'에도 참여해야 한다. 나아가 일종의 의무적인 '시민 국가 봉사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우리가 청소년의 직업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교육 참여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처럼, 시민으로서 역량을 키우고 계급, 인종, 종교의 경계를 가로질러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도 그러한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교육 제도를 훨씬 더 포괄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비판적 사고력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과목의 교수법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적 삶을 준비시키는 데 특별히 중요한 과목들이 있다. 철학자 대니엘 앨런(Danielle Allen)이 설득력 있게 주장했듯이. 문학, 철학, 역사, 사회학, 경제학 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 학문들은 우리의 정치적 역량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며, 실제로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시민 의식이 더 강하고 정치적으로도 더 적극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교육 정책의 초점이 STEM 과목에 맞춰져 있고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릴 때가 많다. 우리는 또한 학교 제도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청소년들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핵심은,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과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어는 정도까지는 '가르칠' 수 있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최소한 제대로 된 조건 아래에서는 사회와 직접 접촉하는 것이 그러한 태도를 형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학교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종적 · 민족적으로 다양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다른 인종 · 민족의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친구가 될 확률이 휠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의 입학 정책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 포용적 애국주의 국민 정체성 자유민주주의가 번성하려면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는 정치적 가치를 배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정서적 소속감 역시 필요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진정으로 포용적인 공동의 국민 정체성(national identity )을 키워낼 수 있을까? 비자유주의적 민족주의가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다시 부상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이 새로이 긴급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에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협소한 혈통적 혹은 종교적 국민 정체성을 고취하는 데 갈수록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두고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흔한 반응은 모든 형태의 국민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족주의라는 것은 배제와 박해의 힘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국주의의 사례처럼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복속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거나, 미국의 노예제와 인종 분리 그리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국가 내부의 소수 집단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쓰이기도 했다. 역사를 아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민족주의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동의 국민 정체성 개념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기본적인 정치적 현실주의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사람들에게 국민 정체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며, 집단을 형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을 고려할 때 국민 정체성이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국민 정체성의 어떤 표현이든 본능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이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소외시키고,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가 들어설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둘째, 좀 더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공동의 국민 정체성은 사회적 연대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이 개인적 이익을 넘어 자신이 더 큰 공동체의 일부임을 인식하도록 이끌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동료 시민들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때,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 · 경제 제도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금처럴 갈수록 다양성이 커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데, 국민 정체성은 우리가 자기 이익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종교적 · 혈통적 집단의 이익도 넘어설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 정체성을 완전히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포용적인 '자유주의적' 애국주의를 키워냄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위해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애국주의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한 국가를 이루는 여러 요소 중에 모든 사람이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요소에 기반해야 하며, 이에 따라 혈통이나 종교 같은 것들은 즉각 배제된다. 그 대신 그 핵심에는 자유, 관용, 평등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 가치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할 사회를 함께 건설하자는, 진정으로 공유된 프로젝트에 대한 신념이 자리 잡을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두 동일시할 수 있는 역사와 함께 만들어 갈 미래가 담길 것이며, 우리는 그 성취를 함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포용적인 정체성 이러한 포용적인 국민 정체성 비전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천진무구한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치 담론은 민족적 · 종교적 분열이라는 정서에 깊이 물들어 있으며,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상은 국민 정체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거의 정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2016년과 2020년 사이(유럽에서 전례 없는 난민 위기가 발생한 이후 인종을 둘러싼 분열적 논쟁이 이어졌던 시기)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국민 정체성은 오히려 덜 배타적이고 더 포용적으로 변해 왔다. 이 나라들에서 국민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특정 출생지나 종교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이제 이러한 견해는 소수 의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성격이 뚜렷한 가치와 제도를 중심으로 삼아 유의미한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이런 것들이 과거에 종교나 혈통이 했던 역할을 정말로 수행할 수 있을까? 최소한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가치를 지지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롤스가 말했듯이. "다른 시민들을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우리의 다짐,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그것은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고 그 의례를 행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정체성의 기본 요소가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정치적 가치는 유의미한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유용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대체로 헌법에 구현된) 자유주의적 ·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가치들이 애국적 정체성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물론 미국의 헌법은 본래 형태로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는데, 흑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허용하고 여성을 이등 시민의 지위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포용적이고 정치적인 미국의 정체성은 항상 배제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경향과 공존했고, 후자는 오늘날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에게 헌법에 있는 정치적 이상과 불완전하게나마 그 이상을 실현하는 핵심 제도들은(의회, 대법원 등등)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 다. 프랑스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공화주의적인 정치적 가치의 중요성이나, 많은 영국인들이 느끼는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한 보편적 공공 의료 제공에 대한 자부심이 그 예이다. 설령 정치적 가치가 혈통적 · 종교적 유대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해도, 이것이 포용적 애국주의를 거부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내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며, 혈통이나 종교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소수자를 소외시키고 급진화시키는 경향이 있 다. 결국 자유주의 사회의 안정성은 시민들이 경험하는 실질적인 이득에 달려 있으며, 이는 우리가 마땅히 높이 평가할 만한 지점이다. 배타적 민족주의자들은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고 사회적 불화의 씨앗을 심는 데 의존할 때가 너무나 많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우리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p. 205~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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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의 <정의론> 에 입각한, 자유와 평등 유토피아 설계 -------------------------------------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청년실업자가 많아지며 세계적으로 출산률 감소, 자살률 증가 등등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부자들은 점점 잘살고 빈곤층은 더욱 빈곤으로 치중되고있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뒤집기 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실현하기 어렵다며 눈앞에 해결책을 두고 극구 사양한다. 1950년대, 이 유토피아를 먼저 설계해 존 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실제로 정치에 나서거나 연설을 하지않고, 자신 외 정확한 설계가 필요한 설명분야는 과감히 삭제했기에 세간에는 "훌륭한 책이지만, 현실성이 없다" 라며 특히 '우익', '우파'에 의해 종이짝 취급을 당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 자체가 없으면 즉 희망이 없으면 그 다음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없다. 책의 제목처럼 <자유와 평등> 에 대한 내가 생각하는 모습을 지향하지 않으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답조차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세계 전쟁, 기후변화로 위협받고 있는 전지구적 재앙에 우리가 맞서야하는건 실현하고자하는 용기와 바꾸려는 개혁의 자세, 즉 인간이 본능적으로 피하는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변화가 없느니, 당장 실현할 수 있나 의문을 품더라도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놓으면 안된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다양한 연구와 실제 적용사례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세계 곳곳에 작게나마 어떻게 실현되었고 성공하고 있는지 설명해두었다. 책을 보면서 너무 큰 의심을 품기보단 의문을 품으면서, 그것이 너무 의문이라면 '말도안되' 보다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나름대로 그려보면 좋겠다. ----------------------------------------- 이 책에서 제시한 의제는, 그 정책 제한이 현실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주의적이지만, 우리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옆으로 밀어 놓는다는 관점에서 유토피아적이다. 우리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이상향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발전시키기 이해서는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관념이든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정치 운동을 구축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고, 국가의 권력을 활용하여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바꾸어낼 수 있는 그런 운동 말이다. 그러한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망은 어떠한가? 전 세계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 전반에서 기본적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위협받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 주류 진보 정당들은 미국과 독일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스페인에서 권력을 잡았으며, 영국에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노동당이 차기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풍부한 가능성의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은 기성 규범과 충성의 대상이 모두 의문에 처한 아주 드문 세대이며,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대로 "옛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_ 413 ~ 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