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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는 김승옥님의 간증과 체험이며, 후반부는 서울대 시절 그의 문학활동에 대한 소개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으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도전과 함께, 많은 위안을 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착실히 교회를 잘 다니고, 정통 장로교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가 고등학교 시절, 오히려 성경을 통독한 후에야 이것이 유대인만을 위한 이스라엘 민족의 문헌이구나 하는 마음에 믿음을 저버리고, 여러 상황 가운데 지내며 알콜중독의 자리에까지 갔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서 절대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술과 담배를 자연스레 끊게 되며 자신의 삶 곳곳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체험하며 알게 된 일들을 그저 솔직하고 꾸밈없이 술술 적어놓은 내용이다. 단지 그가 작가이기에 보통 사람과 달리 조금 더 표현력있고, 자세하고 상세하게 적었을 뿐 다른 사람들이 만난 하나님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또한 성지순례와 문인들을 위한 해외연수를 통해 그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그 옛날 사도들의 모습에 감정이 솟구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은 그저 순수한 믿음을 가진 한 성도의 모습이다. 혹 누군가 김승옥이란 작가가 <내가 만난 하나님>이란 에세이를 내놓았다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역시 작가라 잘도 꾸며내었구나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더군다나 그는 하나님을 만난 후 그 감격에 눌려 오랫동안 절필을 하고 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의 오랜 설득과 격려 덕분에 나오게 된 이 책은 그간 자신의 사상과 고집 속에 갇혀있던 여러 문인들과 교사들을 전도하는 데도 아주 좋은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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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4.18. 인문책시렁 330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작가 2004.5.3. 《내가 만난 하나님》(김승옥, 작가, 2004)을 반갑게 읽고서 한참 삭입니다. 글님이 전남 순천에서 어린날을 보냈을 뿐 아니라, 글님 어머님이 전남 순천에서 나고자랐다는 대목을 읽고서 새삼스럽습니다. 이 책이 나온 2004년 무렵에는 이런 얼거리를 모르기도 했고 딱히 눈길이 가지 않았으나, 이제는 순천 곁 고흥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지난날 고흥과 옆고을이 어떤 숨결이었을는지 천천히 곱씹습니다. 순천·벌교(보성)·고흥·장흥은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맞닿고, 바다를 나란히 품습니다. 네 고을 가운데 고흥은 마치 섬처럼 동떨어진 터라면, 순천·벌교(보성)·장흥은 뭍으로 트인 터입니다. 다만, 길이 아무리 새로 나더라도, 지난날에는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숲정이나 고개가 있습니다. 고을하고 고을 사이에는 재가 있습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는 멧줄기가 있어요. 가까우면서 먼 사이요, 먼 듯해도 가까운 이웃입니다. 김승옥 님은 어느 날 눈앞에서 하느님(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깜짝 놀랐다지요. 설마 싶은 일을 겪었고, 남들은 거의 안 겪을 만한데, 왜 이녁한테 이런 빛이 찾아오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숱한 님을 만납니다. 눈을 감아도 만나고, 눈을 떠도 만납니다. 우리는 ‘몸눈’으로만 보지 않아요. 몸눈으로는 아주 조그마한 데만 볼 뿐이에요. ‘마음눈’을 뜨면서 둘레를 볼 적에는 눈앞을 환하게 틔웁니다. 겉으로 입은 몸이란 그저 옷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우리가 가꿀 오늘이란 ‘겉몸을 배불리 먹이는 길’이 아니라 ‘속마음을 넉넉히 살리는 길’인 줄 느낄 만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굳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서, ‘몸눈’으로 둘레를 ‘좁게’ 보는 까닭이 있겠지요. 이 뜻과 길과 까닭을 찾아나서는 하루가 바로 ‘삶’이요, 이 삶을 안팎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기에 ‘살림’이며, 이 살림을 어떻게 다스리고 북돋우느냐 하고 생각하기에 ‘사랑’으로 나아가서, 어느덧 ‘숲’한테 안기는 ‘사람’으로 섭니다. 빛을 만난 김승옥 님은 더는 글살림을 잇지 않으셨지만, 빛줄기하고 마주한 한때를 고이 마음으로 품고서 이 조그마한 꾸러미로 여미었기에 더없이 고맙다고 여깁니다. 머잖아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삶자락을 포근히 누리시면서, 오늘 하루를 언제나 눈부신 빛살로 일으키고 사랑하는 마음이시기를 바라요. ㅅㄴㄹ 이렇게 위대한 탄생들인데 왜 인간들은 전쟁을 벌이며 서로 죽이는 것일까? 왜 질투하고 비판하며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것일까? 인간은 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할 고귀한 존재들인데 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것일까? (22쪽) 그날 밤, 아직 배탈난 손자의 배를 쓸어주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내 명치를 천천히 쓸어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나는 도둑인 줄 알고 내 오른손으로 덮치며 “누구야?” 낮게 외치며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내 오른쪽 머리 위 방안 허공에서 들려오던 아주 굵은 남성 음성은 “하느님이다.”는 한국어였다. (39쪽) 전남 순천 출신인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성장하여 여학교를 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한약국집 외딸이었다. 해방되던 1945년에 귀국하여 순천에 정착했으나 1948년도, 내 나이 8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가족의 죽음 때문에 나는 ‘인간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77쪽) + 무신론자無神論者인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 때문이다 → 안 믿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손수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 고개젓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몸소 빛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11쪽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말로 하늘 세계의 영원한 법칙이다 → 가재나 개야말로 하늘나라 오래길이다 → 나란살이야말로 하늘누리 늘빛이다 → 한울타리야말로 하늘밭 한길이다 → 같이 놀기야말로 하늘터 그대로이다 15쪽 훌륭한 건국 신화에 하나님 권위를 갖다붙이는 건 항다반사 아닌가 → 훌륭한 첫이야기에 하나님 이름을 으레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벽노래에 하나님 이름꽃을 늘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날노래에 하나님 이름씨를 꼭 갖다붙이지 않는가 20쪽 아내는 이젠 나한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 곁님은 이젠 나한테 퍼뜨리려고 한다 → 짝꿍은 이젠 나를 이끌려고 한다 29쪽 우리 민족이 써온 일종의 표준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 우리 겨레가 써온 두루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 이른바 우리 겨레한테 맞춤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39쪽 물론 성지순례라고 하는 여행의 성격이 특수한 탓도 작용했으리라 → 다만 거룩마실이라고 하는 길이 남다른 탓도 있으리라 → 그리고 거룩길이 두드러진 탓도 있으리라 → 또한 거룩걸음이 유난한 탓도 있으리라 92쪽 사회 생활을 배우기 시작하는 나이인 나에게 여순 사건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경험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 모둠살이를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벼락으로 불거진 겨레싸움은 참으로 끔찍했다 → 살림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바다로 불거진 피비린내는 참으로 괴로웠다 → 삶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수렁으로 불거진 한핏줄싸움은 참으로 아팠다 13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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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럽고 솔직히 화도 난다. 욕심이 많은 편인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왜 하나님은 내게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물론 성경 말씀처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로써 마음을 다스려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살면서 힘든 순간이 닥쳐올 때나, 시험이 들 때면 하나님께서 직접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것이다. 나 또한 힘든 상황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뭐라 직접 말씀을 해주셨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물론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바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나는 김승옥님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가 작가라는 것도 하나님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고 그를 기억했으며 그가 하나님께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치유하시고 그를 이끄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쓰실지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며 나를 위해 계획하신 일들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났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그것을 행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고 그것이 내게도 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내가 만난 하나님. 이 제목처럼 나는 늘 하나님을 내 삶 속에서 만나기를 원한다. 직접 만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때로는 자연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론 기도로 늘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그럼에도 나는 늘 욕심이 난다. 저자처럼 하나님의 손이 나 치유하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길...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나님을 만난 사실과 그에게 맡겨진 사명,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간증과는 상관없이 저자의 글을 쓰던 시절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인데 읽으면서도 왜 이 책에 실려 있는지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없어 조금은 당황했었다.
※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느님이라는 말을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으로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과연 어떻게 쓰는 게 맞는지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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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꽤 유명한 분인듯 한데 우정의 글을 올려주신 김지하 시인의 '새로운 세대는 김승옥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처럼 나는 김승옥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한다. 나도 새로운 세대에 속하나보다.
일단 간증집이기 때문에 술술 읽어졌다. 중간쯤에 겹치기도 하고 또 간증보다 여행기처럼 서술한 부분에서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증집이라서 쉽게 잘 읽히는 편이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해결받기를 원했던 그 집요함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믿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강조하니,,, 나도 새롭게 복음을 전할 때 포인트를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서 낯설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얀 손이 나타났다든지.... 그리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하느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 등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심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 그나마 복음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 역시 하나님을 떠났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복음이 전파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 실제 사진이 소개되어 있어서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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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간증집이다. 말 안듣는 아이에게 달래듯이 하나님은 그에게 '하얀 손'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릴 적 부터 교회에 다니다 고등학교 시절 성경을 통독하게 된 작가는 오히려 말도 안되는 동화라고 치부하며 교회다니기를 그만둔다. 그런 그를 예수님이 도마에게 손바닥과 옆구리를 확인시킨 것 처럼 하나님은 직접 나타나 변화시킨다. 그의 인생이 확 변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그의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돌아서릴 원하신다. 하나님은 작가 김승옥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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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정말 읽고 싶었다. 왜냐하면 세 분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용조목사님, 김성영총장님, 김지하시인, 모두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분들이기에 내가 만난 하나님과 뭐가 다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착각을 했던 것이 간증집이 아닌 산문집이라고 해서 간증의 기대보다는 어떤 살아가는 내용이 담겨 있을까 기대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 하드커버인 것을 보고 놀랐다. 대부분 산문집은 하드커버가 아닌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낸 분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일거란 짐작을 하게 했다. 산문집이라 해서 읽어내려 갔는데 산문집이 아닌 간증집이었다. 아주 간만에 보는 간증집인지라 기대를 했었다. 간증이란 것 자체가 철저하게 개인이 만난 하나님에 대한 얘기이기에 신기했다. 난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보는 체험은 하지 못했다. 이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커서 직접 보여주시는 걸까? 신기했다. 많은 재주가 있는 분이니만큼 하나님의 일도 많이 하셔얄거란 생각을 하며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리 특별한 것이 없는 간증집이었다. 확실한 비젼과 그 비젼을 실천해 가는 것이 좀더 강화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고, 하드커버가 아닌 그냥 종이커버로 책을 만들어 좀 싼 가격에 이 책을 구입해 볼 수 있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역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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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권으로 다시 책을 내세요. 이책을 접하고 느끼는 결론이다. 이책은 두개의 책을 억지로 저자가 같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묶은것 같은 이질감을 준다. 출판사나 저자에게 권하기는 이책을 두권으로 내길 강요하고 싶다. 우선 내가만난하나님이라는 간증서적과 뒷쪽에 있는 산문시대라는 책으로 각기 출간하라. 하라라고 명령조로 말하는것은 내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독자를 독자답게 좀더 배려하라는 주장에서이다.
사실 김승옥이란 작가를 잘모른다. 그것이 지금의 젊은이와 우리같은 기성세대와의 공통된 생각일것이다. 물론 문학을 좀압네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말하는것이다. 그러나 그를 알았던 모르던지 이책을 통해 저자를 대하고 그삶을 훔쳐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두가질 제안받았을것이다.
두가지의 제안 : 우선은 하나님과의 만남일것이다. 하나님이 되었든 저자의 하느님이 되었든 결국 창조주이자 우릴 지금 이시대 한국으로 보내신 유일하신 절대자 그분을 만나라는 저자의 이야길 것이다. 내가 만났다는것을자랑한다는것보다는 아마도 저자는 나와같은 그런사람도 즉 바울처럼 이런저런 방황에 빠진 자도 하나님이 건지셔서 만나주시고 인도하시는데...,,
또하나는 김지하사건에 관련하여 특히 박정희의 유신정권으로부터 시작하여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는 시대를 산사람들에게 보내는 말로써 부끄럽지않은가라는 것이다. 이저자는 그시대를 술먹는 중독자의 삶을 살았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기이름석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애지중지하는 자기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진실과 사실이 그렇지않다는 그말을 하기위해서 스스로 절필하고 스스로 자기생활을 포기하다시피하는 몰입을 통해 그시대를 살앗던 동시대인들 즉 우리에게 너희들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고있는듯하다. 저자는 절대로 그이야길 하지않는다. 다만 그당시 침묵하거나, 그들의 압잡이가 되어서 지금의 기득권적인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소위 나쁜?인간들이 스스로 찔림을 받아야한다는 이야길 한다.
부족한 신앙간증 맨뒷장에 저자의 약력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 거기엔 앞서말한 신앙간증부분의 인도선교 명령이후의 삶이 보이질않는다. 사실 그부분이 어찌보면 내가만난 하나님이 말한 명령에 대한 인간 김승옥의 답변이자 행동이엇을것을 마치 하이라이트없는 소설, 앙코없는 찐방을 보는듯하다. 다시 책을 내어야 한다면 어찌보면 하나님을 만난 간증보다 인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선교자로서의 저자의 삶에 보다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은 틀리지않는다. 보배로운 간증부분들을 볼때 느끼는 긴장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책을 왜 이렇게 낼수밖에 없는가라는 실망스러운 느낌만이 책장을 덮으면서 든다. 기대하지말았어야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