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슈빈의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경박한 성격에 진지함을 회피하고 여자를 밝히는데, 특히나 처녀 타령을 할 때 살짝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예술가들이 흔히 여성을 뮤즈로 칭송할 때, 실은 자신의 창작욕을 위한 도구이자 피사체로만 취급하는 그 기시감을 여기서도 느꼈다.

저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이 대목인데, 옐레나라는 여성을 올려치기 할 때 그녀의 어머니를 암탉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아마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저 암탉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반 여성들이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전제를 담고 있어 그가 여성을 어떤 식으로 대상화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슈빈은 사랑 타령을 하면서도 그 자체보단 순간의 탐미적인 감정을 찬양하는 편에 가깝다. 한편 베르세네프는 슈빈보다 진중하고, 내성적이며 도덕적인 인물이다. 그는 사랑을 숭고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가치관 차이 때문에 둘은 몇 페이지 동안 이 주제로 토론을 한다.
사실 나의 경우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도 없고 감흥도 없어서 심드렁했는데 슈빈이 워낙 나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겼던 터라 베르세네프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슈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옐레나의 어머니에게 거둬져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다. 그는 베르세네프에게 옐레나에 대해 말하며 은근히 그녀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결국 그는 베르세네프를 자기가 머무는 별장에 초대해 그녀를 소개해 주는데, 옐레나를 뮤즈로만 대상화하는 슈빈과는 다르게 하나의 인간으로 진중하게 대해 그녀의 호감을 산다. 그녀는 유복한 귀족 가문의 영애지만, 보통의 귀족처럼 사치스러운 면모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저 부분을 읽고 그녀가 좀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옐레나가 선한 건 맞지만, 저런 건 사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이니까 말이다. 특히 거미줄에 걸린 파리를 떼어내는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다.
옐레나의 저런 면을 보고 영화 도그빌에 나오는 그레이스가 떠올랐는데,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확히 저 위선을 지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옐레나가 저런 성향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지 매우 궁금했다.
나는 저 인사로프라는 남자가 초반에만 언급되고 잠깐 스쳐 지나갈 인물인 줄 알았다.

그는 베르세네프의 호의로 별장에서 머물게 되는데,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돈을 내기를 고집한다. 가난하면서도 올곧은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옐레나와 인사로프의 얘기도 재밌었지만,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베르세네프의 내면, 질투심에 눈이 멀어 감정적으로 굴게 되는 슈빈의 태도가 묘미였다. 감정선이 섬세하고 몰입도가 좋아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이야기가 희극으로 끝날지 비극으로 끝날지 직접 읽어보면서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