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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로 인식되는 ‘아나키즘(Anarchism)’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그 개념이나 범주에 대해 일치하는 견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세기 초 한중일 3국의 1세대 아나키스트들조차 아나키즘을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여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아나르코 생디칼리슴(Anarcho-Syndicalism)에 기반을 둔 국제적 연대
세 나라 가운데 일본은 “자본주의가 채 발달하기도 전인 19세기 후반에 이미 서구의 사회주의를 들여왔다. (이는 메이지) 정부가 산업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부정적으로 소개[p. 21]”하기 위해서였다.
아나키즘도 비슷한 시기에 알려졌는데, 기독교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한 고토쿠 고슈이[幸德秋水, 1871~1911]가 대표적이다. 그는 1903년 주간 <평민신문>를 창간하여 침략적 제국주의와 배타적 애국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다 1905년 무렵 아나키스트로 전향하고, 1906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아나르코 생디칼리슴(Anarcho-Syndicalism)의 원칙을 바탕으로, “보통선거를 통한 권력창출이라는 의회주의 노선은 사회혁명의 방법으로 무력하다고 말하고 노동자의 직접행동인 총동맹파업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pp. 32~33]”했다. 이후 그는 피압박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꾀했다. 그 결과 1907년 일본, 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의 혁명가들이 도쿄에서 반(反)제국주의를 목표로 하는 ‘아주화친회(亞洲和親會)’라는 국제조직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피압박 민족의 민족주의 및 애국주의 사조도 부정[p. 51]”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한인 혁명가들은 일본인이 참가한다면 자신들은 아주화친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p. 38]” 다만,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은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주화친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천황 암살 모의의 배후로 지목되어 처형된 고토쿠 고슈이의 아나키즘을 승계, 발전한 것은 오스기 사케에[大杉榮, 1885~1923]다. 그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의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인 이동휘(李東輝, 1873~1935)와 여운형(呂運亨, 1886~1947) 등과 국제연대를 꾀했으며 박열(朴烈, 1902~1974) 등이 조직한 ‘흑도회(黑道會)’를 후원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중국, 국수주의와의 동거
20세기 초 중국의 지식인이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서구 열강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하고, 만주족 청(淸) 왕조를 타도할 수 있을까’였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일본 유학생 사회를 통해 아나키즘이 포함된 러시아 허무주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아나키즘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반(反)아나키즘 입장에서 쓰여진 게무야마 센터로[煙山專太郞, 1877~1954]의 <근세무정부주의>라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아나키스트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07년 도쿄에서 류스페이[劉師培]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강습회가 <천의(天義)>를 발간하고, 파리에서 리스쩡[李石曾]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가 <신세기(新世紀)>를 발간하면서부터다. 류스페이는 일본 아나키스트, 그 중에서도 고토쿠 고슈이의 영향을 짙게 받았지만, 국수주의와 아나키즘을 결합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 즉, 도가(道家)의 이상사회를 모델로 “전통적인 평균(平均) 사상과 근대적 평등 사상을 한데 섞은 절대평등의 유토피아를 추구[p. 71]”했던 것이다. 이렇게 외관상 정반대의 입장인 국수주의,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국제주의를 섞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나키즘을 국학(國學)의 부흥을 위한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조선식 아나키즘’을 추구한 신채호(申采浩, 1880~1936)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표트르 크로포트킨(Pyotr Kropotkin, 1842~1921)의 사상을 주로 하는 프랑스 정통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리스쩡은 “정부나 국가에 대한 혁명 외에도 가족, 종교, 전통에 대항하는 문화혁명을 강조한다. [p. 74]” 심지어 이들은 “중국의 한자를 폐지하고 에스페란토어로 바꾸자(고 주장하였다.) ‘과학’으로 ‘전통’을 대체하려 했던 것이다. [p. 79]”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라는 스푸[劉師復, 1884~1915]는 1912년 회명학사(晦鳴學舍)를 조직, 리스쩡 등의 과학적 아나키즘을 중국에 보급했다. 그가 스푸가 된 것도 “아나키즘을 수용한 후 가족주의와 종족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류[劉]’라는) 성(姓)을 버리고 이름을 바꾼[p. 83]” 결과였다. 이렇게 철저하고 정열적인 아나키즘 실천 덕분에 그는 중국 아나키스트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의 아나키즘의 특징을 생디칼리슴을 수용, 노동자의 단체를 조직하고 노동자들의 교육수준을 향상시켜 아나키즘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한국, 저항적 민족주의의 수단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은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한인 아나키스트에게 일제에 대한 투쟁은 곧 민족해방운동이자 아나키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민족해방은 곧 민중해방이자 계급해방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인 아나키스트들이 유난히 민족주의 색채를 강하게 나타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나 정당에 대한 혐오감이 적었고 심지어 정치 지향적인 모습조차 보였다. [p. 108]” 이런 점에서 선배 아나키스트였던 우즈후이[吳稚暉, 1865~1953]나 장지[張繼, 1882~1947]가 정치활동에 참여한 것을 비판한, 스푸와 대조적이다.
이 책에서 일정 분량 이상 언급된 한국의 아나키스트로는 신채호, 박열, 그리고 김종진이 있다. 신채호는 아나키즘을 수단으로 여겼던 류스페이[劉師培]와 유사하게 민족주의와 아나키즘의 결합을 통해 ‘조선식 아나키즘’을 추구했다. 박열도 민족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허무주의적 아나키즘을 버리지는 않았다. 또 다른 아나키스트 김종진(金宗鎭, 1901~1931?)은 “1927년 만주에 도착해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을 만났으며, 김좌진의 신민부(新民府)를 이용해 아나키즘 코뮨사회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는 김좌진의 지지를 받으며 신민부 개편에 가담해 한족총연합회를 만들었다. 이 연합회는 중앙집권조직을 거부하고 자유연합에 기초한 지방자치조직[p. 131]”을 조성했다. 하지만 1930년 김좌진이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인 박상실(朴相實)에게 피살되고, 1931년 김종진마저 행방불명 되면서 농민을 기반으로 한 아나키즘 이상사회 건설계획은 좌절되고 만다.
이처럼 1세대 한중일 아나키스트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은 아나키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상의 용광로이자 프리즘이었기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게무야마 센터로의 <근세무정부주의> 때문에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어가 유통된 다음에는 아나키즘이 허무주의자의 암살이나 폭동과 동일시되면서 원래의 의미가 심하게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나 조직을 부정하는 혼란과 폭력의 대명사[p. 26]”로 여겨졌지만, 아나키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와 권력에 저항하는 사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아나키즘이 존 스튜어트 밀(J.S.Mill, 1806~1873)이 <자유론>에서 다루고 있는 ‘시민의 자유’ 혹은 ‘사회적 자유’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
| 반공 이데올로기가 굳건히 뿌리 내린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이성적인 접근이 힘들었듯 아나키즘은 현실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 모두에서 한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무정부주의'라는 잘못된 이름을 얻고 테러와 혼란의 이미지만 덧씌워진 채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상으로 전락해 있었을 뿐이었다.하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는 점점 천민화의 길을 걷고 있는 오늘날, 아나키즘은 전문적인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생태주의자나 사회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점차 일반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책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는 오늘날의 아나키즘의 역할 보다는 역사상의 아나키즘, 특히 1900년대 초의 한,중,일 세나라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들을 통해 아나키즘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사회를 추구했던 사상이며 아나키스트들이 그 사상을 지키며 어떻게 치열한 삶을 살아갔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특히 내가 가장 흥미있게 읽은 내용은 군국죽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으로 보아 함께 부정했던 고토쿠 슈스이의 민족주의 비판이다. 이는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를 비판했던 트로츠키주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은데 고토쿠 슈스이가 주로 활동했던 시대가 트로츠기가 스탈린을 본격적으로 비판했던 시대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점에서 상당히 놀라웠다. 또 마지막 파트의 아나-볼 논쟁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전위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상호간의 논쟁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것을 통해 아나키즘의 핵심 사상이나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사회에 대해서 좀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매우 과격한 사상으로 알려져 있는 '아나키즘'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인간을 위한 사상인 것 같다. 아무리 정당한 권력일지라도 그 권력으로 인해 개인이 억압당할 수 있기에 이러한 권력의 폭력을 인지하고 그것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이들이 '아나키스트'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아나키즘이 추구하고자 했던 민중연대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오늘날까지 이루지 못한 하지만 이루어야 하는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동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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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조세현. 책세상 우리가 무정부주의라고 알고있는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와 함께 서구에서 발생한 이념이다. 푸르동,바쿠닌,크로포트킨 등 익숙한 이름이지만 정확하게는 알지못하는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되어온 아나키즘은 ‘자유에 대한 지향, 압제에 대한 지양’으로 간략하게 개념화가 가능할 듯 하다. 동아시아의 격변기인 근대에 수입된 아나키즘이 한중일 삼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어떻게 수용 발전되었는지 살핀 책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20세기 전반기까지 서구사회를 풍미했던 아나키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강권적인 권위와 권력을 부정했는데 - 이를테면 국가 정부 종교 군주제 가부장적 위계질서등 - 이러한 사상은 허무주의나 테러리즘, 또는 한갓 공상적 유토피아와 동일시되어 비판받아왔다.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의 한 조류로서 발전했는데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였으므로 역으로 공산주의자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한다. 또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국가의 역할을 극소화함으로써 자유주의에 근접했지만 사회개혁의 수준을 넘어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뿌리뽑으려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도 어우러지지 못했다.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아나키즘은 고전적 아나키즘의 무정부주의나 노동조합주의에서 벗어나, 환경생태운동을 펼치는 에코 아나키즘이나 교육운동을 추구하기도 하고 여성문제와 관련 아나르코 페미니즘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극대화되면 그 반동으로 사회주의가 출현한다고 하는데 볼 셰비키혁명에 성공한 공산종주국 소련조차 자본주의 미성숙상태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후진 자본주의국가들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하기도 전에 사회주의 이념이 도입되고 확산되었다. 지은이는 이를 사상적 조숙성이라 표현한다. 일본은 이미 1880년대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소개하는 책자가 발간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와 섞여 혼동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당시 러시아에서 유행했던 허무주의와 테러리즘을 아나키즘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했다. 우리가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 부르게 된것은 1902년 일본에서 발간된 <근세무정부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허무주의자들에 의한 암살,테러,폭동을 아나키즘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사람은 고토쿠 슈스이로서 1904년 <공산당선언>을 번역한 사회주의자였다. 고토쿠 슈스이는 미국 방문후 아나르코 생디칼리즘(노동조합주의적 아나키즘)을 표방하고 귀국하여 아나키즘운동에 뛰어든다.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은 민중의 직접혁명을 주장하고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판하여 중국과 한국의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고 이를통해 아나키즘은 동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이 당시 동아시아에 퍼진 아나키즘은 대부분 크로포트킨의 아나르코 코뮤니즘(공산주의적 아나키즘)이라고 한다. 이들이 꿈꾸었던 사회는 가족 종교 국가와 같은 권위가 소멸되고 개인의 자유와 욕구에 따라 생활하는 유토피아사회, 코뮨을 단위로 하는 자유연합사회로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대원칙이 통하는 사회다. 당연히 사유재산은 없으며 불평등이 철폐되고 相互扶助의 정신이 충만한 이상사회다. 지금 보면 제정신들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실제로 실현가능한지 여부 보다는 실현하기 위해 직접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류스페이,리스쩡 등이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활동했는데 류스페이는 노자를 중국 아나키즘의 창시자라고 보았다. 즉 國學과 혁명의 결합인데 류스페이 아나키즘은 신채호의 아나키즘과 비슷하다고 지은이는 보고있다. 사회주의에서는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를 따지지만, 사상의 조류를 뒤늦게 접한데다가 국권을 잃은 식민지상태의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민족모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 신채호의 아나키즘이 민족주의와 결합하게된 이유다. 한국, 조선의 아나키즘은 3.1운동을 전후하여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한다. 신채호,유자명,이정규,이회영 등이 대표적 아나키스트들이다. 박열은 일본에서 활동하였다. 이들에게는 反權威의 대상이 일제였으므로 아나키즘과 민족해방운동 사이의 괴리를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무정부주의로 번역된 아나키즘은 일제에 대한 투쟁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적 근거이기도 했다. 신채호가 김원봉의 부탁을 받고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은 의열단의 정신적 지침서였으며 민중직접혁명을 선동한 무정부주의선언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이를통해 암살 파괴 폭동이 외교론이나 준비론에 비할바없이 공이 크다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무정부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비판과 일제의 탄압에 의해 활동에 제약을 받고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말았다. 동아시아 3국 모두 아나키스트는 공산주의자들의 비판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이를 아나 볼 논쟁이라 하는데 아나키스트는 공산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도 부르주아정권과 다를바 없다고 보았다. 또 아나키스트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으므로 조직의 규율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생산분배 문제 역시 국가주도의 통제경제체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아나키즘이 비과학적이며 공상적이라 비판하였고 그 결과 한국의 경우 두 세력의 무력충돌로까지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은 사라졌다. 그러나 저자는 아나키즘이 제기하고 있는 주장과 관점의 본질적인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아나키즘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공산주의체제의 독재를 예측했던 점이나 “인민을 위한”사회주의가 아닌 “인민의”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점, 계급투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한 마르크시스트와 달리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전방위투쟁을 주창한 이상주의적 전망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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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한번쯤 이들의 사상을 동경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로 불리워진 이들의 삶의 족적을 가기를 원했다. 군부독재가 인간 본성과 양심을 억압한 것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을 살아간 일부는 저항정신이라는 명목으로 '아나키스트'를 동경했고 그들의 사상을 체화(體化)하는데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키즘, 아나키스트의 개념 정립을 명확히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단순히 그들을 그냥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자로 결론지었고, 오늘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국가와 정부가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9'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을 만나보시라.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얼마나 빈약한지 채찍질하고 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아무도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독점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아나키즘을 어느 누구도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세현은 아나키스트와 아나키즘을 서양의 시각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각에서 보았다. 그는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극적인 삶을 알아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 선언했던 역설의 명수 푸르동(Pieer Joseph Proudho), 자유에 대한 열정을 안고 '파괴는 새로운 창조'라면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반역을 꿈꾸었던 바쿠닌(Mikhail Bakunin),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며 민중을 무한히 신뢰하고 사랑했던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한결같이 매우 열정적이다. 이런 모습을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에게서도 찾아 그것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7쪽)
인간 자체를 지독히 사랑했다. 체제와 구조,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독히 사랑하면서 다른 이가 가는 그 길을 막지 않았고, 다른 이가 가진 신념을 존중했다. 그 신념이 인간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의 아니키스트 '고토투 슈스이'는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화한 사람이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다른 신념으로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자들로부터 '변절'의 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창출하려는 의회주의를 비판하고, 직접 행동하기를 원하다 '대역 사건'으로 죽임을 당했다. 고토쿠는 일본의 애국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애국심이란 국민의 허구와 미신의 결과이며, 애국주의란 야수의 천성이자 미신이요, 광란이자 허구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해 민족과 조국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28쪽)
'단일민족' 개념이 철저한 우리에게 고투쿠 슈스이 발언은 이해할 수 없다. 국가주의 망령을 비판하는,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이들도 애국심에는 관대하다. 국가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다.
얼마 전 문구를 조금 고쳤지만 아직도 양심과 사상을 옭아매고 있다. 모든 행사에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필수다. 거부하면 국가를 반역했다고까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양심과 종교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코투쿠 슈스이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신채호는 과연 아나키스트인가? 민족주의자인가? 이승만과 안창호의 외교론과 준비론에 동의할 수 없었던 민족주의자 신채호! 그가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민족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럼, 신채호는?
한국의 아나키스트에게는 민족주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고 크럼은 비판했다. 그는 그 원인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있다고 했다.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에서 출발했고, 민족주의 때문에 타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서양의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매우 예외적이다. 국제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조세현은 말한다.
"근대민족주의는 영토와 국경을 확장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타민족의 간섭을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도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민족주의가 무척 다의적인 개념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118쪽)
공산주의자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아나키스트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자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는 일차적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이차적인 개념일 수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2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에서 전재호는 민족주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는 다른 이데올리기와 결합하여 자신의 목표를 구체화시킨다. 둘째, 민족주의는 진보와 반동이라는 양면성, 이차성을 갖는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 평등의 세상을 꿈꾸면서 어떤 때는 폭력을 정당화했던 그들, 권력자·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의 경계의 대상이었던 그들, 어느 누구에게도 동의받지 못하였던 그들. 이제 그들의 사상이 새로이 날개짓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자유를 갈구했던 아나키스트들이 걸어간 삶을 다시 반추할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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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고 읽게된것은 내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 나라가 망하는 격동의 시대에 지식인의 모범을 보이며 살다갔다고 느끼게 되고, 그러한 단재의 생애를 알게된 후 그가 투철한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사상적 변화를 보였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다. 문고판인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동아시아 3국의 아나키스트를 소개하며 한국에서는 단재를 중심으로 조명했다.
오직 내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참된 지식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국땅에서 고뇌에 찬 긴 밤을 보내는 모습이 떠오를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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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이상주의로 여겨져 이미 폐기처분된 아나키즘에 다시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70,80년대에는 절대악인 군사독재체재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눈앞에 놓인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그 일이 성취된 후에는 민중이 주인된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사회구조는 민초의 의지와는 유리된 소수의 지배계층에만 봉사하도록 작동되고 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아나키즘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과거 동아시아의 지성인들이 서양의 아나키즘을 주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현실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토쿠 슈스이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스푸의 전통에 대한 비판, 신채호의 민족독립을 위한 민중해방의 논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질서속에 편입시키려는 거대한 세력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문제제기와 그 해결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아나키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아나키즘이 지나친 이상주의의 옷을 벗고 이 어두운 현실에 대한 구체적 대안으로 떠오르기를 염원한다. [인상깊은구절] 이른바 정부라는 것은 인민의 대표기구가 아니라 소수 특권층이 조직한 단체에 불과하며, 그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법률을 마음대로 제정해 사회를 운영하고 이를 국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기관일 뿐이며, 정상적인 사회를 파괴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