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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시를 읽으면 어지러워진다. 나는 시를 읽으면서 어지러워지는 그 상태를 즐긴다. 마음을 흔드는 시, 생각을 괴롭히는 시, 살아있는 일에 의심을 갖게 하는 시, 그러면서도 끝내 살고 싶게 하는 시...
이제까지 이 시인의 시가 왜 내 마음을 잡아 끌었는지 제대로 몰랐는데 바로 그 어지럽다는 느낌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다.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도 시를 쓰는 시인, 시의 독을 몸에 퍼뜨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인, 내가 원하는 어떤 것처럼.
평온한 나날들. 특별한 그 무엇이 없는 나날들. 고통도 괴로움도 환희도 없는 그저 그런 날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날들이 평범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했던 순간으로 여겨지겠지만 지나가고 있는 동안에는 무료하기만 하여 그 무료함 때문에 삶을 한심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날들. 나의 오늘이 그러하여, 그저 그런 오늘의 지루함에 지쳐 있는 나에게 이 시인의 시들은 반갑게도 어지러움을 준다. '너, 살아 있는가' 하면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왜 다르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삶을 살면서도 왜 다르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픈 마음이어서 아프게 느끼고 내가 넉넉한 마음이어서 넉넉하게 느끼는 것일까. 시를 따라 가다가 마음이 밟혀서 다 넘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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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벽지가 벗겨진 벽은 벽지가 벗겨진 벽은 찰과상을 입었다고 할까 여러 번 세입자가 바뀌면서 군데군데 못자국이 나고 신문지에 얻어맞은 모기의 핏자국이 가까스로 눈에 띄는 벽,벽은 제 상처를 보여 주지만 제가 가린 것은 완강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못자국 핏자국은 제가 숨긴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치열한 알리바이다 입술과 볼때기가 뒤틀리고 눈알이 까뒤벼져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피의자처럼 벽은 노란 알전구의 강한 빛을 견디면서 , 여름 장마에 등창이 난 환자처럼 꺼뭇한 화농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은 싱크대 프라이팬 근처 찌든 간장 냄새와 기름때 머금고 침묵라는 벽, 아무도 철근 콘크리트의 내벽을 기억하지 않는다 p.116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내상 입은 내가..나를 열고 서 있던 거기.. 어디나 있지. 그래서 허물어진 빈 집 만 보면 무턱대고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것인지 가만 놓고온 언젠가의 내 갈빗대 한쪽 쇄골 뼈 부스러기..는 밭에 뿌렸어.. 바람에 흩날리는 광경을 내가 지켜봤지. 구멍난 것도 모자라 깨진 스레이트 지붕엔 빛이 새는 날보단 어둠 으로 별들이 총총 같이 눈을 감북감북 대던 밤. 일찍 부터 잠들은 나뭇가지위에서 부엉이랑 오소리랑 두런 두런... 나와는 상관 없었단 듯 아무 집이나 폐허만 되면 그게 나여서 깃들어 깃들어 하는 것 같아 자꾸 돌아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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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도 떨고 있구나 기울어진 담벼락 아래 잠든 강아지 뒷다리, 몇 며칠을 땅 바닥에 쓰러진 너의 목덜미를 구둣발로 짓이기던 사내, 나였구나 그래 내 마음 흐뭇했던가, 그리 속시원했던가, 그래도 찬물에 밥 말아 먹고 장구 치며 떠오르던 해야, 너는 또 내 발길에 채인지 몇 해째냐 이성복 시 p.17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괜한 화와 오기를 담벼락 아래 순한 개에나 풀던 시절이 ...있었겠지. 가족에게 돌아가던 화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기는 건 내가 그 개가 아니어서 라면.. 미안한 노릇이다. 요즘은 길가 버려진 개도 모두 구원받는 시대 그러면서 동시에 길가 버려진 고양이를 살리는 이는 영문없이 죽기도 하는 시대. 그 아이들은..개나 고양이나 다 필요 없고 이 미친 세상이 이상했을지 모른다. 마땅히 사람이 사람을 향해야 지극한 건데.. 모두 개나 고양이에 신경은 써도 아이들이 어찌 사는지 ..뭘 생각하고 사는지 뭘 배우고 뭘보고 사는지 관심없다. 다들 흉내내는 걸 보느라..그래서 책이든 영화든 보고 따라해 본건지도... 원래 개나 고양이 에 매달리고 픈건 우리라고.. 당신들 어른들이 아니라.. 우린 그 어린것의 따순 힘이 필요해도 가질수 없다고...환경상...안되니까.. 무슨 소리람....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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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시집ㅡ <아, 입이 없는 것들>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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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시나무가 줄지어 선 곳에서 간밤 나무들의 꿈을 알 것 같다 백랍 같은 영혼이 있다는 듯 목이 긴 새들이 줄지어 날아갔다 날아가는 새들의 쭉 뻗친 다리가 침 맞은 것처럼 경련했다 오늘 밤 꿈속으로 새들이 돌아오면 나도 현사시나무의 흰 몸을 받으리라 이성복 시 p.74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느 그림에서인지 화면에선지 나무위에 흰 백로가 수북하게 고개를 깃에 묻고 잠들어 있던 풍경을 본 기억이 스쳐가는 싯구 라고... 백랍은 ...자꾸 새들을 잠에서 떨구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 놓고 꿈꾸게 하는 주문 같다. 현사시나무...발음하기도 고상해 아끼자니 아득한 곳에서 현이 떨리는 소리... 아주 투명한 소리.눈결정이 부딪히며 이런 소리를 내나. 백로는 눈을 뜨나 .. |
| 하두 이성복, 이성복 하길래 도대체 그게 누군데 하면서 처음 읽게 된 시집이 바로 <아, 입이="" 없는="" 것들="">이었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나였다. 영락없는 시인이라는 말이다. 시란 원래 불명료한 것이다. 하늘은 파란 것이 아니라 노래여야하며, 음악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해야 한다. 이성복의 시는 이런 원칙에 충실하다. 거기에 한가지 더. 그는 시란 볼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를 쓴다. 시를 마치 존귀한 어떤 것으로 대하는 허접데기들에게 그는 편치를 날린다. 시가 뭐가 대단해? 세상에는 시보다 귀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러기에 그의 시는 더욱 돋보인다. 별볼일 없는 삶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의 시는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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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올라가다가 이 괴로움 벗어 누구에게 줄까 하다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산중턱 뒤집혀 말라가는 나무들을 보았다 박명의 해가 성긴 구름 뒤에서 떨고 있는 겨울날이었다 잘린 바위 틈서리에서 부리 긴 새들이 지렁이를 찟고 있었다 내 괴로움에는 상처가 없고 , 찟겨 너덜너덜한 지러이 몸에는 괴로움이 없었다 이성복 시 p.16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스스로 괴롭자..오르는 길에..턱까지 찬 숨 그 괴로움의날에 불러내어 쓴 그런 시 지금의 날 쯤일까... 여긴다. 내가 눈없는 그 지렁이 같다 여겨져 고스란히 고통을 따갑게 느낀다. 시선. 부리들은 기척에 가버리고... 한 방울 피조차 없는 내게.. 늬들 인간은 ...그리 뵈는 구나... 싶어.. 소금뿌린 상처를 억지로 봉하는 냥 고통을 느끼지만 오히려 머리는 뚜렸하게 의식을 차릴뿐. 뭐..어떤 괴로움인지....인간과 지렁이...어디..들어나 보자고...하하하...웃다 |
| '마라’ 혹은 사랑의 변증법 - 이성복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서평 10년간의 긴 침묵 끝에 시인 이성복이 새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성복을 처음 접한 스무 살, 1997년 이후로 이성복은 내게 추억이었고 기억이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부터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아포리즘, 그리고 문학앨범, 산문집, 시선집…… 나는 그 넓은 행간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한 시인의 알 수 없는 열망 같은 것을 헤집으면서 사랑을 하고 시를 쓰고 밥을 먹었다. 서점 귀퉁이에서, 시퍼런 심장 같은 이성복 시집을 집어들었을 때,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아득함보다 더욱 나를 압박해오던 것은 그 추억과 기억이 현재라는 시간과 만날 때의 끔찍함이었다.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충동과 아예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육박전처럼 뒹굴면서 어떤 강박으로 짓눌러왔다. 추억이, 역사로 이행되는 시간. 시인은 중년의 나이로,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117), ‘피 냄새가 입안에 그득한’ 곳에 다녀왔다. 사슴피, 어째서 또 피인가…… 이성복의 새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힘은 우선, ‘마라’라는 금지형 언술의 자기 모순적인 매력에서 온다. ‘~하지 마라’에서 독립한 ‘마라’는 자신만의 특유한 운동성으로 시집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러한 운동성은 우선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사랑일기」『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의 인간 존재 방식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과물로 보인다. ‘마라’의 존재 조건은 욕망이다. 욕망이 강렬할수록 결핍의 밀도는 짙어지고 욕망/결핍의 강한 자성(磁性)은 ’고‘와 ’통‘사이(44) 깊은 공간을 생성한다. ’마라, 생각해보라‘(26)와 같은 모순 어법 속에서 탄생한 ’마라‘는 이후, 자체의 운동 신경과 방향 감각으로 ’다른 어떤 것들‘과의 관계 맺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마라‘라는 언술을 통해 시인이 노리고 있는 것은 ’나‘라는 고립된 개별자가 ’왜 여기에, 어떻게‘(27)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것들의 고통과 치욕에 대한 ’훑어냄‘의 효과이다. 여전히 지속되는 고통과 치욕의 여러 양상들은 ’마라‘의 몸을 통과해서 다른 것들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어떤 ’장치‘라기 보다 ’입이 없는 것들‘처럼 그 자체가 온몸으로 고통의 세계를 뚫고 나가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어머니‘ ’누이‘ ’아들‘, 궁극적으로는 ’당신‘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과의 소통을 위해 시인 스스로 ’몸 버리려 몸부림‘(30)하며 뛰어 들어간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마라’의 모습은 ‘제 몸 일부가 아니라 제 몸 통째로/쑤셔 넣어야 직성 풀릴 환장할 것들’(103)처럼 온 몸으로 진행되며 ‘비는 길바닥에 윤활유 들이부은 듯/아스팔트 검은빛을 더욱 검게’(106)하는 자기확인의 모습에 다다른다. ‘벽은 제/상처를 보여주지만 제가 가린 것은 완강히/ 보여주지 않는’(100)것처럼 ‘마라’는 ‘입’을 봉쇄하고 철저히 자기 몸의 운동으로 고통의 한 복판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마라, 어떻게 네 붉은 댕기가 처음 나타났는지 그냥 침 한번 삼키듯이, 헛기침 한번 하듯이 네겐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 「26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부분 이 시에서 보이듯 ‘마라’는 우선 독립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유분방한 운동성이라고 할만큼, 시 곳곳에서 출몰하여 ‘마라’ 특유의 경쾌함으로 시를 이끌어 가는 동시에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에서처럼 강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의 진술 뒤에 따라오는 ‘나를 사랑하지 마라’라는 언술은 그것의 지시적 맥락과는 전혀 반대로 ‘사랑해라’와 같은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라’는 ‘욕망’과 ‘결핍’의 이항대립적 구도를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그 경계지점을 ‘사랑’이라는 시인의 오랜 시적 탐구대상으로 보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아, 내게 남은 사랑이 있다면/ 한밤에 네게로 몰려드는 갈치떼,/ 갈치떼 은빛 지느러미,/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에서의 ‘내게 남은 사랑’에 닿아 있는 것이 ‘마라’의 몸이다. 이러한 ‘마라’의 몸은 ‘마라, 네 눈 속에 내가 뛴다’(28)에서처럼 ‘타자’와의 소통을 욕망한다. 이러한 사랑의 모습은 ‘양가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내 부리가 네 눈 마구 파먹어도/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마라’의 파괴에 대한 욕망과 ‘꽃들, 마라, 눈을 떠라, 지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난 시들고 말 거야’(30)의 소통에 대한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러한 사랑의 양가성은 ‘마라’의 양가성이기도 한데 ‘마라’는 ‘동곡’이라는 지명을 통해 완성된다. 시인은 직설적 어법으로 ‘동곡엔 가지 마라’라고 한다. ‘가지 마라,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가지 마라, 다시는 당신 못 돌아온다’는 것이 시인의 전언이다. 시인 강정의 지적에 따르면 ‘마라’는 ‘금지’이면서 동시에 ‘유혹’을 환기시키는 데, 이 ‘동곡’이라는 공간에 닿아서 ‘마라’는 유혹의 영역을 넘어서, 그 유혹 속에서 발견한 ‘사랑의 세계’를 보여준다. 금지/유혹의 대립적 구도를 뭉개 버리는 것이 ‘마라’의 궁극적 존재 이유이고 이 대립적 구도의 와해 이후에 찾아오는 것이 바로 변증법으로서의 ‘사랑의 세계’이다. 이러한 ‘사랑의 세계’의 깊이는 이성복 시가 획득하고 있는 서정의 깊이라 할 수 있겠다. |
| 군에 있으면서 몰래 산 이 시집 하나로 여름부터 겨울까지 넘겨볼 생각이다. 오랫동안 시인의 삶과 마음을 가슴 깊숙이 들여마셔 속에서 조용히 가라앉아 내 것이 될 때까지 느껴볼 생각이다. 입이 없는 꽃들과 시인이 한없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비루한 삶의 순간, 순간들....나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지고, 또한 그렇게 취급당하는 이 순간 ....시인의 시와 시 속의 모든 풍경들은 나에게는 힘이 된다...시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시를 읽으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느끼기로 했다. 겨울이 올 때까지 하늘 가까이서 시인과 함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했다. |
| 대학시절, 황지우와 이성복은 나의 텍스트였다. 그들의 시집을 읽고 나는, 얼마나 가슴 벅찼던가. 그때의 감동이 나이가 들어서도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아니 예전과는 다른 어떠한 힘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각 시마다 문장으로 제목을 열고 있는 시집. 그리고 그 제목에 대한 내용은 이미지로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시에서 빛나는 은유와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시집을 통해 다시한번 느꼈다. 이미자가 너무나 멋있는 시집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들은 우울함의 끝에 매달려 있는 신비한 비유들이다. 그것들이 살아서 나를 가슴 벌렁이게 한다. 삶을 드러내는 그 언어의 힘은 얼마나 나를 가슴 벅차게 하는가. 아...가슴 벌렁이게 오늘 밤도 새야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