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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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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출생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어두운 미래 사회의 모습을 담아낸 '멋진 신세계'를 흥미롭게 느끼며 읽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며 저자가 꿰뚫어 보는 미래 사회가 곧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곧 닥힐 미래 사회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멋진 신세계가 나온 지  27년이 흐른 후 나온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사고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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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출생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어두운 미래 사회의 모습을 담아낸 '멋진 신세계'를 흥미롭게 느끼며 읽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며 저자가 꿰뚫어 보는 미래 사회가 곧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곧 닥힐 미래 사회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멋진 신세계가 나온 지  27년이 흐른 후 나온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사고방식을 장악하려는 폭력이란 제목으로 실린 기사들을 엮은 책이다. 무서운 책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앞으로 다가 올 미래의 모습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지구는 여러 가지로 힘들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구 과잉이다. 70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구에 살고 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하여 현재도 힘든데 앞으로 더 늘어날 인구로 인해 지구는 힘에 부칠 것이다. 인구 과잉을 막기 위한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헉슬리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 청사진과 오웰이 상상한 세계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상술에서는 자본주의는 죽었고 소비주의가 왕이란 글에 크게 다가온다. 화장품, 술, 종교, 담배, 전자제품, 어른과 아이, 민주 국가, 정치 등을 통해 상술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른 어떤 것보다 무섭게 다가오는 이야기는 세뇌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을 덜 하고 약품 하나를 이용해 쾌락에 빠져 들게 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을 했는데 6개월이란 시간을 통해 파블로프는 훈련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압박감을 가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한 사회는 세계국으로서, 그곳에서는 전쟁이 제거되었으며, 통치자들의 첫 번째 목적은 백성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내는 일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성적인 합법화하여 (창조적이거나) 파괴적인 온갖 긴장의 정서로부터 멋진 신세계 사람들이 해방되도록 보장한다. '1984'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고통을 가하며,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보다 덜 굴욕적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쾌락을 가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                    -p83-


오랜 시간에 걸친 강렬한 두려움은 멀쩡하던 사람들을 무너트렸고, 굉장히 강력한 암시 반응의 상태를 마련했다. 이런 여건에서 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설교자의 종교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그런 다음에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로 정신적 안정을 회복시키고는, 시련에서 벗어난 그들의 마음과 신경계에 전체적으로 훨씬 더 좋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행동 양식을 뿌리 깊이 심어놓았다.               -p136-


잠자는 동안에 들은 내용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나온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수면 학습법'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과 학습력을 조종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수면 학습법을 시도 했지만 이렇다할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수면 암시 학습으로 돈도 벌고, 비민도 해결하고, 이혼도 막았다니 생각보다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다만 개인에 따른 차이가 높지만 암시 학습에 높은 반응을 보이고 더러는 전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지금도 암시 반응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무분별하게 이용될 수도 있기에 문제가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 총 12 파트로 나누어서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마지막 12번째 파트에서 앞에서 말한 주제들의 해답에 대해 들려준다.


쉽게 읽히는 책이라기보다는 미래 사회와 대비시켜 가며 생각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파트에 따라서는 어렵게 느껴지는 곳들도 있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인구와 과학의 발전이 정말 인간과 지구에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며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생각해 보며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 그려낸 세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수반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인구 과잉과 조직 비대화는 현대의 대도시를 이룩해 놓았고, 그 안에서는 다수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충분히 인간적인 삶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전체 사회와 개인의 정신적인 황폐화를 피하고 싶다면, 대도시를 떠나 소규모 시골 공동체를 부활시키거나, 기계적인 대도시 조직의 망상網狀 구조 내에서 소규모 시골 공동체와 똑같은 도시형 모형을 이룩하여, 전문적인 특수 기능을 단순히 구현한 개체가 아니라 완전한 인격으로서 개인들이 만나고 협동하는 사회를 이룩함으로써 대도시를 인간화시켜야 한다.              -p209-

q******5 2015.07.09.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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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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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멋진 신세계>를 통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문명의 세계를 우화소설로 풍자했고, 27년 뒤인 1958년에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 다시 한번 미래 문명사회에 대해 비평론은 펼쳐 내었다.   1932년 <멋진 신세계>의 반응을 보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책에서처럼 ‘서부 유럽에서 파시즘이 기세를 올리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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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멋진 신세계>를 통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문명의 세계를 우화소설로 풍자했고, 27년 뒤인 1958년에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 다시 한번 미래 문명사회에 대해 비평론은 펼쳐 내었다.

 

1932년 <멋진 신세계>의 반응을 보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책에서처럼 ‘서부 유럽에서 파시즘이 기세를 올리고 세계가 엄청난 경제적 압박으로 흔들릴 무렵이라, 소설이 정곡을 지나치게 정확히 찔렀다는 느낌을 주었거나, 아니면 헉슬리의 냉혹하고 불편한 시각이 단순히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갔기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헉슬리의 예언에 대해서는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유럽에서는 경제가 파탄이 나고, 세계 각처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 도대체 헉슬리는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유토피아에서의 삶에서 그가 느끼는 불쾌감이란 앞으로 100년이나 200년이 더 지난 다음에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 며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의 예언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고,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서 미래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예언을 하게 된다.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리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인구 과잉이 가져오는 식량자원의 부족이나 경제적인 문제, 반복과 억압과 합리화에 의한 선전술, 화학적 약물에 의한 설득 특히 수많은 상업적인 선전에 노출된 잠재의식적인 설득 등 그가 말하는 현대 문명의 비판론은 정말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과학문명에 우리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암시, 선동, 세뇌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이런 현대 문명은 곧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를 위한 교육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사회적인 조직, 자유를 위한 산아 제한, 자유를 위한 입법화.

사실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자유에 대해 너무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자유가 지극히 소중하다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아 있다. (p.217)

 

s****6 2015.07.13.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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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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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앞에 읽었던 '멋진 신세계'의 속편인 줄 알았다.   ㅜ.ㅜ   멋진 신세계의 속편이 있었나 의아했지만 , 멋진 신세계와 같이 출간된지라 후편쯤으로 생각하고 위시에 올려놓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올더스 헉슬리가 미래의 예언서같은 엄청난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 이후, 27만인 1958년도에 발표된 비평론이였다.     내가 사전정보가 부족해서 내 예상과 어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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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앞에 읽었던 '멋진 신세계'의 속편인 줄 알았다.   ㅜ.ㅜ   멋진 신세계의 속편이 있었나 의아했지만 , 멋진 신세계와 같이 출간된지라 후편쯤으로 생각하고 위시에 올려놓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올더스 헉슬리가 미래의 예언서같은 엄청난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 이후, 27만인 1958년도에 발표된 비평론이였다.     내가 사전정보가 부족해서 내 예상과 어긋났지만 그래도 뭔가 얻을게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책을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게는 좀  어려웠다.   다 내 내공이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이런 성격의 책이었다면 아마도 난 선택을 좀 보류했을것 같다.   분명 뼈와 살이 되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고, 올더스 헉스리가 예언하는 미래상을 분석해서 현재에 대등하면 어떤 답이 보이는것은 맞는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는 전작인 멋진 신세계에서 제시한 미래의 예언(모습)들은 놀랍도록 잘 예견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눈에 띄는 부분은 조지오웰이 많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저서 1984년에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고 있는데 올더스 헉스릴와는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반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1984는 안 읽어봤지만 주워 들은 지식으로 맞추어 보자면...) 또한, 앞으로 지구에 인구과잉현상과, 미디어에 잠식당하고 광고의 홍수속에서 올바른 선택권을 상실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횡포를 예언하는 부분에서는 극히 공감이 갔다.   그러고보니 요즘 홈쇼핑중독들도 심각하던데 그 역시 미디어의 중독의 한 현상이다.


아이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4차대전에는  돌도끼를 들고 싸울것이라고...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를 등업 업고 피어나는 과학문명의 발전은 결국 인간의 눈 찌르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미래예언서들을 허투로 넘기지 말고 깊이 새겨야할것이다.   제 눈 찌르기로 망하고 돌이킬수 없기전에.




 

w****2 2015.07.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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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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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읽어 가다, 중반에 접어들고서야 눈이 번쩍 떠지며,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다 있었다니!"를 외치고, 남들 모르는 고전으로부터 이처럼 짜릿한 지적 쾌감, 감동을 얻었다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죠. 아마 그 작품을 처음 읽은 분들은 대개 비슷한 느낌이셨지 싶습니다. 참 불가사의한 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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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읽어 가다, 중반에 접어들고서야 눈이 번쩍 떠지며,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다 있었다니!"를 외치고, 남들 모르는 고전으로부터 이처럼 짜릿한 지적 쾌감, 감동을 얻었다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죠. 아마 그 작품을 처음 읽은 분들은 대개 비슷한 느낌이셨지 싶습니다.

 참 불가사의한 게, 1) 만약 그 작품이 이미 다 실현된 실상을 다루고 있다면 그 예언의 위력에 과연 탄복하게 될까요? 다른 소설이라면 모르지만, 그 작품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독자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며 작품의 주제를 애써 폄하하려 들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 추악한 곳이 아니며, 미래상의 가치를 이해 못한 (과거의) 작가가 야만인스러운 심성이라면서 말이죠. 2) 반대로 그 예언이 모두 비껴가버렸다면, 독자는 당연히 작가의 형편 없는 상상력을 조롱할 것입니다. 현실은 1), 2) 모두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고, 백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서도 그 소설은 여전히 1932년 당시만큼의 감동과 공감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멋진 신세계>를 두고, 바로 A. 헉슬리 자신은 어떤 창작 동기로 집필하게 되었으며, 20여년이 지난 당시 그 회고는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20세기의 중반 문턱을 지난 즈음 세계는 바야흐로 어떤 모습을 일구며 달려가고 있는지, 문명비평가로서 세계의 지성으로서 자신의 안목을 도도히 피력한 수상록입니다. 보통 그 성격을 "문명 비판, 진단"으로 잡지만, 그 동기랄까 논의의 기본 틀은 철저히 자신의 역작 <멋진 신세계>의 내용, 형식에 대한 코멘트, 자평에 두 발을 대고 있습니다.

헉슬리 자신도 <멋진 신세계>가 이룬 성취의 파장이 대단했음을 스스로 뿌듯이 여기는 투가 책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일류문인들은 대개 저술 속에서 자신의 작품과 다른 대가의 업적을 쉽게 비교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서 그는 "대놓고" 조지 오웰의 <1984>와 자신의 그 대표작을 나란히 두고, "세계는 1984보다는 멋진 신세계에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며 자신의 성취가 같은 영국국적의 오웰보다 한 수 위임을 은근히, 아니 제법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자신의 작품은 구상되었고, (객관적으로) 발표가 완료된 점을 감안하면, 이미 독재자들의 말로와 악폐가 다 노출되고 일단락된 후 쓰여진 <1984>는 비교적 어드밴티지를 안고 시작한 편이라는 게 그의 (약간 자뻑성) 평가입니다. 그러나 1984년 이후에 나고 자란 독자들 눈으로 보기엔, 두 작품 모두 자신만의 장점과 개성, 안목이 있으며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게 아마 공통적 의견일 겁니다.

이 중수필은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건 아니고, 다른 출판사의 시도로 <멋진 신세계>에 부록처럼 실려 있었습니다. 안정효 선생은 그만의 장기를 발휘해서, 모호한 대목 없이 헉슬리의 어조가 그대로 살아나는 시원시원한 문장으로 이 명작을 살려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급격한 피치로 각종 문명의 이기를 발전시키고, 아울러 성 문화는 더욱 걱정스러운 속도와 양상으로 상업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진지하고도 신랄한 책을 읽고 어떤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v*****7 2015.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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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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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책이 발표된 1932년 이후 26년이 지난 뒤에야 발표된 작품인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본인이 쓴 작품에 대한 해석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인구 과잉, 양과 질과 도덕성, 과잉 조직화, 민주 사회의 선전, 독재 국가의 선전, 상술, 세뇌, 화학적인 설득, 잠재의식적인 설득, 수면 학습법,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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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책이 발표된 1932년 이후 26년이 지난 뒤에야 발표된 작품인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본인이 쓴 작품에 대한 해석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인구 과잉, 양과 질과 도덕성, 과잉 조직화, 민주 사회의 선전, 독재 국가의 선전, 상술, 세뇌, 화학적인 설득, 잠재의식적인 설득, 수면 학습법, 자유를 위한 교육 등 멋진 신세계에서 다뤄졌던 소재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장을 넘기기가 만만치 않을만큼 글이 묵직하다. 결코 가볍게 읽을만한 내용이 없을만큼 그가 미래를 예견한 모습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본다면 마치 미래에 갔다 온 것처럼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인구 과잉 문제는 최근들어서 중요한 사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지구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한정적인데 100억명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분명 그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인구가 적었고 이렇게까지 많은 인구가 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령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반면 전 세계는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과 늦춰지는 결혼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선전, 상술, 세뇌, 화학적인 설득, 수면학습법 등을 보면 그가 내다본 미래는 부정적이다. 자유의지를 누군가의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부터가 무서운 생각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나 언론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뉴스 등은 다양성을 부정하는 통제된 사회라면 획일화되며 사상적으로 하나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방식은 우리들을 세뇌시키기에 충분하며 선전을 통해 반복학습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우리는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미래 사회를 예측한다는 것은 그럴만한 가능성이 존재하거나 그의 생각에 따른 상상력을 기반으로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해내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일이다.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놀랍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를 상실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들에게 없다. <다시 만나본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 같다.

c******d 2015.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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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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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발표하고나서 겨우 27년밖에 되지않았는데 거기에 담긴 예언들가운데 상당히 많은 상황들이 이미 현실로 나타났고, 그것도 아주 심각하고 본격적인 차원에서 현실화가 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그중 몇가지는 내가 예측을 못했고 또다른 몇가지는 상상력이 모자라서 예견하지 못했지만, 내생각에는 현재 그런 온갖 무기를 잠재적인 독재자가 제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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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발표하고나서 겨우 27년밖에 되지않았는데 거기에

담긴 예언들가운데 상당히 많은 상황들이 이미 현실로 나타났고,

그것도 아주 심각하고 본격적인 차원에서 현실화가 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그중 몇가지는 내가 예측을 못했고 또다른

몇가지는 상상력이 모자라서 예견하지 못했지만, 내생각에는 현재

그런 온갖 무기를 잠재적인 독재자가 제멋대로 동원할 수 있을듯

합니다..." 

 

윗글은 1958년 인기가 높았던 영국 BBC TV의 <두뇌군단>이라는

프로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올더스 헉슬리가 밝힌 이야기이다.

 

나는 이번에 올더스 헉슬리의 명작 <멋진 신세계>를 읽고 충격에

빠졌었다.

서기 2,500년경에는 모든 인간이 다 시험관에서 태어난다는 설정

에서부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 이소설은 가족이란 개념도 없고

오직 계급사회구조속에서 기계처럼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비정함을

통렬하게 은유해낸 명작이었다.

 

근데, 이책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뉴스데이>라는 일간지

에서 정치적인 독재자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바꿈으로써

어떻게 국민을 조종하고 통제할 위험성이 있는지 논하는 글을

연재해나가다가 분석대상을 보다 넓혀서 인구과잉과 조직비대화,

선전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자유문제를

다뤘고 이 기사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책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나는 이책이 1958년도에 나온

책이 맞나싶을 정도로 그 예언의 정확성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근데 그중에서도 현실을 놀라울만치 정확히 예언하고 그위험성을

경고한 다음의 글에 나는 헉슬리가 탁월한 예언가, 미래학자, 천재

라고 생각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독재자가 이런 약들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백성들의 두뇌에서

화학작용을 바꿔놓아 그들이 노예신분에 만족하게끔 유도하여

정치적인 동요로부터 안전하게 통치자자신을 보호하는 길을 확보

할 수 있다. 독재자는 신경안정제를 사용하여 흥분한 자들을

진정시키고, 흥분제를 사용하여 무관심한 자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환각제를 사용하여 비참한 자들에게 참혹한 삶으로

부터 다른 방향으로 그들의 관심을 돌릴 수가 있다..." 

 

여기서 독재자가 사용하는 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경안정제, 흥분제, 환각제...

이는 그야말로 독재자가 국민을 세뇌시키고 우민화시키는 전가의

보도요, 마약같이 환상에 빠지게하는 아주 해악한 약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다음과같은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나는 신문있는 정부보다는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그렇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역설한 유명한 말씀이신데 지금 2015년의 한국

언론은 정부에 대한 비판은 커녕 정부를 옹호하고 선전하고 광고하는 

어용언론이 된지 오래다.

여기에다가 미디어법의 통과로 탄생한 TV조선, 채널A 등의 종편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과 날조로 남북간을 이간질시키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을 비난하고 박근혜에게는 용비어천가만 짖어되고 있고 

새누리당에게는 옹호발언과 광고만 해되고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어용언론을 이용해 국민들을 우민화시키는 나쁜 약을 뿌려대는

독재정부...

<독재정권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대로 이는 갖가지 부작용은 물론

엄청난 재앙도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은 독재권력과 일부 족벌경영체나 파렴치기업, 해괴한 종교집단이

얽혀 이들이 독재권력에 돈과 뇌물을 바치고 독재권력은 이들을 

비호하거나 묵인하는 만행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그에따라 피해보는건 국민들뿐이다.

 

그리하여, 작년엔 1명도 못구하고 300명이나 물속에서 사망한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고 올해는 병원마피아인 삼성서울병원의

이익을 비호하다가 35명의 사망자와 186명의 환자, 485명의

격리자를 지금도 낳고있는 <메르스사태>를 낳고있는 것이다.

 

세월호 대참사는 유병언일가의 구원파가 연루되었고, <메르스사태>

는 병원마피아인 <삼성서울병원>이 얽혀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가 부패해지고 비리가 난무하며 국민들이 탈세가 비일

비재해진다면 국력도 쇠퇴해져서 결국 IMF에 400조원을 못갚고

디폴트를 초래한 그리스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라는 책을 통해 현대

한국사회도 진단해보게한 참으로 훌륭한 책이었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가 마치 지금의 남북한을 헉슬리가
미리와서 보고 분석해놓은 예언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책을 완역하신 안정효작가님은 위와같이 말씀하실

정도이다.

 

이렇게 1931년에 출간된 헉슬리의 명작 <멋진 신세계>와 1958년에

출간된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그당시에 어떻게 미래사회를

이렇게나 많은 분분에서 사실에 가깝게 예언할 수 있었는지 감탄만

할 뿐이었다...   

 

따라서, 이책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의 명작 <멋진

신세계>의 주제를 사회심리학적 통찰력으로 날카롭게 분석한

미래문명비판론인 이책을 통해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볼줄

아는 능력을 키워준 좋은 책이라 생각되었다...

 

조지 오웰의 1984...

예프게니 자마친의 우리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 세소설은 <세계 3대 디스토피아 미래소설>로 꼽히는 명작들이다...  

 

그중에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미래세계가 참으로 장밋빛으로만

이뤄진게 아니구나 그걸 느꼈고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다가오는 미래사회에서의 여러문제들 예를들면 인구과잉, 독재국가의

선전, 상술, 세뇌, 화학적인 설득, 잠재의식적인 설득 등의 문제들도

진단해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않은 훌륭한 미래

소설이었다.

 

이책을 읽고나니 문득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명언이 생각났다.

무관심하거나 방임한다면 결국 그해악은 저기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경고의 그말씀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k****3 2015.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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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내용보기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앞서 읽은 『멋진 신세계』의 발표 27년 뒤인 1958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으로 어떻게 보면  『멋진 신세계』의 해석판 같기도 하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의도되고 조작된 유토피아에서 정해진 틀안에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자유 의지와 도덕이 상실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오히려 행복을 느끼며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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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앞서 읽은 『멋진 신세계』의 발표 27년 뒤인 1958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으로 어떻게 보면  『멋진 신세계』의 해석판 같기도 하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의도되고 조작된 유토피아에서 정해진 틀안에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자유 의지와 도덕이 상실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오히려 행복을 느끼며 이것이 진정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을 찾아 온 외부인인 존이라는 인물의 시각에서는 그것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님을 냉혹하게 보여주었다.

 

『멋진 신세계』속의 사회는 분명 작가의 의도된 설정에서 탄생한 사회이지만 이러한 미래 사회가 소설 속 설정이 아닌 현실에서도 도래할 것이라고 올더스 헉슬리는 주장했고 전작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서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멋진 신세계로 여겨졌던 그곳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였다. 그곳에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까지 차별화된 다섯 계급이 존재했고 사람들은 수면 학습과 전기 충격으로 세뇌되고 일정한 노동 이후에는 색다른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으며 소마라는 약에 중독된 채로 살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깨어있는 순간 내내 신세계 속의 사람들은 조종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조종하는 하나의 통치의 수단이기도 한데 과거 억압되고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정신적인 괴롭힘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든 것에 거부감이 없도록, 오히려 그것들을 좋아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사회전체적으로는 이곳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더 무서운 통치이자 악랄한 소수의 지배자들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둘 중에 어느 작품을 먼저 읽더라도 상관없어 보이지만『멋진 신세계』를 먼저 읽고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석과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도와 줄『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다음에 읽는 것도 좋을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15.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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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일깨우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일깨우다" 내용보기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가 과학 문명이 빚어내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소설의 형식으로 빌려 비판했다고 한다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현대 문명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그가 직접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면서 놀랄 만큼 닮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았다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서는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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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가 과학 문명이 빚어내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소설의 형식으로 빌려 비판했다고 한다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현대 문명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그가 직접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면서 놀랄 만큼 닮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았다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통해서는 오늘날의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헉슬리의 냉철한 분석력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올더스 헉슬리가 소설을 발표한 후 27년이 지난 1958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그가 소설 속에서 표현했던 유토피아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해왔고 여전히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11가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정밀 분석하여 비판하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바라본 현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11가 위험성은 무엇인가. 그 자신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인구 과잉
2. 양과 질과 도덕성
3. 과잉 조직화
4. 민주 사회의 선전
5. 독재 국가의 선전
6. 상술
7. 세뇌
8. 화학적인 설득
9. 잠재의식적인 설득
10. 수면 학습법
11. 자유를 위한 교육

폭발적으로 늘어난 전 세계의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 미치 자원의 부족 현상, 대량 생상과 대량 소비로 집중되는 현상, 이를 위한 현대 문명의 선전화, 상술, 미디어를 통한 세뇌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로 인해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환락과 쾌락을 위한 약물인 소마로 인한 자신도 모른 채 중독 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사회구조적 위험성을 비판한다. '머리가 쭈뼛해질 정도로 무서운 책'이라고 표현한 미국의 한 언론매체의 말마따나 나 자신도 모르는 새 고도로 발달된 현대 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 문명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위험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일까. 그에 대한 정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출산 조절을 통한 인구 과잉 억제로 식량 부족과 자원 고갈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고 과학 문명이 발산해내는 선전, 상술, 세뇌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자기 주독적인 의식체계를 갖추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정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함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즉,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자유다. 자유 의지 없이 천편일률적인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인간은 한낱 문명의 노예에 불과할 것이다. 날로 새롭게 변화하는 문명사회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개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통찰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을 통해 지금껏 알고 있던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듯하다.

c****2 2015.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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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향한 헉슬리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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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향한 헉슬리의 경고   제대로 된 번역이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기지의 진수는 허위의 본체가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읽고는 한참이나, 그야말로 한참이나 멍한 상태에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한국어요, 거기 쓰인 단어는 모르는 것 하나 없는데, 그 단어들이 합해 만들어진 문장의 뜻은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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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향한 헉슬리의 경고

 

제대로 된 번역이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기지의 진수는 허위의 본체가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읽고는 한참이나, 그야말로 한참이나 멍한 상태에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한국어요, 거기 쓰인 단어는 모르는 것 하나 없는데, 그 단어들이 합해 만들어진 문장의 뜻은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보였다.

 

범우사 판 이성규. 허정애 공동번역으로 나온 책,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를 읽는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우리말을 그렇게 생경하게 대해 본 것은 아마 그것이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다른데 있었다. 위에 인용한 그 문장이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의 머리말, 그것도 첫 번째 문장이었던 것. 그래서 그 다음 독서의 진도는 지지부진이었다. 첫 번째 문장에서 맛보았던 생경함은 그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진행형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안정효 역, 소담 출판사 발행의 다시 찾아 본 신세계를 손에 들었을 때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혹시 이 책도 그렇게 나를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그 부분을 어떻게 옮겨 놓고 있는가 

재치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자칫 부실한 진리의 덫에 봉착하기도 한다.> (44)

 

좋다. 이 책의 번역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이 번역은 위에 언급한 다른 출판사의 책처럼 요령부득의 번역이 아니다. 명쾌한 번역은 독자들에게 읽을 힘을 준다. 그렇게 헉슬리의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읽을 수 있었다.

 

헉슬리, ‘멋진 신세계의 실현을 못내 아쉬워하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멋진 신세계를 헉슬리가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다. 헉슬리가 그 곳을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멋진 신세계>에서 등장시킨 예언들이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검토해 보는 것이다. 

 

헉슬리가 주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인구 과잉

양과 질과 도덕성

과잉 조직화

민주 사회의 선전

독재 국가의 선전

상술

세뇌

화학적인 설득

잠재의식적인 설득

수면 학습법

자유를 위한 교육

 

그렇게 멋진 신세계에서 등장- 예언- 했던 사항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고 있다.

 

각종 예언된 사항에 대한 언급들

 

인구 과잉에 대한 헉슬리의 언급은 이런 말로 줄일 수 있겠다.

<(인구 증가는) 모든 인간과 물자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를 정부의 기관들이 장악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인구 과잉은 그런 사태를 초래하므로, 공산주의가 독재 국가들을 주도하는 세계에서라면 영구적인 위기가 거의 불가피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64)

 

과잉 조직화에 대해서는

사람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행위란 목적을 수단에 종속시키는 격이다. 목적을 수단에 종속시키면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지를 히틀러와 스탈린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84)

 

상술에서는 대대적인 심리 조종술을 경고하고 있으며, 세뇌와 화학적인 설득에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독재자가 이런 약들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151)며 경고하고 있다.

 

경고와 해답

 

이런 식으로 헉슬리는 자기가 지은 멋진 신세계가 현실로 실현되고 있음을 지켜보면서, 그에 따른 경고를 아까지 않고 있다.

 

그런 우려와 안타까움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 해답은 무엇인가에 잘 드러나고 있다.

몇 가지만 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인구과잉과 조직 비대화는 현대의 대도시를 이룩해 놓았고, 그 안에서는 다수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충분한 인간적인 삶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전체 사회와 개인의 정신적인 황폐화를 피하고 싶다면..... 완전한 인격으로서 개인들이 만나고 협동하는 사회를 이룩함으로서 대도시를 인간화시켜야 한다.>(209)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자유가 지극히 소중하다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는다.>(217)

s***h 2015.07.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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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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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에서의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놀라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또다시 '올더스 헉슬리'의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이 책은 <멋진 신세계>가 출간된 10년 후인 1958년에 나온 작품으로 '사고방식을 장악하는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 기사들은 인구 과잉과 조직 비대화 그리고 선전 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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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에서의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놀라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또다시 '올더스 헉슬리'의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이 책은 <멋진 신세계>가 출간된 10년 후인 1958년에 나온 작품으로 '사고방식을 장악하는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 기사들은 인구 과잉과 조직 비대화 그리고 선전 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자유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는 이러한 기사들을 총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분류하였으며  그 당시의 모습과 점점 발전 되어 가는 사회가 미래의 예언적 내용을 담았던  <멋진 신세계>의 모습과 얼마나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다른 모습을 담은 '조지 오웰'의 '1984'하고도 비교하여 주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계 대부분의 서민들이 걱정하던 것은 앞으로 닥쳐올 시대는 우주 시대가 아니라 인구 과잉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p 57

 

헉슬리는 이 책에서 인구과잉으로 인하여 여러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한동안 인구 과잉으로 산아제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추세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인구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산을 장려한다.

<멋진 신세계>는 인구를 세계가 원할하게  움직이는데에 필요한 만큼만 인간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시대는 정부와 세계에서 선전을 통하여 인구 수를 조절하려고 하는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쯤 후에는 세계에서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모든 저개발 국가들이 어떤 형태이든 전체주의 통치를, 아마도 공산당의 통치를 받게 되리라고 확실하게 예언할 수 있다. p 62

 

중국의 자녀 1명만 낳기를 예를 들기도 하였는데, 헉슬리의 이 예언이 맞는지는 얄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1984」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고통을 가하며,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보다 덜 굴욕적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쾌락을 가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 p 83

 

두 책에서의 조직의 통치자들의 방법 중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백성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수단으로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고, 성적인 자유를 합법화하는 방법으로 조직의 운영에 불평을 갖을 시간이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일과 오락 그리고 쾌락 모두 그들에게 모두 수면 학습된 방법들에 의해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독자인 나에게는 '노예'로 보일뿐 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발전하는 기술의 결과로 조직의 숫자와 복잡한 구조가 심화됐고, 관리들의 손아귀에 집중된 권력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그와 역비례하여 투표자들이 행사하던 통제력이 축소되었으며, 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덩달아 감소했다. 현대 세계에서 작동하는 막강한 비인간적 세력들에 의해 이미 약화된 민주적인 기구들은 이제 정치가와 선전가들에게 내부로부터 침식을 당하는 중이다. p 125

 

이 글은 왠지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아니 우리나라 뿐이 아니리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곳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인구의 과잉, 투표자들의 통제력 축소, 처음에는 국민들의 일꾼이 되어줄것처럼 떠들어 대던 선거운동에서와는 달리 당선이 되고 나면 그들은 일꾼이 아니라 권력을 갖게 되고 오히려 그들이 결정한 일에 온갖 선전과 상술을 통해서 국민들이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지적했듯이 자유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실에 관한 가치관의 교육 - 개인적인 다양성과 유전적 특이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의 당연한 추론적 결과인 윤리적 자유와 관용과 상호 박애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196

 

「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 보호구역'에 살았던 '존' 문명인, 그러니까 신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음을 알게되고 그들에게 자유를 찾으라고 하지만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를 못한다. 그리고 존은 자유를 찾아 도망을 치지만 신세계 안에 있었기에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하였다고 본다.

헉슬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자유와 사랑에 대해 알아야 우리에게 선전 활동을 심판할 기준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아 있다. p 217

 

「멋진 신세계」가 출간 되었을 당시에는 비평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유럽에서 파시즘이 기세를 올리고 세계가 경제적으로 흔들리고 있던 시대라 하찮은 말장난이라고 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논하지 않았다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비평이야 어떻든 지금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인기있는 고전이 되었다.

멋진 신세계는  충격적이고 그런 미래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진정한 자유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세계가 얼만큼 멋진 신세계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더욱 아찔한 사실들을 담고 있는 '문명사회 비평론'이었다.

 

발전이라는 것이 그저 좋게만 생각하기에는 「멋진 신세계」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에서 보니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의 비평론이었기에 읽기에 쉽지는 않았다.

과학에 조애가 깊은 헉슬리이기에 이렇게 사실들을 근거로한 비평이 가능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예언하는 그런 미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자유가 없고, 학습된 감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나 결국 노예와 같은 그런 삶...

지금도 조금은 그런 삶들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두려워지기도 하지만..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o*****4 2015.07.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