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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찰측의 죄인' 포스터입니다.
752. 검찰측의 죄인...진실과 정의를 판단하는 잣대는
오랜만에 일본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국내 미개봉작이지만 일본에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영화인데 정의 실현을 위해 법의 엄정한 심판을 거부한, 어쩌면 법의 허점을 좌시할 수 없었던 개인적 복수마져 어우러져 팬들의 냉정한 판단을 촉구하는 지도 모를 일. 어떻든 정의와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검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모가미 요시(기무라 타쿠야) 검사는 도쿄지검 형사부의 베테랑 검사로 연수원 교관 시절부터 정의에 대한 해석을 내린 인물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를 지키면 죄인으로 추락한다’는 암시가 이후 그의 후배 검사 오키노(니노미야 카즈나리)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츠즈키 노부부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마츠무라(히라 타케히로)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인데 마츠무라는 사실 소년범 시절에 모가미 검사를 좋아했던 아라카와 유키를 강간 살해한 범인이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법의 심판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모가미는 츠즈키 살해범으로 몰아갈 계획을 꾸민다.
한편, 대학시절 르포 작가로 이미 명성을 날린 바 있던 타치바나 사호(요시타카 유리코) 사무관은 공무원으로 잠입, 취재를 하는 중이어서 모가미의 행태를 의심어린 눈초리로 여기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몰입한다.
오키노 검사는 선배 모가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채 타치바나와 행동을 같이한다. 그러던 중 유미오카 시로(오오쿠라 코지)가 츠즈키 살해범으로 밝혀지면서 더 이상 마츠무라를 범인으로 지목할 명분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지만 계속적으로 범인으로 몰아가는 오가미에게 강한 의구심을 느낀다. 그러던 중 행동에 나선 오가미는 유미오카를 빼돌려 암매장하고 마츠오카에게 범행 일체를 덮어씌우려 한다. 무리한 범행과 정의 실현에 나선 오가미의 행동에 분노한 오키노, 검사직을 내던지고 마츠무라 구제에 나선다. 과연 이 둘의 싸움, 진실과 정의 실현 사이에서 최후 승자는? 그리고 정의 실현을 위해 선악의 구분없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모가미의 행동은 정당한가? 야쿠자 스와베(마츠시게 유타카)로부터 불법적인 무기를 공급받아 정의 실현을 한다? 이 또한 정당한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준 영화다.
법망의 한계를 벗어난 채 여전히 산재해있는 미제 사건이 우리 사회에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영화로 만들기는 쉬워도 현실속에서 정의 실현을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으며 떵떵 거리고 살고 있다. 진실도 중요하지만 정의 실현도 놓쳐서는 안될 일이다. 이에 대한 엄정한 잣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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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릴 때가 가끔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그냥 눈물이 핑 도는 수준이라거나 한두 방울 떨어지고 마는 정도인데, 이 책 막바지에서는 여차하면 구슬프게 통곡을 할 뻔했다. 오른손으로는 책을 움켜쥐고 왼손 등으로는 열심히 눈물을 훔쳐내느라 바빴다. 흑흑,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맞닥뜨리고 나니 슬프더라. 아침부터 배가 아픈 통에 무슨 일이든 영 집중을 못했는데, 이 책을 마저 읽기로 하고 집어드는 순간부터는 아픔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금세 빨려들어가 이 시간이 되었다. 물론 서평을 다 쓰고 나면 시간이 훨씬 지나있겠지만. 출판사 광고를 보니 일본의 한 출판사가 정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이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보다 상위에 랭크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용의자 X의 헌신>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은 게 전부인데, 후자는 추리 쪽이 아니니 논외로 치면, 솔직히 <용의자 X의 헌신>은 영 별로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붐(?)이 일어도 별로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쨌거나 <검찰 측 죄인>을 읽으니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보다 더 낫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키노는 이제 막 도쿄지검 형사부 본부계에 발을 디딘 검사 생활 5~6년째의 햇병아리 검사이다. 그가 배속된 본부계를 이끄는 이는 '오키노가 사법연수생 시절에 검찰교관이었던 모가미 다케시'이다. 모가미의 따뜻한 인품과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은 오키노의 롤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부부가 살해된 사건이 일어나 두 사람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노부부에게서 돈을 꿔간 사람 중 하나인 마쓰쿠라. 이 인물은 23년 전 소녀의 살해 혐의를 잔뜩 받았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 체포되지 않은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그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그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상태이다. 오키노는 이 마쓰쿠라의 취조를 담당하게 되지만, 그의 구류 기간 동안 점점 더 그가 노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육감과는 다르게 범행도구인 칼이 마쓰쿠라의 필적과 지문이 묻은 신문에 싸여 발견되고 알리바이는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 등 사건은 어렵기만 하다. 모가미는 마쓰쿠라가 진범이 확실하다며 그의 기소를 진행해가고, 오키노로 하여금 마쓰쿠라를 더욱 몰아칠 것을 명령한다.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지도 않은 인물을 윽박지르고 취조하는 일을 견디다못한 오키노는 사표를 제출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오키노가 범인이라고 여기고 있던 인물의 시신이 발견된다. 오키노는 어느덧 범이라는 검으로 악인을 일도양단한다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광경 속에 있었다. 그저 팔매질에 어울릴 만한 말을 주워 모아 마구잡이로 내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마쓰쿠라의 자존심을 뭉개고 고독감을 부추겨 절망의 심연에 몰아넣어 마음을 꺾는 데만 전념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광기로 치부될 수도 있는 각오를 품고 악다구니를 쓴 만큼 나름대로 마쓰쿠라에게 피해를 준 것 같기는 했다. 떨리는 몸과 눈물, 그리고 신음 소리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하루 종일 악마처럼 갖은 악담을 퍼부은 성과는 그것뿐이었다. 마쓰쿠라는 다소 잠을 설치는 밤을 보낼지도 모르겠지만 오키노에게는 허무함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p. 240) 아무리 보아도 범인이다, 관록이 붙은 경찰이나 검사들이라면 그런 육감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육감이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어지간하면 나도 경찰과 검사들의 그런 육감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를 틈새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범죄자를 놓치게 되더라도 아무 죄 없는 사람이 엉뚱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돕는 사법적인 안전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법이라는 칼은 양쪽으로 날을 지니고 있어 사회를 지켜내기도 하겠지만 자칫하면 사회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키노는 신중하고 정의로우며 진실을 좇는 사람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마쓰쿠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증거 또한 모두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나, 오키노는 마쓰쿠라의 항변에서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발견된 증거 역시 의심스러웠으므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급기야는 그 어렵게 들어간 검사를 때려치우기까지 한다. 그가 볼 때는 검찰이 범인도 아닌 이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원죄(寃罪)'라는 단어다. 일본 쪽 용어 같아서 검색해 보니 '엔자이'라고 해서 일본 법조계 쪽의 문제가 많은 논란거리였다. 원죄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는 의미이다. 어느 나라나 실수로 죄 없는 사람이 수감되는 일이 발생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경·검이 도통 자기네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이 원죄로 구치소 등에 갇혀 재심을 청구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 관료계의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라는데, 끔찍하기 짝이 없다. (엉뚱한 얘기지만, 그래서 이것들이 자기네 역사도 숨기고 억지로 끼워맞추는 놀이를 하는 건가 싶다. 끔찍한 것들!!!) 사실 경찰이나 검찰이 누군가를 망가뜨리기로 결심한다면 그처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죄를 뒤집어씌우기만 하면 된다. 증거가 부족하다면 증거를 조작하면 되고, 목격자가 필요하다면 목격자를 만들면 된다.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자연스레 도태된다. 그들이 들고 있는 법이라는 칼은 죄 지은 범법자에게 휘둘려야 할 것이지, 무고한 이를 겨누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신문기사를 조금만 뒤져보면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로 몰려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의 벌을 받은 일따위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실수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일부러 사건을 조작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법 체계가 올바르고 온전하게 작동하는지 국민들이 주시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를 지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벌을 모면한 범법자. 우리가 볼 때, 그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마쓰쿠라는 23년 전에 한 대학 기숙사 관리인 부부의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끝내 시인하지 않아 체포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23년 후, 두 노부부의 살해 사건에 어쩌다 엮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오래 전 죄를 저질렀을 때 벌을 받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한다.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한 누명을 뒤집어쓰기는 싫다는 얘기다. 원칙대로라면 그의 말이 옳다. 그가 저지른 죄를 통해 처벌을 받는 것이 가장 합당하고 옳다. 자신이 저지르도 않은 죄의 처벌을 받는 것은 억울한 측면을 떠나 절대로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오키노의 사무관 사호가 한 말대로 마쓰쿠라에겐 약점이 있어 어떻게든 벌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마쓰쿠라와 누명을 쓴 보통 사람의 다른 점은 그가 과거에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게다가 시효가 성립되어 처벌을 받지 않았죠. 그래서 이 녀석이라면 죄를 뒤집어씌워도 상관없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 그게 마쓰쿠라의 약점인 것 같아요." (p. 385) 독자로서 나도 그의 처벌이 어떤 식으로든 이뤄지길 바랐다. 그러면서 나는 오키노가 자신이 믿는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간절히 바랐다. 또, 모가미의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얄팍하게 응원하면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실은 단 하나뿐이지만, 정의는 여러 갈래일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전철이 사라진 선로 건너편에 도쿄 구치소의 커다란 수용동이 보였다. 오키노는 플랫폼에 우두커니 서서 그 색다른 모습의 건물을 애끓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남북으로 날개를 펼치고 선 것처럼 보이는 저 건물 속의 인간에게는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저기서 밖으로 나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런 날이 온다는 기약도 없이 갇혀 지내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오키노는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뭘 틀린 걸까.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오키노는 이제 아무 답도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믿고 무엇의 편을 들었을까. 정의란 이렇게나 삐뚤삐뚤하고, 이렇게나 애매모호한 것인가. 이 역을 통과하는 급행 전철이 다가왔다. 플랫폼에서 떨어진 안쪽 선로로 빠르게 다가왔다. (P. 574) 이 작품에서 저자는 경·검의 사건수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공소시효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도 묻고 있다. 공소시효는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검색해 보니, 재판의 공정성, 처벌의 필요성 감소, 수사기관의 인력관리의 문제가 있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범죄가 발생한 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면 목격자나 피해자들의 기억과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을 수 있고, 경찰 등이 그 사건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처벌의 필요성 감소 항목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 사람의 목숨이 걸린 범죄의 경우 처벌의 필요성이 감소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를 쳐서 더욱 무거운 벌을 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이지만 살인죄에 한해 공소시효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이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되지 못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다시 논의될 거라고는 하는데 이런 걸 왜 재논의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우리나라에서도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나쁜 놈들이 발 편히 뻗고 자지 못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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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은 손에 검 한자루를 들고 있어. 법률이라는 검이지. 그건 아주 잘 드는 진검이야. 법치국가에서는 최강의 무기라고 봐도 돼...자네들은 지금까지 그 검을 쓰는 법을 열심히 배워왔어...혼신의 일검을 휘둘러서 악인을 베어 넘길 수도 있게 되고. 그거야말로 검사 일의 묘미지...p.5~6
사법연수원의 마지막 수업에서 검사 모가미 다게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가장 가슴에 담은 인물은 오키노 게이치로. 로스쿨 졸업생으로 그는 검사직을 마음에 담고 모가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4년여후, 이 둘은 도쿄지검 본부계에서 만난다.
전반부는 일본의 검찰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온다. 본부계, 형사부, 공판부 등. 일드 [히어로]에서 보는 일 이외에도 검사직이 해야할 일들이 소개되고...
일수놀이를 하던 70대 노부부가 칼로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을 훑어보던 모가미 검사는 용의선상에 선 인물들 중 하나를 보고 놀란다. 마쓰쿠라 시게오. 그는 23년전 그가 대학생시절 살았었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살인사건의 아주 유력한 용의자였다. 가족같이 보살펴주고, 자신을 오빠처럼 따랐던 유키를 죽였던 범인이 확실했지만, 알리바이를 주장해주는 인물 덕에 거의 모든 정황이 유력한 가운데 경찰은 기소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런 억울함 떄문에 같은 기숙사 선배 미즈노는 잡지기자로 변신, 사건을 끈질기게 좇았고, 그 당시 사법시험 합격도 못했던 모가미는 자신의 무력함에 그 안타까움을 마음에 묻었었다.
그런데, 사건을 취조하는 중 마쓰쿠라는 과거의 살인사건을 자백한다. 하지만 이젠 공소시효가 지나버렸고 그는 이제 과거의 살인사건에 대해 아무런 처벌도 받지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제목이 다 설명해준다.
이야기는 모가미와 오키노의 시점에서 보여진다. 악인을 처벌하는 정의를 주장을 해서, 동기에게 고지식한 녀석으로 여겨지는 오키노가 자신의 판단과, 또 너무나 존경하는 선배 모가미의 신념을 따라가는 가운데 고뇌하는 부분은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모가미가 동기 단노에 대한 검찰의 취조와 자살을 보면서도 왜 단노를 공격한 모습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꺠닫지못했는지는 이해가 가지않는다. 너무나 잡고 싶었던 범인이라고 하기에도 이전에 언급이 되있지않았고 또 다시 과거의 부활이라고 해도 그가 다른 누구보다 더 절실했음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막상 유리한 입장이 되자 진술을 번복한 마쓰쿠라 같은 쓰레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나왔더라면, 오키노 같은 인물에서 모가미처럼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좋은 사람과 좋은 검사는 달라...p.26
그렁에도...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직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검사라고 또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이와 이해관계가 대치되는 부분에선 또 반대의 평가가 나올 수가 있다. 모가미는 좋은 검사였다. 하지만, 그는 검사직이 쥐어주는 칼을 휘두를 수 없는, 그런 칼이 닿지않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악인을 잡기 위해 검사직이 쥐어주는 검을 놓고 좋은 검사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런 딜레마를 보여준 수작이었다. 좀 더 머리를 써서 법률적으로 어쩌고 하고 뭐라고 말하기엔, 그 모가미의 고지식함 떄문에 엔딩에서 조금 가슴이 아팠다.
p.s: 시즈쿠이 슈스케 (雫井 脩介)
<栄光一途(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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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살인죄의 공소시효 적용을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1999년 대구에서 일어난 6살 아동의 목숨을 빼앗은 황산 테러는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고 현재 공소시효가 다가오자 살인죄만큼은 끝까지 추적해서 법적 책임을 묻게하자는 의미에서 추진된 법안이 '태완이법'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25년이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이라도 25년만 지나면 공소시효로 검찰은 더이상 그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지 못한다. 일본도 살인죄는 우리나라와 똑같이 25년이다. 일본도 있고 우리나라도 있으니까 얼른 공소시효라는 게 세계 보편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살인죄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는 없는 나라가 더 많다. 미국도 없고, 영국도 없으며 우리나라와 일본 법제의 근본이 되는 독일도 없다. 미국 드라마 중에 '콜드 케이스'라는 것이 있다. 장기간에 걸쳐 미해결로 남은 사건을 콜드 케이스라고 부른다. 그 기간이라는게 보통 수십년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공소시호에 걸렸을 사건들이다. 일본 드라마에도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시효 경찰'이란 게 있었다. 거기서 오다기리 죠는 경찰인데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시효가 만료된 범죄를 조사한다. 결국 진범을 찾아내더라도 오다기리 죠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서 제발 진실을 알려달라고 멋적게 부탁만 할 뿐이다. 그러나 '콜드 케이스'에선 그렇지 않다.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면 모두 '철컹철컹'이다. 미국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묵힐대로 묵힌 범죄라도 진실이 드러나면 모조리 처벌 받는다.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불합리한 것이 공소시효다. 살인으로 가족이나 연인 혹은 지인을 잃은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아픔이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가 시간의 경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죄를 사해 버린다? 납득될리 만무하다. 도대체 왜 공소시효라는 게 있는 걸까? 형사소송법에선 그 이유를 대략 두 세가지 든다.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 장기간 미제 사건의 경우 범죄를 입증할만한 증거 찾기가 곤란하므로 수사에 드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범인도 그동안 추적을 피하느라 형벌 못지않은 심리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니 그만하면 충분히 벌을 받을만큼 받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국가가 태만하여 범인을 못 잡았는데 그 책임을 범죄자에게 가중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국가가 유가족에게 얼마나 냉정한 지 잘 알 수 있다. 피해자가 당한 아픔은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가는 소요되는 비용을 따진다. 증거 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들지만 미드 CSI만 봐도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증거를 찾아내는 수사 과학 기술들이 발전하는 걸 잘 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증거의 상쇄는 얼마든지 보완 가능하다는 의미다. 더구나 가해자의 아픔을 고려한 이유에선 헛웃음마저 나올 정도다. 유가족은 그 기간동안 가해자보다 몇 십배나 더 커다란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체포에 대한 공포보다 영원한 상실이 훨씬 더 큰 아픔이니까 말이다. 거기에 유가족들은 자신의 아픔에 대해 아무런 죄책마저 없다. 그들은 그저 당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오로지 가해자만 고려하고 있는 것이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가의 태만 운운하는 부분은 점입가경이다. 그것이 정말 이유라면 공소시효를 만들 것이 아니라 그 태만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거나 지원을 확충하는 게 먼저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공소시효는 그 불합리성이 인정되어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태완이법'으로 이제 우리나라도 그 흐름에 들어가는구나 여겼다. 하지만 법사위는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반대한 의원들이 대부분 변호사 출신들이었는데 그 이유로 법적안정성을 들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적안정성인지 모르겠다. 법적 안정성이란 국가가 내가 존재하리라 믿었던 제도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가질 수 있는 불이익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공소시효를 신뢰하는 이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범죄자들이다. 즉 공소시효가 지키고자 하는 법적안정성은 주로 범죄자들을 위한 법적 안정성인 것이다. 과연 국가가 그런 자들의 법적안정성까지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범인에게 고한다'로 유명한 시즈쿠이 슈스케의 2013년도 작품 '검찰측 죄인'도 공소시효를 테마로 하고 있다. 제목이 어딘가 낯이 익다면 당신은 분명 애거서 크리스티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리라.이 제목은 그녀의 작품 '검찰 측 증인'을 살짝 바꾼 제목이니까 말이다. 시즈쿠이 슈스케하면 얼른 카멜레온이 떠오른다. 미스터리면 미스터리, 로맨스면 로맨스, SF면 SF, 장르를 다양하게 넘나드는 데도 늘 성공적으로 변신하는 까닭이다. '검찰 측 죄인'에선 법정 미스터리에 도전했다. 두 명의 검사가 주인공이다. 하나는 베테랑 검사인 모가미. 그는 '법률이라는 검으로 악인을 일도 양단한다'는 신조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끝가지 추포해 기필코 정의를 관철하겠다는 존재다. 다른 하나는 초짜 검사인 오키노. 모가미에 반해 검사가 된 인물로 당연히 처음엔 모가미의 신조를 따라 행동하지만 나중에 가서 그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인물이다. 소설은 이 둘의 갈등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갈등을 일으킨 사건이 있다. 바로 가마타에서 일어난 노부부 살해 사건. 용의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사단이었다. 그의 이름은 마쓰쿠라. 모가미는 그의 이름을 보고 경악한다. 대학 다닐 때 그는 한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 곳을 관리하던 부부에게는 유키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살해당한다. 그런데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마쓰쿠라였던 것이다. 모가미는 유키를 누구보다 아꼈기에 그 사건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마쓰쿠라는 아주 유력한 용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 때 법을 공부하고 있던 모가미는 자신의 무력함을 뼈져리게 느낀다. 다시는 그런 사건에서 무력해지고 싶지 않아 검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공소시효의 만료로 더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유키의 부모도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유키와 그 부모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거의 절망에 가까운 죄책감을 가진다. 너무 커서 장례식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던 모가미였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그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모가미는 생각한다. 공소시효가 지나 이미 처벌할 수 없었던 그 사건을 이번 것으로 처벌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모가미는 위험한 유혹에 빠진다. 오키노는 모가미를 신뢰한다. 처음엔 모가미를 철썩같이 믿고 마쓰쿠라를 엄청 심하게 신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이 나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쓰쿠라만 용의자로 몰고가는 모가미를 비롯한 수사진들에게 회의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난 검사 실격이야. 그 사람은 특수부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목숨을 끊었는데도 범인상을 미리 정해놓고 철저히 억측으로 수사를 진행하려 하고 있지. 생각해보면 그게 그 사람의 대답인지도 몰라. 이게 바로 검사라는 대답. 보기에 따라서는 그게 정답일 테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 임무에 의문을 품으면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난 무리야. 검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이래서 될까 고민하는 게 당연하잖아.(p. 386 ~ 387) 그러다 결국 모가미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는 순간이 닥쳐오고 오키노는 이제 마쓰쿠라를 변호하는 변호사와 협력하여 그를 무죄 방면 시키려 애쓴다. 그러다 이 사건에 얽힌 아주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된다. 책은 모두 574페이지로 꽤나 묵직한 편이다. 오로지 하나의 사건만 주가 되느라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즈쿠이 슈스케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공소시효를 필터로 하여 법률로 현실 속에 정의를 관철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독자로 하여금 제대로 경험시키려 한다. 캐릭터는 잘 살아 있고 법정 미스터리에 기대하게 마련인 법적인 부분의 묘사는 치밀하며 몇몇 부분은 가슴을 애잔하게 만드는 장면까지 들어있는 터라 엔터테인먼트로도, 오늘의 법현실을 생각해보는 데 있어서도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대립하는 캐릭터 모두 끝까지 페어플레이 하고 있어 더욱 관전하는 맛이 난다. 분명 두께만큼 깊이도 묵직한 소설로 무엇보다 '태완이법'의 무산이 쓰라렸다면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법을 주관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리고 있다. 그것은 법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안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가 얼마나 부유하든 권세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잘못을 했다면 응당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법은 눈을 가리기는 커녕 너무 크게 뜨고 있어서 탈이다. 아니 거기다 색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더 문제다. 요즘처럼 법이 과연 무엇일까 많이 자문하게 되는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모가미의 말대로 법이 칼이라면 백종원이 쥐면 누군가를 배불리겠지만 살인자에겐 흉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법이 가진 진짜 문제는 그것을 누가 휘두르는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제대로 잘 휘두를 수 있는 사람과 휘둘러서는 안 될 사람을 선별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원과 견제의 시스템이 가능한 법체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 말로 유가족의 눈물과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첩경이리라. 그 고민의 한 걸음을 이 책으로 내딛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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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인이 살해당하고, 그녀의 남편이 살인자로 지목된다. 문제는 사체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지문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조차 남기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개봉했었던 영화 의뢰인의 줄거리이다. 이야기는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과 그를 구속하려는 검사 쪽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흥미로웠던 건 검사 쪽의 계획이었다. 살인자로 지목된 남자는 그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은 범인이라고 확신했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태, 즉 기소할 수 없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그를 풀어줘야 했던 검사는 이후 비공식적으로 그를 주시해왔다는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미뤄볼 때 명백한 범인임에도 그저 정황증거만으로 범인에게 처벌을 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해주었던 영화였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거기에 아직까지도 존폐논란이 끊이지 않는 '공소시효'라는 사법계의 영원한 숙제를 추가한다. 지난 달에 일명 태완이법이라 불리는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개정안이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의 피해 아동이었던 김태완 군이 숨지고 나서 지난 2014년 공소시효가 끝날 예정이었으나 제정신청을 통해 공소시효가 정지된 상태이다. 원래 공소시효라는 것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라면 25년,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이다. 하지만 수많은 살인 사건들이 공소시효라는 걸림돌 덕분에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고, 그 사건들은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활용되어 왔다. 몽타주, 아이들, 그 놈 목소리, 내가 살인범이다, 공범 등등...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 사건의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다니는 스토리는 무엇보다 감정이입을 끌어내고, 제한된 시간이라는 긴장감 또한 부여하기 때문에 영화적인 소재로 자주 이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측은 이것이 사건의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소시효가 지난 뒤 범인이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형벌권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고, 따라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공소시효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측은 공소시효 기간 동안 범죄자의 고통은 형벌을 받는 것과 맞먹기 때문에 처벌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검찰과 경찰의 업무가 한 사건에만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측 모두 각각의 이유가 합리적이어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사실 매우 어렵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관련해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 작품의 질문은 사실 간단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의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현재 벌어진 다른 사건의 범인으로 그 사람을 몰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것을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아오토의 설명을 흘려 들으며 모가미는 단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쓰쿠라가 진범이기를 바란다는 생각. 어떤 사건이든 범인이 특정 인물이기를 바라며 수사에 임한 적은 없었다. 이 녀석은 결백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범인이 틀림없다 뭔가에 근거한 판단 말고, 이를테면 희망이 포함된 사심을 검찰 수사에 개입시킨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모가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 속에 있었다. 이 흉악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아직 부각되지 않았다. 마쓰쿠라가 범인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한 점에 기대를 걸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23년 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사람을, 현재 다른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다가 발견했다면, 그렇다면 누구라도 내심 바라게 되지 않을까. 그가 이번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으면. 그래서 지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못다한 한이라도 풀 수 있기를, 분하게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었던 법의 정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기를 말이다. 70대 노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마도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이고, 돈까지 얽혀 있는 걸로 조사되어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용의자가 추려진다.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해 용의자 범위를 압축하는 작업 중에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자신이 대학 시절 하숙을 했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살해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지목됐었던 남자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무려 23년이 지나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나버렸지만,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관리인 부부의 외동딸 유키가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벌써 결혼해 아이도 있을 지 모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의 미래를 잔인하게 빼앗아 버린 범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며 살.아.있.는. 것이다. 당연히 모가미는 그가 이번 노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 없다. 설령 지금 그가 과거의 죄를 인정한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지만, 그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면 그 동안 미뤄졌던 법의 심판을 받아 죗값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오키노 역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과가의 죄를 청산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취조할 때 서슴없이 폭언을 퍼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의 죄까지 덮어씌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야 거의 사적 제재의 영역이다....원죄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정말로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이 심판 받지 않고 법망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우면 이치에 어긋나는 결과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과거의 살인 사건을 저질렀지만 시효가 성립되어 처벌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씌워도 상관없는 것일까? 범인상을 미리 정해놓고 철저히 억측으로 수사를 하더라도,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던 살인자를 벌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공소시효를 빌미로 아무런 제재 없이 빠져 나가버린 범죄자를 심판하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 피해자는 그저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고, 범인은 그저 운이 너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건가? 세상에 이런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베테랑 검사 모가미의 정의는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에게 다른 죄를 뒤집어씌우게 되더라도, 어차피 그가 과거에 저지른 원래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모가미의 제자이자 새내기 검사인 오키노의 정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이다. 원죄를 만드는 것은 수사 측이 저지르는 죄이므로,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것이 과거의 살인을 저지른 자일지라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현재의 죄를 뒤집어씌우면, 결국 현재 사건의 범인은 역시나 또 처벌받지 않고 살아 갈테니 말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모가미의 정의와 오키노의 정의는 극과 극이지만, 사실 어느 한 쪽의 입장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모가미의 행동도 이해가 가고 오키노의 생각도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 설사 그것이 과거에 살인을 저지른 자를 보호하는 것일지라도.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이 또 있을까 싶다. 시즈쿠이 슈스케는 ‘공소시효를 빌미로 달아난 범죄자를 심판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진지한 의문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현직 검사들을 취재해서 작품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현행 사법제도의 복잡한 딜레마를 인간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있다. 애초에 공소시효라는 것만 없었더라도. 라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남겨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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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믿고 갈 길을 가다 [검찰 측 죄인]
예로부터 판사나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이 한 집안에 탄생하기를 우리네 부모들은 빌고 빌어왔다. 뼛속 깊이 법조인의 피를 이어 받은 유서 깊은 가문이 아닌 다음에야 뼈를 깎는 노력을 하거나 "개천에서 용 나는" 정도의 천지개벽이 일어나야 겨우 얻어 입을 수 있었던 법조인의 검은 가운.
힘 없고 무식하다며 무지렁이 취급 당하고 모멸감을 받아 온 세월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좀 똑똑한 자식이 났다 하니 대번에 "우리 집 기둥은 너 하나다. 꼭 판검사 돼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또 해서 어리벙벙한 자식의 창창한 앞길을 다른 곁가지를 다 치고 단 하나의 길만을 향해 달려가게 했을까.
판검사의 옷을 입으려면 똑똑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어르신들은 다 헤아리고 그 길로 밀어넣는 것일까.
"정의"의 이름으로 죄인과 죄를 천칭에 나란히 올려 형량을 저울질하고 심판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게 될 판검사가 짊어지게 될 무게는 밀어올리기만 하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시지프스의 돌덩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법제도 개혁으로 신설된 법과 대학원을 거쳐 신사법시험에 합격한 신 60기 연수원에서 교관과 제자의 연으로 만나게 된 모가미와 오키노. 앞으로 법률이라는 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휘두르게 될 연수원 졸업생에게 모가미는 "검을 든 자는 용자"여야 한다며 용기와 각오를 심어준다. 오키노는 모가미를 마음 속에서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으로 기억하며 검사 생활을 하던 중 드디어 모가미와 만나 사건을 배속받는다. 집 안에서 살해된 노부부의 사건을 맡게 된 오키노는 모가미의 지휘를 받는다는 생각만으로 바짝 긴장하여 사건에 임한다. 범행이 발생한 후 시간도 꽤 흘렀고 범인을 단정할 만한 증거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아 여러 명의 피의자를 물망에 올려 두고 조사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검찰 간 신뢰 관계를 더욱 굳히기 위해서 경험이 적은 오키노에게만 맡겨놓지 않고 직접 사건을 살펴보던 모가미는 부부의 숨은 교우관계를 조사한 목록 가운데서 '마쓰쿠라 시게오'라는 이름에서 눈길이 멈춰선다. 23년 전, 모가미가 대학생 때 생활한 기숙사 관리인의 외동딸 유키가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마쓰쿠라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던 것이다...
유키는 23년 전에 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23년간 태평하게 살아서... -96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의 용의자였지만 노부부 살해 사건으로 다시 맞닥뜨리게 된 이 이름 앞에서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때마침 순수한 정의로 들끓는 마음을 함께 나눈 법학부 동기였던 단노가 불법 정치헌금에 연루되어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모가미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쓰쿠라가 노부부를 죽였다면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이 천벌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가미는 마쓰쿠라를 옭아맬 함정을 만들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한다. 마쓰쿠라를 아무리 취조해도 자백하지 않았고 확실한 살인증거도 나오지 않은 때에 갑작스럽게 살인흉기가 나타나면서 마쓰쿠라는 살인죄를 뒤집어 쓰게 되었다. 오키노는 무엇에 씌인 듯 마쓰쿠라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모가미에게 강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급기야 "검사" 의 옷을 벗어던지고 만다. 변호사로 다시 시작하기 전에 이 사건을 끝장내고야 말리라. 오키노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이상적인 검사의 이미지로 품어왔던 모가미가 법의 심판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심판하려 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정의를 좇아 선배 검사에게 반기를 든 오키노라는 남자의 고뇌가 소설 전편에서 드러난다. 그저 검사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어찌 보면 되게 멋진 '사나이'가 등장했다. 정의를 관철함으로써 자신을 쫓아낸 선배에게 보복했다며 남들은 축하해주지만 그 축하는 이상하게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법이 심판을 벗어난 악인은 누가 심판해야 하는가? 법으로 심판하는 자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로 전락한 모가미에게는 어떠한 동정도 가해서는 안되는가? 간만에 제대로 "선과 악"의 오묘한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검찰측죄인] 우물쭈물하다 흐리멍덩하게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선명한 흑과 백을 잠시나마 뚜렷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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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읽을 때 재미 부분도 분명 중요하지만,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도 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주는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재미와 주제의식, 모두가 만족스러웠던 책입니다. 법의 경계를 넘어 정의를 실현하려는 베테랑 검사 모가미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지키려는 새내기 검사 오키노. 그 둘을 지켜보며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그 경계를 판단하기 곤혹스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잔인하게 살해된 70대 노부부의 살인사건.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용의자 목록에서 마쓰쿠라의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쓰쿠라는 대학시절 자신이 귀여워했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 살해 사건에서 끝까지 범인으로 의심되었지만 교묘하게 빠져나갔던 용의자였는데요.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그가 범죄를 자백해도 더 이상 그를 처벌할 근거가 없습니다. 모가미는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해가면서까지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기 시작하는데요. 법률이라는 검이 만능이 아니라는 모가미와 법률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믿는 오키노. 책을 읽다 보면 법 해석에서 과연 공소시효가 존재하여야 하는가 의문이 들게 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가 한 범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명백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또한 이미 법에서 한계를 정해두었는데 공소시효를 무시하고 그를 처벌한다면 그 행위는 정당성을 입증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모가미는 일부러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서라도 원죄를 처벌하려 듭니다. 사실 모가미가 마쓰쿠라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님에도 누명을 쓰게 되니까요. 하지만 결말까지 지켜보게 되면서 분명 모가미의 행동은 그릇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저 검사의 본분을 다한 것은 아닐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는 법적 한계와 부조리함이 만든 비극은 아닐까 느껴지거든요. 그에 반해 마쓰쿠라를 진범으로 단정하고 몰아가는 수사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신임 검사 오키노. 그는 결국 검사 자리까지 박차고 나오며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데요. 그 역시 천상 변호사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둘 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것일 뿐, 그저 이 모든 것은 법의 한계로 인해 생겨난 비극은 아니었을까 한없이 안타까운. ㅠㅠ 악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 정의일진데, 과연 법은 그 모든 것을 커버해줄 수 있는 것일까요? 결국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오키노를 보며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어떤 범죄 사건이 검찰과 언론에 의해 얼마나 좌지우지되는지 실제 역시 소설 속 모습과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지켜보며 더더욱 옥죄어 오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었네요.
범인으로 보일지라도 유죄 확정 전에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며,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는 인권을 보호하고 절대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러나 그러는 동안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은 어찌해야 하나 그 딜레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모두의 형평성을 동등하게 맞춰줄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요? 공소시효의 한계점과 올바른 정의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가미와 오키노, 그들이 추구하는 각자의 정의가 모두 이해가 되기에 섣불리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어 더욱 울컥하고 안타까웠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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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고한다』로 국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시즈쿠이 슈스케의 법정 서스펜스물이다. 일단 표지가 산뜻하니 인상적이다. 노란색 바탕에 총, 칼, 시계 그리고 재판봉이 그려진 일러스트가 법정의 존엄성과 위엄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다. 580여쪽의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법정 서스펜스물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로 공소시효와 정의.『검찰 측 죄인』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법망의 테두리를 벗어난 범죄자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려는 한 검사의 집념어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노부부 살인사건의 용의자 명단에서 마쓰쿠라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바로 그가 23년전 소녀 살인사건때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결국 체포에 실패했고 이후 공소시효 만료로 자유의 몸이 된 상태. 모가미 검사는 23년전 사건의 죄를 묻기 위해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간다, 한편, 모가미를 존경해온 새내기 검사 오키노는 그러한 모가미의 명을 받아 마쓰쿠라를 취조하지만 일방적으로 범인으로 모는 모가미의 지시에 일말의 의혹을 갖는다. 그러면서 공소시효와 정의에 관해 대척되는 지점에 선 두 검사의 불꽃튀는 신념의 대결이 막이 오른다. 책 초반부에는 23년전 과거 모가미 검사가 당시 겪었던 입장과 처지를 공감하며 그런 연유로 마쓰쿠라를 옭죄이기 위한 일련의 행보가 나름의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증거를 은폐하고 스스로 불법을 자행해 원죄자를 만들고 결국 범죄자를 척결하기 위해 스스로 범죄자가 되는 모가미 검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의 극단적인 행보는 전도유망한 후배 검사가 사직원을 제출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이 작품을 계기로 공소시효의 존폐 여부와 정의의 개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2011년 개정법에 의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때 살인죄에 관한 공소시효(현행 25년)를 폐지하려는 일명 "태완이 법"이 국회 법사위에서 기각돼서 뜨거운 사회적 논란과 이슈가 되었지만 마침내 최근 21일 폐지안이 국회 법사위의 제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문제는 개개인이 판단하고 '정의'하는 정의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인데... 과연 내가 모가미와 같은 전철과 고통을 겪은 검사라면 나 역시 모가미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오키노의 편에 설 것인가. 구치소의 차가운 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검사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특히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모가미 검사에게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전철역에서 오키노가 절규하는 마지막씬은 인간이기에, 감정이 있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기에 보여주는 상념어린 회한의 씬이다. 사법제도의 대표적 맹점인 공소시효라는 핫한 주제에 정의라는 도덕적 잣대를 비추어 한 편의 인간 드라마를 보여주는『검찰 측 죄인』. 각자 추구하는 정의의 신념을 토대로 두 검사가 보여주는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수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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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차 신입검사 오키노는 존경해오던 모가미와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기쁘다. 그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 모가미가 더욱 좋다. 어느 날, 노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 지을 수 없다.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피해자 주변을 탐색하고, 작성된 보고서를 받아본 모가미는 한 사람의 이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대학에 다닐 때 지내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카의 가장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놔줘야 했던 마쓰쿠라의 이름이 있었다. 경마장에서 피해자를 처음 만났다는 마쓰쿠라. 알리바이가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태도를 참고인 조사에서 본 모가미는 마쓰쿠라가 범인이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모가미와 형사들은 마쓰쿠라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강도 높은 취조를 시작한다. 취조 중 23년전 여중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점, 발달된 과학수사로 DNA감별이 정확해진 점, 이미 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는 점을 내세운 결과 그는 자신이 유카를 죽였다며 자백한다. 마쓰쿠라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오키노는 끝까지 잡아떼다 시효가 끝나고서야 자백을 하는 마쓰쿠라를 보고 노부부 살인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모가미로부터 마쓰쿠라의 취조를 명받은 오키노는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를 뻔뻔하게 늘어놓는 마쓰쿠라를 더 신용할 수 없지만, 취조를 하면 할수록 이번 사건과는 연관이 없게만 느껴진다. 소득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중 다른 사람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떠오른다. 정황만 놓고 보자면 그 사람이 범인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가미는 수사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원죄라는 것이 있다. 누명을 쓴다는 것이다. 하지도 않은 일로 죄인이 되고, 죗값을 치뤄야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이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의 실제 범인이라면, 어떨까. 시효라는 제도 자체가 폐지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모가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범죄행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시효 뒤에도 살아올 수 없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없었던 일이 된다.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친분있는 사람이 피해자라면 분한 마음은 더 할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無로 만들고는 유유자적 살아온 그 사람이, 시효가 지난 어느 날 다른 사건의 용의선상에 올랐다면 한 치의 감정없이 대할 수 있을까. 반면 용의자가 특수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때의 원죄도 생각하게 한다. 언론이나 상부의 지시, 혹은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떠밀리듯 용의자로 지목해놓고,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을 해도 결국 범인을 만든다. 추후 몇 십년 후에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다고 해봤자 이미 세상사람들에게는 범인이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그 때문에 지난 세월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절대 보상할 수 없다. 법을 만든건 사람이다.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실패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 법이 적용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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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책은 간단히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책이다. 아니, 이 말을 빼먹으면 안되지.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표지엔 칼과 시계, 법봉, 권총이 그려져있다. 각각이 상징하는 것이 있는데 칼과 권총은 범행에 쓰인 흉기, 시계는 공소시효, 법봉은 판결, 법을 의미한다. 책의 내용과 딱 어울러져 상징적인 것으로 그려 넣은 것이 절묘하게 들어맞다.
「검찰측죄인」은 말 그대로이다. 탄탄대로를 걷고있는 모가와 검사와 검사가 된지 4~5년밖에 되지않은 신출내기 오키노 검사의 이야기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일까의 작가의 물음이 등장인물을 통해 독자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기도한다.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지만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받을 수 없는 이, 마쓰쿠라를 모가와는 용서할 수 없다. 대학 시절 귀여워했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를 살해했지만 유유히 빠져나간 이가 마쓰쿠라이기 때문이다. 모가와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기위해 지금이 기회다 생각하고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만들어 처벌받지 못한 과거의 죗값을 치르게 하려한다. 하나의 거짓말로 시작한 것이 빗방울이 옷깃에 떨어지는 것처럼 점차적으로 늘어난다. 마쓰쿠라를 몇 번이고 심문 후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 생각하는 오카와는 취조하다 자신의 생각과 어긋난 현실에 실망하며 검사직을 관두고 마쓰쿠라의 무죄를 밝히기위해 그의 편에 서는 것이 제 2막인 셈이다. 이야기는 1막에서의 주인공은 모가와로, 2막에서의 주인공은 오키노로 볼 수 있고 각 막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진행되는데 이것이 참 흥미롭다. 마쓰쿠라를 범인으로 꾸미기위해 어떤 일을 저지르게되는 모가와의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이 없잖아들지만(굳이 그런 쓰레기를 잡아들이기위해 본인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인가 싶고),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지는 않다. 또 모가와를 존경하는 제자 오킨코의 이야기도 맞긴 하지만... 글쎄. 그의 행동에 결국 승자는 누구였을까라는 씁쓸한 물음만이 남는다.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모가와와 오키노, 공소 시효가 지나 살인 고백을 한 마쓰쿠라, 법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기도하다. 왜 악한 자를 승자처럼 만들어놓았는지. 벌을 받아야되나 시간이 지나면 살인도 무죄가 다는 건가. 참 개떡같은 일도 다 있다. 이런 것이 현실이라는 것에 한숨이 나온다.
「검찰측죄인」은 사회 고발적인 내용으로 어찌보면 이야기의 흐름은 예상한대로 흘러간다 볼 수 있는데, 작가의 필력이 전혀 지루한 감을 주지 않게 만들었다. 마음을 울리게 만들었다. 작가의 이름 기억해 두어야겠다. 몇 달 전 재미나게 본 드라마 「펀치」처럼 한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면하는 것이 바램이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던 모양이군. 가끔 그런 사건이 있어. 범인 입장에서 보면 악운이 세다고 할까. 목격자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쓸모 있는 지문이 채취되지 않는다거나, 모두 악운이지." -p. 164
"저는 그런 변호 활동을 하면서 검찰이 정말로 비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원래 정의의 편에 선 조직이죠. 하지만 때때로 정의를 등에 업고 점찍은 상대를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때려눕히려고 합니다. 일단 폭주함녀 그 상대가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든 상관없어요. 권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 됩니다. 그 순간 공권력은 악으로 변하는 거죠." -p.458
정의란 이렇게 삐뚤삐뚤하고, 이렇게나 애매모호한 것인가.
-p.5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