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결’은 아직 결재나 판결이 끝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김성달의 『미결인간』에서 이 단어는 선고를 기다리는 미결수의 법적 지위를 넘어, 끝내 완결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상태를 가리킨다. 구치소 13방에 갇힌 K, N, O, S, U, Y, 그리고 P. 이니셜로만 호명되는 인물들은 각각 독립된 중·단편의 연작 형식으로 펼쳐지며, 저마다 다른 사연과 죄명을 지녔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선다. 인간은 과연 언제 완결될 수 있는가. 이 작품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떠올리게 한다. 억울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슈호프처럼, 김성달의 인물들 역시 감금된 공간 안에서 상처와 폭력, 허무와 연민, 그리고 미약한 공감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감옥이라는 폐쇄 공간을 놀라울 만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작가의 필치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각 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서사를 높은 가독성으로 끌고 간다.
<미결인간 K>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하루를 현재축으로 삼아,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K의 회상을 펼쳐 보인다. 고아였던 K는 양아버지가 운영하는 인애원에서 원생들을 감시·감금하는 시스템을 설계한 공학도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교도소의 파놉티콘을 닮아 있다. 양아버지의 욕망을 대신 수행하는 아바타로 살아온 그는, 정작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감옥 안에서야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을 느낀다. 탈옥수 수기를 발견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높이고, 마지막 문장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감옥에 갇혀 생각이 하나씩 꺼져가는 일과 탈옥을 위해 피를 한 방울씩 흘리는 일이 사실 하나의 경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은 섬뜩하다. <미결인간 N>에서 설거지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수행이 된다. 29일째 13방 설거지 담당인 N은 지저분한 그릇을 닦으며 자신의 마음도 씻어낸다. 강 사장의 배신으로 사기죄에 연루된 그는 억울함과 회한 속에서 살아간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그릇처럼 마음을 비우려 하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묘선에 대한 감정이다. 예순에 만난 조선족 여성 묘선은 그의 옥바라지를 자처하지만, 이혼은 원치 않는다. 반신불수가 된 아내 역시 버릴 수 없다. 사랑과 책임, 욕망과 연민이 뒤엉킨 그의 삶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읽히지 않는다. 묘선의 편지 속 “깨끗하게 씻겨 다시 온갖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우리 인생”이라는 비유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처럼 읽힌다. <미결인간 O>는 돈과 가족, 자기기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배임횡령으로 수감된 O는 3년 만에 접견 온 아내에게 “당신은 가족을 몰라”라는 말을 듣고 깊은 모욕감을 느낀다. 그는 열세 살에 가출해 온갖 고생 끝에 돈을 벌었고, 그것이 가족을 위한 삶이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불법과 합법, 비법과 편법이 뒤엉킨 그의 생은 결국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혼돈에 이르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몰랐던 그는 마약을 통해 왜곡된 방식의 자기애를 경험한다. 접견실 앞 “가족의 마음”이라는 안내문은 그에게 뒤늦은 자각을 안긴다.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믿었지만 정작 가족의 마음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미결인간 S>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이 작품은 기다림의 부조리를 극대화한다. S는 보석 허가만 기다린다. “오늘은 나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날마다 좌절되고, 결국 방 안의 웃음거리이자 미운 존재가 된다. “때려죽어도 못 나가”라는 말조차 그의 믿음을 꺾지 못한다. 쌍둥이 형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맹신 때문이다. 결국 그가 감옥을 빠져나가는 방식은 자해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이다. 비극적이면서도 블랙코미디적인 결말이다. 자유를 향한 그의 몸부림은 처절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어쩌면 인간이 희망을 붙드는 방식 자체가 그렇다. <미결인간 U>는 시간의 퇴적을 보여준다. 접견 물품으로 들어온 참외 하나가 40년 전 감옥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년교도소와 원주교도소를 거치며 배고픔과 폭력 속에서 살아남았던 그는 이후 프레스 공장을 운영하는 입지전적 인물이 된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어도 그는 변하지 못했다. 감옥은 참외가 반입될 만큼 달라졌지만, 그의 의식은 과거의 결핍에 여전히 붙들려 있다. 결국 노조 임금 체불로 다시 구치소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한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 <미결인간 Y>는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형성된 삶을 보여준다. 보호관찰 미이행으로 재입소한 그는 작은형의 죽음, 약혼자의 죽음, 출세지향적인 큰형의 그림자, 폭력적인 아버지와 자신을 감싸던 어머니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왔다. 인생의 부침이 너무 많아 스물넷에 자서전을 쓰고 싶었다는 설정이 그의 삶을 압축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깨닫는다. 바깥세상이 반드시 자유의 공간은 아니라는 것을. 삶은 여전히 미결이지만, 어떤 깨달음의 차원에서는 이미 결론에 도달한 듯한 역설이 이 작품을 깊게 만든다. 유일하게 감옥 밖 이야기를 다루는 <미결인간 P>는 가장 따뜻하면서도 가장 쓸쓸하다. 사업 실패로 구치소 생활을 했던 P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미결수’처럼 느낀다. 아내의 부탁으로 어머니 집을 찾아가는 하루 동안 그의 걸음은 길 아닌 길을 헤매는 듯 위태롭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가 아들을 조카라 소개해야 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명탯국을 끓이려 한다. 어린 시절, 겨울 바다에서 잡아온 명태로 끓여주던 그 국물. “아, 이제 살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은 생존의 주문처럼 들린다. 마지막 문장, “여전히 미결인간인 P에게 명탯국 한 그릇이 간절한 아침이었다”는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열린 공간을 갈망한다. 그러나 정말 바깥이 자유의 공간일까. 감옥 밖 사람들 또한 다른 형태의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김성달은 묻는다. 인간의 삶은 과연 언제 완결되는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죽는 순간까지 미결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열림이 있다면, 그것은 삶 이후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