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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중동문화와 사회라는 과목에서 교재로 채택해서 읽게된 책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딱딱하고 지루했다. 정말 몇페이지도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중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중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면서 책을 정독해서 보기시작했고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들어오기 시작했다. 강의를 통해서 더욱 잘 알게 된건지도 모르지만 이슬람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슬람의 태동과 성장배경등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세계사는 동양과 서양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중에서도 중동의 역사는 많이 덮여있어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듯싶다. 그런데 저자는 이 중동이 4대 문명발상지인 이집트와 메소포다미아가 자리한 곳이고,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와 같은 세계 종교가 생긴 곳이니 얼마나 이곳이 중요한지 역설하고 있다.
저자 버나드 루이스는 기독교 탄생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2000년 역사의 중동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중동을 헬레니즘-로마-기독교-이슬람 이라는 네 인류문명이 연속적으로 중첩된 문화적 토양으로 이해하고, 이 지역을 유럽과 동양을 잇는 중계문명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현존하는 금세기 최고의 중동학자이다. 그가 써놓은 이책은 동서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문화전반에 관한 깊은 통찰력으로 그는 중동의 역사와 문화를 거침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기독교 시대로부터 역사서술을 시작하는 나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페르시아와 비잔틴이라는 두 거대 제국과 함께 예언자(무함마드)의 성장배경이 되었고, 이슬람 국가의 기초가 되었던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를 복원해보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중동을 분할하고 차지해왔던 이러한 경쟁적인 세력들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가치가 있다. 두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중동과 고대 자료나 기념물을 통해서 배워왔던 중동의 고대 문명사이에 어떤 연결을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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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루이스, 굉장히 유명한 중동학자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발표하며 중동학이 제국주의와 공모했다는 사실을 까발리자 버럭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누가 옳냐고? 난 사이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지식은 권력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은 푸코나 마르크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알잖니. 식민지근대화론처럼 노골적으로 권력에 아부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살아 있는 게 죄라는 맥락과 마찬가지로 학문하는 자는 권력에 공모할 수밖에 없다. 설사 대항적 권력이라도 마찬가지다.
서론에서 루이스가 쓴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중동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지배적인 요소는 유럽의 영향(후일 더욱 일반화된 용어로 서구의 영향)과 그리고 그 영향이 안겨준 변형(변위)이다. (중략) 그들은 서구 문명의 영향을 이 지역에 닥친 최대의 재앙으로, 심지어 13세기 몽골의 침략에 의해서 이 지역이 유린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재앙으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한때는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서구의 영향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점차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럽의 짧은 직접 지배는 과거 속으로 묻혀가고 있고, 미국은 지리적으로 멀 뿐만 아니라 개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23쪽)
'문화와 제국주의'라는 책에서 보듯 노골적으로 미국의 전략을 제국주의로 규정한 사이드와 대비되는 주장을 루이스는 펼치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전 감행은 사이드의 주장이 좀 더 유효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또 하나 문제되는 서술은 책의 후반부에 나온다.
대부분의 중동사람들에게 그들의 생활이 1918년이나 혹은 그 이전인 1914년보다도 1939년에 더 나아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381쪽)
바꿔 말해서 오스만제국 치하에서의 중동보다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중동이 물질적인 측면에서 발전을 했다는 의미다. 논쟁이 분분할 해석이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일제식민지 경험은 수탈과 저항이라는 도식으로 서술된다. 최근 부흥의 조짐을 보이는 식민사학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름을 빌려 수탈과 발전이라는 도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뉴라이트의 역사해석은 수탈보다 발전이 더 많이 부각되는 실정이다. 이들은 통계로 증명한다. 봐라, 쌀 소비량은 줄었지만 기타 식품 소비량은 늘었잖아. 평균신장도 커 졌고. 평균 임금도 많아졌고. 인구도 늘었고. 경제성장률도 관찰되고. 국사학계에서 이런 역사해석에 대해 얼마나 적의를 품고 있는지는 금성판 교과서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식민지근대화론을 들고 나왔을 때 국사학계는 일일이 대거리를 하지 않았지만 대한제국에 관한 논쟁을 기점으로 두 진영이 날을 세운다. 대통령과 현직 교육감이 금성판 교과서를 좌익으로 몰아세우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마 중동에서도 이런 대립이 존재하리라. 식민지 경험을 겪은 모든 사회에서 이런 논쟁은 발견된다. 슬프게도 중동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루이스는 착취와 발전의 도식으로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듯하다.
근대 서술을 제외한다면 이 책은 불평할 여지없이 훌륭한 책이다. 유럽중심의 서양사와 중국중심의 동양사를 배우는 우리사회에서 중동은 지적으로 공백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마호메트 출생, 오스만 제국 정도가 우리가 중동사회에 대해 아는 전부일 테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단일한 세계가 아니다. 중동사회는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도 여럿이다. 아랍어 외에도 터키어, 페르시아어가 있다. 이슬람도 단일한 종교가 아니다. 이란은 쉬아파, 나머지 지역은 순니파가 우세하다. 역사상 존재했던 왕조는 훨씬 복잡하다.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칼리프조, 파티마 왕조, 카라한 왕조, 일한조,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사산왕조......
일반적으로 16세기까지는 중동지역이 유럽보다 더 우월했다고 인정된다. 지중해와 인도, 중국을 잇는 중동지역의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아랍세계는 일찍부터 중계무역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경제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중동이 더 뛰어났다. 스페인에서부터 이집트, 비엔나까지 위협했던 오스만제국은 유럽사회의 가장 큰 공포였다. 아라비아 숫자로 상징되듯, 자연과학도 중세까지만 해도 중동이 더 뛰어났다.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유럽세계에서 소멸되었다가 중동으로부터 역수입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하지만 유럽이 지리적인 대발견을 이루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식민지를 만드는 동안 중동지역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은 늙어가고 있었고, 이란은 발전하는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1688년 오스만 제국이 비엔나에서 참패한 후로 유럽과 중동지역의 균형은 급속하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남하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으로 중동사회 대부분이 종속적인 지위로 떨어진다.이들이 다시 독립을 찾은 시기는 세계대전 이후다. 1차대전으로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이 독립하고 2차대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이라크, 이집트가 차례로 독립한다. 세계대전 이후에도 알제리가 치열한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다.
이상이 간략한 중동 지역의 전사이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왕조의 흥기와 쇠퇴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문에서 밝힌 바로 그가 역점을 둔 분야가 바로 이러한 미시사란다. 이 부분은 제3부 '중동사회와 문화'에서 서술된다. 크게 국가, 경제, 계층, 법, 문화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특이한 점은 유럽과 달리 처음부터 국가와 교회 간의 충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초대 칼리프나 후대 술탄의 지위는 종교적인 권위와 현실적인 지배 권력을 결합한 형태였다. 칼리프가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이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10세기부터 칼리프는 명목상의 지도자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아미르'라고 하는 군사령관에게 집중되었다.
중동지역은 중세의 유럽과 동아시아가 그러했듯 농업 중심이 사회였다. 나일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시르, 아무 강 유역과 강우량에 의존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중심으로 보리, 기장, 초기형 밀이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다. 밀이 주작물이다. 커피 역시 주목할 만한 작물이었다. 에티오피아 카파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진 커피는 커피하우스와 함께 서구로 건너간 대표적인 중동의 작물이다. 유달리 커피가 중동에서 유행한 이유로 저자는 이슬람의 계율을 꼽는다. 이슬람은 알코올을 금한다. 이 때문에 술문화 대신 커피문화가 대신했단다. 하지만 중동사회는 강 유역을 제외하고 농업 생산성이 낮았고 그나마 사막화로 점점 농업이 피폐해져 간다. 게다가 도시지향의 이슬람 종교는 농업에 무관심했다. 중동 지역의 농업생산성 하락은 유럽과 경쟁에서 뒤쳐지는 한 요소가 되었다.
계층에 관해서 저자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엘리트 지배계층과 평민계층. 원칙적으로 이슬람은 평등의 종교다. 비록 신자와 비신자,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신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게 이슬람의 원칙이다. 현실은 다르다. '카사'라는 특수층과 '암마'라는 일반층으로 계층이 구분된다. 노예도 많았다. 장거리 노예 무역은 오스만 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카톨릭과 달리 원칙적으로 성직제도는 없었지만 울라마라는 집단이 존재했다. 이슬람의 예배는 신자라면 누구나 주관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슬람 교리에 정통한 울라마가 주로 행했다.
'샤리아'라는 이슬람 성법은 꾸란과 하디스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샤리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교의나 도덕률과 같은 내적 측면, 그리고 외적 행위가 그러하다. 법은 해석을 배태할 수밖에 없는데 900년 경에 벌어진 학자들 간의 논쟁은 '이즈티하드'로 알려졌다. 쉬아파는 이를 부정하며 순니파의 해석에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이슬람 법은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인데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슬라미 캄사)이라 알려진 의무가 중요하다.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예배), 하즈(메카순례), 라마단 단식, 자카트(희사)가 그것이다.
이슬람의 고대 문화는 다양성과 불연속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이슬람교 이전 헬레니즘, 로마, 기독교의 영향이 빠른 시일 내에 이슬람으로 수렴되면서 사라졌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 결과 페르시아어, 터키어, 아랍어 정도가 남았고 수메르어, 바빌로니아어 등 대부분의 언어는 사라졌다. 히브리어는 다시 부활 추세다. 예술 중에서 문학만 유일하게 인정받았으며 음악은 노예가 종사하는 천한 분야였다. 시각예술 또한 마찬가지로 장인이나 공예가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조각은 금지되었다. 이슬람 시는 까시다(칭송시, 연애시)와 사냥꾼들이 지은 시가 유행했다. 시는 이슬람 세계에서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우마이야 칼리프 이후 대개 궁정시인을 고용했다. 이들 궁정시인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지도자를 찬양했다. 페루도오시가 쓴 '샤나메'라는 서사시는 10세기 작품으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에 견줄 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영웅과 신이 대화하는 내용이다. 시 외에도 마까마라는 단편문학이 존재했다.
책에서 언뜻 봤는데 2050년 정도에는 이슬람이 세계1의 종교로 성장할 거란다. 나는 이 지역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졸업이 이제 겨우 한 학기밖에 안 남았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 자괴감이 앞선다. 종교학 전공한다는 인간이 성경도 한 번도 안 읽고, 이슬람에 대해서 백지이며, '논어', '맹자'조차 보지 않았으니...... 앞으로 시간이 더 없을 게 뻔한데. 아, 1학년 2학년 때 난 뭐했을까. 연애도 안 했고, 클럽도 안 다녔고, 딱히 여행도 한 적 없고, 동아리를 했으나 열심히 했다고 생각 안 하고, 학업에 충실하지도 않았고......
하긴, 열심히 살았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겠느냐. |
| 오늘날 중동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하나의 세계로만 여겨진다. 계속되어지는 전쟁과 인종갈등, 그 안에서 우리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중동 자체를 가치폄하해오지 않았었나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중동의 가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위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 지역이 다름 아닌 헬레니즘, 기독교, 이슬람 그리고 로마 문명을 연결하는 하나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인 것이다. 아랍인, 터키인, 페르시아인 등, 수많은 민족이 모여 살면서 발생하고 있는 오늘날의 분쟁들 역시도 과거에는 이 지역을 세계사적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했던 발전의 토양이었음을, 단순히 그 지역에 국한된, 하나의 과거의 문명이 아닌,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위대한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중동을 재조명해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너무도 지루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지독하게도 왕조 중심의 역사 서술에 익숙했었음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나에게 그다지 많은 끌림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책은 시대의 소수 엘리트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왕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식의 서술이 아닌, 그 시대 사회와 문화에 대해 광범위하게 고찰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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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4.목
중동 문제에 대해 신문이나 TV에서 나올 경우.. 내가 모르는 상황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서 구입했던 책인데.. 책을 받고 나니...빽빽한 글씨에...산을 하나 만난 기분이었다.
새해들어서 굳은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1개월이 지났고..드디어 다 읽었네..야호! (정말 등반을 한 기분이랄까..)
이슬람이 고대에서 1990년대까지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를 설명해주며, 많은 부분이 18세기 이전의 이야기가 많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아프리카 북부까지 나눠져 있는 지역이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묶여있다가 하나씩 분파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헷갈린다.. 국가와 민족이 match가 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민족이 다를 수도 있지만 같은 국가 소속이며, 같은 민족이지만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배타적이 되는..이런 상황을 이해하긴 쉽지만 머릿 속에서는 여전히 막 섞여있다..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국가들은 1930년대 이후에 다 생겨났다는 사실..이러니 오스만이니 비잔틴이니 하는 것이 어느 한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국가가 분화되기 전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한가지 아쉬운점은 저자는 중동사를 머릿속에 꿰차고 있기 때문에 흘러가듯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여러 사건을 뭉쳐서 일반화시켜 이야기 해준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다...이런 식으로.. 19세기에 일어나 일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처럼 중동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초보자가 접하기에 적당한 책은 아닌 듯하고, 세세한 사건이나 일들에 대해 지식이 어느 정도 있을 때 시대의 흐름이나 trend등을 파악하기 좋은 것 같다. 나또한 세세한 사항은 기억이 안나지만 대략의 상황변화는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았으니..
그리고 책이 좀 무겁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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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루이스가 쓴 중동의 역사는 그동안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오해를 일소시키는 책이다.
오래된 책인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기도 하다.
중동의역사에서는 2천년의 중동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 토양을 잘 소개하고 있고, 유럽과 동양을 이어주는 중계문명으로서의 중동 문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
중동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특히나 현대에 와서는 테러의 주범이라는 인식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보다 근본적으로 없앨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인류의 고대 문명지인 중동. 그들의 삶 또한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고, 단지 종교적인 이유로 탄압받고 멸시 받았던 그들의 역사를 알고 이해함으로서 보다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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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더 똑똑해질 수 있는책. 인문학 교양서로서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중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지냈는데 중동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는것 같아요. 서야사나 한국사 책은 많이 접하게 되지만 생소한 중동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