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Tiresias 이야기다. Tiresias는 우연히 Athena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 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Athena는 Tiresias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Athena는 너무 가혹한 벌을 내렸다 하며 후회했지만 Tiresias의 시력을 되찾아 줄 수는 없었다. 대신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었다. 그리하여 Tiresias는 눈먼 예언가가 되었다. 그러나, 미래를 볼 수는 있으되 바꿀 수는 없었기에 Tiresias의 예견력은 오히려 더 가혹한 형벌이 되고 말았다. Tiresias는 Oedipus에게 말했다. "득이 없는 지혜는 비탄일 뿐입니다.(It is but sorrow to be wise when wisdom profits not.)" — Matt Ridley, {Genome: the autobiography of a species in 23 chapters}, New York: Harper Collins, 2000 저널리스트 출신의 과학 에세이 저술가 Matt Ridley의 저서 {Genome: the autobiography of a species in 23 chapters}—제목 그대로 유전 염색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역시 제목 그대로, 이 책은 2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단원에 숫자를 붙이지 않았다. Chapter Anger, Chapter Death, Chapter Free Will—이런 식이다. 단원명을 붙여놓고 그 단원명과 관련된 유전인자의 염색체 상의 위치, 작용 방식, 작용 범위 등을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Chapter Death에서는 생명체가 종래에는 사망할 수 밖에 없는 유전자적 구조와 과정을 서술한다는 식이다. 유전학 분야의 여러 연구 결과들이 ''유전학적 결정론''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염색체가 생명체의 탄생, 생애, 사멸을 결정하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유전학적 결정론''의 오류와 한계 또한 강조한다. 환경적인 영향, 생명개체의 의식과 주체적인 자각, 노력 여하에 따라 염색체의 계획서는 얼마든지 천양지차로 다르게 실현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작가 역시 유전학적 결정론을 받아들이며 체념하는 듯 하다. 물론 그가 비겁하다거나 체념하기 좋아해서가 아닐 것이다. 염색체의 신비 가운데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자 대륙의 언덕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은 참으로 멀고 밝혀야 할 진실은 참으로 많다. 이 책에는 풍부한 데이터와 사례, 일화들 또한 담겨있다. 이 글 초두에 옮긴 Tiresias의 일화는 Huntington''s disease를 소개하기 위해 등장한다. Huntington''s disease는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유전병이다. 누구나 이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를 검사해 볼 수 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변이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다면 이 병으로 죽을 염려는 없다. 불행하게도 부모로부터 변이유전자를 물려 받았음이 판명되면 대번에 사망선고가 나온다. "당신이 이 병으로 5년 이내에 죽을 확률은 몇 퍼센트, 10년 내에 죽을 확률은 플러스 몇 퍼센트, 20년 후에는 거의 죽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 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유독 많은 것으로 알려진 어떤 가계(家系)가 있었다. 그 가계의 후손들 중 약 20%가 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나머지 80%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무지를 선택했다. 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찌 죽을 지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그들 자녀들이 운명을 더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사를 받은 사람들의 남녀비율이 흥미롭다. 여자가 남자보다 세배가 많다. 역시 남자는 여자보다 이기적인가. 또 다른 일화 하나. 과학자들은 흔히 암 환자들로부터 불멸세포계(不滅細胞系, Immortal cell lines)를 추출한다. 암세포들이 대개 가공할 증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포들은 실험실 연구목적으로 사용된다. 이 세포계들 중에서 1951년 볼티모어에서 암으로 숨진 Henrietta Lacks라는 흑인여성의 종양으로부터 추출된 세포계, HeLa가 제일 유명하다. 그 놀라운 증식력으로 인해 일단 한 실험실에서 배양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근처 실험실에 있는 모든 배양 접시들을 죄다 동원하곤 해야 했다. 이 세포계가 러시아로 건너갔을 때 일부 러시아 과학자들은 그들이 신종 암세포를 발견한 줄 알았다고 한다. 때문에 학계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세포계는 폴로 백신을 만드는데 사용돼 왔으며 심지어 우주로 발사되기도 했다. 현재 전세계의 퍼져 있는 HeLa의 총량은 고 Lacks 여사의 생전 몸무게의 400배에 달한다. 그런데, Lacks 여사한테서나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그녀의 종양세포를 이처럼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아무도 받아 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실제로 크게 상심했다. 결국 Atlanta 시는 매년 10월 11일을 ''Henrietta Lacks의 날''로 정해 고인의 의학적 공헌을 기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