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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을 발명하다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가 좋았다
*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이 반가웠다
* 당신은 꿈을 꾸고 있어줘 일어나 새로 태어난 듯 항상 웃어줘 뒤척이지 말아줘
이불을 함께 덮고 있다는 걸 잊은 듯 돌아눕다가 모든 걸 내가 가져가버린데도 그대로 씩씩하게 누워 있어줘
* 우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 세상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해 다감함을 부른다 당신의 다정함은 귓파퀴를 돌다 몸 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파먹히기를 바란다고 일기에 쓴다 파먹히는 통증 따윈 없을 거라 적는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일생 동안 지었던 죄들이 책상 위에 수북하게 쏟아져 내렸다
* 어떤 진실은 내성적이고 연약해서 그저 그렇게 도사리기만 할 뿐 말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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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현실에서 시인을 만난 것은 어린이전문도서관 관장으로서였다. 어린이전문도서관 이름은 ‘웃는책’. 웃는책을 알게 된 것은 일산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일산으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도서관 순례였는데 공공도서관이야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으니 개인이 운영하는 어린이 도서관이 주요 대상이었다. 그때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온 곳이 웃는책이었다. 자연스레 누리집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그럴수록 웃는책은 아름다웠고 정성으로 운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척박한 우리나라 문화 풍토에서 꼭 필요한 곳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다른 어린이 도서관은 몇 군데 들렀지만 이상하게 웃는책하고는 잘 인연이 닿지 않았다. 비껴가기도 했고 찾아갔다가 실패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국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찾아갔다. 일요일에 우리 네 식구가 온천을 다녀오다 잠깐 들렀던 것인데 주인은 도서관 앞에 꽃밭을 일구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웃는 책을 주는 도서관장이지만 시집에서 만나는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눈물과 울음 가득하다. 시인은 ‘어떤 눈물들은 / 차분하고 투명하며 열렬했다. // 그런 눈물과 닮고자 했다 / 나의 문학이. / 그리고 나의 삶이’(「시인의 말」)라고 말한다. ‘눈물로 바다를 이루어 / 누군가가 방주를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자에게는 / 복이 있나니’라거나 ‘혼자서 노래를 부르며 우는 자에게는 / 복이 있나니’(「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라고도 노래한다. 오죽하면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고통을 발명하다」)고 쓰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까닭은 ‘인간의 등에 대해 기록하느라 그녀는 청춘을 썼다 이것은 / 사물들이 그녀에게 유독 등을 맡기려는 이유이며 / 그녀가 울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 이유이다’(「그녀의 눈물 사용법」)라고 밝히고 있다.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시인,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모른다」) 시인은, 인간에 관해 쓴다.
눈물이라는 뼈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바람은 이불처럼 마을을 덮었다가, 이내 사납게 지붕들을 부수며 뛰어다녔대. 한 아이가 등불을 끄고 누울 때 두 손을 가슴에 얹는 것은, 이 겨울밤에 닥친 이야기의 죄값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래. 안다는 것에 대해 가슴이 미리 떨리기 때문이래. 세상이 잠이 들자, 암늑대는 나무둥치를 갉았대. 발톱을 힘껏 세워 갉아댔대. 지빠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대. 그 부리로 더 이상 먹지도 않았대.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쪼아대고 있었대. 바람은 온 마을을 한 바퀴 휘감고는, 장전을 끝낸 총구처럼 날렵하게 북상 중이었대. 바람은 그럴 때 아이들의 악몽을 빼앗아 달아난대. 악몽이 빠져나간 아이들의 이마는 허름해지고, 지빠귀가 쪼아댔거나 먹어댔거나 노래했거나, 암늑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대.
바람을 간호하던 암늑대의 긴 혓바닥이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질 때, 비로소 아이는 늑대의 섭생을 이해하는 한 그루 어른이 되는 거래. 그때 바람은 떠났던 숲으로 돌아가지 못해 더 큰 목소리로 운대. 눈물이 사라진 어른들을 믿을 자신이 없어, 아이도 모로 누워 남몰래 운대. 밤새 흘러내린 눈물로 마당이 파이기 시작하면, 바람은 사라지고, 새로운 돌부리들이 죽순처럼 쑥쑥 마당을 뚫고 올라온대. 누군가는 그 돌을 주워 피리를 불고 누군가는 그 돌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대. 늑대가 섭생을 위해 밤새도록 무엇을 원했는지는,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다, 알 수가 있대.
# 돌이 부르는 노래
암늑대는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세상이 잠이 들자, 암늑대는 나무둥치를 갉’아댄다. ‘발톱을 힘껏 세워 갉아’댄다. ‘지빠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바람은 온 마을을 한 바퀴 휘감고는, 장전을 끝낸 총구처럼 날렵하게 북상’한다. ‘바람은 그럴 때 아이들의 악몽을 빼앗아 달아’난다. ‘암늑대의 긴 혓바닥이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질 때, 비로소 아이는 늑대의 섭생을 이해하는 한 그루 어른이’ 된다. 생을 이해한 아이는 남몰래 울 수밖에. ‘밤새 흘러내린 눈물로 마당이 패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돌부리들이 죽순처럼 쑥쑥 마당을 뚫고 올라’오고, ‘누군가는 그 돌을 주워 피리를 불고 누군가는 그 돌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눈물의 뼈로 자양분을 삼은, 돌이 부르는 노래. 그것이 김소연 시인의 시일 터, 비록 눈물과 울음 뿐인 생일지라도, 너무 늦기 전에 자주 ‘햇살의 손길에 몸 맡기고 / 한결 뽀얘진 사과꽃 세상을 / 베고’ 눕기를!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먼 훗날, 내 손길을 기억하는 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줄 시 한 수 미리 적으며 좀 울어볼까 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아래서 실컷 좀 울어볼까 한다 사랑한다는 단어가 묵음으로 발음되도록 언어의 율법을 고쳐놓고 싶어 청춘을 다 썼던 지난 노래를 들춰보며 좀 울어볼까 한다 도화선으로 박음질한 남색 치맛단이 불붙으며 큰절하는 해질 녘 창문 앞에 앉아 녹슨 문고리가 부서진 채 손에 잡히는 낯선 방 너무 늦어 너무 늙어 몸 가누기 고달픈 어떤 때에 사랑을 안다 하고 허공에 새겨 넣은 후 남은 눈물은 그때에 보내볼까 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세상을 베고 누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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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집으로 손이 갔다. 따뜻한 봄이 마치 초가을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지인이 '예전에는 시를 왜 읽는 지 몰랐는데 지금은 좀 알 것 같아. 나이가 들었나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쌓인 나이만큼 경험도 쌓이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글을 읽어도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게 된다. 아마 더 시간이 흐르면 시집에서 더욱 많은 걸 볼 수 있겠지 :) *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너를 이루는 말들 中 * 꽃은 자기 자신의 꿀맛을 보았을까요 우리가 꽃일까 봐서 우리는 하루 세 끼가 늘 톱밥과 같습니다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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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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