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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과거보다 먼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다. 이 사실에 대해 '왜 그럴까?' 하고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반감이랄까 아니면 세월의 역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회상이 좀 씁쓸하게 여겨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아왔던 지난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를 성장시켰던 단계단계마다의 성과와 실수를 되짚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젊은 시절에는 잘 와닿지 않는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무한대인 듯 여겨지기 때문이고, 죽음이란 그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아주 희미한 흔적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선명해지고 남은 시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이 시기가 되면 독서 취향도 크게 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이른바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 어린 주인공이 커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 관심이 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화나 그림책에 큰 관심이 가기도 한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체험담 가운데 이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신성한 하늘처럼 우러러 온 아버지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친 기둥에 쩍 하니 금이 간 순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이 체험으로 우리 운명의 중요한 윤곽이 그려진다는 점을 읽어 낼 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그런 상처와 균열은 대개 봉합되고 잊히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가슴 속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한다." (p.31) 싱클레어의 삶을 단계별로 뒤쫓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까닭에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게 읽힌다. 청소년기에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계기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얼마나 큰 계기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얼마나 유약하며, 인생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싱클레어. 그 괴롭힘은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상처로 남지만 괴롭힘의 발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기숙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외톨이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숙사 선배인 알폰스 베크나 같은 외톨이 신세인 크나우어와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소녀의 그림을 그려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하며 숭배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를 유일하게 일깨우는 존재인 데미안은 그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알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깨고 나오려 분투하라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47) 학창시절의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관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실존의 세계는 마냥 하찮고 낮게 보인다. 온갖 부조리와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상. 그러나 학업을 마친 우리가 실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과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실존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은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깊이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만 두려움을 품지. 자기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해. 자신 안의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도사리고 있다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들은 느끼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삶의 법칙이 더는 맞지 않음을. 종교도, 풍습도, 윤리도 우리가 갈급하는 삶의 요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건 낡은 석판에 새겨진 케케묵은 계명이라는 사실을. 그런 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p.221~p.222)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운이 좋게도 자신의 곁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할 뿐이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어쩌면 그런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그토록 크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런 과정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유럽 여행 중인 아들은 경유지인 뮌헨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리부킹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런던 숙소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도 어쩌면 경유하는 어느 공항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목적했던 어느 숙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항공유처럼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착지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 기착지에서 누구와 조우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을 고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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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기의 싱클레어부터 시작해서 청소년기를 거쳐서 십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싱클레어 성장기가 바로 이 데미안이다. 싱클레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이 데미안이기에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뿐 이 제목을 싱클레어의 십대라고 바꾼다 하더라도 별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그의 인생에 데미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없는 시절에 오르간 연주자이며 목사의 아들이었던 피스토리우스를 만나서 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다.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그 둘은 싱클레어가 대학을 가게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고 같이 전쟁에 참여하고 싱클레어가 부상을 입음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게 된다. 데미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사실 싱클레어의 인생은 분명 그 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십대 후반이 아니던가. 그는 전쟁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데미안과의 만남도 계속 되었을까. 데미안은 전쟁 상황 속에서 또 어떤 일을 했을까.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들에게 남지는 않았을까. 상상하면 더욱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라서 그들의 생이 끝날 때까지 그 상상은 더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심오한 생각들을 하던 싱클레어는 결국 철학과로 진로를 선택했다. 며칠전 철학과 학생이 자신의 과가 없어졌다면서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올려 놓은 영상을 보았었다. 한때는 명맥을 유지하던 그런 철학과가 폐지가 되다니 아무리 인문학의 소용이 없어진 시대라고는 해도 그래도 철학과는 존속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싱클레어가 현재에 살아서 자신의 전공인 철학과가 줄줄이 없어지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는 어떠한 말을 하려나. 싱클레어가 성장하는 동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물론 가족들의 존재도 중요한 존재이기는 했으나 그에게는 한 두 사람 자신의 인생의 분기점이 되어줄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로 인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에 가장 중요한 친구라는 요소가 바로 그들이지 않았을까 한다. 만약 싱클레어가 다른 친구들과 더 친했다면 그저 평범한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데미안을 읽으며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자꾸 떠올려졌다. 데미안이 그 소설 속의 천사 미카엘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었던 그처럼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존재이면서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천사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려나.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다양한 변주를 하게 만드는 그런 주제들이 가득한 그런 책이다. 카인과 아벨에서도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고 카인은 동생을 죽인 범죄자로 나오지만 오히려 카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던가 예수님의 처형장소였던 십자가 옆 두 강도에 대해서도 회개를 한 사람보다 욕을 했었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던가 하는 장면들은 지극히 정도만을 추구하며 그 길대로 따라왔던 나에게는 생경한 느낌이기도 하고 종교의 법률을 배반하는 건가 싶어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헤르만 헤세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 철학을 전공하고 독일어 책을 전문으로 번역한 번역자의 글이라서 다른 어떤 버전보다도 더 잘 읽히는 느낌을 준다. 중학교 때 데미안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그 머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그런 데미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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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중학생 시절, 청소년 필독서로 만난 [데미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로 책표지와 앞장만 뒤적거리다 책을 반납했던 고전 문학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당시 나에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은 2026년 다시금 찾아와 어린 시절 미숙했던 나를 위로하고 성장통에 외로웠던 시절을 헤아려주었다. "자기 자신이 되려고 시도하는 모든 인간은 외롭다"는 문장처럼 에밀 싱클레어는 바로 나였고, 나 자신이 진정한 자신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 바로 [데미안]이다. 그 당시 어렵기만 했던 문장들을 2026년 최신 완역판으로 좀 더 우리말의 결을 살려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고전 문학이 주는 깊은 울림을 담아, 2026년 다시 한번 더 [데미안]을 읽어보길 추천드린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소담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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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 》 |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은이), 김희상 (옮긴이) (주)태일소담출판사2026-03-18원제 : Demian
“나의 이야기는 즐겁고 편안하지 않다. 나의 이야기는 지어낸 허구처럼 달콤하고 조화롭지 않다. 오히려 부조리함과 혼란과 광기와 꿈을 맛볼 기회를 베푼다. 더는 거짓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나의 이야기는 쓴맛을 머금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데미안이다. 고1때 읽었었다. 지금은 사라진 삼중당 문고였던가? 요약본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책 내용이 선뜻 이해가 안 되었었다. 헤세가 반기독교주의자인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기억에 남는 것은 명사뿐이었다. 싱클레어, 데미안, 베아트리체, 에바부인 그리고 아프락사스(이 책에선 아브라삭스)등.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그때는 못 보았던 부분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소설의 화자는 싱클레어이다. 대략 10살에서 11살 때까지 작은 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소년에겐 두 세계가 있다. 안정과 불안정, 선과 악 또는 빛과 어두움이 되겠다. 안정, 선(善), 밝음은 그의 가족(특히 부모)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집이다. 아울러 투명함과 깔끔함, 경건함, 순수함으로 채워진 그의 집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 세상은 모두 반대가 된다. 그러나 소년의 마음속엔 바깥세상이 두려운 만큼 호기심도 많다.
어느 날 이웃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동네 악동이자 불량배인 프란츠 크로머가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머가 싱클레어의 약점을 잡아 그의 수하로 부리기 시작한다. 집에서 돈을 훔쳐갔고 나오게 만든다. 싱클레어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어느 날은 다음에 나올 때 누나를 데려오라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러던 중, 이 소설 제목에 이름을 올린 막스 데미안이 구원자로 등판한다. 데미안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크로머가 싱클레어 곁에서 사라졌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쳐도 오히려 피하는 눈치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우상이면서 두려움의 대상이다.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인물이다.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여러 사념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파괴도 있지만 내적 성장도 함께한다. 그 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 싱클레어는 그 자체의 존재감을 갖게 된다. 한 때 학교에서 제적을 당할 정도로 어둠의 자식으로 지내기도 했지만, 다행히 균형을 잡았다. 베아트리체(우연히 마주친 소녀에게 홀딱 반했지만 말을 나누지 못함)를 통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헤세도 그림을 그렸다).
헤세는 『싯다르타』 에서 성(聖)과 속(俗)을 이야기했다면, 『데미안』에선 선과 악, 신과 인간과의 관계, 내면세계의 정립, 자신의 자아 찾기를 중심으로 빛과 어두움은 확연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담았다. 빛 속에 어두움이 있고, 어두움 속에도 빛이 있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김희상 #소담출판사 #쎄인트의책이야기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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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학생 때 너무 좋아했었던 헤르만 헤세. 처음에는 유명한 작가라서 접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데미안을 어른이 되어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유년 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좋았습니다. 10대 때 읽었을 때는 그저 방황하는 소년 싱클레어의 유별난 성장기 정도로만 느껴졌는데, 나이를 먹고 지금 다시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제 마음을 깊숙이 찌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내 인생에 대입해 봅니다. 나는 새일까... 새의 태도에 따라 세상이 바뀌겠지. 싱클레어가 밝고 따뜻한 세계와 어둡고 금지된 세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실 매일매일 현실 속에서 타협하고 갈등하는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데미안이라는 존재는 밖에서 찾아오는 구원자가 아니라, 결국 내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아, 혹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굳건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묵직한 여운이 꽤 오래 남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에 적당히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진짜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거든요.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들 때, 혹은 온전한 내 편이 필요할 때 침대 머리맡에서 언제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인생 책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내 중심을 찾고 싶은 분들께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데미안 #소담출판사 #헤르만헤세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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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사유와 통찰"
"당신은 진정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자전적인 성장 소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과, 아기가 어미의 자궁에서 나오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비슷해보인다. 새가 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오듯, 아기 또한 자궁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와 탄생한다. 이처험 존재가 세상을 만나는 과정은 이처럼 힘든 과정이 수반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와 싸우며 살아간다. 인생이라는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둘러싼 세계에 맞서서 투쟁하고 싸우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의 인생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정한 길을 가기도 하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고 헤매이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 어려운 시기를 거친다. 보통 사람에게 이 시기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생명력이 주변 환경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가기 위해 가장 쓰라리게 투쟁해야 하는 시점이다. 운명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인간은 인생에서 단 한 번 겪지만, 어린 시절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무너져 내릴 때, 그동안 정든 개 슬금슬금 차취를 감추며 불현듯 고독과 우주 공간의 냉혹함을 실감할 때 우리는 죽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괴로워 한다." -p. 80 그렇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헤매일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아정체감에 혼란이 올 때, 이 책은 그때마다 나를 붙잡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성찰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세계를 만나게 된다. '밝음'과 '어둠'의 세계, 선과 악의 세계, 즉 크루머의 세계와 데미안이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세계의 대립 속에서 싱클레어는 자아가 미성숙한 '어린 나'에서 데미안을 통해 자아를 성숙하고 깨어있는 존재인 '성숙한 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 자아성장의 과정을 헤르만 헤세는 주인공 싱클레어를 통해 보여준다. 그 모습은 정말 새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처럼 힘들고 자아성찰이 요구된다. 그리고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알이 순조홉게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줄탁동시'라는 말처럼 라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 속에 밖에서 알을 깨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력자가 바로 데미안인 것이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가 깨어있게 된다. 그 깨어있는 자는 데미안이 말한 '카인과 아벨'이야기에서의 카인과 같은 자, '탁월함'과 같은 특별한 표시를 가진 카인의 후예들이다. 데미안에 따르면 그 표시를 가진 자들은 서로 알아보고 만나게 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카인의 표시를 가진 용기있는 사람들과 아벨과 같이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세계는 서로 공존하며 맞닿아 있다. 하지만, 삶의 여정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듯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이미 자기 안에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데미안의 말처럼, 내 안으로 깊이 내려가 내 본래의 형상을 찾고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아팠다. 하지만 원할 때마다 열쇠를 찾아 내 안으로 깊이 내려가, 그곳의 어두운 거울, 운명의 형상들이 잠들어 있는 어두운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면, 나는 내 본래의 형상, 완전히 그를 닮은 형상을 만난다. 그,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와. " -p. 270 이 책을 삼독을 하면서도, 여전히 이 책은 나에게 새롭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나에게 처음 던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때는 그 질문이 한없이 어렵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는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누구인지...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매번 이 책을 읽으며 찾으려고 노력했듯이, 앞으로도 난 이 책을 읽으며 수십 번 던진 질문을 할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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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소담출판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작성되었습니다 남편이 좋아해서 더욱 좋아하게 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만나보았는데요. 싯다르타 이후로 제대로 정독한 것 같아요. ㅎㅎ이번에 만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너무나 유명하죠, 그렇기에 고전이기에 더욱 다시 만나보고 싶었는데요. 대표 성장 소설인만큼 느끼는 바도 생각하는 바도 많아지더라고요.
표지에서 바로 느껴지듯이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이 우리가 한꺼풀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같이 느껴져요.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라는 말처럼 우리가 지금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요. 소담출판사에서 이번에 나온 데미안은 함께 온 엽서와 자석책갈피가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책의 굿즈를 참 좋아하고 모으는 편이라서 이런 세심한 디테일에 마음일 끌렸고요. 데미안을 비롯해서 소담출판사의 고전시리즈를 계속 만나 볼 예정이라서 더욱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소장하고 싶은 욕구도 많이 생겨나고요.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 정말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꼼꼼하게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데미안은 그렇게 저에게도 성장소설로 다가오면서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헤르만헤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날 소설인데요. 저는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지금도 우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 소설속의 데미안이 되어 보기도 하는데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친구에 대한 고찰도 하게 되었어요. 인생에서 친구란 어떤 존재이고, 친구가 없는 사람은 고립되고 외로운 존재일까 하고 말이에요. 네 안의 소리를 잘 들어 라고 말하는 ,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소리에 집중하라는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헤르만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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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는 소담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학창시절에 읽고 어려웠던 고전 명작 헤르만 헤세의 " 데미안"을 소담출판사 2026년 완역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고전의 명작은 다시 읽어도 그 감동과 다시 읽었을때 첫 번째 읽었을때 그 감동과 다시 발견하게되는 다른 문구를 알게된 기쁨이 있다. 『데미안』은 한 젊은이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전쟁 직후 독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되었다. 삶을 향한 진지한 시선과 인간 내면의 양면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오늘날의 불안한 청춘과 경직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자기 자신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운명을 찾으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당신은 알을 깨고 자유롭게 날 준비가 되었는가?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려는 싱클레어의 성찰과 성장을 다루는 이야기는 주위의 시선에서 벗어나 살아야할 모든이에게 권장도서 전쟁으로 파괴된 기존의 가치관을 대체하고, 이 책의 주인공인 싱클레어와 데미안 이야기 새로운 인간상과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헤세의 대표작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자화상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주는 헤르만 헤세의 명작이다. 청소년기에도 책을 읽을때 책 내용이 심오하고 어려웠다. 다시 중년이 되어서 이 책을 읽으니 인생의 경험이 축적되어서 더 이해하기에 편하였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은 의미와 인생철학을 되새기게 하는 책일듯하다. 그래서 도서리뷰단을 통해 이 책을 영구히 소장하는 기쁨과 다시 읽을 수 있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이 책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작가가 자신의 유년기 이야기를 마치 일기나 자서전처럼 풀어낸 소설이며, 여러 사람을 만나며 선과 악을 체험하고, 소년 시절의 어려움에 처한 후 막스 데미안이라는 신비로운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얻게 되는 어린 시절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 속에서 등장하는 철학적이고 감상적인 내용들은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작품이었다.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문학 100선’에 선정되는 등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출간되어 많은 젊은이와 문단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싱클레어는 바로 이 책에 투영된 나 자신이었다. 방황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전쟁으로 종교, 도덕, 관습 등 기존의 가치관이 파괴된 독일에 새로운 인간상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을 발표할 때 사용한 가명 에밀 싱클레어가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폰타네상을 받자 헤세가 본명을 밝히고 수상을 철회했다는 일화도 이 작품이 받았던 사랑을 짐작케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소심한 소년 싱클레어는 나쁜 동네 형-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혀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님과 누이들이 있는 안전하고 질서 정연한 ‘밝은 세계’와 하녀들의 이야기, 도살장, 감옥, 술주정뱅이들이 소란을 피우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어두운 세계’로 명확히 분리되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고 소문이 끊이지 않는 전학생, 막스 데미안이 크로머를 물리치고 싱클레어를 구원하면서 기존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그것은 더 이상 사회가 규정한 것,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가르침이었다. 데미안과 헤어지고 기숙 학교로 진학한 싱클레어는 외로움에 방황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퇴학 경고도 받고 가족과도 갈등을 겪던 중, 우연히 어떤 소녀를 보고 사랑에 빠진 싱클레어는 그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숭배하며 다시 경건한 삶을 회복한다. 또, 교회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에게 ‘아브락사스’(Abraxas)라는 신과 철학에 대해 배운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을 모두 포함하는 존재로, 선과 악을 나누지 않고 통합하는 존재다. 과거 철학과 종교에 관해 가르침을 주었지만, 과거의 것들에 연연하는 피스토리우스와 결별한 싱클레어는 다시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학한 대학교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된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가 그려 왔던 이상적 여성상의 총체였다. 어머니이면서 연인이고, 성스러우면서 관능적인, 신성하면서도 악마적인 여성은 싱클레어가 갈망하던 그의 반쪽이었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배우며, 기존의 세계가 곧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큰 고통과 함께 올 것을 예감한다. 이윽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참전한다. 전쟁터에서 싱클레어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 인생을 바쳐 이상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이상이 아닌 공동의, 물려받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상당해 야전 병원으로 실려 간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재회한다. 데미안은 “네 안의 소리를 잘 들어.”라며 마지막 입맞춤을 남기고 사라진다. 싱클레어는 이제 자신의 내면 속에 데미안이 통합되었음을 안다. (…) 나는 시를 쓰려고, 설교를 하려고, 그림을 그리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부수적 문제에 불과했다. 모든 이에게 진정한 소명은 자신을 찾아가는 일 하나뿐이었다. (…) 그가 관심을 둬야 할 일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운명을 찾는 것, 그 운명을 모두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미완성, 현실도피, 대중적 이상 속으로의 도주였고, 순응이었으며, 자기 내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본문 중에서 모든 인간의 삶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그 길에 대한 암시다 무조건 따랐던 가족과 스승에 대한 반발과 분리, 어두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죄책감, 이상적인 상대를 향한 순수한 사랑, 미래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등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 과정에서 체험하는 감정들은 오늘날 청춘들이 자라며 겪는 보편적인 정서와 닮아 있다. 또 그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도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헤세의 인간에 대한 철학과 정신분석 속에서 완성된, 자기 자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속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은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오롯이 자기 자신이기 위해 겪었던 방황과 고통 그리고 희망은 획일화된 교육과 사회 속에서 기계 부품처럼 소비되는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는 용기와 희망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다시 한번 무언가 터무니없거나 나쁜 생각이 들거든 싱클레어, 다시 말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싶거든 잠시 멈추고, 그것은 아브락사스가 당신 안에서 상상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은 결코 아무개 씨가 아니라 위장한 존재일 뿐이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이는 상대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오.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를 괴롭히는 법은 없으니까. -본문 중에서 #데미안# #헤르만헤세# #김희상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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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했다. 대학 시절 만난 데미안은 생각의 방향과 의식의 균형으로 인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만난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꿈꾸던 '지독한 사랑'과 그 '다양성'이 보인다.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를 향하는, 치열한 성장 기록인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고 치열하게 나를 찾고, 다시 놓아주고, 다시 찾는 인생의 무한궤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 참 어렵다. 인식 안에 있던 분리로 인해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로 크로머에게 지독하게 시달리는 싱클레어 그 속에서 만난 데미안은 선구자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던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진리이고 참이었다. 카인에 대한 이야기는 싱클레어에게 충격적이었듯 나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시대적 상황 자체가 무거운 시대였고 별것 아닌것도 심각하고 대단한 일인양 묘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시기였기에 얼마든지 그럴수 있고 모든것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그에게 데미안은 너무도 특별한 존재이다. 그저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렇기에 더욱 위험하다. 절대적 믿음이 깨어지고 난 후의 폭풍은 쉽게 감당하기 어렵기에. 가인과 아벨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달리 볼 수 있다. 그점에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카인은 우리의 상식 속 카인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구도하는 새로운 인간형이자 자연인을 만들어 낸다.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한다. 싱클레어가 꿈 속에 열망하던 이미지가 현실로 등장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독일어로 Eva는 영어의 이브이다)을 만난다.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에바 부인은 '자신의 내면의 상징'이었고 별이었고, 열망 그 자체였다. 서로가 서로를 향했으며 서로가 자석처럼 이끌렸고 함께 머물렀고, 함께였다. 물론 이 부분이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둘의 관계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에바 부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 생각해 봐.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 아름답지는 않았나?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 그 길이 어떠한지를이 아닌 그 길 자체를 묻는 질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멈춰섰었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쉽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던졌던 말 중 이 말은 유독 오래 남는다. '사람은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말을 빌어 우리에게 사람이면 누구가 갖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안에 거인을 데리고 사는데 이 거인에게 지고 넘어지고 복종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이 거인이 점점 커져 결국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두려움은 데미안의 말처럼 '자기를 지배할 힘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주눅 들게 한다. 두려움은 극복의 대상이지 존중의 대상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 두려움에 자꾸 무릎을 꿇는다. 등장인물인 싱클레어(Saint + Clair)와 데미안(Demon)의 관계는 이름에서조차 선과 악으로 나뉘고 책의 내용 속에는 선과 악의대립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단 둘 사이가 모호한 채 말이다. 출간 당시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으니 이 책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거야'라는데미안의 말은 식스센스급 반전을 가져 온다. 아무튼 이 책 여전히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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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되었습니다♡
♡데미안♡ 워낙 고전으로 유명한 데미안~ 늘 그렇듯 예전 읽었었지만..기억이 안나는ㅋㅋ 그리고 마흔 넘어서 책을 다시 읽으면 진짜 예전 읽었던 기억과 다르더라고요. 새로운 느낌이예요.^^ 예전에는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이 책이..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인간의 심리가 너무 잘 묘사되어 있어서 술술 읽혀지더라고요. 처음 "두 세계" 부분에서 그 불안한 심리 묘사는 제 심장이 두근두근 할 정도로 떨렸어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표지도 알을 깨고 나오는 새를 표현해서 인상적이더라고요. <데미안>은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한 인간이 내면을 탐구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치열하고도 심오한 여정을 그리고 있어요.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선과 악, 빛과 어둠, 개인과 사회라는 이분법적 세계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면서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발견해요.
이렇게 이분법적 세계에서 혼란스러워하고 힘겨워 하던 중..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과 만나게 되어요. 데미안은 세상을 보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새로운 해석을 하지요. 사회가 규정한 사회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싱클레어가 자신을 긍정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어요. 선과 악의 잣대로 세상을 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요. 군중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된다는 교훈~~ 저도 배워야 할 삶의 자세인 것 같아요. 남들의 잣대로 세상을 보지말고.. 제 생각대로 바라보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네요♡ 자기 자신이 되려고 시도하는 모든 인간은 외롭다. -본문 중- 나만의 길을 찾는 개성과 자아실현의 길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용기를 내어 추구해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모두 데미안을 읽고 알을 깨고 자유롭게 나는.. 자기 자신의 삶을 멋지게 펼쳐나가길 바래봅니다. #데미안 #소담출판사 #소담 #헤르만헤세 #고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