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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easy english>로 열린다. 종이책을 넘기던 습관을 내려놓고 전자책으로 갈아탄 것은 지난해부터다. 손안의 화면을 켜면 곧바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7시 20분, 이보영 선생님의 경쾌한 목소리와 남주철 선생님의 밝은 리액션이 고요한 집안을 깨운다. 단 20분.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가볍게 밀어 올린다. 나는 영어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 시절 내게 영어는 늘 버거운 과목이었다. 시골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단어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등하굣길,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 앞, 담배를 따던 밭고랑에서도 입을 달싹이며 단어를 외웠다. 틀리면 매를 들던 영어 선생님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발음은 더 큰 벽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은 아이를 무작위로 지목해 책을 읽게 했다. 이상하게도 그 손가락은 자주 나를 향했다. 사투리가 섞인 내 발음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고, 교실 안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는 스스로에게도 낯설었다. “니, 영어를 읽는 거야, 씹는 거야?”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의 웃음이 터졌다. 얼굴이 달아오를수록 혀는 더 굳었다. 그날 이후 영어는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역사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 역사와 세계사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영어에 대한 마음은 더 식어갔다.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아침마다 EBS 방송을 틀어놓고 출근 준비를 했다. 몇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영어 회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답답했다. 컴퓨터를 다루거나 물건을 살 때 뜻을 몰라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대학까지 나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교재 없이 흘려듣던 방송은 결국 한 귀로 들어와 다른 귀로 빠져나갔다. 책을 사기 시작한 것은 은퇴 후였다. 아침이 여유로워졌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노트북을 열고 전자책을 켜는 순간, 묘하게도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랐다. 매를 들던 선생님 대신, 웃으며 말을 건네는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입이 먼저 움직이고, 머릿속에는 문장이 차곡차곡 쌓였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걷혀갔다. 외국에 나가면 이제 한마디쯤은 건넬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스며든다. 예순에 시작한 공부가 마음을 젊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easy english>를 듣는다. 이십 분의 활기가, 하루를 다시 열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