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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 한 송이 ]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싶다
[ 네 잠의 눈썹 ]
네 얼굴 아릿하네, 미안하다
네 얼굴의 눈썹은 밀굴과 썰물 무늬, 하릴없이 달은 몸자국을 안았구나 달눈썹에 얽힌 거미는 어스름한 잎맥을 그냥, 세월이라고 했다
어설픈 연인아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달, 이 어린 비, 이 어린 밤동안 어제의 흉터 같은 당신은 이불을 폈는지
어미별의 손은 너를 배웅했다 그 저녁, 울던 태양은 깊었네
그 마음에 맺힌 한 모금 속 한 사람의 꽃흉터에 비추어진 편지는 오래된 잠의 눈썹
시작 없어 끝 없는 다정한 사람아 네가 나에게는 울 일이었나 나는 물었다 아니, 라고 그대 눈썹은 떨렸다
네 눈썹의 사람아, 어릿하네, 미안하다
[ 목련 ]
뭐 해요? 없는 길 보고 있어요
그럼 눈이 많이 시리겠어요 예, 눈이 시려설랑 없는 세계가 보일 지경이에요
없는 세계는 없고 그 뒤안에는 나비들이 장만한 한 보따리 날개의 안개만 남았네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길도 나비 날개의 안개 속으로 그 보따리 속으로 사라져버렸네요
한데 낮달의 말은 마음에 걸려 있어요 흰 손 위로 고여든 분홍의 고요 같아요
하냥 당신이 지면서 보낸 편지를 읽고 있어요 짧네요 편지, 그래서 섭섭하네요
예, 하지만 아직 본 적 없는 눈동자 같아서 이 절정의 오후는 떨리면서 칼이 되어가네요
뭐 해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목련, 가네요
[ 설탕길 ]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으로 보내고 발자국을 깊이 묻으며 노인은 노상에서 울고 있다 발자국에 오목하게 고인 것은 여름을 먹어치우고 잠이 든 초록
가지 못하는 길은 사레가 들려 노인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내가 너를 밀어내었느냐, 아니면 네가 나를 집어삼켰느냐
저렇게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을 걷느냐
노인은 알 수 없는 나날들 속에서는 늙은 아내가 널려 있는 빨랫줄 위로 눈이 내린다고 했다
당신의 해골 위에 걸어둔 순금의 눈들이 휘날리는 나라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아서 오래된 신발을 벗으며 여름에 깃든 어둠은 오한에 떨며 운다
[ 나는 춤추는 중 ]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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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시 작품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고, 구입한 시집이다. 오랫동안 머나먼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시인은 늘 모국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부음이 전해질 때, 신문 한켠에서 독일에서 치러진 수목장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국의 지인들이 북한산의 한 사찰에서 시인의 49재를 치뤘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따져보니 시인은 나와 동갑이다. 여전히 먼저 떠난 친구들의 부음을 받으면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부음을 전해듣고, 더 각별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1987년에 등단하였고, 독일로 훌쩍 떠난 시인은 고고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시인은 이국땅에서 살면서,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탓던 것 같다. 시인은 부지런히 시를 써서 발표했고, 이 시집을 비롯한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아마도 시를 짓고 글을 쓰면서 그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시집의 첫머리에는 '농담 한 송이'라는 짤막한 작품이 실려 있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허수경의 '농담 한 송이' 전문)
아마도 작품 속의 '한 사람'은 시인 자신을 지칭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국땅에서 느꼈을 외로움과 '서러움'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와 '농담 한 송이'를 주고받고 싶은 심정을 그린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하지만 시인의 서러움은 쉽게 가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견디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토로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이 시를 지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병이 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 살고 싶다'고 했던 것이리라.
"오래 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허수경의 한국어가, 저 먼 곳에서 계속 태어나고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고 뜨거운 일이다."
평론가인 이광호는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라는 제목의 이 시집의 발문에서 시인을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금, 앞으로 그의 작품은 '저 먼 곳에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놀랍고 뜨거운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시인의 말'처럼 시인은 그저 '다음 역을 향하여'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시인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쓴 시들을 책으로 엮었지만, 시인의 작품들은 고스란히 독자들의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이제 시인은 '다음 역을 향하여'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아주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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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시인은 어느 별에 하차했을까.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것 같던 기차를 기다리며 역에 서 있던 시인은 결국 도착한 기차를 타고 역을 떠났다. 시인이 도착했을 곳은 이 세상에서 상상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어떤 짐작과 상상력도 오랜 시간을 관통한 애증의 기차보다 더 간절할 수 없다.
# 달이 뜬 당신의 눈 속을 걸어가고 싶을 때마다 검은 눈을 가진 올빼미들이 레몬을 물고 향이 거미줄처럼 엉킨 여름밤 속에서 사랑을 한다 당신 보고 싶다 라는 아주 짤막한 생애의 편지만을 자연에게 띄우고 싶던 여름이었다 -레몬 中
시인이 존재하던 시간과 공간은 후각을 자극하는 상큼한 레몬 향기가, 마음을 고백하고 실컷 울어버릴 시간도 모자른 여름 밤을 더욱 끈적하게 엉켜놓는다.
# 욕망하면 가질 수 있는 욕망을 익히는 가을은 이 세계에 존재한 적이 없었을 게요. 그런데도 그 기차만 생각하면 설레다가 아득해져서 울적했다오 미안하오. -호두 中
안고 싶거나 울고 싶은 꿈과 마음의 욕망은 감히 지도에 표현할 수 없어서 기차를 타도 찾아갈 수 없고, 계절 안에 존재하거나 머물 수도 없어서,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어서 아쉬움마저 아득하게 미안해진다.
# 무엇이었어요, 당신? 아마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 적 가장 마지막까지 반짝거릴 삶의 신호를 보다가 꺼져가는 걸 보다가 미소 짓다가 이건 무엇이었을까 나였을까 당신이었을까 아니면 꽃이었을까 고여드는 어둠과 갑자기 하나가 될 때 ... 생각해보니 우리 셋은 연인이라는 자연의 고아였던 거예요. 울지 못하는 눈동자에 갇힌 눈물이었던 거예요. -그 그림 속에서 中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연스럽게 고아가 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슬프거나 그리운 눈동자 안에 갖히고 만다.
#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 -빙하기의 역 中
생을 시작하는 신생아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소감을 물어보지만, 다시 만나길 바라는 욕망은 정직한 답을 알려준다. "잘 가."
*** 당신이 타고 간 기차는 지금 어디에 도착했나요? 도착한 곳은 자두가 익어가는 끈적한 여름인가요, 낙엽으로 도배된 가을인가요, 아니면 모든 게 빙하처럼 꽁꽁 얼어붙는 겨울인가요. 태양이 작열하는 한 낮인가요, 은은한 달빛이 내려오는 캄캄한 밤인가요. 당신이 남긴 목소리가 차곡차곡 담긴 행간들처럼 또 다른 기차역들엔, 무수한 사연과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마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새로운 기차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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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참 좋아하는 시인이었음에도 어느덧 시집을 손에서 놓게 되면서 멀어지게 됐네요. 그러다가 문득 읽고 싶어져서 바로 주문했어요. 허수경 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달까...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분이라서 더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네요. 그동안 못 읽은 시인의 책을 한 권씩 차근차근 사면서 읽어보려고요. 예전처럼 허수경 시인의 시가 제 생각을 물들이네요. 고맙고 또 고맙게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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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먼 이국땅 독일에서 시인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질 어떤 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가고 누구도 가야하는 역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제목 때문에 이 시집을 샀다고 해야 가장 정답일 것 같다. ‘역’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라서 그랬을까 그냥 손이 갔다. 나는 역에서 누구를 애타게 보내본 적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시집을 읽었다. 현대시가 그렇듯 역시나 어려웠지만, 그래도 가끔씩 만나는 알 듯 모를 듯한 어떤 시어들이 나를 멈추게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시집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너무 좋아서 한참이나 읽고 또 읽었다.
시인은 이 세상에 없지만 시인의 시는 영원히 남아 우리들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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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전집을 사고 싶어하는 작가님 시인 가슴에 남는 시를 쓰시는듯 어떻게 저런 표현을 싶을 만큼 좋은 시를 쓰시니까 보고 싶다면 도전해보세요 오늘 하루도 감동이요 나를 향해 위로해주는 느낌 좋아요 하루하루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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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언어는 언제나 상실과 방랑의 냄새가 난다.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이 시어마다 뚝뚝 묻어났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서글픈 고독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깊은 위로를 받았다. 마음이 서성이는 밤마다 아껴서 읽고 싶은 시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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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작가님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리뷰입니다. 평소 허수경 시인의 레몬이라는 시를 좋아해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에서 수록된 레몬뿐만 아니라 자두, 포도 등과 같은 과일 이름이 붙은 시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
| 책에 수록된 「내 손을 잡아줄래요?」란 시를 정말 좋아해서 꼭 소장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시 1개로 시집을 구매하게 되고, 구매한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2개만 더 알게 돼도 구매를 후회하지 않는 편인데요. 이 책은 수록된 시 전반이 읽기에 참 좋았습니다. 160쪽가량의 분량으로 시집치고 꽤 도톰한 편이라 구매에도 만족스럽습니다. |
| 시집의 제목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시인의 말」에 있는 글을 읽어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라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먼 여행길에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힘들 때 꺼내 읽어보고 싶은 시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