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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시인의 단정한 글을 좋아한다. 그가 선택한 단어는 조심스러움이 가득하고 등장인물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있다. 그 상황을 실제 현실에 대입해보면 구질구질할 것 같은데 그런 건 싹둑 잘려진 채 측은한 마음으로만 전달된다. 그의 시가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 자체가 위로의 힘을 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새 시집이 나왔다. 시집이 나오자 마자 블친님의 소개글을 읽고 바로 샀었는데 자칭 팬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제 겨우 읽었다. 고로 나는 이제 그의 팬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 '오늘 아침 단어'라는 그의 첫 시집을 아직까지 애드온에 담아놓고 있는 나인데 말이다)
그의 두번 째 시집은 첫번 째 시집과 많이 다르다. 여전히 그의 말들은 단정하고 온화하지만 나의 마음을 담박에 위로해줬던, 마음을 흔들었던 그런 시들은 아니다. 그는 변화했고 진화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변화가 낯설었나 보다. 봄에 내놓았던 시집을 가을에 읽으니 이런 마음이 생긴 건지 봄에 다시 꺼내 읽어보면 나의 마음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인 지, 어찌되었든 그가 여전하고 익숙한 것은 우리(당신)에게 끊임 없이 말을 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집은 첫 시로 시 전체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첫 시가 시집의 제목이 되었다.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의 우리는 누구이고, 신은 누구일까? 우리는 너와 나일 것이고, 너와 나에게, 나와 너에게 신이 될만한 존재는 서로의 당신이다. 어떤 인칭이 나타나기 직전 어둠이 있었고 모래알처럼 무너지면서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타난 순서에 개의치 않고 그는 여전히 헐벗고 약한 것에 끌리는 여린 사람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다가오는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다.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 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어둠을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인칭은 눈빛부터 얼굴 손 무릎의 순서로 작은 것이 무너져 내리 는 소리를 내며 드러나 내 앞에 서는 것인데 나는 순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사실은 제멋대로 손 발 무릎과 같이 헐벗은 것들을 먼저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칭이 성별과 이름을 갖게 될 때에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얼마 나 밀려났는 지를 계산해보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 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 을 듣는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았던 시는 '시를 읽는 시간'이다. 시를 읽는 시간은 누군가의 등불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시인은 부싯돌을 당기지 않고도 저절로 불을 켜는 사람이다.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불을 켜는 마법을 부리는 그들은 세상에 지친, 야윈 뺨을 가진, 나와 너를, 우리를 한 없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간판 없는 가게를 사라지기 전에 찾아야 한다. 지금이 미래가 되는 마법을 위해 이제 나를 위한 불은 끄고 그 불씨를 남겨야 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 시를 읽는 시간 -
불을 켜주고 갔습니다 미간을 찌푸려 가늘게 눈을 뜨 고 방금,
읽어가던 것을 시옷의 형태로 내려놓습니다 기다립니 다 그만 내려오기를 내려오고 내려오다 더 갈 데가 없을 때까지
바람이 불어옵니다 간판이 흔들리지만 가게는 없고 야 윈 손님이 찾아옵니다 이 밤은 어느 때의 것입니까 왜 아 무런 말도 없이 불을 켜주고 간 것입니까
더 갈 곳 없어 지금을 빌리는 중이니, 이 불빛은 꺼두 어도 좋겠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없어지고 있습니다 견고 한 물질 위에 마른손을 올려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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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빈 집 얼룩 질문 봄 이 좋았다
* 나는 소년도 아니었다 나는 나를 생각했고 여름의 시작을 떠올렸고 그리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깊은 자국을 남기고 나는 중심으로부터 아주 약간 더 멀어져서
* 더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잠든 이의 숨을 확인하듯 비가 내렸으면 조겠다
* 울음을 입에 물고 걸음을 떼지 못한다 이제 더 갈 곳이 없으므로 당신이 닮은 삶을 토닥이다 잠에 드는 동안 나는 침대의 한끝을 매만지며 뒤척여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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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느낌은 없지만, 부분적으로 화악 와 닿는 구절들이 눈에 띄는 시들이 있다. 그런 시들은 매번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은' 이라는 소망을 가져 본다. 그 소망에는 시가 좋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그 시가 내 마음을 강렬하게 울릴 거라는 한껏 부분 들뜬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은 그렇게 잠시 머물고 간 시들이었다.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듣는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I) 일부
(당)신이었던 신이 잠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인지 신인지. 신은 만물을 창조하였고 우리가 순리대로 살아가길 기대하지만 인간은 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과 신은 조화롭지 않다. "당신과 나"가 조화롭지 않은 것처럼.
"시간은 가지 않았다 / 시간은 오지 않았다 // 걸려 있는 것은 / 나의 왼눈 같기도 해서 / 꽃잎은 여전히 떨어질 거였고 / 우리는 /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 한때는 돋은 듯 작고 / 떨어지듯 작다직다 / 반복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 이를 테면 반복되는 노래 같은 것" - <사월> 일부
유희경의 시집은 신에게 속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만 같다. 시간에 순응하고 그 시간을 덤덤히 바라보면서, 신에 속한 당신과 나의 사이도 덤덤하게 바라보는 순간,
"누군가 노크를 했어 너의 친척들이었어 문을 열어주었고, 그들은 조항을 가지고 왔고, 하나씩 그것을 따져 읽어 보았지 거기에 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마음 놓고 사인을 해주었고 너의 친척들은 박수를 쳤어 모두 만족했던 것 같아" - <조항> 일부
당신과 나 사이 뿐 아니라, 비로소 우리가 된 사람들까지도 아무것도 없는 빈 병에 담아 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든다.
"파기와 쌓기의 중간쯤 손등이 침목(枕木)처럼 놓여 있구나 나는 손으로 그것을 덮었고 따뜻했으니 당신이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 ...중략... //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영원히, 영원이라는 것이 있다는 바로 그곳이다 가라앉고 있다 나도 당신도 아니고 우리의 중간쯤에서 어딘가로"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II) 일부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당신과 일치가 되므로 비로소 우리가 되고 우리는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그 무언가로 인해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라진다. 사라짐으로서 이루어지는 무언가. 비로소 영원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우리의 중간쯤에서 어딘가로 영원히.
"못을 이루고 이루다 말고 / 녹은 제 속을 비단잉어 떼처럼 / 빨갛게 하얗게 노랗게 / 빙글빙글 빙글빙글 / 맴돌고 있었다 / 미끄러지는 것과 같이 // 나는 자리를 옮기며 / 남은 일 년은 어쩌나 / 걱정을 하기로 하였다 / 맨발 둘을 연못에 담가놓는 사람처럼 /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 <작은 일들> 일부
어딘가에서 남은 일 년. 걱정은 하지만, 작은 걱정들이다. 그 걱정은 어쩌면 당신에 대한 걱정. 당신이 나와 일치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걱정.
"당신이 사라졌다 / 나는 더듬는다 / 붉고 흐리고 빠르다 / 나는 놓쳐버렸다 / 빈 몸은 그렇다 / 빈 감각은 틀림이 없고 / 한낮의 아침은 지난하다" -<붉고 흐리고 빠른> 일부
나와 일치했던 당신이 사라짐으로서 느끼는 몸은 붉고 흐리고 빠르다. 그 몸은 다시 어딘가에 있다.
"1.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 ...중략...// 3. 나타나는 별들에 흑막을 매달고, / 우리 꿈속으로 스며든 밤의 동요(動搖) / 가야지 이제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 / 눈 속에 밝혀둔 불빛들 춤추고, / 은제식기들 노래 부르는 동안은 / 어떤 청도 거절할 수 없는 법 / 허무와 욕망을 추종하는 추적 / 파랗게 물든 유령의 뒤를 쫓아서 /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발바닥 다 지워지도록 따라가도 좋겠네 / 나타나라 그리고 사라져버려라 / 지팡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칠 동안 / 물줄기가 솟아올라 공중에 흩날리는 동안 / 아직은 아무도 눈뜰 수 없는"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들> 일부
당신이 사라졌고 나의 몸도 어딘가로 흡수된다. 그러므로 인해 이제 몸은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우리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가고 있고 그 어딘가는 아무도 눈뜰 수 없어서 알 수 없는 곳. 알 수 없는 세계로 우리는 가고 있다.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벌목은 소문만 무성하였다 그래도 숲은 떨었고, 염소들은 말뚝을 자랑스레 끌고 다녔다 나는 너의 이름을 쓰지 못했다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잊었기 때문이다 별은 아직도 뜨지 않았다" - <벌목> 일부
우리는 사라졌고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당신도 사라졌다. 소문만 무성한 어느 알 수 없는 세계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유희경의 시집은 알 수 없는 세계로 간다. 알 수 없어서 덤덤한 세계. 모르니까 오히려 담대히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를 어딘가로 보낼 수 있으리라. 어딘가는 어려운 세계이지만, 꼭 가야만 하는 세계. 그런 세계에, 잠시 신이었던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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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문드문 한문으로 표현 된 문장이 글의 흐름을 방해했다. 분위기가 무너지고 호흡이 끊어졌다. 꼭 써야했을까 되묻고 싶다. * 죽어버린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그는 이제 이 자리에 없다 이 자리에 없는 그도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듣지 못했고 어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나는 대답했다 꿈은 말하지도 명령하지도 않아 불안처럼 남는 것만큼만 믿을 뿐이지 우리의 운은 바닥나버렸고 각자 옷을 챙겨 들었다 아직은 춥기 때문이다 * 나는 창문을 닫았다 여름이 아니었다 나는 소년도 아니었다 나는 나를 생각했고 여름의 시작을 떠올렸고 그리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깊은 자국을 남기고 나는 중심으로부터 아주 약간 더 떨어져서 * 잠든 사이 * 어떤 작정이 없다면 사람은 금방 슬퍼지고 만다 고작 덥네 더워 여름이네 여름 하면서 그렇게 부끄러운 일만 잔뜩 떠올리면서 *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잠에서 깨었을 떄 사라진 당신은 당신이 아닌 것들만 남아 당신이 되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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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인의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니 유희경 시인의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다는 생각과 아름답고 다정한 문장을 좀 더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에세이까지 읽어볼 예정입니다 모든 시를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웟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