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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기로 마음을 먹었더라? 표지 때문이었나? 아님, 부커상에 홀려서? 작가의 불면이 전염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뭐 나도 원래 적당히 불면에 시달리기도 하긴 했었지만 더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긴 하네.
서맨사 하비, 2009년 소설 <황야>를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2024년 <궤도>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국 배스스파대학교에서 창의적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 세대의 버지니아 울프"로 불릴 만큼 문장의 깊이를 인정받아왔다.
작가와 친구의 대화를 따라가다가 순간 울컥했고, 먹먹했고 이내 멍해졌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날마다 죽어 가고 있는 작가와 날마다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대화에 이어 베개에 머리를 눕힌 채 십자가 너머 머리를 젖힌 예수의 형상이 그려지는 작가의 불면의 순간은 이렇게 문학이 되는구나 싶어 경이로움이 덮쳤다. 그저 질병일 뿐인 내 불면이 측은해졌다.
세심함이랄까 친절함이랄까, 뭐 결은 다르지만 아버지가 누리끼한 삼베에 몸이 둘둘 말려져 있던 모습을 보면서 꺽꺽 내지는 끅끅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흔들바위를 가슴에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왠지 엄마보다는 더 크게 울면 안 될 것 같아 참아내느라 더 그랬을지도. 하여튼 그때 그 기분이 작가의 문장으로 정리된 느낌이었다.
사촌이 죽고 작가는 그런 사촌에게 몸을 지탱하던 박테리아 군단이 몸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오토리시스(자가 용해)를 거쳐 드디어 몸이 부패돼서 흘러내리는 흑화 부패에 대한 과정을 온기를 담아 편지를 쓴다.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 세심함이 한편으로는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 기분이 별로가 됐다.
작가가 마치 미수면 상태에서 쏟아내는 말을 수면 부족인 채로 듣고 있는 기분이 들다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불면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나란히 앉아 같이 뒤적거리는 기분도 느껴진다. 여하튼 미수면이든 수면 부족이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51쪽
이 책은 단순한 불면증 체험 기록이 아니다. 불면 에세이 안에 단편 소설이 뒤섞인 독특한 책이다. 불면에 시달리며 유년을 소환하기도, 의사 앞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꼼지락대는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면서 불면은 단지 증상으로서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기억과 죽음 나아가 글쓰기의 동력으로 삶을 은유적으로 통찰한다. 살짝 다크 유머와 예리한 자기 성찰이 교차하며, 결국 불면을 넘어 삶에 대한 통찰로 귀결된다.
나도 모르게 문장을 연속으로 읽었다. 도처에 널린 죽음과 그 유혹을 견뎌내느라 애쓰는 것과 달리 삶은 과연 달콤하게 살라고, 살아내라고 욕망을 서비스로 던져주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정말 문득, 그랬다.
그럼에도 T. S. 앨리엇의 <사중주>를 수수께끼 같았다던 작가의 기분처럼 나는 작가의 불면으로 시작된 그의 삶에 대한 이 책이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읽고 있지만 멍하게.
침대맡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 어쨌거나 혹시나 나타날지 모를 불면에 대한 메커니즘은 명쾌해서 더 마음이 얼마간 짠해지기도 한다.
124쪽 163쪽
읽는 내내 뭔가 불편했다. 책장은 넘어가는데 몰입은 되지 않는. 그래서 불면의 밤이 더 풀기 어려운 복잡한 퍼즐이 될 것처럼 뒤틀리는 느낌. 유도하지 않으면 빠지지 않는 내 수면처럼 불면을 겪지 않는 이들에게는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무튼 <궤도>를 읽지 않은 채로는 이 책은 다소 아쉽다. 게다가 불면을 빠져나온 것도 아닌 치유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불면은 수면이 아니라 삶 전체를 조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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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서맨사 하비의 이 책은 그의 단 하나뿐인 에세이라 한다. 그는 2024년 “완전히 독창적인 보석 같은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인《궤도》로 부커상을 받았다. 빨간색 표지가 시선을 끌었고 다양한 매체의 호평이 대단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에세이는 한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해서 본격적인 작품을 만나기 전에 읽으면 좋은 것 같다. 보통의 에세이와 달리 독특하다. 우선 글마다 제목이 없고 ‘불면증’이 주된 테마인데 상실과 기억,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이어진다.
불면증이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거나 너무 피곤해서 잠에 빠져들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잠은 안 오고 더 초롱초롱해져서 괴롭고 그대로 새벽을 맞이하던 기억. 작가는 사촌의 죽음을 목격한 이래 불면증이 생긴 것 같다.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촌이지만 주검을 목도한 이래 편지를 쓰며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마치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땅속에 묻히게 되고 한 줌 흙으로 남게 되는 과정을 세세한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인생이란 게 참 경이롭지 않니. 내내 그 안에 난폭한 죽음으로 품고 있다는 게. 그 박테리아는 네가 죽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줄곧 몸속에 있으면서 언제나 너를 먹고 싶어 했어. 또 세포들은 네 부패를 도울 효소를 늘 자기 안에 갖고 있었어. 생존하려는 네 열정이 그 모든 걸 막은 거야. 네 안에서 그렇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니? 한 번이라도 눈치챈 적 있어?’(p29~30)
이미 죽기 전 살아 숨 쉬고 있을 때도 우리는 죽음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생존하려는 열정이 더 컸기에 그 박테리아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것. 죽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마흔 시간 쉰 시간을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는 작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럴 때는 과거의 타래를 풀어헤치면서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찾아내느라 밤을 지새운다고 했다. 이렇게 잠 못 드는 나날이 늘다 보면 동물로서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느끼는 공포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잠 못 드는 밤을 맞이하는 것도 작가에게는 어떤 영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문장을 생각하며 다음에 쓸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며 인간의 언어를 사유하고 또 사유한다. 우리는 각각 분리된 절이 아니라 여러 절이 버무려진 문장을 말하곤 하는데 촘스키는 이것을 ‘회귀(recursion)’의 사례라고 했으며 인간 언어의 특징으로 본다고 한다. 이 회귀는 생각 속에 생각을 놓을 줄 알고 즉각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무한히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이동할 줄 아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말해준단다. 그런데 한 연구 사례를 들며 브라질 아마존 피라항족은 이런 회귀적인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추상을 모르고 경험한 것만 말하고 피라항어에는 미래나 과거 시제 같은 건 없다고 한다. 피라항족 언어와 문화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증거에 기반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초월적인 존재를 믿지 않고 집단 기억과 이야기와 신화를 대대손손 전승하지 않는다나. 서양인 중 유일하게 피라항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한 대니얼 에버렛(Daniel Everett)은 그들을 보고 “피라항족은 새로운 것을 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거듭 단정 짓기에 이른다. 또 그들의 존재 방식을 “지금 여기 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머릿속은 늘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간다. 글쓰기에도 당연히 반영된다. 그런 습관에 오래도록 젖어있던 나로서는 피라항족의 존재 방식이 정말 신기하게 다가왔다. 미니멀의 삶을 제대로 실천하는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의 민족이나 인간이라면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를 전승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데 집중하고 언어생활에도 그대로 일치되는 부족도 있다니 참 흥미로웠다. 한동안 잠이 안 와 고생하던 날이 있었다. 만약 그런 날이 또 찾아온다면 하얀 여백에 문장을 써 보거나 모르는 작가의 작품 속 행간을 쫓으며 희열을 느껴보리라 생각했다.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와 상담하고 알려준 방법을 실천하고 고민했던 과정은 작가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작가 자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글쓰기였다고 토로한다.
‘글쓰기는 꿈꾸기와 같다. 불과 2년 전쯤 깨달은 사실이다. 글쓰기는 자각몽이다. 의식에 한 발을 담근 무의식이 꿈의 자의성을 딱 적당한 만큼만 활용한다. 글쓰기가 무의식에 의존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내가 볼 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글쓰기가 곧 무의식이며, 그것이 의존하는 것이 의식의 영역이다.’(p178)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 지난해에 글쓰기는 잠자기 다음으로 최고의 일이었다. 가끔은 자는 것보다 좋았다. 글을 쓸 때 나는 제정신이며 신경이 안정된다. 나는 제정신, 제정신이다. 행복해진다. 글을 쓸 때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쓴 글이 형편없더라도 그렇다.’(p180)
어쨌든 잠은 중요하다. 죄수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도 잠을 안 재우는 일이라고 하지 않나.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문장을 끌어내어 잠을 이야기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근심이 머무는 곳에 잠은 절대 눕지 않는다”,《멕베스》에는 “순결한 잠, 근심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잠”이라고 했으며 잠은 “상처받은 마음에 바르는 약”이라고 했단다. 어쩌면 대문호답게 잠의 의미를 이렇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 놓았을까 싶다. ‘잠, 잠, 돈과 같이 극히 모자라야 생각하게 되는 것. 그때부터는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한다. 부족해질수록 더 많이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프리즘이 되고, 그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p225)
잠과 돈이 이렇게 딱 떨어지는 공통점이 있었다니 미처 몰랐다. 그 통찰력이 감탄할만하다. 이 에세이를 읽고 불면증을 앓으며 힘들어한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내게도 불면의 밤이 한번 찾아와 봐라,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작가가 불면의 밤에 자신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과 사유들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형태없는불안 #서맨사하비 #서해문집 #불면의밤 #궤도 #부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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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의 호기심과 강렬하게 다가오는 표지에 끌려 읽게된 책인데 잠들지 못하는 불안 속에 섬세하게 써내려가는 작가의 이야기가 아름다워지는 순간. 처음엔 왠지모를 불안감에 빠졌다가 순간 빠져들게된다. 순식간에 책을 다 읽게되는 마법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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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의 정확한 형태도, 탈출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겠죠. 서맨사 하비의 이 책 또한 해답을 알려주는 해답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 안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고 불안에 다가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진솔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꼭 불안감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만을 타겟으로 한 책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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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맨사 하비가 오랫동안 불면증을 겪었다고 한다. 나도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베개에 라벤더 향을 뿌리라고. 나도 늘 하고있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긍정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나도 늘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답은 병윈에서 처방해준 약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불면증에 대한 답을 찾을까 했는데 혼란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