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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권에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의 도움으로 독재에서 해방되어 민주정치를 하게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아테네가 페이시스트라토스 일족의 독재로 신음하고 있을 때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 왕이 독재자를 내쫓아주었다. 그러나 이후 아테네가 너무 강성해지자 스파르타는 이를 후회하며 아테네에 다시 독재정권이 들어서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다른 도시국가들이 반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이...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증했다. 왜냐하면 아테네는 독재하에 있을 때는 전력면에서 어떤 나라도 능가하지 못했지만, 일단 독재자로부터 해방되고부터는 다른 모든 나라를 누르고 최강국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49p) 제 6권에는 드디어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마라톤 전투가 펼쳐진다. 예전부터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눈에 가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테네에서 실각한 페이시스트라토스 일족이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 왕에게 아테네를 거듭 비방하고 마침 아테네가 아이기나와 전쟁을 시작하려는 틈을 타, 에레트리아와 아테네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에레트리아를 손쉽게 정복한뒤, 아테네와 마라톤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전사자가 페르시아 6400명, 아테네 192명으로 아테네가 대승을 거두었다. 이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러 아테네까지 달려갔던 필리피데스가 아테네에 도착하자 절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라톤 경기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전승과 달리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아테네가 페르시아 군을 맞아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장거리 주자인 필리피데스를 파견했으나 스파르타는 만월이 되어야 출전한다는 관습때문에 전투가 다 끝난 후에야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다. 제 7권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전쟁준비과정부터 테르모필라이 전투까지 기록하고 있다. 페르시아군은 아시아에서 원정온 1207척의 배와 3000척의 오십노선에 해군 50만명, 보병 170만명, 기병 8만명, 낙타부대와 전차 부대 2만, 유럽에서 징용된 사람들까지 총병력 264만에 달했다. 오히려 군대의 지나친 규모가 재앙으로 작용한 면도 있어서 "폭풍이 불 경우 우리의 함대를 수용하여 안전하게 지켜줄 만큼 큰 항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진군하시면 하실수록...나날이 증대해가는 거리때문에 반드시 식량난에 봉착하게 될거라는" (190-191p) 아르타바노스의 충언이 맞아떨어졌다. 배들이 해안에 있을때 일명 헬레스폰토스 바람이라고 불리는 북풍의 내습을 받아 큰 타격을 입었으니 말이다.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맞이한 스파르타 정예부대 300명과 레오니다스 왕의 최후는 영화 <300>으로 멋지게 그려진 바 있다. 스파르타에 내려진 델포이의 신탁은 다음과 같았기에 레오니다드는 자신이 목숨을 바쳐 스파르타를 페르시아로부터 구원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오 광활한 스파르타의 주민들아, 너희의 운명을 들으라. 너희의 이름높고 커다란 도시가 페르세우스의 후예들(페르시아)에 의해 약탈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왕의 죽음을 라케다이몬의 전 국토가 애도하게 되리라. 공격해오고 있는 자는 제우스의 힘을 지니고 있나니 황소의 힘, 사자의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맞서 저지할 수 없으리라. 적이 그 둘 중 어느 하나를 이룰 때까지는 그 세력을 막을 수 없으리라."(281-282p) 제8권은 아르테미시온과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고 있다. 육상군은 스파르타가 지휘하고 해상부대는 가장 많은 배를 지원한 아테네가 맡아야할테지만 동맹국들이 아테네의 지휘를 받기보다는 동맹을 해체하겠다고 하자 아테네는 그리스의 존립을 위해 지휘권을 양보했다. 사령관은 스파르타 출신의 에우리클레이데스의 아들 에우리아바데스가 맡았다. 아르테미시온 전투에서 페르시아 대군과 박빙으로 겨루었으나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모두 자기나라로 돌아가려했다. 다행히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으로 살라미스로 모이게 됐는데, 전체 전함 378척 중 반에 해당하는 180척을 아테네가 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에 정보를 흘려 살라미스를 포위하게 만들어 그리스군의 결사항전을 이끌어냈으니 지상전의 영웅이 스파르타의 레오니다드라면 해전의 영웅은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라고 할 수 있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는 문명을 보전할 수 있었고 크세르크세스는 도망치듯이 후퇴했다. 제 9권은 크세르크세스가 퇴각한 후 3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그리스를 재공략하기로 한 마르도니우스 군이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패하고, 다른 페르시아 함대도 미칼레 전투에서 패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헤로도토스가 더 계획한 내용이 있었으나 미처 끝맺지못한 채 중단된 듯 어째 결말이 미적지근하다. 다만 헤로도토스가 전쟁보다는 평화를 염원했으나 자유와 평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전쟁을 불사해야하며 굴종상태의 부유함보다는 자유로운 고난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부록으로는 뜬금없이 그리스의 도량형이 나오는데 그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지도와 연표, 여러 전쟁터에서 각 군대의 배치와 이동에 대한 그림설명이 있었다면 이해가 훨씬 빨랐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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