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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 아주 오래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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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을 건너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과나무들이 펼쳐져 있다고.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했다.] 위의 글은 부석사 중의 일부분이다.   마지막 귀절이 와닿아서 적어봤다. 뭔가를 보면 누군가를 만나면 한 계절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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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을 건너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과나무들이 펼쳐져 있다고.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했다.]

위의 글은 부석사 중의 일부분이다.

 

마지막 귀절이 와닿아서 적어봤다.

뭔가를 보면 누군가를 만나면

한 계절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기는 그 무언가가 나에게도 있는가..?

한참을 생각해 봤다.

한 계절까진 바라지 않아도

단 일주일이라도 버틸 힘이 생기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

아주 오래 생각해 봤다.

YES마니아 : 로얄 a****1 2002.04.1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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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내용보기
지난 여름부터 사무실 옆 거리공원에서 한 손으로 어머니를 부축해 보행연습을 도와드리고 또 한 손으로 책을 든 채로 천천히 읽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늦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습관은 저를 많이 변화시켜놓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좋아졌습니다. 도심에서만 자랐기에 나무라 하면 무의미하게 늘어서 있는 가로수만을 연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매일 점심때 한 시간 가량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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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부터 사무실 옆 거리공원에서 한 손으로 어머니를 부축해 보행연습을 도와드리고 또 한 손으로 책을 든 채로 천천히 읽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늦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습관은 저를 많이 변화시켜놓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좋아졌습니다. 도심에서만 자랐기에 나무라 하면 무의미하게 늘어서 있는 가로수만을 연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매일 점심때 한 시간 가량 공원 둘레길 나무 숲을 거닐다보니 이제는 나무가 그냥 편하고 좋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무나 숲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찬찬히 한 문장 한 문장씩 음미하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감흥이 새록새록 솟았습니다. 그간 어머니 간병을 하면서 인생을 보는 눈이 깊어진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나무, 산책, 천천히 읽기, 어머니 등이 상호작용을 해서 없는 줄만 알았던 감성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입니다.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윤대녕의 「천지간」, 신경숙의 「부석사」,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을 차례로 읽었습니다. 옛날에 단편소설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 중심으로 건성으로 읽었고, 이후 서툰 장사를 하느라 소설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이번에 수상작을 중심으로 천천히 읽다보니 단편소설의 묘미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네편의 수상작은 모두 소재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혼이든 연애든 남녀관계의 실패에 따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직장동료인 유부남과 격정적인 사랑을 하다 파경에 접어든 여자가 제 몸에서 천사를 떠올려내며 안간힘을 씁니다. 「천지간」은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남자가 떠나가자 자살을 결심한 여자가 재생을 도모합니다. 「부석사」는 결혼상대로 알았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큰 상처를 받은 여성이 또 다른 남성과의 교제를 통해 조심스럽게 재기하려고 합니다. 「아내의 상자」에서 내성적인 아내가 평범한 남편의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시도하다가 정신병동으로 옮겨지고 맙니다.

여기서의 남녀관계의 실패란 표면상 그렇다는 것이고 소설에서 심층적으로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불화를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또는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왜 인간은 남과 더불어 살기 어려운 것입니까?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나 남의 간섭받지 않고 자기 살고 싶은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개인과 개인 간에 겹쳐지면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머니 손을 잡고 숲 구경을 하며 천천히 보행연습을 하면 흥을 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리서 길 잃은 불쌍한 양을 발견한 듯이 다가와서 전도하려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왜 공원에까지 와서 마음의 평화를 깨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구원을 받고 싶다면 그 시간에 자기 부모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가 돼야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저 또한 어머니를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무료하게 공원벤치에 앉아계신 노인들에게는 소외감을 가중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기 좋다고 하는 일이 타인의 삶에 제약을 가하게 됩니다. 불특정다수인 간에도 그러한데 마음을 함께 하는 지인(知人) 간의 호불호의 차이는 배신이란 깊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것들 때문에 변심할 P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무엇을 근거로 P와 자신의 사이에 그런 속물적인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다른 사람이 모두 그래도 나와 너는 그렇지 않아,라고 믿고 싶었던 저변에는 돌연 다른 얼굴이 되는 생의 속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고 믿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허영을 벗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부석사」에서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 P가 조건이 좋은 딴 여자와 결혼하면서 큰 상처를 입은 주인공 여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입니다. 주변의 남녀관계가 파경에 접어든 소식을 접하게 되면 보통 자신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너 사이에는 그런 속물적인 것과 다른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자신에게도 일어나면서 그런 '허영'은 '돌연 다른 얼굴이 되는 생의 속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었듯이 싫어하는데도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지 좋아함을 영속시키려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진정성이란 관념의 허영을 앞세울 뿐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관념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각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저희 뒷곁은 이웃집 슬래브 옥상과 연결돼 있습니다. 그곳에 조그만 텃밭을 키우며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그다지 적적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손자손녀인듯한 어린 아이 소리가 늘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는 줄 알았으나 오해였습니다. 지난 추석 때 과일상자를 들고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내려갔더니 할머니는 어두운 방에 홀로 누워있었으며 아이 소리는 그 옆 셋방에서 들려나오고 있었습니다.

밤마다 옆집 아이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의 박탈감은 더 깊어졌을 것만 같았습니다. 반대로 아이 엄마는 아이를 진실로 사랑하며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으니까 훗날 자신이 옆방 할머니처럼 쓸쓸하게 여생을 보낼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마 할머니도 젊었을 때, 아이 엄마처럼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국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본질적으로 효라는 관념을 앞세우는 가족이라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감각을 우선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 드러난 남녀간의 불화를 이처럼 부모와 자녀간의 불화로 치환해보는 것은 제가 남녀문제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어머니 간병과정에서 깊은 비애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평소 종교, 이념, 봉사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노부모나 친지의 삶에는 관심이 미흡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오랫동안 고민해왔는데, 이번에 여러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인간은 관념보다 감각이 앞선다는 사실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점이었습니다. 효, 사랑, 자비와 같은 것은 수천년전 문명화 이후에 등장한 관념일 뿐이고, 그 이전에 수백만년간 호모사피엔스의 조상은 좋아하고 싶은 대로 좋아하고 싫어하고 싶은 감각대로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인간관계의 불화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좁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해보기까지 하는 요즘입니다.



d******e 2011.10.2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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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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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의해 빈털터리에다 갈 곳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내와 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일을 잃은 후 불면증에 시달린다. 살아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날 산 속의 동굴에서 편안한 잠을 취하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를 피해 다락방 뒤주에서 편안히 잠든 기억이 있었던 그는 우연히 목수학교를 통해 배운 목재기술로 만든 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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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의해 빈털터리에다 갈 곳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내와 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일을 잃은 후 불면증에 시달린다. 살아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날 산 속의 동굴에서 편안한 잠을 취하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를 피해 다락방 뒤주에서 편안히 잠든 기억이 있었던 그는 우연히 목수학교를 통해 배운 목재기술로 만든 널 안에서 다시 아주 편안하게 잠을 청하게 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히려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잘 모르겠지만... 태아적... 모체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안정감이지 않나 싶다.. 모진 세파를 견디다 힘들어진 주인공... 어머니의 배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태어나기 이전으로....

[인상깊은구절]
몰입하는 자의 세계에서는 부분이 전부였다.
f******8 2003.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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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원숙해진 신경숙, 그녀의 소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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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님의 소설을 대부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가장 큰 기쁨을 느낀사람들중 하나였다. 사실 그녀의 소설을 읽고있으면 처음에는 난해하고 장황한듯 하나 끝으로 갈수록 내용의 이해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더욱 강했다. 사랑에 실패한 두 남녀가 서로 지도만을 보고 부석사를 찾으러 가나 결국은 그곳에 다다르는데 실패한다.
"한층 더 원숙해진 신경숙, 그녀의 소설세계..." 내용보기
신경숙님의 소설을 대부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가장 큰 기쁨을 느낀사람들중 하나였다. 사실 그녀의 소설을 읽고있으면 처음에는 난해하고 장황한듯 하나 끝으로 갈수록 내용의 이해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더욱 강했다. 사랑에 실패한 두 남녀가 서로 지도만을 보고 부석사를 찾으러 가나 결국은 그곳에 다다르는데 실패한다. 이 소설의 완성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은 도착하지 못한것... 만약 그들이 부석사에 도착했다면 서로에게 순간의 지나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존재이었을 뿐일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그녀만의 아름다운 문체와 낯선문체들의 조함된 문장들이 글을 읽는 재미와 의문을 더욱더 강력하게 했다. 딸기밭이외에 보게된 그녀의 원숙함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면에서 눈이 왔다는 것이다. 엔딩장면에서 눈, 비등은 어둠을 상징하고 즉, 앞날이 밝지 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설정까지도 그들의 비극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비극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를 그녀는 잠깐 쳐다본다. 931번 지방도로, 10.4킬로미터, 935번 지방도로, 3.2킬로미터...... 어떻게 숫자들을 저렇게 외우고 있는지. '부석은 무량수전 뒤에 있다는군요. 정말로 돌이 떠있는지...... 실과 바늘이 드나들 만큼 두 개의 부석 사이가 떠있다는데.' '가서 확인해 보죠.' '실하고 바늘 가져왔어요?' 웃지도 않고 남자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사과꽃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데...... 중얼거리면서.
4****7 2001.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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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비켜 놀 수 없는 주옥같은 글들.
"어느 것 하나 비켜 놀 수 없는 주옥같은 글들." 내용보기
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오면 최면에 걸린 듯 얼른 구해보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늘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소설가들은 우리네 인생의 단면을 그리도 잘 표현해 내는 것일까. 경탄스럽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여기, 2001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들도 어느 것 하나 멀리할 수 없이 좋은 글들이다. 이렇게 빼어난
"어느 것 하나 비켜 놀 수 없는 주옥같은 글들." 내용보기
해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오면 최면에 걸린 듯 얼른 구해보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늘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소설가들은 우리네 인생의 단면을 그리도 잘 표현해 내는 것일까. 경탄스럽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여기, 2001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글들도 어느 것 하나 멀리할 수 없이 좋은 글들이다. 이렇게 빼어난 글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심사위원들도 대단한 분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행복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역시 신경숙님의 섬세한 일상을 집어내는 부석사도 훌륭하지만, 새야 새야를 보면서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신들린 자만이 느껴내는 감성적인 글. 이건 사람이 쓴 글이 아니야 하며 몇 일을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니까. 정영문님의 고문하는 고문당하는 자도 감동적이었고,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도 강렬했다. 이승우님의 발견은 내게 큰 기쁨이었고, 신경숙님의 수상 소감 역시 아련한 아름다움이었다. 25회가 되어 온 세월만큼 소설들도 변해왔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세상이 변해왔으니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읽다보면 우리네 넘어 온 세월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제게 소설이란 여태 그런 것입니다. 언제나 저를 여기에 두고 저만치 가 버리는 그런 것. 딴엔 눈을 부릅뜨고 그 뒤를 쫓아가 보지만 가 보면 또 저만치 가 버린 뒤입니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면 흥분과 설렘으로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것이 나오려는가, 스스로 숨죽이며 긴장하지만 마쳐 놓고 보면 삶을 뒤쫓아갈 뿐인 언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 메워질 수 없는 거리를 감지하면서도 하필 작가로 살아가고 있으니 치유될 수 없는 이 괴리가 제 운명이라 여깁니다. 이러해서 고독과 죽음 앞에 선 존재 탐구, 살아 있는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 어긋난 개인과 사회, 등돌린 타자들 끼리의 새로운 관계망을 언어로 형성해 보려는 제 여정은 늘 과정에 놓여 있을 뿐으로 완성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얘기를 하든 궁극적으로 제가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꾸려지는 우리 생에 대한 가치였을 테니까요.
b*******l 2001.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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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는 돌, 신경숙의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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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벽두에 한국 최고의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신경숙 씨의 글을 만나 보았다. 신경숙의 소설은 아스라한 그리움과 함께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이러한 그녀의 서정은 너무도 개인적인 주변 잡기에 머물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소설이 일반 독자들의 정서에 깊이 스며드는 것은 독자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외로움을 적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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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벽두에 한국 최고의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신경숙 씨의 글을 만나 보았다. 신경숙의 소설은 아스라한 그리움과 함께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이러한 그녀의 서정은 너무도 개인적인 주변 잡기에 머물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소설이 일반 독자들의 정서에 깊이 스며드는 것은 독자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외로움을 적절히 끄집어 낸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익명성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생활과 맥락을 같이한다. 컴퓨터, 대중매체 등 통신의 발달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감을 부채질하고 이러한 단절은 온라인을 통해 익명의 나와 또 다른 익명의 그니와 자판을 두드리는 대화에 익숙하게 되었다. ‘나’와 ‘남자’, ‘개’로 지칭되는 일반명사, 그리고 ‘P’, ‘K’의 등장인물들은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그저 여자와 남자일 뿐이다. 이러한 익명의 이름들은 요즈음의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어 버렸다.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보다는 온라인 게시판에 쏟아지는 익명의 이름으로 올려진 언어들에 익숙해지고,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을 통해 익명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자신 또한 익명의 신분으로 대화를 즐기는 일에 익숙한 우리가 되어 버렸다. 또한, 놀이터엣 또래들과 뛰어노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익명의 사람들과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의 생활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면서 친구를 잃어가고 우리 주변의 모습들을 돌아보는 데 인색해진다. 결국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세상과 단절되어 간다. 주인공 ‘나’와 ‘남자’는 모두 사람에게 배신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늘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랑하는 사람 ‘P’에게, ‘남자’ 또한 군에 가 있던 동안 자신을 떠나버린 ‘K’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상처입은 짐승을 돌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소한 버릇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둘은 거의 닮은꼴이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 수도 바로 옆의 누군가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철저한 익명성을 지닌 그런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이라는 상처를 받은 여자와 남자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외로운 이들의 사랑은 상처입은 짐승인 개와 수리부엉이에게 향하게 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들은 일마르이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낯선 집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결국은 담을 넘는 용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1월 1일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부석사로 향하는 용기마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부석사를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내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결국 이들의 종착지 부석사는 여자와 남자의 무의식적인 희망 찾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의 바람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결국은 부석사를 찾지 못하고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낭떠러지에 도달하게 된다. ‘부석’이란 말 그대로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두 개의 큰 바위가 위아래가 맞닿지 않은 채 약간의 틈을 만들며 떠 있어서 ‘부석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떠 있는 두 개의 돌은 끝내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이다. 독립성을 가진 하나인 것이다. 하나이면서도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러한 환상적인 돌의 이미지, 긜고 그러한 부석사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신과 ‘남자’의 모습이 부석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너와 나의 단절’, 곧 ‘현대인의 단절’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 신경숙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여지를 남긴다. “그는 이 순간만은 반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혹시. 저 여자와 함께 나무 뿌리가 점령해 버린 옛집에 가 볼 수 있을는지….”
YES마니아 : 로얄 s*****2 2004.07.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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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싶다는 욕망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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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한 수상집. 수상집은 왠지 돈을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쉽게 사게 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신경숙의 작품과 함께 읽을꺼리가 상당히 풍부했다. 주로 아는 작가의 책만을 읽는 것이 나의 독서의 편식이었는데 수상집을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소설 전개방식의 신선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섬에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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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한 수상집. 수상집은 왠지 돈을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쉽게 사게 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신경숙의 작품과 함께 읽을꺼리가 상당히 풍부했다. 주로 아는 작가의 책만을 읽는 것이 나의 독서의 편식이었는데 수상집을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소설 전개방식의 신선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섬에 가기 싫다'를 통해서는 현대사회의 신윤리가 낳은 모순을 느낄 수 있었고, '모든 나무를 말을 한다'는 과거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의 부재를 말하고 있었다. '부석사'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신경숙의 작품을 혹자는 언어의 사치가 심하다고 평하는 이도 있지만 역시나 언어의 미학에 심취할 수 있었다. 익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깊지 않게, 하지만 넓게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인간내면의 공통적 특성을 남과여라는 평이한 주제로 이야기 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경이스러울 정도였다. 신경숙의 추천작을 통해서는 대화의 부재와 사회속에 경리당한 이들을 통해 그들만의 삶을 따뜻하게, 제3자의 눈처럼 희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그린다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과는 다른 제3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에 잊은 줄만 알았던 글쓰기와 삶을 읽는 일에 대한 욕망이 시작되었다.
c********4 2003.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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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 편이 다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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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행처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그러나 아주 가까운 최근의 몇 년간 이 책을 '사서' 보는것이 아까와졌고 보게 되더라도 기껏해야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것이 전부였다. 잠시 망설인 후에 구입을 결정했던것은 신경숙이라는 이름때문이었고(그에 관한 비판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다. 그의 글은 천편일률이라고 천편일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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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행처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그러나 아주 가까운 최근의 몇 년간 이 책을 '사서' 보는것이 아까와졌고 보게 되더라도 기껏해야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것이 전부였다. 잠시 망설인 후에 구입을 결정했던것은 신경숙이라는 이름때문이었고(그에 관한 비판은 언제나 천편일률적이다. 그의 글은 천편일률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비판당하고 있으니까) 구입을 후회하지 않았다. 우선 부석사도 부석사였지만 그 외의 작품들이 거의 전부 좋았기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래 살것이다' 부터 선뜩한 신선함의 '그림자' 다소 황당한 '그 섬에 가기 싫다'.....전편에 걸쳐서 책을 구입한것에 대한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최근 몇년간의 조금 지루했던 수상집들에 실망했던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구입할만 할것이다.
d****e 2001.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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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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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은 신경숙의 였다. 그녀의 소설은 무엇보다도 문장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빨리 읽히기 보다는 천천히 읽힌다. 차분히 단어 하나 하나를 읽어내려가면서 표현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정말 타고난 글솜씨를 가졌다. 는 신경숙 특유의 문체미학이 돋보인 소설가적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었다는 심사평에 충분히 동감한다. 이상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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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은 신경숙의 <부석사>였다. 그녀의 소설은 무엇보다도 문장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빨리 읽히기 보다는 천천히 읽힌다. 차분히 단어 하나 하나를 읽어내려가면서 표현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정말 타고난 글솜씨를 가졌다. <부석사>는 신경숙 특유의 문체미학이 돋보인 소설가적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었다는 심사평에 충분히 동감한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은 성공적인 문학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번 작품집도 두 가지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었다. <부석사>와 치열한 경합을벌였던 이승우의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역시 아주 훌륭한 작품으로 작가정신이 가야 할 길을 열어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효서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또한 같은 부류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윤성희의 <그림자들>을 흥미롭게 읽었고, 조용호의 <비파나무 그늘="" 아래="">도 인상적이었다. 최인석의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는 재미있었지만 중간중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식상한 소재가 나와 긴장감이 덜했다. 한창훈의 사랑을 소재로 한 얘기는 몇 번 읽은 바 있었지만, 이번의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은 또 다른 묘미와 감동을 주는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그는 여러가지 색깔로 사랑을 표현하는 재주를 가진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입구가 좁은 동굴을 발견했을 때 잠시 멈춰 섰다가 가쁜 숨을 가다듬고 이마의 땀을 닦을 다음 별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간 것도, 그러니까 세상의 바같에 대한 그 치명적인 숨은 꿈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그 동굴을 찾아 거기까지 오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이 자연스러웠다. 그야 물론 그 감정, 이를테면 마음속의 숨은 꿈이 이입된 것이었겠지만, 안에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s*******8 2001.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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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부석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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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을 만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90년대 초라고 하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그런가보다 라고 말할뿐.  그녀의 화법과  한숨을 길게 내쉬듯 소곤소곤 말하는 주인공들을 얼마나 읽고 동경하며 같은 호흡으로 몇일을 살았던적도 있는데 그만큼 나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몇배 확장시켜준 소설가이다. 그 10년동안 그녀의 장점도 보았고 그녀의 한계도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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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을 만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90년대 초라고 하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그런가보다 라고 말할뿐.  그녀의 화법과  한숨을 길게 내쉬듯 소곤소곤 말하는 주인공들을 얼마나 읽고 동경하며 같은 호흡으로 몇일을 살았던적도 있는데


그만큼 나에게 소설읽는 재미와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몇배 확장시켜준 소설가이다.

그 10년동안 그녀의 장점도 보았고 그녀의 한계도 보았다.

그동안 그녀의 삶을 각혈하듯 쏟아낸 소설들을 읽으면서  일본의 사소설을 쓰는건가?

그 긴 사소설적인 흐름은 외딴방에서 출혈을 멈추었다.  숨기려고만 했던 그녀의 과거를

그와 같이 영등포여상의 친구의 전화 한통으로..

"넌 우리 얘기는 안쓰는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숙의 대표작은 '풍금이 있던 자리'이고

어느것보다 소중한 소설은 '외딴방'이다. 

사소설적인 애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뒤늦게 지켜본것 같은 이웃집 누나같은 느낌이 드는건

내가 너무 깊이 그녀의 문학의 울타리에서 길들여진듯하다.


작년에 '바이올렛'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신경숙의 소설의 화자는 여리고 맑고 쉽게 상처받고

타인과의 관계설정에서 힘들어함을 느낀다.


부석사.. 이 단편소설은  그전의 작품들과 좀 다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상처받은 주인공 둘이 나오는건 있지만  그렇게 저 심연의 바닥까지 그 상처를 가져

가지 않는다.


그녀와 그 두 사람은 각각 P와 K에게 상처를 깊게 베인다.

우연히 동네 뒷산 덫밭에서 상추서리를 하다 만난둘은 서 로에게 좀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풍경으로 지낸다.  누구나 다 상처받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가기 힘들다


사랑에 대한 상처의 극복법중 하나가  하나의 사랑이 떠나가면 다른 사랑하나로 치환하라고

말하지만 영혼의 울림까지 가지 못한 사랑이나 그렇구..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함이라기보단  만나가 싫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두 주인공은 1월1일 황량한 숫자의 연속인날에  부석사로 가기로 약속을 정한다.


부석사에 실로 밑을 지나가면 공중에 떠 있는 돌을 확인하기위해서


하지만 그녀와 그는 결국 가지 못하고 길을 잘못들어  낭떠러지에 두 바퀴가 뜬채 멈처선다.


 그의 친구인 피디란 사람이 모질게 버렸던 강아지를  그녀는 말없이 주서다가 키운다.


개에게 스스럼없이 따슷하게 옷을 덮어주는 그의 모습에  버려진 개를 키우는 그녀를 보면서

둘은 서로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낀다.



얘전에 신경숙 소설에  어떤 상처들의 나열이였다면  이소설은 그 치유과정까지 그려놓았다는게 달라진걸까?

내 기억으론 그렇다. 그전의 소설이라면 상처가 있고 봉합하고 원천적인 해결은 안한채로 끝맺음을 했다. 하지만 이 소설 부석사에서는 치료를 넘어 다른 희망을 제시하는 모습이 달라졌다면 달라졌다.



요즘은 공지영 작가가 너무 잘나가지만 공지영의 글체가 전투적이고 남성적이라면

신경숙은 소녀적이고 여성적이다. 그래서 난 우울한날엔 신경숙의 글이 좋고 햇볕 가득한 창가에선 공지영글이 어울릴듯하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다 쓰러져가는 한국소설계의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i*****2 2007.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