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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란 존재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말 '나'일까. 아니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내가 '나'일까하는 문제다. 그 두 관점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이러한 의문이 자주 떠오르는데.. 그건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상관이 있지 싶다.
소위 '꽃다운 나이' 때는 별로 그런 고민을 했던 기억이 없다. 그건 아마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져야 겠다.'라는 강한 의지만 존재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객관화 할 능력도 없었겠거니와 주변의 반응을 세심히 살필 배려도 부족했던 탓이라 본다.
이런 문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거나 '나는 존재하므로 생각한다' 라는 철학적 문제나 '계란과 닭의 선차성'을 따지는 기원적 문제하고는 달리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이기는 하나, 그게 가끔 내 삶을 삐긋거리게 만든다는게 문제다. '내 멋대로 살기' 에 지친, 또는 그 '멋대로'가 만들어내는 외로움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는 중년의 푸념일런지도 모르겠다.
책의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까닭은 사실 별로 책에 대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이책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서라거나 서로 다른 생각(관점)을 가진 사람이 구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 입각해 침묵을 지킨다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과장을 한다면 동년배의 작가가 쓴 글에 경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읽고 잘 아는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데 약간은 조심스러워도 되는 것이, 권함을 당하는 상대방이 일단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권하는 사람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될 수 있음 긍정적 느낌으로 책을 대해야 하기(이는 책을 접하는데 있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필터 역할을 할 수 있다)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의식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지인들에게 권해 볼 생각이다. 책의 주인공이 '이상'이 아니라면 책의 저자가 '김연수'가 아니라면 아마도 만들어질 수 없는 책일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소설은 원래 '허구'를 다루지만, 이 소설은 오랜 고증을 통한 진실의 파편 들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과 정서을 총 동원해 최대한의 개연성을 가지고 메꾸어감으로써 이상에 대한 '진실'과 소설적 요소인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는 점에서 '이상'이 글을 쓰며 토해낸 각혈 만큼이라면 돌 맞겠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산고가 수반된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러한 점이 작가 김연수의 '멋'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이 '이상'에 관한 것이니만큼 마직막은 '이상'의 글 중 내 입장에서 가장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마무리하련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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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책을 읽다가 번역자가 김연수여서 그 책들을 읽고 김연수 작가의 책을 찾으니 이 책이 나왔다. (데이비드 알몬드의 스켈리그, 푸른 황무지)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의 글로 만나니 묘한 느낌이 든다. 김연수 작가는 왠지 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나와 맞지 않았던 기억만 어렴풋이.. 그런데 이상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김연수 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는데 가물가물해서 다시 찾아보니 9편의 다양한 단편이 들어있다. 낯설고 어렵게 만난 김연수 작가를 더 어려운 말들이 가득한 책으로 다시 만났다. (리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듬뿍 들어있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오감도를 지은 이상.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시를 지은 시인이자 소설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그 당시 사람들이 그랬듯이 폐결핵으로 죽은 천재시인. 우연히 아이들책인 ‘황소와 도깨비’로 만나 (이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아동소설) 이런 점도 있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리뷰: 귀여운 도깨비와 힘쎈 황소) '잘못 전화한 사람은 잘못 전화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잘못 전화하지 않은 사람은 잘못 전화한 사람이었다.' 이상의 글처럼 마치 말꼬리를 잡는 글들이 많다.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그리고 새. 잡지사의 김연화 기자, 이상의 유고를 가지고 있다는 서혁민과 서씨를 믿지 말라고 전화한 정가, 실제는 대만인이지만 한국인처럼 자란 재미교포 피터 주. 따로인듯 연결되어있는 3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상과는 절친한 사이라 발표하지 않은 유고나 유품도 상당량 가지고 있다는 서혁민의 동생 서혁수는 최수창 교수와 편전아트센터 이숙희 관장을 모시고 김연 기자에게 김소운 선생의 책 ‘하늘 끝에 살아도’에 나오는 그 데드마스크를 보여준다. 이상을 쫓아다녔던 서혁민은 이상의 글마저 흉내내는데, 그 스스로 이상이 되려는 시도로 이상의 작품은 물론이고 이상의 삶마저 닮으려 한다. 이상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에서 작가 비교문학 전공의 재미동포 피터 주선은 ‘참조로서의 이상 텍스트’ 을 발표하는데, 같이 최수창 교수에게서 공부한 권진희는 도쿄대학교 부속병원 의사과 병력관리 자료실 부속병원 직원이 옮겨 적은 필사본인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를 발표하여 심포지엄장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데드마스크를 둘러싸고 가짜 최수창 교수가 연루된 사건으로 최수창 교수의 신용도는 추락했고, 데드마스크에 이어 이상 유고의 진위로 떠들썩해진다.
이상이 스스로를 천재의 삶으로 창작했는데, 그 작품이 아무리 미친놈의 개수작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천재의 작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폐병 환자 김해경이 만든 이상의 삶이란 의지인가 운명인가 이상에 대한 공부가 약해서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사실같은 내용에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상은 정말 운명적인 삶을 산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삶을 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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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한테 반했었다. 이 책을 덮고나니까 비로소 알겠더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시작으로 몇 편의 작품을 더 읽으면서 확실하게 결론난 내 감정은...그렇다, 사춘기도 아니거늘 작가한테 홀딱 반해서 이렇게 네 권째 스트레이트로 읽어'드리고' 있다. 게다가 지극히 모범생처럼 생긴 외모까지! (아, 이건 사족인데 사회학개론 이한메 교수님과 겹쳐지면서 외모는 물론 온몸에서 풍겨나오는 인텔리함이 꼭 닮았다. 그래서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필요조건쯤은 되니까 뭐...)
꼬인 이야기들이 서서히 풀려갈때마다 어째 더 헷갈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 기막힌 스토리텔링에 대한 감탄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작가가 사력을 다해 말하고자했던 가짜와 진짜의 진실과 거짓은 내 온 인생의 마침 없는 화두와도 같으니, 나는 나에게도 그저 천재, 신화로 남아있는 이상의 존재가 과연 김해경인지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는 노릇. 데드마스크, 레몬향기가 맡고싶다던 유언, 솔직히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다.
직전에 본 신경숙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이런 말을 한다. 어느 정도 기간에 특정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라고. 그러면 그 작가의 세계가 나의 핏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것이라고.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이거야, 하는데 대체 김연수 신간은 언제쯤 도서관에 들어오냐?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내게 공개되지 않은 비밀이 있을 때만이 나는 날아오를 수 있다.
진짜라고 믿는 자에게 그 세계는 진짜처럼 보이고 가짜라고 믿는 자에게 그 세계는 가짜처럼 보인다. 김해경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 이상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이 간직한 비밀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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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이미 구판은
절판되고 인터넷 서점에 2016년 4월에 새책 굳바이도 아니고 굿빠이도 아니고 꾿빠이라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공부하는 마음으로 한줄한줄 힘들게 읽어나갔다. 그만큼 긴 시간을 들여서 어렵게어렵게 읽었다. 또한 마침 반디앤루니스 서점 오늘의 책에 이 책을 리뷰하고 있기도 하여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오'라는 제목으로 만나게 된다. 지은이는
1930년대에 활동했던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이상 김해경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실제 기록과 그의 작품, 이상에 대한 연구서를 인용하고, 이상의 유실된 데드마스크와 가상의 시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오감도」는 현재
15편까지만 발견된 상태이다), 이상에 대한 가짜의 참고문헌이나 각주, 가상적 기술, 상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가며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의 실험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2016.5.5.(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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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의 저자 이탁오는 개처럼 살았다던 이전의 삶을 청산하고, 부인이 죽고 모든 가족에게서 벗어나자 새로운 삶을 산다. 유교적 삶에 충실했던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그는 62세에 머리를 깎고 지불원이라는 암자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76세에 신종에 의해 잡혀들어가지만 고령이라는 이유로 고향 천주로 보내려고 한다. 이 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그가 고향의 안위한 삶을 택하는 대신 스스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는 불멸을 얻게 된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실화의 첫 문장처럼 이상은 철저히 비밀스런 존재였다. 김해경은 스스로를 죽이고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가 요절한 후 '이상'이라는 작가는 불멸의 생명을 얻는다. 김해경은 소설을 창작하기에 앞서 자신의 삶을 먼저 창작했다. 소설은 이상의 존재를 실존의 영역에서 끌어내어 신화의 영역에 올려놓은 세 명의 신도들이 이야기 하는 이상수난곡이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간증의 기록이다.
나는 실존의 영역에 있으나 일련의 수난 과정을 거쳐 이상은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상과 관련한 모든 것은 논리나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p.16)
한 인간의 실존, 혹은 그의 작품이나 유품이 어떠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 마음에서 용인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화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진실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되묻는다. 그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신과도 맞물리면서 '과연 절대 진리란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원천적인 질문에 소설은 도달한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개로 나뉜다. 첫번째 이야기는 신문기자 김연의 이야기다. 어느날 이상의 데드마스크가 있다는 전화를 받은 기자는 그것이 진짜일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혁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것을 믿는다. 아니, 믿기로 한다. .
만약 어떤 배우가 완벽하게 무대 인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그 무대 인물에게서 배우를 분리해낼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그 무대 인물을 가리켜 가상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p.45)
진위를 구별하는 것은 결국 논리나 열정이 아닙니까? 하지만 영원한 사랑이나 위대한 문학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입니가? 그건 논리나 열정의 문제를 떠나 있는게 아닙니까?(p.66)
김연기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논리에 스스로 갇혀 '데드마스크'는 진짜라는 결론으로 기사를 싣는다. 물론 이는 편전아트센터에 팔리면서 기자는 사기 공모 혐의를 받고 검찰 조사까지 받는다.
진짜는 가짜였고, 가짜는 진짜로 진짜인 가짜였다
그리고 이제 단순히 인생의 한 부분을 연기하는 정도가 아닌 평생을 이상으로 연기한 서혁민이라는 서씨의 형 이야기다. 본인이 찾아 헤메던 1930년대 '세르팡'이라는 일본 잡지를 눈 앞에 뒀을 때가 시작이다. 그는 그 장소에서 일본의 작가 하루야마를 추종하는 쇼이치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세르팡을 양보하면 하루야마의 글의 한쪽에 있는 이상의 글들을 복사해 주겠노라 약속한다. 서혁민은 그것이 우리가 찾던 이상의 유고라는 생각에 앞뒤 보지 않고 세르팡을 넘긴다.
이상의 글을 받기 위해 간 그의 빵집에서 이상의 유고는 불태워졌다는 말을 듣고 서혁민은 그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8월 초순경에는 시체가 얼마만에 썩는지를 생각하는 서혁수에게 쇼이치는, 과연 당신이 찾고자 한 것은 이상의 진짜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믿음을 확인시켜줄 '성수'였는지 냉정히 되묻는다.
마지막 주인공 피터 주는 이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말처럼 그가 '이상'을 연구하려 하는 데에는 본인의 출생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가 작용했다. 그리고 그의 오감도 창작법의 연구는 세미나 다음 발표자인 권진희의 오감도 16호 발견이라는 쇠망치에 가루가 되어버린다. 끝까지 본질을 찾고자 했던 피터 주가 택한 방법은 결국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위험한 도박이었고, 이상의 삶 자체가 결국의 김해경의 삶을 건 도박이었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절정에 다다른다.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p.200)
신화는 항상 경계에 존재한다
이 소설은 팩트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이 될 것이고, 믿지 않는 것은 헤프닝이 될 것이다. 나로서는 이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한참 애를 먹기도 했다. 길진섭이나 조우식, 변동림 등 이상의 죽음과 가까이 있었던 실존 인물 속에 등장하는 유학생 같은 인물은 이를 혼동하기에 적절한 단초를 제공했다. 피터주 같은 인물은 김기림의 이상 추모시 '쥬피타 추방'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그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이상에 대한 연구 자료 또한 면밀하고 방대하다. 웬만한 이상 연구서보다 더 자세하게 적혀있다. 작가의 노력이 많았으니 소설이 대단하다는 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실증이 부족한 부분에 오밀 조밀 박혀있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니. 이런 글을 보고도 김연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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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리뷰를 못 달겠다.
나는 이상을 정말 싫어했었다. 책 속의 김기자 말마따나 이상은 천재 작가가 아니면 미친놈이거나 둘 중 딱 하나인데, 미안하고 또 부끄럽게도 나에게 이상은 두번째에 해당해왔다. 바로 얼마전 까지는.
<여행할 권리> 에서 김연수는 자신의 우상 이상의 자취를 더듬으며 그의 문학과 방황을 되새겼다. 김연수의 글 솜씨 덕인지 그토록 멀게 두었던 이상이 좀 덜 싫어졌고 이번 소설로 난 낯선 이상을 읽을 준비가 끝났다. <날개>와 <거울>을 바로 집어 들고 읽었는데, 중학생 때 그를 싫어하기로 결정해 버린 것을 후회했다. 앞으로 이상의 작품을 읽을 때 마다 이 책 <꾿빠이, 이상> 에서 해당하는 - 패러디건 오마주건- 부분을 찾아 볼 생각이다.
독자마다 인생을 뒤흔드는 작가가 있다는데, 김연수에게는 바로 이상이었다. 누구에게는 (내가 그토록 겁내하는) 보르헤스 였고, 내 남편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 란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김연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는 두고 봐야겠다. 혹시, 이상이 먼저 내게 다가 올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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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인용된 이상의 텍스트가 아닌) 본문에서 띄어쓰기가 많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이것도 김선상의 의도일까, 신경이 쓰였다.
또 하나, 예스에서 이 책을 <추리소설>로 분류해 놓았다. 얼핏 The Poe Shadow 생각이 났지만 그보다는 역시 보르헤스다. 그는 어디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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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꾿빠이, 이상! 이상의 작품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복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고도 남는 삼중당 문고판이었는데, 소설과 시뿐만 아니라 수필까지도 모두 망라해서 수록되어 있는 일종의 전집(이거나 선집)이었다. 책의 제목으로 삼은 소설 <날개>는 제법 읽을 만 했으나 다른 소설들과 수필들은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글의 내용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난삽한 한자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그의 낯선 문체 역시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시편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낯설기로는 그의 소설이나 수필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뒤지지 않는 ‘미친놈의 잠꼬대’ 같은 시들인데도 말이다. 당시 국어 수업시간에 배우고 있던 하지만 그뿐이었다. 당시 내가 그렇게 열심으로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흉내조차도 아니었다. 열다섯 살 중학생은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어린 내게는 꽃으로 피어날 생각의 씨앗들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스물두 살, 마침내 내 꽃나무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이상은 내게 없었다. 내가 열다섯에 만났던 내 가슴 속 비밀의 정원은 폐원이 된 지 오래였고, 그 정원에 활짝 피어있던 이상의 꽃나무는 이미 잘려나가 무덤처럼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다. 내가 그 그루터기에 잠시 앉아서 쉬었던가? 아마도 그랬을지도. 그러나 폐원의 담장을 넘어온 치열하고도 끈질긴 함성이 내 귓속의 뼈를 두들기고 바람결을 타고 날아든 매캐한 공기가 내 코와 눈과 목구멍의 점막을 할퀴었기에 나는 곧 그 그루터기에서 일어나 폐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 폐원의 내부 어딘가에는 아직도 내가 미처 탐험하지 못한 미지의 장소들이 숱하게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이상에게 작별을 고했다. “꾿빠이, 이상!” 2. 헬로우,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지난 올해 초 나는 다시 이상을 만났다. 그렇다면 “헬로우, 이상!”이라고 인사를 해야 마땅할 텐데, 나는 “헬로우, 문학평론가 『꾿빠이, 이상』은 각기 다른 화자를 내세운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화자가 바뀌고 시간적 배경이 바뀌어도 단절감 없이 한 편의 장편소설로 잘 읽힌다. 그러나 이렇게 잘 읽힐 수 있도록 소설의 구성에 공들인 작가의 노력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사전에 작가가 해내야만 했을 엄청난 양의 자료 읽기와 연구 작업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소설이 이상(문학)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를 모두 섭렵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실증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것은, 이 책을 펼치고 몇 쪽만 읽어보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따라서 젊은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이상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던 나와는 달리, 소설가 더군다나 그는, 프로 소설가로서의 부지런함과 더불어 비밀에 싸인 이상의 삶과 내면 풍경까지도 그럴듯하게 복원해내는 특유의 상상력도 겸비하고 있으니, 이상으로서는 그의 작별인사가 조금도 서운하지 않을 터. 따라서 뛰어난 이 두 작가가 현실 세계에서 마주친다면, 작별인사를 건네는 소설가 그러나 이미 나는 후자를 선택했기에 당연히 이렇게 외친다. “헬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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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기’의 어려움 #1.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예쁘게 머리를 하고 싶고, 옷을 사고 싶고, 눈에 띄게 화장을 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욕망은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그, 혹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나는 지난 수개월 동안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댔더랬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나답지 않은 욕망을 내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2. “너 술 못해? 예전엔 보드카도 마셨잖아! 내가 사준 기억이 나는데!”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가 술을 만류하자 이렇게 되물었다. 딱히 준비한 말은 아닌데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못 해. 안 좋아해. 그땐 뭐 잘 보이려고 잘 마시는 척 한 거겠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마냥 어린 시절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돌이켜보니 난 아직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잘 보이려고, 아직도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원하지 않는 걸 원한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던가? #3. 그래, 결국 나도 좋잖아. 예뻐 보이고, 잘 노는 것처럼 보이고, 좋잖아. 하고 많은 경우 나를 속이는데, 이런 날, 그러니까 가끔씩 이런 것들이 내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진짜를 원하는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과연 진짜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일까? 최근에 겪은 세 가지 풍경, 한 가지 심상. 이때 문득, <꾿빠이 이상>을 꺼내 들었다. “김연 기자, 지금 이 순간 김연 기자는 정말로 자신이 김연 기자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p.65) 평소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사두고 한참 서가에 꽂아두고 있었던 소설 <꾿빠이 이상> 다른 소설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막상 이 소설만큼은 마치 아껴두듯이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때가 온 것이다. 어쩐지 이 책에 어떤 답이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어서 다른 일을 다 팽개쳐두고 읽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하는 독서도 있다. 이렇게 책이 부를 때가 있다. “진짜냐, 가짜냐” <꾿빠이 이상>은 이렇게 묻는다. 그러니까,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좀 있다. 이상의 데드마스크, 유고작이 진짜냐 가짜냐. 천재 이상을 쫓다가 결국 이상의 삶을, 문학을 모방하게 된 사람들, 모방한 삶과 문학은 진짜냐, 가짜냐. 진짜는 무엇으로 그것이 진짜임을 확언할 수 있을까?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p.83)은 아닐까? 행여 모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그저 가짜라고, 의미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거기에도 결국 진짜 욕망이 있을 테니 말이다. 청춘은 항상 뜨거워야만 하나? 그러니까, 진위여부를 묻는 질문은 소설을 넘어 내 삶에까지 던져진다. 혹시 나는 어떤 삶을 모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맘 때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얘기들, 이를테면, 20대에 꼭 해야 할 일들, 청춘의 색깔은 그렇게 한 가지여야만 할까, 싶게끔 만드는 조언들, 말들. 꼭, 행복하고 뜨거워야만 청춘일까, 싶게 만드는 글들. 그런 것들을 나는 지금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이 때문에 많은 청춘들이 자책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밍밍한 삶의 온도를 부끄러워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청춘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뜨겁지만 가끔은 심심하고, 가끔은 우울하고, 가끔은 걷잡을 수 없이 슬프다. 이런 것들이 다 합쳐진 게 내 청춘. 헌데 나는 뜨거울 때만 내가 자랑스럽다. 그렇지 못할 때는 조금 부끄럽다. 청춘답지 않아서. 그런데 청춘답다는 건 뭔가? 꼭 청춘다워야 하는 건가? 내 청춘은 이런데? ‘내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존중 받을 수 없을까? 이뿐이랴. 나는 내가 욕망하는 것들마저 모방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욕망을 내 것 인양 속이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잘해보려고, 내 모든 행복이 거기에 달린 것마냥 굴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애인마저도 모방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나와는 무엇이 다를까?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제 아무리 그가 좋아하는 그녀를 닮는다 해도, 그는, 나를 그녀처럼 좋아하지 않는다는, 쓰디쓴 결말을 본다. 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결말. 나답지 않은 내 모습으로, 누구인 척 하다가 뒤돌아 서는 순간, 그때만큼 쓸쓸할 때가 있을까. 그 쓸쓸함이 어쩐지 낯설지만은 않다. 그건 가짜야, 쉽게 말할 수 없는 까닭 아마 서혁민 역시 삶의 많은 순간순간 그렇게 쓸쓸했을 거다. 소설 속 서혁민은 자신의 삶에 이런 의심조차 허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무던히도 이상을 숭상하던 그는 이상의 죽음 이후 충격을 받고, 이상과 꼭 같은 작품을 쓰기 위해 그의 남은 인생을 건다. 그러니까 “연애든 다방이든 실패한 사실만 따지면 이상 선생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p.48) 서혁민의 이러한 삶을, 결국, 시 쓰기에도 실패한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가짜야,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나의 실패한 짝사랑 역시 같은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 취향의 주파수를 좋아하는 이에게 맞춰두었던 긴 시간들. 하지만 결국 짝사랑으로 물거품처럼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뤄지지 않은 짝사랑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한번이라도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그건 무의미 해. 가짜 사랑일 뿐이야.”라고 말할 수 없을 터다. 그렇다면 또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진짜란 무엇일까? 서혁민이 모방한 시인 이상은 진짜일까? 소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김혜경 역시 이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놓고 그 뒤에 숨어버렸으니 이상은 가짜가 아닐까. “이상은 소설을 창작한 게 아니라 앞으로 쓸 소설처럼 자신의 삶을 먼저 창작했다고. 아이 김혜경이 쓴 소설이 위대한 작가 이상이라고. 위대한 작가 이상의 작품은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고.(p.78)” 그보다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매해진다는 말입니다.” 무한한 어떤 것, 그러니까 한 시인(사람)을 향한 존경과 애정, 자신의 삶보다 더 컸던 그 마음. 그 앞에서 어떻게 진짜일 수 있고, 어떻게 가짜일 수 있을까.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서혁수의 삶까지는 미천한 경험으로 이해하지 못해, 또 다시 내 상황으로 치환해 묻는다. 정말 그랬나? 비록 이뤄지지 못한 것일지라도, 진짜 사랑이 되지 못한 마음도 존재 그 자체로 중요했나?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열병처럼 애달픈(‘외’달픈!) 마음을 끌어안고 있을 때,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이 마음이, 이 사랑이 의미 없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걸 그 사람이 알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리면 어쩌나. 이렇게 간절한데 이뤄지지도 못하고 시간에 묻혀버리면 어쩌나. 그렇다면 나는 참 슬프겠다고, 내 마음이 비참하겠다고 미리 그때를 상상하고, 그런 고통을 상상하며, 잇따른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훈련을 했더랬다. 그 모든 시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금. 그때의 일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은 어떤가?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과연 어땠나?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비록 이뤄지진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재미없고 초라한 얘기도 없을 테다. 또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아직 그때의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지도 못한 모양이다. 그때의 시간, 그때의 고통, 그것이 모방된 것이든, 이뤄지지 않은 것이든 그것은 내게 ‘진짜’였다. 그것이 나의 ‘지금’이었고, 그래서 ‘전부’였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통을 통해 성장했나? (남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짓을 얼마나 하고 다녔던가!) 슬픔을 겪고 성숙했나? (이런 게 성숙이라면, 개나 줘 버리고 싶다!) 어땠어, 좋았어? 이왕이면 이뤄진 사랑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게 훨씬 낫지. 짝사랑은 이뤄진 사랑에서 겪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은 최소한으로 하고, 이뤄진 사랑에서도 겪을 법한 슬픔, 좌절을 최대화로 겪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나눌 수 없다는 것에서 짝사랑은, 어떠한 경우라도 어렵고 슬픈 일이다!) 고로 굳이 따지자면, 그런 슬픔, 좌절을 겪으며 보상처럼 배우게 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나는 ‘의미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짝사랑 앞에 ‘의미 있다’라는 말이 ‘중요하다’라는 표현이 무색하다는 걸 이제 알겠다. ‘의미 없다’고 자조하는 것은 그저,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p.121) 결국 간절히 원하고도 일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저 나름의 비밀을 하나씩 갖게 되는 셈이다. 서혁수의 작품과 삶도 그렇고, 아무도 모를 내 짝사랑도 그렇고, 이상 혹은 김혜경도 마찬가지. 비밀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존재만으로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겠지. 그러니 그렇게 억울한 일만도 아니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내 일, 내 꿈, 내 사랑, 내 삶 ……. 이것들이 과연 진짜냐, 가짜냐.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위여부의 의문부호를 들이대겠지. 그걸 고민하며 괴로워하거나 방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에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쏟진 말아야겠다. <꾿빠이 이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의미 있다 혹은 없다, 이 이분법만으로는 세상일을 다 판단할 수가 없겠다고. 세상일은 커녕, 내게 일어나는 일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겠다고. 결국 진짜냐, 가짜냐 하는 질문보다는, “어땠어, 좋았어?”라는 질문이 훨씬 정황을 파악하는데 유효한 질문이 아닐런지. 말 나온 김에 즉석 미니 인터뷰. Q. 그러니까 그때, 눈에 콩깍지 끼었을 때 말이야. 어땠어 A. 힘들었던 기억은 많고, 기뻤던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Q.그건 김연아 올림픽 금메달 우승 소감이고! 힘든 건 그만큼 힘들었고, 기쁜 건 그만큼 기뻤단 얘기지? 연아 금메달 못지 않게! 이런ㅠㅠ 안구에 습기가……. 그렇다면 지금은 어때? 그 때를 생각하면 A. 비록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쁘고 아픈 기억만은 아닌듯. 오히려 지나고 나니, 즐거웠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고, 힘들었던 기억은 짧게 느껴지는군. 이 시간이 지나야 지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겠지. Q. 그래. 알면 됐고! 이런 식으로 나는 그때의 시간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으니 됐고! 무엇보다 지나간 일이니 됐고! .......깨끗하게 비우면, 또 새롭게 차지 않더냐. 이봐, 힘 내라고!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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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재미를 위한 것이다. '재미'라는 것은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를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꾿빠이, 이상은 나에게 소설이 줄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재미를 주었음을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새롭게 발견된 오감도는 이상의 작품인가 아니면 모방 작품일 뿐인가? 세 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특이한 소설의 전개는 얽힌듯하면서도 풀어져있고 풀어져있는듯하면서도 얽혀있다 어느게 참이고 어느게 진실인가? 작가 김연수는 그런 것을 말해줄만큼 친절하지는 않다. 진위를 독자의 몫으로 떠 넘기고 있는 불량한 작가다. 메비우스의 띄처럼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져놓고 그는 숨어버린다.
바로 이런 불친절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미덕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한 순간 탐정이 되어 글의 진위를 풀어나가는 재미와 흥미를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어렴풋이 떠어로는 해답과 그 해답보다 10배는 많이 떠어르는 또 다른 의문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 소설은 끝난게 아니라 비로서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그 시점이 이 소설의 진정한 시작부분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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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라는 작가-작품-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그것은 정말이지 무책임했다. 내게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읽지 않은 것과 읽다가 지루해진 것 투성이이므로.('이상 선집'을 사다 보아야겠다. 나중에.) 아무튼 그런 웃기지도 않는 호기심과 '오페라의 유령'으로 발동하려하는 '추리소설'에의 관심 때문에 고른 책이었다. 또한 내게 이신조와 피스타치오를 준 문학동네"때문이기도 했고. 우선은 이상 문학에 대한 참고서를 읽은 듯 해서 좋다.
요즈음 부쩍-'문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후로- 문학 공부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일고 있는데, 그 경로가 열려 있고 자유로워서 기분이 좋다.
추리소설"이라 이름붙이기엔 그다지 흥미롭기만 하지는 않은 책이다. 다만 읽어가면서 이상"이라는 작가-혹은 인물-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보이지, 느껴지지 않는 무엇"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생겨났고, 대신 작가 김연수에 대하여는 친해져 볼까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토지'를 읽으면서 그 서문에 감동하여 수첩에 써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머리말"이나 작가의 말" 따위를 꼭 챙겨 읽는 편인데, 작가 김연수씨의 '작가의 말'은 유별나게 재미나는 글이다. 유치하면서도 참으로 위트가 있었다.
맛깔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storyteller는 아니지만 어딘가 위트와 유머, 신나는 풍자가 보여 작가 김연수에게 쏠리는 관심이 크다. 꺄악~~ 오빠 멋쪄~^^o^
다시 이상을 읽어보면 지루함이 좀 가실 것 같다. 국어교과서에서 배우고 나서야 읽기에 신이 났던 '토지'처럼... [인상깊은구절] 언젠가 꿈속에서 헌책방에 간 일이 있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설책이 가득했다. "여기 꽃힌 책들은 세상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소설들이야!" "서서 다 읽고 가면 모르되 팔 수는 없어." 하도 태도가 완강해 하는 수 없이 머릿속에 스토리를 암기하면서 책을 하나하나 읽다가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 얼른 스토리를 공책에 받아 적었으나 나중에 보니 참으로 요령부득의 글이었다. 어쨌든 그 때 헌책방에서 본 소설 중 아직 누구도 발표하지 않은 소설 몇 권을 나는 더 알고 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내가 제일 먼저 읽을 생각으로 그 소설과 아주 비슷하게 쓴 소설이 바로 여러분께서 잡고 있는 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