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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등을 켜는 일 — 심종숙 『하얀 등』을 읽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때로 낯선 방에 불을 켜는 일과 닮아 있다. 심종숙의 『하얀 등』은 바로 그런 책이다. 밝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딘가를 비추고 있는 빛. 그 빛 아래에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열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중 열한 개는 여성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보영, 서희, 은화, 백희, 채희, 소영, 승희, 정숙, 재희…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우리는 그들의 삶 가까이 다가간다. 반면 남자는 희미하다. 이름이 없거나, 있어도 오래 남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자리처럼.
읽는 동안 자주 멈추게 된다. 이야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다.
보증금 300, 월세 30. 이 숫자들은 설명이 아니라 체온이다. 누군가의 하루와, 버티는 시간의 무게다. 그래서 이 소설은 허구처럼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온 이야기,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 위에 얹힌 문장들은 조용히 스며든다.
“서울은 화장의 얼굴로 사람을 맞이한다.” “운명은 맹수처럼 돌변했다.” “내가 마음을 여니 남자는 빠져나간다.”
이 문장들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에 더 깊어진다. 시인이 소설을 썼다는 것은, 아마 이런 순간을 위해서일 것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문장 사이에 머무는 순간.
이 책에는 울음이 많지 않다. 대신, 울음을 참고 있는 시간들이 길다. 감정은 터지지 않고 스며든다. 그래서 더 아프다. 슬픔에도 결이 있다면, 이 소설은 그 결을 따라 천천히 손을 움직이는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주 질문하게 되었다. 왜 저 여자는 저 선택을 했을까. 왜 그 남자 곁에 머물렀을까.
그러다 어느 순간, 질문이 바뀐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때부터 이 소설은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자 Y’는 어쩌면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희망이라기보다, 희망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이름 하나 쯤을 마음속에 남겨두고 살아간다.
『하얀 등』은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삶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사람은 왜 서로를 떠나고 또 붙잡는지, 그 질문들을 등불처럼 켜둔다.
하얀 등. 오히려 푸른색이다.
그것은 밝기보다, 버티는 방식에 가까운 빛이다. 완전히 어둡지 않기 위해 켜두는, 아주 작은 불.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빛이 남는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하얀 등을 하나씩 켜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260227 문정기 과학문화평론가/과문융합 저자 jgmoo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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