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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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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ㅡ존재와 삶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고찰🔖사색평 ㅡ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이토뢰 혁명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낳은 인물이다.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의 해안 도시 밀레토스에 살았던 아낙시만드로스다.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대의 지적 거장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지만 그는 훨씬 큰 업적을 남겼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현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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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ㅡ

존재와 삶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고찰


🔖사색평 ㅡ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이토뢰 혁명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낳은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의 해안 도시 밀레토스에 살았던 아낙시만드로스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대의 지적 거장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지만 그는 훨씬 큰 업적을 남겼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현대 물리학과

지리학,기상학,생물학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그런데  이 모든 업적보다 크고 중요한 일은,그가 기존의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사고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아낙시만드로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불확실성을 거부했고,그런 태도를

지식 탐구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과학적 사고의 기초가 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근대성의 기원이 되는 인간적 사고의 거인으로 우뚝 서 있다.

그는 자연을 탐구한다는 개념을 창조했으며,그의 업적 위에서 모든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이런 전통이 이어지는 문장 형식조차 그가 창안한 것이다.

그는 자연 세계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본 최초의 인물이었다.

인류가 생각을 통해 사물의 세계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고자 한 것은 오로지 그의 공로다.

과학적 사고는 천천히 진화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한다.

무지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지식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 아니라 가장 정직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과학적 사고를 고찰하는 도서로 추천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의 지리학자다.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고민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생물학자이기도 하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책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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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7 2026.06.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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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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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기술적인 측면에서 우리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것들을 먼저 떠올렸는데, 그보다 우선 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인간을 지혜롭고 자유롭게 하며,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바로 과학에 있다는 뜻이에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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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리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것들을 먼저 떠올렸는데, 그보다 우선 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인간을 지혜롭고 자유롭게 하며,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바로 과학에 있다는 뜻이에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이 책은 세상을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과학의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왔던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그 영향력을 재조명하고 있네요. 저자가 아낙시만드로스를 최초의 과학자로 명명한 것은 그의 획기적인 발견이나 업적만이 아니라 과학하는 태도에 주목했기 때문이에요. 선대의 지식을 습득한 다음 그들이 저지른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 세상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는 과정이야말로 현대 과학의 기본 원칙인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인 탈레스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스승을 불신했던 건 아니고, 스승 탈레스의 이론을 깊이 공부하여,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던 거예요. 다양한 관점과 상호 비판이 고조되는 과정은 언뜻 불협화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양한 세계관을 모색하던 시기에 빛나는 과학적 사고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니네요. 아낙시만드로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민주주의가 태동하여 자유로운 비판 정신이 발전하여 과학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네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과학은 더 멀리 보는 일이고, 우리는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탐구하며 더 넓은 맥락에서 더 정밀하게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적 도구들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의 출발점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오류로 가득 찬 지식의 총합이며, 계속 탐구해가는 과정인 거예요. 과학사의 관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고대의 사고에서 벗어나 겨우 한 걸음 걸어갔을 뿐이지만 진짜 중요한 발견은 우리의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실제로 매우 자주 틀린다는 사실을 안다는 거예요. 오류와 무지를 깨닫고, 불확실성을 기꺼이 인정하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아낙시만드로스의 과학 혁명을 이어받아 비이성적 충동으로 야기된 혼란, 오류, 전쟁이라는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네요.

#과학하는인간의태도#카를로로벨리#쌤앤파커스#최초의과학자아낙시만드로스이야기#아낙시만드로스#과학이야기#교양과학#과학

YES마니아 : 로얄 a*****7 2026.04.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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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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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로벨리가 이 책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인물은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로벨리는 그를 인류 최초의 과학자로 조명합니다.아낙시만드로스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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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로벨리가 이 책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인물은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로벨리는 그를 인류 최초의 과학자로 조명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습니다. "세상을 설명하는 데 신이 정말 필요한가?" 천둥이 치면 신의 분노라고 설명하고, 홍수가 나면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던 시대에, 그는 자연 현상 안에서 법칙을 찾으려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신에게 넘기는 대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탐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로벨리는 바로 그 순간이 과학의 진짜 출발점이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과학을 지식의 축적이 아닌 인간의 태도로 정의합니다. 과학은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답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더 나은 설명을 찾아 다시 질문하는 과정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그랬듯, 그 메시지가 와닿은 건 우리가 흔히 과학을 확실성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증명했다고 하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로벨리는 오히려 반대를 말합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 그것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라고. 우주과학, 기상학, 지질학, 생물학이 모두 그 태도 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거창한 과학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뭔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칩니다. 왜 그런지 묻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넘겨버립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 '원래 그런 것'에 멈춰 선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적 논의가 촘촘하게 쌓인 책이라 가볍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다시 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이 말하는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 멈추고, 천천히 들여다보고, 다시 묻는 것. 책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느려지고, 조금 더 깊어진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앞에서 혼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 주변에서 보면 좀 피곤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꾼 것은 바로 그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과학을 결과가 아닌 태도로 정의하며, 2,600년 전 한 철학자의 질문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줌.

악마 전우치 : 철학과 과학사가 촘촘하게 교차하는 구조라 배경지식 없이 펼치는 독자에게는 간혹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구간이 찾아오기도 할 듯.



v****3 2026.04.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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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야기, 카를로 로벨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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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기원전 6세기, 에게해 연안의 작은 도시 밀레토스에서 한 젊은 철학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달랐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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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원전 6세기, 에게해 연안의 작은 도시 밀레토스에서 한 젊은 철학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달랐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 세상의 근원은 물이 아니라 무한하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즉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균형을 잡고 있다고도 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왜 대단한 일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적 풍토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고대 세계 어디서나, 제자는 스승의 말을 받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프세 딕시트(Ipse dixit)', 즉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는 관용구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상징했다. 공자의 가르침도, 붓다의 말씀도, 조로아스터의 계시도 모두 계승되고 심화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의심받지는 않았다. 지식은 쌓이되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전승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태도는 그런 맥락에서 혁명적이었다. 그는 스승을 버리지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탈레스의 지적 유산을 충분히 흡수한 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나아갔다. 이 단순해 보이는 태도 속에 과학적 사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흔히 과학을 지식의 체계로 이해한다. 물리 법칙, 화학 공식, 생물학적 분류 같은 것들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과학적 인간을 규정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는 다윈이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한 진화론의 핵심 직관을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생각은 체계적인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화와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연 현상 자체로부터 자연을 설명하려 했다. 이것이 과학적 태도의 핵심이다. 또한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상상을 했다. 우주의 다른 곳에도 세계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는 그 무수한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통찰, 이것이 이후 인류가 원자를 발견하고, 전자기장을 정립하고,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방식과 정확히 동일한 방법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는 사유의 도약이야말로 과학을 신화로부터 분리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과학하는 인간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름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모름을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진리는 단번에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까워지는 수평선과 같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열어놓은 길은 바로 이 점진적 근사의 과정이었다.

과학은 진공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재여서만이 아니었다. 밀레토스의 아고라, 즉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쟁하고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던 공공의 공간이 그 배경에 있었다. 민주주의적 토론의 문화가 지적 탐구의 방식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동등한 시민들이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이성을 통해 서로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관행, 이것이 과학적 비판 정신의 사회적 토대였다. 이 연결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인식론적 전제 위에 서 있다. 어떤 권위도 그 자체로 진리일 수 없으며, 주장은 근거로 뒷받침되어야 하고, 누구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 말했다고, 신이 계시했다고, 스승이 가르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은 증거와 논리에 의해 검증된다. 이 원리가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로, 지식의 영역에서는 과학으로 꽃을 피웠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이 연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과학이 위축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판을 억압하고 의심을 죄악시하며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는 과학적 진보와 공존하기 어렵다. 반대로 열린 토론과 건강한 비판 문화가 살아있는 곳에서 지식은 성장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행동이 단지 한 철학자의 개인적 용기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과학적 태도가 개인의 덕목인 동시에 사회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학하는 인간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기만 한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인가?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를 비판했지만, 그를 경멸하지 않았다. 스승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흡수했기에 그 한계를 볼 수 있었다. 비판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상대를 알아야 더 잘 비판할 수 있고, 더 잘 비판해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것이 맹목적 거부와 과학적 비판의 차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 태도는 힘을 발휘한다. 타인의 주장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다. 두 태도 모두 이성의 포기다. 과학적 인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틀린 것이 있다면 용기 있게 말하되, 상대의 인격과 노력을 존중한다. 심지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균형이 나타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아침의 바다 앞에서 경이를 느낄 수 있다. 나무에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에 물을 주고 대화를 걸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깊게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그 복잡함과 정교함 앞에서 경외감은 오히려 커진다.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약 2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양자역학, 유전공학, 인공지능, 우주론. 그러나 이 모든 성취의 근저에는 그가 처음 실천한 단순한 태도가 있다. 선인의 지식을 충분히 배우고, 그 한계를 냉정하게 파악하며, 더 나은 설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적 태도는 단지 과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가려내야 하는 일반 시민에게도,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집단적 문제 앞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공동체에게도, 이 태도는 생존의 조건이다. 권위에 기대지도, 음모론에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증거를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틀렸다는 것을 알면 수정하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냥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위가 2600년의 과학적 전통을 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이론이나 천재적 직관이 없어도, 매일의 작은 지적 용기들이 쌓여 세계는 조금씩 더 잘 이해된다. 오늘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권위 있는 주장 앞에서도 '왜?'라고 묻는 것, 그것이 아낙시만드로스가 밀레토스의 아고라에서 시작한 일의 오늘날 버전이다.


p****r 2026.04.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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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기원전에서 시작된 최초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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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카를로 로벨리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책은 과학 이전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를 정리한다.이 문장은 기존 믿어온 한 세계를 뒤집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이전’이라 부르던 시간 속에서, 이미 과학은 시작되고 있었다는 의미다.“현대 과학은 이미 기원전에 시작되었다.”카를로 로벨리는 이 도발적인 선언을 통해 과학의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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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카를로 로벨리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책은 과학 이전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를 정리한다.

이 문장은 기존 믿어온 한 세계를 뒤집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이전’이라 부르던 시간 속에서, 이미 과학은 시작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현대 과학은 이미 기원전에 시작되었다.”

카를로 로벨리는 이 도발적인 선언을 통해 과학의 출발점을 다시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 한 인물을 세우는데 그가 바로 아낙시만드로스다.




그는 세계관부터 남달랐다. 세계를 신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의 언어로 읽으려 했던 것부터 시작이다. 비는 신의 감정이 아니라 흐름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에게 생명은 창조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었다. 그의 설명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바꿨다.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고, 관찰 가능한 것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 그 순간, 세계는 믿음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옮겨간다.




도발적인 면모의 예를 들면 그는 스승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식은 이어지지만, 반복되지는 않는다.

조금씩 어긋나고, 수정되고, 다시 쓰인다. 과학은 그렇게 자라난다는 점이다. 또한 아낙시만드로스의 가장 낯선 점은 그가 확실함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급진적인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세계를 설명하는 데 신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단지 신을 부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기준을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 자체로 옮겨놓는 순간, 사고의 축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은 자연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현상은 법칙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는 관점. 또 설명은 신화가 아니라 논증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전환이 바로, 로벨리가 말하는 과학 하는 인간의 태도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 등 전작을 읽었다. 과학에 관한 이 분의 사유는 추천할 만하다. 과학의 문장들 시적으로 표현하는 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과학이 시작되는 순간의 정신을 복원한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신화를 밀어내고, 자연을 스스로 설명하려 했던 한 인간의 질문.

그 질문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순간이다. 4월 과학의 달, 이 책 추천합니다






#과학하는인간의태도

#카를로로벨리

#아낙시만드로스

#과학철학

#자연철학

#고대그리스


r******7 2026.04.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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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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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도서협찬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야기📖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카를로 로벨리 지음 - 김동규 옮김:) 만물은 만물에서 태어나 만물로 돌아가고, 그 과정은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모든 정의와 불공정은 그에 상응한 보상을 받으며 시간의 질서에 순응하기 마련이다아낙시만드로스그는 최초의 지리학자이며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을 가능성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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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도서협찬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야기

📖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 김동규 옮김









:) 만물은 만물에서 태어나 만물로 돌아가고, 그 과정은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

모든 정의와 불공정은 그에 상응한 보상을 받으며 시간의 질서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아낙시만드로스

그는 최초의 지리학자이며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고민했다는점에서 최초의 생물학자. 

그리고 이성을 통해 천체의 운동을 연구하고 기하학적 모델로 재구성하고자 한 최초의 천문학자


자연을 자연 자체로 설명하는 시도로 과학의 길을 처음 연 최초의 과학자


이 책을 읽으므로 나는 아낙시만드로스를 처음 알게되었다.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처음 듣는 인물이였지만 책을 읽는동안 수많은 분야에 최초의 인물로,

 나는 이분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의 과학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수많은 학자들은 또 어떤 연구와 발명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이 존재한 이래 고대의 인류 대부분이 

이 세상이 '위의 하늘'과 ' 아래의 땅'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다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는 개념을 말했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대해 많은 연구와 생각으로 

이 세상에 과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켰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낙시만드로스의 대한 존경스러운 점은, 

그는 다른 학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스승의 업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지위해 오히려 그를 비판하며

 그 개념을 이어받아 훨씬 풍부하게 다듬었다는 점이다

스승이라고 하면 다 맞는다는 생각에서 그는 맞는건 맞고 틀린건 틀리다고 할줄하는 거였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맞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부분도 많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개선하고,

 그 바탕이 되는 과정과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고며 다 나은 개선책을 찾는 과정이다


이론이 변할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과학을 믿는 이유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든 과학이 설명하는 세상이 그 시점에서 최선이기 때문이다


.



과학이라는건 언제나 재밌고 신비롭고 신기하다.

 그리고 과학을 논한 학자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놀랍고 존경스럽다











2.600년 전 신이 떠난 세계에서 인간 이성이 빛나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아낙시만드로스 #쌤앤파커스 #카를롤로벨리 #최초의과학자 #과학하는인간의태도






도서만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r********8 2026.04.0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을 넘어 세계를 설명하려는 인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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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누군가 최초로 생각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나아가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을 이루는 지식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그 자체로 가치 있다.실제를 안다는 것은 왜 중요할까. 실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들의 세계로 지구와 인간, 그리고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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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누군가 최초로 생각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나아가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을 이루는 지식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실제를 안다는 것은 왜 중요할까. 실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들의 세계로 지구와 인간, 그리고 수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려 들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물론 상상력은 사실과 무관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은 우리의 삶과 생활을 실제로 변화시킨다. 자연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 과학은 분명 더 유용하고 생산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현상은 대부분 신의 의지로 설명되었다. 번개는 제우스의 분노였고, 비는 신들의 세계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런 세계관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을 신이 아닌 자연 그 자체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자연현상을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원리 자체로 이해하려 했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상상하며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세계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좁은 범위가 곧 세계 전체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제시한 ‘아페이론’이라는 개념은 매우 인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인식할 수도 없지만,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를 가정한 근원적 실체다. 오늘날 과학이 원자, 전자, 중력장, 암흑물질 같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떠올려 보면, 그의 사고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태도는 이후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이 책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의 핵심이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학을 신뢰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 속에서 그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고, 새로운 관찰과 논의 속에서 더 나은 이론으로 발전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세계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진화한다.

이러한 과학적 태도는 민주적 사고와도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이 왕을 추방하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사회를 운영하려 했던 것처럼, 과학 역시 권위가 아니라 비판과 토론 속에서 발전한다. 하나의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비판적 사고 속에서 더 나은 이론이 선택된다. 과학은 단지 자연을 연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확신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조차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리고 새로운 관찰과 논의를 통해 세계를 다시 이해하려는 태도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바로 이러한 정신일 것이다. 신화와 권위의 세계를 벗어나 자연을 스스로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기존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하려는 용기.

카를로 로벨리는 이를 두고 과학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작은 정원 같은 세계관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모험. 아낙시만드로스가 시작한 이 모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카를로로벨리 #과학하는인간의태도 #아낙시만드로스 #과학 #도서추천

*도서증정 @samnparker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7 2026.03.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최초로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스, 그의 과학하는 태도에 대하여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최초로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스, 그의 과학하는 태도에 대하여" 내용보기
카를로 로벨리(1956 ~ )는 양자중력(量子重力)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접점에 서서 연구하는 이론가라 할 수 있다. 대표작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그는 양자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실존적)인 관심과 지향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최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2017년 번역 출간된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최초로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스, 그의 과학하는 태도에 대하여" 내용보기

카를로 로벨리(1956 ~ )는 양자중력(量子重力)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접점에 서서 연구하는 이론가라 할 수 있다. 대표작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그는 양자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실존적)인 관심과 지향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최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2017년 번역 출간된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과학적 사고의 탄생]의 개정판이다.

이 책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첫 번째 과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했다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 등에 초점을 둔 책이다. 물론 두 가지 이슈(1. 과학자로서의 면모. 2. 과학과 비과학의 분별,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는 수렴한다.

그럼 저자가 정의하는 과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식탐구의 기초로 삼는 것, 2)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개념을 창안하고 그것을 기존 지식의 일부로 통합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전체가 새로운 일관된 체계가 되었음을 이치에 맞게 설득하는 일, 3) 선대의 지식을 습득한 후 그들이 저지른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해 세상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는 과정 등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610년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기원전 546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이오니아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튀르키예) 서부 해안 지역으로 철학과 예술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다. 당연히 밀레토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연계시켜 말할 수 있다. 밀레토스는 흑해 인근 북부 주민들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곳인 이오니아의 도시들 가운데서 아니 그리스 전체에서도 가장 번영했던 곳이자 남쪽의 거대 문명과 가장 인접한 도시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로마의 저술가 클라우디우스 아엘리아누스에 의하면 밀레토스의 식민 도시였던 암피폴리스의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그리스는 놀랍게도 땅이 우주 공간에서 떨어지지 않고 떠 있는 돌이라고 여기던 문명권이었다. 이런 그리스의 지적 태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로 이토록 혁명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낳은 인물이다. 저자는 당시 밀레토스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같은 학교가 있었는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에서 학교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런 아낙시만드로스를 오늘날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유한한 크기의 천체로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느 쪽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구는 다른 어떤 천체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 동기가 무엇이었건 그의 사상과 연구 결과가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에는 현대 과학의 필수 요소가 빠져 있다. 예컨대 그의 사상에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그 수학적 원리를 규명한다는 개념이 없다. 이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 시대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이르러 비로소 등장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본격적 과학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중에서도 수리 물리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와 히파르코스의 천문학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물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주장한 탈레스의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사람인 아낙시만드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우리가 아는 한 최초로 자연주의 세계관을 제시한 인물이다.

물론 탈레스가 말한 물은 그저 물일 뿐이며 그가 생각한 바다는 신이 아니다. 아메리카 나바로족의 창조 설화를 통해서는 유일신의 이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물이라는 구절을 만날 수 있고 구약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기 전에 혼돈하고 공허한 땅,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는) 수면(水面)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설명한 세상의 역사에는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는 세상 만물을 불, 추위, 더위, 공기, 흙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으로 설명했다. 또한 설명의 대상도 태양, 별, 지구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주의적 관점이 기막히게 들어맞은 분야는 생명과 인간의 기원에 관한 통찰이다. 그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고 생물종의 진화가 기후 조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태어났고 지구의 대기가 건조해짐에 따라 육상으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어떤 생물이 진화해 최초의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다윈의 본격적 연구 이후에야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6세기에 아낙시만드로스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대기 현상의 원인을 자연에서 찾으려 한 그의 생각 자체가 이 세상에 과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켰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더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설명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중에는 놀랍도록 정확한 내용이 더 많다.

비는 실제로 지상의 물이 태양열에 힘입어 증발한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진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지각의 균열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체는 바다에서 처음 탄생해 이후 육상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그 시대에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까? 어쩌면 그 비결은 단순히 기존 설명에 의문을 품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낙시만드로스보다 1세기 후에 밀레토스에서 활동한 헤카타이오스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지도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해 그리스 최초의 역사가가 되었다.

고대 사상사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공자와 맹자,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한 선지자들, 예수와 바울, 부처와 교진여 등이 대표적이다. 책 전편이 흥미롭지만 특히 그런 부분은 이 부분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스승의 주장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울은 모든 복음서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지만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와 그 백성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설명했으나 모세의 오류를 분석하는 언행은 일체 하지 않았다.(131 페이지) 오직 아낙시만드로스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인 탈레스에 반대되게 물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지구를 주장했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지구를 떠받치는 바다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스승 탈레스의 주장에 반해 지진은 대지가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중국 문명이 수 세기 동안 여러 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했지만 스승을 비판하거나 의문시하지 않는 풍조 때문에 과학혁명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담(餘談)이지만 바울이 예수의 메시지를 관념화시켰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저자의 지적(바울은 예수의 말씀을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비판이나 의문 제기 없이 결이 다른 이론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여담에서 본론으로 돌아와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의 사상에 반(反)하는 내용을 세운 부분을 보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스승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고 그것이 광대한 바다이며 대지는 그 바다 위에 떠 있다고 봤다. 따라서 탈레스가 보기에 대지는 원반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직감적으로 바다가 대지를 둘러싸며 떠받치고 있다는 탈레스의 가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광대한 바다를 걷어낸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는 허공에 떠 있는 원통형 대지가 되었다. 과학 발전과정에서 핵심 단계는 지구가 원통형인지 구형인지가 아니라 그것이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점이다.

지구는 원통도 아니고 구체도 아니다. 지구는 양쪽 극으로 갈수록 조금 납작해지는 타원체다. 정확히 말하면 남극이 북극보다 조금 더 납작하므로 타원체도 아니고 서양 배 모양에 가깝다.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는 개념이야말로 인류 사상사의 일대 도약이다. 이것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이다.(92 페이지) 현대의 비과학 분야 학자 중에는 지구를 원통으로 본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관을 원시적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지구가 둥글다고 말한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모델을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야말로 명백한 과학적 오류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은 인류가 지구를 허공에 떠 있는 유한한 천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대혁명이었다. 중국의 천문학이 무려 2천년간 이어져오면서 이런 혁명을 이뤄내지 못한 것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지구가 원통형이라고 생각하다가 알고 보니 구체였다고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변화는 단 한 세대만에 이루어졌다. 우주론은 위대한 혁명을 불러온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당연히 아낙시만드로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도대체 어떻게 땅 아래에도 하늘이 있다는 생각을 해냈을까?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법칙 즉 모든 사물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지구를 떠받치는 것이 없다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모든 별이 북극성을 축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지평선 아래에 허공이 존재해야 한다.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개념은 별의 일주 운동과 완벽히 일치했기에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과는 충돌하는 개념이었다. 이 둘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이 진정한 난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천재성은 지구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떠올렸다는데 있다. 그의 대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과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구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어떤 방향으로도 떨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지만 태양계의 차원에서 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지와 운동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체가 천구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각각 다른 거리의 우주 공간에 퍼져 있다고 본 최초의 인물이다.

쿠푸리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라는 열린 공간을 창안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엄청난 사고의 도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지구가 있는 우주 대신 주변이 하늘로 둘러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지구라는 우주를 제시했다.(106 페이지) 찰스 칸은 우리는 설사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도 지구의 위치에 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만으로 그를 합리적 자연과학의 창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자신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이야말로 인류의 사상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혁명적이며 선구적인 것이었다고 본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이 과소평가되는 뿌리에는 과학과 인문학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현대의 악습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뒷받침할 말을 플라톤의 [파이돈]을 통해 알 수 있다. [파이돈]은 지금껏 영혼의 불멸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세계관을 역사상 처음으로 소개한 문헌이라는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점이 간과된 것은 오늘날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만물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아페이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계가 없는 것(무한)이라는 뜻, 정해지지 않은 것(무규정)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려 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페이론의 본질적 특징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물질이 다른 어떤 곳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자연적이면서도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는 속하지 않는 무언가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물질과 동일하지 않지만 그 물질들에 대해 상당히 통일적 원리로 기능하는 어떤 것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이 유용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아낙시만드로스 습관의 핵심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의 존재를 상상한 것은 이후 과학의 눈부신 성공을 예비한 바탕이 되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식할 수도 없지만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실체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119 페이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데모크리스토스와 레우키포스가 원자를 상상하고 19세기 영국의 존 돌턴이 원자를 연구한 것은 모두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가정한 정신을 이어받은 결과였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자연의 실체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물질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예로 패러데이가 현대 과학에 남긴 큰 공헌을 들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기와 자기 현상을 아우르는 통일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패러데이는 심층 실험을 통해 관련 현상을 연구한 결과 전자기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장(場)은 마치 어디에나 뻗쳐 있는 거미줄처럼 모든 공간을 채우는 실체다. 그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패러데이의 역선(力線)이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장,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시공간, 가연성 물질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플로지스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핸드릭 로렌츠의 에테르, 겔만의 쿼크, 파인만의 가상 입자,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파동 함수, 현대 기초 물리학에서 우주의 바탕으로 가정하는 양자장 등은 모두 인간이 직접 인지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현상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가정하는 이론적 실체들이다. 이들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에 부여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서양과학 전체가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 뒤에 숨은 수학 법칙을 찾기 위해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등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바 수학적 법칙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일 가능성이 크다.(127 페이지)

저자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결정적인 과학 법칙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는 말로 자신의 주안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법칙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고 더 나은 법칙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이론 사이에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점이 있어 우주에 최종적이고 절정적인 법칙을 확인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이 두 가지 이론을 통합하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은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온 후에도 뉴턴의 이론이 유용한 영역이 있다.

저자는 과학을 우아하게 설명한다. 즉 과학이란 우리가 너무 무지하고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학문으로 그것은 우리의 무지와 호기심에서 태어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도전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증명이나 합리적 비판과 분석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과학은 더 멀리 보는 일이다. 과학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는 관점에 있다. 새로운 과학 이론은 과학자의 상상력에 힘입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존의 지식이 조금씩 수정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 구조를 무(無)에서 창조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연히 얻은 개념 구조 속에서 생각한다. 생각은 그 대상인 현실과 부딪히고 맞서면서 점점 변화한다. 과학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답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새로운 답이 나오면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 즉 과학적 사고는 언제든 배울 준비가 된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 탈레스에 대해 한 존중과 비판의 관계를 논한다. 그것은 모순 없는 태도다. 우리는 동료 시민에게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필요하다면 그들을 비판할 준비도 되어 있다. 관건은 무조건 거부도 무조건 수용도 아닌 우리의 이성을 사용해 대립과 대화, 판단을 엮어 내는 일이다.

짐작했겠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명시적으로 신(神)을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며 기독교를 믿는 나는 신을 입에 올리는 또는 찾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자연과학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신을 위한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신앙과 학문을 통합할 수 있을까? 충분히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 통합 작업을 한 책을 보며 명쾌하거나 시원한 주장을 접한 바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그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인지적, 사회적, 심리적 경험을 체계화하는 어떤 본질의 상징인지도 모르는 신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이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마음은 무엇일까?라고 묻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했듯 생각은 이 세상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도구다.(251 페이지)

저자는 속이 텅 빈 진실 안에 숨든 지식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하든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왕국을 선택하느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카를로 로벨리의 말은 자크 모노의 말과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하다. 가령 그런 점은 “우리의 지식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다. 우리가 알던 지식이 금세 뒤바뀌고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삶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는 저자의 결론격의 말이 있기에 더욱 확실해진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제시한 아페이론을 사유의 수준이 갑자기 현저하게 높아진 것이라 설명하며 관건은 어떤 존재론적 가설을 던짐으로써 현실을 넘어갔다면 이제 현실로 다시 내려와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라 말한다.([세계철학사 1] 70, 72 페이지) 늘 생각하는 바이다. 자연과학에 몰입하느라 그간 잊고 있었던 인문학 특히 철학 그라운드로 복귀해야 함을 느낀다. 저자도 인용(“종교는 지성의 파괴적 힘에 맞서는 사회의 방패“)한 앙리 베르그송은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가야 하듯 신앙과 학문,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m******1 2026.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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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내 지능과 별볼일 없는 내 삶을 더욱 가치 있는 길로 안내한다고 해야 할까? “스티븐 핑커”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서 말하는 훌륭한 마음 작동법에 대한 메뉴얼을 하나씩 마음에 쌓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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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내 지능과 별볼일 없는 내 삶을 더욱 가치 있는 길로 안내한다고 해야 할까? “스티븐 핑커”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서 말하는 훌륭한 마음 작동법에 대한 메뉴얼을 하나씩 마음에 쌓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그 매뉴얼이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책은 과학을 삶의 철학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서도 그 가치가 더욱 빛이 나지 않을까 싶다.


 솔직하게 처음부터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 내 마음에 크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이해시키는 친절한 과학자이자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좋았다. 난 어릴 적에 공부를 못했다. 기초지식들이 매우 부족했기에 알고 싶은 과학 교양이지만 쉽지 않았기에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친절함이 “카를로 로벨리”의 책에서는 많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면서 그 밖에도 여러 지식과 여러 삶의 경험이 더해지고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다시 접하고 또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과학이란 지식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매우 큰 통찰력을 주는 글을 쓰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한 분야의 “대가” 라고 말을 하면 이루어 낸 성과나 업적만을 말하지만 “대가” 중에서는 본인이 이루어 낸 성과들을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킴으로써 “선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난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거장” 중에 “거장” 이라고 표현하고 싶고 “카를로 로벨리”도 그런 진정한 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란? 무엇일까? 그저 과학자의 밥벌이 수단일까? 현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리 살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순수한 지식들이 더 이상 머리에 남아있지 않고 삶에 찌든 때들이 머릿속에 무겁게 남아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과학을 기억하고 흐릿하지만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기술, 예측, 도구라는 현실과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그리지 않을까 싶다. 상대적으로 소수이긴 하겠지만 학자이던 아니던 과학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삶을 살던 과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과학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매우 훌륭한 “그 무엇”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난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난 “그 무엇”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그래도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을 해보자면 “통찰력”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난 과학을 모르지만 과학적 사고와 과학이 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난 2020년에 41살이라는 나이에 소소하게 은퇴를 해서 지금도 역시 자유롭게 살고 있고 은퇴를 시작할 때에 비해서 순자산도 2배로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어렵게 생각하고 실제 어려운 것이 맞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굉장히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투자인 것이 맞다. 특히 난 고객이 없다. 오로지 내가 가진 돈으로 투자를 해서 얻은 투자 소득으로만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진 것들이나 내 모습들이 하찮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난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깨우치면서 현재에 있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과학자들이 알려주는 사고하는 방법과 과학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철학이었다. 특히 불확실성에서 모든 순간과 결정 및 그로 인해 얻어지는 모든 결과들에서는 해답 같은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해답을 쫓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지금 내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에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 역시도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식의 격차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키는 매우 큰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정보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을 때 진정한 발전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 주는 철학은 내면에서 찾아오는 마음의 공백을 신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채워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이 책은 그 과정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부터 잘못된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헛발질을 할 때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솔직하게 대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가치 있는 길로 이끈다고 믿는다. 난 이것이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라고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YES마니아 : 로얄 l*******8 2026.04.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야기 -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 신간 /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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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내가 알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카를로 로벨리의 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를 소개합니다.‘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라니—어떤 태도를 가져야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걸까?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 있는 걸까?이런 질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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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알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카를로 로벨리의 신작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를 소개합니다.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라니—어떤 태도를 가져야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걸까?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한 작은 마을에 살았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라, 왜 아낙시만드로스인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결론은 그의 이론은 현대 과학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모든 이론이 옳았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벨리는 그의 ‘사상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합니다.


기원전, 과학적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자연 현상을 신의 의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한 지역에서, 세상을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등장하는데요. 그게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구는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지구가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천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개념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생각이었죠.

이것은 마치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지구는 둥글고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지구는 네모이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뒤집는 것과 비슷한 충격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실이라면요 ^^)


그렇다면 저자는 왜 그의 ‘태도’를 강조하는 걸까요?

로벨리는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과학적 이론, 개념들 역시 절대적인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아낙시만드로스처럼, 기존의 관념을 의심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은 과학이 우리의 무지와 호기심에서 태어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도전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실에 기반한 증명과 합리적인 분석, 비판 앞에서는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죠. 

과학적 지식은 우리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확장시켜 나가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질문과 의심이 존재한다고 말이죠.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다시 강조하며 우리는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 삶은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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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7 2026.04.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