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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슬픔 속에 뚜렷해지는 기쁨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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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글과 내 눈 사이가 뿌옇다.내 안으로 들어오는 책 속 정보와 나의 인식사이도 마찬가지로 뿌옇다. 새로운 것들을 마냥 새롭게, 뚜렷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글 속에서, 내 안에서 표류한다.⠀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그래서 #슬픔의물리학 (#게오르기거스포디노프 지음 #문학동네 출판)에서 만난 오래된 신화 속에서 부터 주욱 미궁에 갖혀져있는 미노타우르스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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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글과 내 눈 사이가 뿌옇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책 속 정보와 나의 인식사이도 마찬가지로 뿌옇다. 새로운 것들을 마냥 새롭게, 뚜렷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글 속에서, 내 안에서 표류한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슬픔의물리학 (#게오르기거스포디노프 지음 #문학동네 출판)에서 만난 오래된 신화 속에서 부터 주욱 미궁에 갖혀져있는 미노타우르스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괴물이 아니다. 자신이 행한 죄는 아무것도 없으나 자신이 지은 죄로 한창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갖혀진 가엾은 인간 아이일 뿐이다.

책 속의 소년 ‘게오르기’도 미궁 속 길을 잃은 인간 아이이다. 그의 미궁은 타인의 기억이다. 타인에게 자신이 삽입되어 그 사람이 숨겨놓은, 심지어 그 사람조차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들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공감한다. 공감의 방식은 슬픔에 감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나를 버리고 슬픔이라는 통로로 다른 사람에게 삽입되는 과정을 할아버지에게도, 민달팽이에게도, 개미에게도 겪으면서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고 있는 소년은 어디까지가 자신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소년은 확장되고 있을까 미궁 속에 갖혀있는 미노타우르스인가.

소년의 끝없는 확산은 공기 중에 기체가 확산되는 것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가 전체를 공감한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결국 소년도, 독자도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모든 것이 ‘나’이면서 그와 동시에 세상 그 자체라고.

신화 속 마노타우르스는 괴물도 아니고 지성이 없는 동물도 아니었다. 소를 닮은 얼굴 아래에는 여린 살이, 심장이 펄떡이고 있는 어린 인간이었다.

엄마를 잃고 인생을 잃고,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살아갈 이유를 잃고, 오로지 손에 잡힐듯 그의 안을 그의 주변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슬픔만이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는 따끔거리는 자극만이 유일한 동행자로 남은 채.

소년 ‘게오르기’가 신화 속 미노타우르스에 병적으로 공감하듯이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이 안의 모든 생명체의 슬픔을 공감한다. 아마 어떤 종 일지라도 슬픔이 기압을 가진 공기처럼 나를 짓누르는 것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들숨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산소가 그러하듯 슬픔도 우리를 움직이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슬픔이 우리에게 필요없고 제거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이라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의 슬픔도 함께 감당하는 것이 응당 당연한 것일테다. 슬픔이 아무리 우리를 살아가게 하더라도 아프다는 것만큼 여전하니까, 나눠 부담한다면 슬픔이 우리를 억누르는 물리력이 조금은 약해질 것이고, 좀 더 견딜만해지겠지.

그렇게 슬픔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함께 나누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쁨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뚜렷한 증거가 될 것이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지만 입꼬리와 화학작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충만함이 내 안을 채우는 경험. 글 속 주인공이 슬픔을 공감하듯 우리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다.

슬픔이 세상 한 쪽에 놓여있다면 같은 선상에 기쁨도 분명히 놓여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슬픔의 물리학은 기쁨의 물리학도 될 수 있다.

슬픔이 도처에 있듯이, 기쁨도 도처에 있다.


k********4 2026.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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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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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타인의 감정을 너무 깊이 느껴본 적 있다면, 이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나 역시 작은 표정 변화나 말투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쉽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평소에는 무덤덤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흐름에 아주 예민하다. 영화 속 폭력 장면이나 끔찍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화면 속 고통이 내 몸으로 전해지는 듯 느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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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 

타인의 감정을 너무 깊이 느껴본 적 있다면, 이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나 역시 작은 표정 변화나 말투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쉽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평소에는 무덤덤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흐름에 아주 예민하다. 영화 속 폭력 장면이나 끔찍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화면 속 고통이 내 몸으로 전해지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슬픔의 물리학』의 주인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상상을 하게 됐다. 혹시 이 작품을 쓴 작가 역시 타인의 감정을 깊게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나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녀, 정말 타인의 기억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소년 게오르기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 능력은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버거운 짐에 가깝다. 남의 슬픔과 상처, 오래된 고통이 그대로 자신의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때문이다. 


게오르기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전쟁의 기억, 가족이 숨겨온 비밀, 오래된 후회와 상처까지 직접 겪듯 체험한다.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여러 세대의 기억으로 번지고, 개인의 인생은 역사와 이어지며 결국 신화의 세계까지 닿는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소년의 성장담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품고 살아가는 남녀노소를 총망라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노타우로스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는 흔히 그를 괴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를 버려지고 이해받지 못한 존재로 다시 본다. 세상이 붙여 놓은 이름, 타인의 오해, 외면당한 슬픔 속에서 길을 잃은 존재로 말이다. 화자가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같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미궁은 누군가의 화석화된 망설임이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꿰뚫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미궁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선택하지 못한 마음, 미뤄 둔 슬픔, 두려움 때문에 외면한 감정이 굳어 만들어진 구조다. 결국 이 소설 속 미궁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복잡한 슬픔의 형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슬픔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 저자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읽게 되는 작품이었다.


이 모든 메시지를 하나의 줄거리로 만들지 않고, 짧은 기록과 단편적인 기억들로 표현한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기억이라는 것이 원래 뒤죽박죽 뒤섞여 있지 않은가. 하나를 꺼내다 또 다른 하나를 꺼내게 되는 추억 여행처럼, 이 작품들도 그러했다.


단순하게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멈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 시인이기도 한 작가의 필력이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개미를 탐구하는 일상, 할아버지 과거를 듣는 추억, 친구의 연애담 등 거창한 사건보다 아무 일 없던 평범한 날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독파(@dokpa_challenge) 앰배서더 독파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슬#장편소설 #기억수집 #기억을훔쳐보는능력

#신간 #책추천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픔의물리학 #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 #문학동네

p*******3 2026.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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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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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책을 다 읽고도 ‘그래서 무슨 이야기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감정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바로 ‘슬픔’이란 감정이다. 솔직히 이 책은 정말 난해하고 어렵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여러 기억들과 감정의 파편들을 따라가야만 한다. 어떤 줄거리가 명확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책을 덮고 나서도 당최 뭘 읽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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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책을 다 읽고도 ‘그래서 무슨 이야기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감정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바로 ‘슬픔’이란 감정이다. 솔직히 이 책은 정말 난해하고 어렵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여러 기억들과 감정의 파편들을 따라가야만 한다. 어떤 줄거리가 명확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책을 덮고 나서도 당최 뭘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슬픔의 물리학’ 이라는 제목 그 자체이다. 


  물리학이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하는 학문인 것처럼, 화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인 슬픔을 기억의 조각들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여러 세대, 다양한 인물의 기억을 넘나 들며 ‘슬픔’이란 감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기서 얘기하는 기억들은, 주인공이 타인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기억들이다. 주인공은 타인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자신의 아버지도 되었다가, 할아버지도 되었다가, 때론 민달팽이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기억을 엿볼 수 없게 된 뒤로는 온갖 도시를 여행하며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 모든 기억들과 이야기에는 슬픔이란 감정이 또렷이 자리잡고 있다. 슬픔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전해지고, 축적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그 슬픔에 이입한다는 뜻이다. 화자는 그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다음엔 이야기를 수집하는 데 엄청나게 몰두한다. 그에게 있어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슬픔)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그릇과 같다. 아이를 돈 주고 팔았다는 어머니는 화자에게 이 얘기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을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은 이야기의 그릇을 띄고 나서야 어렴풋이라도 그 형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언어는 이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


  화자가 수집하는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사소하고 중요치 않다. 마치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미노타우루스처럼 굉장히 외롭고, 고립된 존재들이다. 화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함으로써, 어떻게든 그 존재들을 기억하고 붙잡고자 한다. 소립자물리학을 거론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양자는 관찰이 될 때, 입자로 거동하기 시작한다. 즉, 우리의 슬픔과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관찰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미노타우루스이다.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늙어가고, 종국엔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 그러나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아주고, 관찰한다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의미를 확장한다면, 문학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 외롭고 고립된 존재들, 사라지는 것들. 그 모든 것을 붙잡고 포착하기 위한 노력들이 결국은 문학이라는 형태로 태어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크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 근원적인 외로움을 위로해주는 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노타우루스라는 존재와 슬픔이 여러 세대를 거쳐 축적되어왔다는 사실이 ‘아 나만 이렇게 외롭고 슬픈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익숙한 서사가 아닌 독특한 형식의 문학을 보고 싶은 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도전해보시길! 앞에서 어렵다, 어렵다 말해놓고 이 책에 슬쩍 나왔던 ’가우스틴‘ 얘기가 궁금해서 작가님의 다른 책인 ’타임셸터‘를 읽을 책 목록에 담아두었다.😎


 +번외로 표지를 정말 정말 잘 뽑았다. 슬픔이 담긴 페트리접시나 물리학 서적을 연상케 하는 표지가 너무 좋다.


🔖 진정한 정체성은 단 하나뿐이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 다른 살아 있는 존재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 덧없 는 존재로서 역시 덧없는 존재인 타인을 귀하게 여기는 것.(p.269)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역겹도록 외로워진다.“(p.319)


🔖 작고 하찮은 것들 속- 삶은 그런 곳에 숨고, 그런 곳에 둥지를 튼다. 끝까지 남아 반짝이는 것들, 어둠이 내리기 전 마지막 빛 이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p.387)

k***2 2026.04.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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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슬픔과 기억, 그리고 공감의 미로를 통과하는 이야기
"『슬픔의 물리학』 슬픔과 기억, 그리고 공감의 미로를 통과하는 이야기" 내용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 문학동네 (펴냄)불가리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나는 1913년 8월의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이 평범한 이야기의 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게오르기는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일종의 ‘병적 공감’을 겪는다. 낯선 설정이
"『슬픔의 물리학』 슬픔과 기억, 그리고 공감의 미로를 통과하는 이야기" 내용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불가리아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나는 1913년 8월의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이 평범한 이야기의 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게오르기는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체험하는, 일종의 ‘병적 공감’을 겪는다. 낯선 설정이지 이상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실제로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때로는 그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니까.


이 소설은 줄거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스며든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할아버지의 과거, 이름 모를 타인의 삶까지 뒤섞이며 하나의 거대한 미로를 만든다. 그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을 연결하는 어떤 물질처럼 느껴진다.






내가 관심을 쏟는 것들은 무게가 없다. 과거, 슬픔, 문학

이 문장은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아니 슬퍼서 아름답다.

무게가 없다는 건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고, 붙잡을 수 없다는 건 결국 흘러가버린다는 뜻이니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슬픔은 손에 쥐려 하면 더 희미해지고, 문학은 읽는 순간조차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그런 것들에 마음을 준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는 건 무게를 가질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은 어딘가 체념처럼 들리면서도 한편으로 다정하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마음을 주고 마는 사람의 고백 같다.





불가리아 내셔널 어워드 소설 부문 수상

PEN 문학상 번역서 부문 최종 후보




병적 공감 증후군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병적 공감 혹은 강박적 공감. 신체화 증후군....















읽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건, 이 작품이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다. 보통 슬픔은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그려지지만, 이 소설은 오히려 슬픔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문장들은 종종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낯설면서도 따뜻하다.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감정의 최상위에 있다고 가끔 생각한다. 왜냐면 슬픔은 언제나 무언가를 깊이 사랑했던 자리에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슬픔은 상실의 증거이자, 그 이전에 존재했던 애정의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 앞에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쁨은 나눌 수 있어도, 슬픔은 겹쳐질 때 더 깊어지니까.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결국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겪어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작가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슬픔을 밀어내야 할 감정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깊고 오래된 통로가 아닐까?


나는 이제 슬픔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끝내 이해하고 싶은 감정으로.







#장편소설 #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 #불가리아 #슬픔의물리학




r******7 2026.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장편소설/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슬픔의 물리학
"[장편소설/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슬픔의 물리학 " 내용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불가리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쓴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은 작품에 대한 정보(작가나 장르 포함)를 모르고 보았을 때에는 과연 이것이 어떤 장르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인데 그 이유는 최근 물리학과 관련한 지식 교양서가 많이 출간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불가리아] 슬픔의 물리학 " 내용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쓴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은 작품에 대한 정보(작가나 장르 포함)를 모르고 보았을 때에는 과연 이것이 어떤 장르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인데 그 이유는 최근 물리학과 관련한 지식 교양서가 많이 출간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불가리아 작가라고 하니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더욱 기대되었던 게 사실이다. 작품은 확실히 독특함을 선보인다. 쉽다고만 할 수 없는데 괜히 물리학이란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읽다 보면 또 그 묘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작품 속에선 병적 공감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오르기라는 소년이 등장하는데 혹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참 힘들겠다 싶은데 만약 그것이 지나쳐 병적 수준에 달할 정도라면 이 또한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데 작품 속에선 주인공이 그런 경우이다. 


주인공은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체제 속 불가리아로 어린 소년은 부모의 맞벌이로 인해 온종일 어두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미궁에 갇혔던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 하는 모습도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소년이 보이는 병적 공감 증후군은 어쩌면 소년이 처했던 외로웠던 유년기 시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는 성인이 된 후로 사라진다.



작품 속에서는 소년이 공감했던 대상의 이야기가 마치 소년의 이야기인 듯 그려지는데 특히 슬픔이라는 감정이 기억과 연결되어 잘 그려진다. 하지만 가족, 이웃,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생물에 까지 공감했던 소년의 능력은 성인이 된 이후 사라져 버리고 이후 소년은 이야기를 수집하고자 애쓴다. 


그렇게 소년이었던 남자가 마주하게 되는 많은 이야기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유명한 인물도 어떤 커다란 업적을 보유한 인물도 아니다. 힘든 시대 속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삶에서 경험했던 슬픔의 이야기, 그 슬픔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만드는데 그 자체로는 존재감이 작을지 모르는 마치 물리학의 원소 같은 이야기의 조각들이겠지만 그렇다고 분명 존재하는 것들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슬픔의 표현을 이렇게도 그려낼 수 있구나 싶어 새삼 작가란 사람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슬픔의물리학 #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 #문학동네 #리뷰어스클럽 #장편소설 #불가리아 #컬트클래식 #유기와슬픔의역사 #책 #독서 #도서리뷰 #책추천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26.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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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슬픔으로 온다: <슬픔의 물리학>(문학동네, 2026)을 읽고
"공감은 슬픔으로 온다: <슬픔의 물리학>(문학동네, 2026)을 읽고" 내용보기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슬픔의 물리학 <슬픔의 물리학>(문학동네, 2026)은 "강박적 공감-신체화 증후군"이라는 병을 지닌 작가인 게오르기가 종말을 위해 수집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고모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그는 버림받은 기억, 사랑했던 기억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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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슬픔의 물리학

 <슬픔의 물리학>(문학동네, 2026)은 "강박적 공감-신체화 증후군"이라는 병을 지닌 작가인 게오르기가 종말을 위해 수집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고모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그는 버림받은 기억, 사랑했던 기억을 찾아낸다. 그의 능력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미노타우로스, 황소, 파리 등 비인간 존재에게도 이입한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아이를 낳아 돈을 버는 사람, 동네 유부녀들을 홀린 철학자, 살만 루슈디를 만났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야기까지. 화자는 종말 후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모두 수집한다. 그가 이야기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슬픔은 이동한다

어떤 이들에게 공감은 고통을 통해 열리는데 내 경우는 슬픔을 통해 열릴 때가 더 많다.

390쪽

 책의 말미, 슬픔의 물리학을 설명하면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다. 화자는 슬픔은 중력장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391쪽)아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곳의 슬픔은 다른 곳의 다른 사람도 슬프게 만들 수 있다. 


 이동하는 슬픔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은 이야기를 타고 전해오는 슬픔에 반응한다. 핀란드 시인의 노화에서 비롯된 서글픈 사건을 보며 유럽 반대편의 고향이 생각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 미궁 속으로 들어간 까닭도 그 때문이다. 


 슬픔은 이야기의 형태를 통해 공감으로 나타난다. 문화권이 다르더라도 슬픔을 느끼는 원인과 경로는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부재, 노화로 인한 서러움, 서글픔, 이미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비탄, 비애 등. 공통적인 감각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

 화자는 책 전반에 걸쳐 미노타우로스를 소환한다. 미노타우로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로 황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다. 크레타의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결국 미노타우로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은 테세우스의 손에 죽는다. 


 화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가 겪고 있는 멜랑꼴리, 외로움은 미노타우로스가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미궁은 나와 타자를 가로막는 장치였지만 결국 실을 통해 바깥과 연결되기도 한다. 여기서 실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야기다. 나와 타자 사이의 멀고 복잡한 공간을 지나 공감하게 해주는 것. 


 <슬픔의 물리학>은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공감하는지를 저자의 독특한 사고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e********m 2026.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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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슬픔의 물리학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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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삶의 그 반복성 ...... 그 질척이고 피로하고 살인적이고 혐오스럽지만 피할 수 없고 때로는 경이로운 삶의 반복성. 슬픔의 물리학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슬픔의 물리학』은 개인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곧 한 국가의 역사, 더 나아가 동유럽이라는 공간 전체가 겪어온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특히 제2차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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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삶의 그 반복성 ...... 그 질척이고 피로하고 살인적이고 혐오스럽지만 피할 수 없고 때로는 경이로운 삶의 반복성. 

슬픔의 물리학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슬픔의 물리학』은 개인의 서사로 시작하지만, 곧 한 국가의 역사, 더 나아가 동유럽이라는 공간 전체가 겪어온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가리아와 그 주변 국가들—헝가리와 같은—이 공유해온 정치적 긴장과 역사적 균열은 작품 전반에 깊게 스며 있다.


 이 책에서는 국가와 체제의 변화가 개인의 감정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종교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학교에서 '하느님'이라고 외쳤더니, 선생의 얼굴이 질린 모습, 아버지가 입을 다물라고 하는 부분) 신을 잃은 자리에는 기억이 남고, 그 기억은 곧 슬픔의 형태로 응고된다. 이때 슬픔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시대와 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적 산물로 읽힌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작품은 현재의 세계와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 갈등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잔해 위에 서 있다. 『슬픔의 물리학』은 그 잔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기억을 복원하려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위로를 제공하지 않는다. 


 문체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미로처럼 얽힌 서사 구조는 시간의 직선성을 거부하고, 기억의 파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 자체가 얼마나 비선형적인지를 반영한다. 난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지만 그 상실감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 감각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미로’의 이미지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 자체를 드러내는 은유에 가깝다. 출구를 전제하지 않은 구조, 혹은 애초에 출구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그리고 그 상실은 불안이라기보다, 오히려 익숙한 상태에 가깝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곳이 아니라, 길을 잃은 채 머무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억을 살아내는 능력’이라는 설정은 이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환원하기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자신의 내부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결국 이 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 일종의 짐에 가깝다. 기억은 많아질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잠식하며 흐릿해진다. 그 속에서 개인은 점점 희미해지고, 남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의 잔여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기억하려는 시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통해 과거를 보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소설은 그 반대의 방향을 보여준다. 기억은 보존이 아니라 변형이며, 때로는 왜곡이고, 결국에는 소멸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억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남긴 감각—설명되지 않는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내내 어떤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흩어지고, 다시 이어지며, 다시 무너진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역시 명확한 의미나 방향을 가지지 않은 채, 수많은 파편 위에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슬픔의 물리학』은 슬픔을 이해하려는 텍스트가 아니라, 슬픔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실험은 끝내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도달하려는 지점은 해석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p. 38 우주의 정의로움에 대한 의심이 또 다시 일어났다. 그 여인은 언제가 버려졌던 세 살배기 소년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령이 될 때까지 살았다. 어쩌면 그것이 형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그 아이를 날마다 바로 앞에서 보는 것. 버려진 아이를. 


p.42 할머니는 플라톤을 읽지 않고서도 이름의 본유적 정확성에 대한 플라톤 사상을 공유했다. 


p.52 집 전체가 조용하고 밝다. 커튼 틈으로 새어든 햇살이 테이블 위 도자기 그릇 위로 딱 맞춰 내려앉는다. 마치 전쟁은 일어난 적도 없는 것처럼. 




p. 55 쫓기면 결백한 사람도 도망친다.


p.79 죽은 자들이 내게 읽는 법을 가르쳤다. 이 문장을 다시 쓰며 이것이 내 의도와는 다른 것,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게 읽는 법을 가르친 이들은 더이상 우리 곁에 없다. 그때 이후로 내가 읽은 글들은 주로 죽은 이들이 쓴 것이었다. ...... 언어 아래에 그토록 많은 죽음이 잠들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p.180 소설의 정원. 고전소설들을 비옥한 땅에 묻고 거름을 준 다음 그중 어떤 작품이 열매를 맺는지 보는 것이다. 


p.269 "그 정체성이라는 게 네게 뭘 주더냐, 이 멍청아?"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말을 놓았다.) "피, 전쟁, 찢긴 몸뚱이, 인간 폭탄 ㅡ 그게 네가 받은 유산이야. 진정한 정체성은 단 하나 뿐이지 ㅡ 살아 있는 존재로서 다른 살아 있는 존재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 덧없는 존재로서 역시 덧없는 존재인 타인을 귀한게 여기는 것." 


p.270 "바로 그거지, 인간은 만물의 척도야. 그리고 이 척도를 초월해 더 오래 지속되고 인간이 죽은 뒤에도 남는 모든 것은 본질상 비인간적이며, 원칙적으로 슬픔과 불화의 원천이야." (지금 내말 듣고 있어? 듣고 있군, 그걸 하라고 만들어낸 인물이니까.) 


p.403 삶의 그 반복성 ...... 그 질척이고 피로하고 살인적이고 혐오스럽지만 피할 수 없고 때로는 경이로운 삶의 반복성. 




d*********6 2026.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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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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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늘 변화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살아 있지만 썩어가고, 끊임없이 소멸하는 존재. / p.266이렇게 서평이라는 이름의 기록을 남기게 된 지도 벌써 오 년이 되어간다. 매번 잊지 않기 위해 줄거리를 적고,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감정까지 적고 있지만 늘 어렵다. 익숙해질 시기가 된 것 같지만 그게 쉽지 않다. 특히, 이야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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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늘 변화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살아 있지만 썩어가고, 끊임없이 소멸하는 존재. / p.266


이렇게 서평이라는 이름의 기록을 남기게 된 지도 벌써 오 년이 되어간다. 매번 잊지 않기 위해 줄거리를 적고,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감정까지 적고 있지만 늘 어렵다. 익숙해질 시기가 된 것 같지만 그게 쉽지 않다. 특히, 이야기의 흐름을 도저히 모르겠는데 문장이 파고드는 작품이면 그야말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를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부족한 글솜씨로는 이 애매모호하지만 끌리는 이야기를 도저히 풀어낼 자신이 없어진다.


이 책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라는 불가리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우연히 작가의 전작이었던 <타임 셸터>에 대한 한줄평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너무 혼란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종종 그런 작품들을 마주하기는 하지만 얼마나 그게 강렬하면 그렇게 남겼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후에 그 작품을 구매했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 신작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라는 참새는 당연히 새로운 작품에 눈길이 갔다.


소설의 화자는 스스로 1913 년 8 월에, 1968 년 1 월 1 일에, 1944 년 9 월 6 일에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각각 다르게 태어난 남성들이 곧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는 화자의 내용이다. 어느 날에는 1913 년의 남성이 어렸을 적 길을 잃어 제분소에 버려질 뻔한 이야기를, 또 어느 날에는 1968 년 1 월 1 일에 태어난 남성이 살았던 남성의 불완전한 불가리아 시기를 관통하기도 한다.


되게 난해하고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파편적으로 튄다. 마치 누군가의 뒤섞인 일기장을 시간 개념이 없이 쭉 읽게 되는 느낌이다. 불가리아의 시대상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단테 <신곡>의 내용,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반적으로 많은 분야의 이야기가 접목되었다는 점에서 꽤 오래 붙들게 되었던 책이었다. 꼬박 하루가 걸렸다.


개인적으로 <부주의한 살해>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개미를 살해했다는 짧은 문장의 글이다. 280~285 mm의 신발로 눌러 죽이게 된 개미들. 그 발바닥의 압력만큼이나 죄책감도 크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의 공감이 가장 크게 다가온 것 같다. 나 역시도 부주의하게 많은 개미들을 살생했다는 게 크게 와닿았다. 짧고 굵게 마음을 치고 들어온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경험했던 이들의 아픔과 분노, 외로움과 죄책감 등 다양한 이름의 슬픔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논리적인 머리로 이해할 수 없지만 감성적인 마음이 더욱 동했다. 서두의 그 애매모호한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늘어나는 인덱스 갯수만큼이나 머릿속도 복잡하다. 이렇게 글을 적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부족한 글로는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니, 읽고 직접 느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골드 m*******6 2026.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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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_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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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지원 도서 '슬픔의 물리학' 이라는 도서의 제목을 보고 과학 분야 도서로 착각하기 쉽다. 표지도 마치 실험 실에 놓여 있을 것 같은 왠지 중요한 한 방울 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도서 '슬픔의 물리학'은 '소설'이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장편소설'이다. 이 도서를 알게 된 것은, 문학동네 '독파'의 zoom 북토크에서다.이 도서가 아닌 다른 도서에 대한 북토크였는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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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지원 도서 






'슬픔의 물리학' 이라는 도서의 제목을 보고 과학 분야 도서로 착각하기 쉽다. 

표지도 마치 실험 실에 놓여 있을 것 같은 왠지 중요한 한 방울 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도서 '슬픔의 물리학'은 '소설'이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장편소설'이다. 


이 도서를 알게 된 것은, 문학동네 '독파'의 zoom 북토크에서다.

이 도서가 아닌 다른 도서에 대한 북토크였는데, 편집자님이 도서를 추천해서 이 도서의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다음에 읽어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도서를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도서를 살피는데, 띠지에 '"나는 모든 종류와 장르를 망라하는 책을 상상한다."'라고 적힌 문구가 보였다. 

이게 어떤 의미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상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이 도서로의 연결점이자 기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자 소개로 시선이 갔다. 


저자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지이자 시인, 극작가라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불가리아 작가 중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저자의 책이 처음이라는 점이 부끄러웠다. 책을 더 알아가고 읽어가야 겠다.


저자는 날카롭운 통찰이 빛나는 유머와 아름다운 문장이 특징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유럽의 프루스트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게다가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최초의 불가리아 작가'였다. 

세 번째 장편소설인 '타임 셸터'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  



*문장 기록 


  •  그 여인은 언젠가 버려졌던 세 살배기 소년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령이 될 때까지 살았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그 아이를 날마다 바로 앞에서 보는 것. 버려진 아이를.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소로 산산이 부서진 채 돌아왔다. 수많은 호텔과 공항과 기차역을 전전하며 보낸 지난 수녀의 시간에서 남은 것은 감상을 휘갈겨 적은 노트 두어 권뿐이었다. 

  •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뒤엉켰는지 가을이 좀처럼 물러가지 않아서 모든 계절이 가을이었다. 전 지구적 가을...... 여행도 슬픔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나는 다른 방버을 찾아봐야 한다. / 가장 슬픔 곳은 바로 세상이다. 


  • 자신이 평생 상상으로 지어냈던 나라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슬픔의 물리학'은 타인의 기억 속에 잠입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화자 '게오르기'가 종말 이후를 대비하며 온갖 이야기를 수집한다는 콘센트를 가지고 있다. 종말 이후, 까지는 그렇구나 했는데, 뒷 부분이 특이했다. 아니, 왜, 종말 이후를 대비하면서 이야기를 수집하는 거지? 


 의문, 궁금함, 기대감. 


그런데, 프롤로그를 펼치고 그 페이지만 보아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 나는 1913년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 나는 해가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났다. 오늘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죽을 것이다. 


이러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같이 존재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싶어 다시 읽었다. 

프롤로그의 끝은 이렇다. '나는 이들이다.'


그리고 도서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우선, 이런 도서는 처음이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낯선 페이지에서도 다음을 향해 시선을 이어가게 된다. 어쩌면 그건 매력일 수도 있다.  


특별한 공감 능력을 지닌 화자. 극히 드물고 완치가 어려운 '강박적 공감-신체화 증후군'.

그리고 저자의 그러한 특징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사람은 때로는 타인의 기억을 궁금해하고, 그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정작 자신의 기억 조차 온전히 알지 못하고 그 기억 속의 자신의 감정과 슬픔 조차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생각하지 못한 인물의 설정과 스토리의 흐름,

이어지는 스토리는 글의 연결성을 주지만, 그 가운데 보여지는 여러 장면과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슬픔은 이야기되기 전에는 아직 온전한 슬픔이 아니며 이야기됨으로써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쉽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지는 못하겠다. 어렵다, 그렇지만, 독특한 책. 


비슷하게 읽어갈 다른 책을 말하기 어려운 책이며, 부분 부분의 스토리가 아니라 표지의 저자 소개 부터 마지막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읽어내려가야 그 흐름의 끝에 자신의 생각으로 사유가 남게 되는 도서.  

꼭꼭 정독하며 읽어내려가는 독서에 적합한 도서이며, 상상하기 어려워 낯설면서도 읽어가고 싶어지는 깊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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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7 2026.04.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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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곳은 바로 세상이다 : 슬픔의 물리학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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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과거로 돌아가는 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자의와 무관하게 과거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예가 알츠하이머병이다.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세 번째 장편소설 <타임 셸터>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과거의
"가장 슬픈 곳은 바로 세상이다 : 슬픔의 물리학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내용보기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과거로 돌아가는 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자의와 무관하게 과거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예가 알츠하이머병이다.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세 번째 장편소설 <타임 셸터>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을 위해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을 제공하는 클리닉을 배경으로 한다. 작년 초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기억 속의 시간(또는 시간 속의 기억)을 공간으로 재현한다는 설정이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두 번째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을 읽으며 기억과 시간, 공간이라는 개념이 이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슬픔의 물리학>은 타인의 기억 속에 잠입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 '게오르기'를 화자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끝 무렵의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게오르기는 일하느라 바쁜 부모가 못 놀아주는 대신 사준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걸 남몰래 깨달았다. 소년은 이 능력을 이용해서 1913년생인 할아버지의 다사다난한 어린 시절을 체험하기도 하고, 전쟁의 화마 때문에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집안의 비극을 알게 되기도 한다. 전쟁 통에도 피어난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영원히 비밀을 간직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게 된다. 신이라도 믿어야 살 수 있었던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부모님의 고충도 뒤늦게 이해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자신을 겹쳐 보면서 그가 스스로 초래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과 혐오에 눈물짓기도 한다. 


그 책은 그를 괴물로 그려내지만 상관없다. 나는 그 소년 안에 있었고 이야기를 전부 안다. 거기에는 거대한 오해와 중상이, 엄청난 불의가 숨어 있다. 나는 미노타우로스다. 나는 피에 굶주리지 않았다. 청년 일곱 명과 처녀 일곱 명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왜 갇혀 있는지 모르겠고, 잘못한 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어둠이 몹시 두렵다. (88쪽) 


"모든 것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던"(187쪽) 게오르기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능력이 점차 퇴화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잠입도 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수집한다. 그렇게 수집한 이야기들은 멸망 이후의 세상을 위한 '타임 셸터'가 된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세 번째 장편소설 제목이기도 한 '타임 셸터'는 이 소설에 이미 소제목으로 나오고, 심지어 <타임 셸터>에 등장하는 시간의 부랑자 가우스틴도 이 소설에 나온다(!!). 게오르기는 본격적으로 기억을 수집하기 전인 1990년대에 가우스틴을 만나 온갖 기발한 사업을 벌이며 그전에도 그 후에도 경험한 적 없는 우정을 나눈다. 나중에 게오르기는 공항에서 우연히 가우스틴의 모습을 보는데, <타임 셸터>에 나오는 가우스틴과 비슷한 걸로 보아 동일 인물(캐릭터)인 듯하다. 


게오르기는 종국에 어떤 깨달음(에피파니)을 얻게 되는데, 그 깨달음이란 "남는 것은 특별한 순간이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아무것도일어나지않음'"이란 사실이다(386쪽). '아무것도일어나지않음'이란 말 그대로 인생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국 일어나지 않은 상태와 같아지고 이는 필연적으로 슬픔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인생뿐 아니라 사회도, 역사도, 신화도. 그러나 슬픔이 남은 자리에는 늘 이야기라는 꽃이 피고, 이 꽃이 새로운 생명을, 사회를, 역사를, 신화를 만든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기꺼이 슬퍼하고 부지런히 이야기를 읽고 쓸 것. 이것이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유 - 살아갈 목적 - 아닐까.

j****y 2026.04.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