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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 높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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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散文選의 著者 成海應(1760年~1839年)은 博學考證的인 學文 性向을 바탕으로 學術뿐만 아니라 歷史, 地理, 書畵, 古董, 音樂 等에 關한 有益하고 興味로운 記錄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훌륭한 德과 재주를 지니고도 身分的 處地로 因해 湮滅될 處地에 놓인 下層民들의 자취를 取材하는 데 集中하였다. 그 結果 이들은 歷史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成海應은 士의 正體性을 確認함으로
"낮은 자리 높은 마음" 내용보기

이 散文選의 著者 成海應(1760年~1839年)은 博學考證的인 學文 性向을 바탕으로 學術뿐만 아니라 歷史, 地理, 書畵, 古董, 音樂 等에 關한 有益하고 興味로운 記錄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훌륭한 德과 재주를 지니고도 身分的 處地로 因해 湮滅될 處地에 놓인 下層民들의 자취를 取材하는 데 集中하였다. 그 結果 이들은 歷史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成海應은 士의 正體性을 確認함으로써 世上과 疏通하였으며, 오늘 우리는 이들과 함께 呼吸하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成海應은 18世紀 後半에서 19世紀 前半에 活動한 庶族 出身의 實學者이자 文人이다. 字는 龍汝, 號는 硏經齋, 蘭室. 本貫은 昌寧으로, 正祖 때 奎章閣 檢書官을 지냈다. 150餘 卷의 ≪硏經齋全集≫을 著述하여 茶山 丁若鏞과 함께 通儒로 評價받는다. 그러나 學的인 力量과 成果에 比하여 世上의 注目을 받지 못하였다. 곧 地位가 德을 充足시키지 못한 人物이다.

成海應의 文學은 ‘散文 文學’이라고 할 만큼 文의 比重이 크다. 同時代에서부터 歷史的 人物에 이르기까지 高評할 만한 자취가 있는 이들의 事績을 두루 取材하여 記錄하는 데 致力하였다. 그의 作品에 登場하는 主人公들은 大槪 忠烈을 忠直하게 實踐한 이름 없는 兵卒이나 奴婢, 妓女 等 社會的으로 疏外된 下層 身分의 人物이 많다. 또 神仙이나 俠客, 樂士, 匠人 等 奇異한 風貌를 지닌 人物도 있다.

이처럼 이들에 關한 記錄을 많이 남긴 理由는 무엇보다 人間을 바라보는 愛情 어린 視線에 起因한다. 어려운 與件 속에서도 默默히 忠孝烈을 實踐한 사람들을 對하는 그의 感情은 남달랐다. 그러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歷史에 묻힐 수밖에 없는 處地였다. 成海應은 이들에 對해 憐憫과 責任意識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德과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身分이 微賤하여 世上에 알려지지 못한 채 사라질 運命에 놓이거나, 逸士로서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實現하지 못하고 不遇하게 生을 마쳐야 했던 人物들에 對한 記錄에서 잘 드러난다.

그 亦是 學的 力量이 뛰어났지만 抱負와 經綸을 펼칠 만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다. 이런 理由로 湮滅될 處地에 놓인 이들에 對한 行跡을 世上에 積極的으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마침내 이들의 存在는 成海應의 記錄으로 因해 歷史에 傳해지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이 글을 通해 士로서의 正體性을 確認하고 世上과 疏通하려 한 成海應의 높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第一部 ― 떠난 이들에 對한 記憶

成海應의 散文 作品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哀悼하며 지은 祭文, 墓誌銘, 哀辭 等이 많다. 對象은 大部分 代를 이어 交遊한 親舊와 家族이다.

그는 일찍이 “나는 平素 交遊를 즐기지 않아 交遊한 것은 오직 代代로 交遊한 이들이다.” “나는 中年以後부터 벗이라고 할 만한 이가 없었다. 實로 내가 不足하여 다른 사람의 벗이 되기에 不足하였고 世上 또한 벗을 求하는 者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젊어서 拙朴하여 敢히 사람들에게 벗을 求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나를 벗하는 이가 적었다.” “나는 本來 술을 마시지 않아 술을 마시는 者를 보면 문득 꾸짖어(…)” “나는 平素 性質이 急하여 夫人은 恒常 溫和하고 천천히 할 것을 警戒하였다”라고 述懷하였다. 性格이 急하고 內省的이며 술을 좋아하지 않아 交遊關係가 넓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父親 成大中이 40餘 年 동안 오랜 官職生活을 한 데다 性品이 溫和하여 한 가지 善이나 長點만 있어도 두루 取하여 交遊關係가 幅넓었던 것과는 對照的이다. 成海應은 父親으로부터 學文的으로 많은 影響을 받았으며 交遊圈은 大部分 繼承하였다. 그의 交遊는 甚至於 三代를 이어오기도 할 만큼 期間이 길었고, 幅이 넓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사귐이었다. 그래서 親舊들의 衰落과 죽음을 目睹한 後 느낀 悲哀와 喪失感, 그리고 함께 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글로 表出한 것이 많다.

뛰어난 力量을 펼치지 못하고 일찍 죽은 親舊 李源順의 죽음을 哀悼한 <淡泊하고 깊은 友情>에서는 眞率한 友情의 場面을 하나씩 보여준다. 李源順 亦是 代를 이어 交遊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成海應의 父親과 親舊 사이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親舊를 찾아뵙고 그 아들과 對話를 나누는 場面이 印象的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옛 追憶이 된 서글픔이 깊은 餘韻으로 남는다.

檢書官으로 在職한 成海應은 國王 正祖의 사랑을 받고 李德懋, 柳得恭, 朴齊家 等 先輩 學者들과 奎章閣에서 함께 勤務하며 學文을 討論하고 學的 力量을 드높였다. 그의 人生에서 가장 빛나던 時節이었다. 그러나 李德懋의 父親에 이어 李德懋가 죽고, 朴齊家와 柳得恭도 不遇하게 죽었다. 李德懋의 아들 李光葵가 죽으면서, 成海應은 李德懋의 집안 三代에게 哭하게 된 것이다. 李光葵의 訃音을 듣고 李德懋의 죽음이 떠오른 데다 朴齊家와 柳得恭의 죽음이 聯想되면서 記憶의 地層 아래 封印해둔 아픔이 想起되었다. 이에 슬프고 苦痛스러운 心境으로 <李德懋 三代에게 哭하다>를 썼다.

夫人의 죽음을 맞아 지은 <아내의 房>은 人生의 同伴者로서 夫人에 對한 尊敬과 思慕하는 마음이 節制된 筆致로 淡淡하게 그려졌다. 病이 危重한데도 男便의 밥상을 차린 夫人의 사랑이 崇高하기만 하다. 自身의 病은 돌보지 않고 男便을 看護하다 먼저 世上을 떠난 夫人의 옛 자취를 돌아보며 痛恨에 찬 夫情이 哀切하다. 學者로 널리 알려진 成海應의 人間的 面貌와 感性이 잘 드러나 있다.

第二部 ― 日常의 아름다움

아버지의 親舊이자 尊敬하던 先輩 學者인 羅烈이 30餘 年 前에 지어준 詩를 偶然히 發見하고 感懷가 일어 글을 지었다. 羅烈이 訪問했을 때 마침 出他 中이던 父親을 代身해서 成海應이 接待하였다. 窓가에 燈불을 돋우고 茶菓를 올리며 古書?를 閱覽하였다. 때 맞춰 가을 하늘에는 비가 올 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둘이 마주 보며 나눈 談笑는 밤이 깊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 餘韻을 이어 다음날 함께 宋載道의 집을 訪問하였다. 宋載道는 아버지와 羅烈의 親舊이다. 그는 이때 都城에 있었는데 羅烈이 온다는 말을 듣고 急히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夕陽이 사립門에서 꺾일 무렵 막 到着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成海應은 農事를 돌보기 爲해 곧바로 돌아갔다. 羅烈은 이틀을 묵은 後 都城으로 돌아갈 때 成海應에게 詩 한 首를 지어주었다. 바로 이 詩를 31年 만에 偶然偶然히 發見하고 <돌아가신 先輩들을 그리며>를 지었다. 先輩 學者들의 風貌와 자취에 對한 그리움이 늦가을 情趣와 잘 어우러진다.

동생 成海運이 故鄕 抱川의 花山 南쪽에 집을 짓고 梅花, 菊花, 복숭아, 살구, 沙果, 자두, 배, 無窮花, 왜홍, 산단, 芍藥, 牡丹 等 몇十 種을 골고루 심었는데 대나무만 한 그루도 없었다. 대나무는 제 살던 곳을 떠나 옮겨 심으면 죽어버린다. 梅花, 菊花 (…) 牡丹 等은 꽃과 열매의 色과 香氣가 대나무보다 훨씬 아름답지만 데리고 와 키우기에 쉽다. 成海運은 이런 대나무의 本性을 思慕하여 새 집의 이름을 죽곡정사(竹谷精舍)라 지었다. 成海應은 移植하기 어려운 대나무의 節槪를 思慕하고 이를 선비의 節槪에 比喩하여 竹谷精舍라 命名한 아우를 稱讚하고 激勵하여 <대나무 없는 곳에 대나무 집이라 이름 한 아우에게>를 지었다.

사내아이가 냇가에서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아서 보여주었다. 成海應은 물고기가 죽을까 念慮되어 瓢주박에 물을 담아 물고기를 풀어주었다. 물고기는 이내 꼬리를 흔들고 마치 江湖에서 노니는 듯하였다. 얼마 뒤 한 마리는 花盆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죽고, 나머지 한 마리는 겨울을 지내고 살았다. 봄이 되자 물고기를 냇가에 풀어주도록 하였다. 지난 겨울 酷寒에 잉어, 메기처럼 큰 물고기들도 大部分 살아남지 못하였다. 그러니 작은 물고기가 살아남은 것은 僥倖 中의 僥倖이다. 그런데 이것은 祭需用으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작아서 살아남은 것이다. 萬若 기름지고 맛이 좋았다면 진작 사람들의 그물과 낚시에 걸려 삶겨지는 身世가 되었을 것이다.

작고 힘없는 것이 處地에 安住하지 못하고 떨쳐 움직이면 죽음을 免치 못하게 된다. 작은 것은 길어지기를 바라고 가는 것은 커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길어지고 커지면 근심도 그에 比例하는 法이다. 어디에 處할지는 本人이 選擇할 몫이다. <물고기를 기르며>는 작은 물고기를 通해 人間의 處世에 對해 말하고 있다. 懦弱한 人間이 世上을 살아가기 爲해서는 過慾을 부리지 않고 現在 處한 狀況에 滿足하는 것 또한 하나의 方法이 될 수 있다.

第三部 ― 博學과 實用

成海應은 좋은 文章의 條件으로 氣와 法, 識을 提示한 뒤, 特히 ‘識’의 役割을 强調하였다. 文章의 氣勢와 法度가 있어도 이들을 運用할 수 있는 ‘識’, 卽 ‘見識’이 있어야 좋은 文章을 쓸 수 있다는 論理다. ‘見識’의 ?調는 博學한 學文 性向과 連動된다. ?富한 見識이야말로 多彩로운 作品世界를 驅使하는 動因이다. 實際로 그는 經史를 비롯하여 地理, 書畵, 算數, 花卉, 金石, 刀劍 等에 關한 有益하면서도 興味로운 知識 情報를 많이 記錄하여 博學한 學文 性向을 잘 보여준다.

그는 菜蔬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땅은 肥沃했지만 栽培 方法이 잘못되어 작은 고구마만 열렸다. 그래서 고구마에 關한 冊을 두루 읽어 고구마의 性質과 效能에 對해 잘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땅이 肥沃하여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먹는다.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그러니 凶年이 들어도 고구마를 活用하지 않는다. 習俗을 바꾸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그런데 사람을 救濟하는 方法은 스스로 限界를 그어서는 안 된다. 成海應이 微微한 草木에도 精誠을 다한 理由이다. <고구마를 어떻게 普及시킬 것인가>는 救荒 作物로 效能이 뛰어난 고구마가 朝鮮에 널리 傳播되지 못한 事實을 指摘하고 國益과 民生을 爲해 積極的으로 繁殖시킬 것을 主張한 글이다. 利用厚生을 ?調한 實學者的 思考가 잘 드러난다.

多樣한 故事를 活用하여 송이버섯의 效能에 對해 記錄한 <송이버섯의 이로움>, 18世紀 朝鮮 벼루의 代表的인 種類와 材質을 一目瞭然하게 提示하고 벼루의 匠人 金道山과 申慶祿에 對한 興味로운 情報를 알려주는 <좋은 벼루의 系譜>, 朝鮮의 有名한 샘물의 位置와 水質, 起源에 對해 仔細하게 記錄한 <全國 샘물을 品評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利益을 獨占하며 接近性과 生産性의 側面에서 가장 利益이 큰 明太에 關한 情報를 具體的으로 敍述한 <最高의 生鮮 明太>, ?婁産 담비로 만든 갖옷의 훌륭함을 紹介하고 갖옷 制度의 由來와 特徵을 記錄한 <?婁의 담비 갖옷> 等은 有益하면서 興味롭다. 成海應의 博學하고 考證的인 學文 性向이 잘 表出되어 있는 글이다.

第四部 ― 學文과 經世의 깨우침

이 章은 學文과 經世에 關한 成海應의 깊이 있는 洞察과 이를 풀어내는 論理가 明快하여 注目할 만한 作品이 많다.

스승을 選擇하는 方法에 對한 글이다. 옛사람들은 德을 思慕하여 스승을 選擇했지만 只今 사람들은 勢力을 思慕하여 스승을 選擇한다. 德 있는 者가 반드시 勢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大體로 勢力이 없는 者가 많다. 요즘은 風俗이 날로 衰退해져 스승을 반드시 집으로 불러 먹여주며 子弟를 가르치게 한다. 子弟들은 平素 驕慢한 데다 먹여주는 勢力을 믿고 스승을 對한다. 스승 또한 威嚴이 없어 꾸짖지도 회초리를 들지도 못하며 그저 가르치기만 한다. 子弟들은 이미 스승을 낮춰보며 가르침을 받으니 學業이 進展되지 않는다. 그러면 또 이것으로 스승이 힘쓰지 않아 그렇다고 責望한다. 이 때문에 賢明한 者는 스승 노릇을 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子弟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始作해야 하는가? 찾아가서 배워야지 스승을 집에 모시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道가 嚴하다는 것을 안 뒤에야 비로소 學問에 나아갈 수 있다.

<스승을 부르지 말고 찾아가서 배워라>는 스승의 德이 아닌 勢力을 쫓아 배우는 昨今의 世態를 批判하며, 스승의 權威와 威嚴을 세우기 爲해서는 무엇보다 스승을 집으로 부르지 말고 子弟들이 찾아가서 배우도록 할 것을 ?調하였다. 스승이란 누구이며 어떻게 待遇해야 하는지, 그리고 子息을 가르치는 올바른 方法에 對해 苦心하고 解法을 提示하여 오늘날에도 示唆하는 바가 큰 注目할 만한 作品이다. 詩와 그림은 작은 재주지만 練習하여 神妙함을 攄得하면 즐기기에 充分하다. 무릇 멀어서 쫓아갈 수 없고, 가깝되 잡을 수 없으며, 濃密하되 富贍한 데는 이르지 않고, 健壯하되 거친 데까지는 이르지 않으며, 深遠하되 窮僻한 것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 詩와 그림이 境地에 들어간 境遇이다. 저 먼 곳에서 안개비가 갑자기 몰려와 앞山의 한 자락을 가렸다가 忽然히 흩어져 山줄기가 언뜻 드러날 때 온갖 形象이 넘쳐난다. 이때 自身도 모르는 사이 詩情과 畵意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詩와 그림으로 잘 表現하기 爲해서 不斷한 練習이 必要하다. 精進하는 사람만이 좋은 詩를 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여 書畵의 效用性을 肯定하였다. 成海應의 纖細하고 充滿한 感性과 深遠한 藝術的 志向을 確認할 수 있는 글이다.

<西北 地域의 人材를 登用하라>는 朝鮮 王朝의 지나친 崇文主義를 批判하고 文武를 함께 奬勵하여 國家 危機에 武人을 積極 活用할 것을 主張한 글이다. 文武는 각각 用途와 特長이 있기 때문에 文人만 지나치게 優待하여 武人들이 相對的 剝奪感을 느낀다면 終局에는 深刻한 國力 低下를 招來하게 된다. 武의 價値를 積極的으로 提高하고 具體的 實現 方法을 論理的으로 提示하였다. 燕行 가는 조카를 傳送하면서 써준 <中國의 政勢를 잘 把握하라>는 淸나라의 紀綱 解弛와 財用 枯渴을 看破하고 그것이 淸朝의 衰落 兆朕임을 豫見한 것이다. 그래서 조카에게 淸의 滅亡이 朝鮮에 미칠 餘波에 對해 깊은 憂慮를 表明하고 政勢 把握을 잘하고 돌아올 것을 當付하였다. 時代를 앞선 銳利한 識見과 對處 方案을 確認할 수 있다. 위 두 作品은 成海應의 實學者로서의 面貌를 잘 보여준다.

第五部 ― 奇人과 烈女

成海應은 훌륭한 德行과 뛰어난 재주, 奇異한 面貌를 지닌 人物들을 두루 取材하여 記錄하였다. 그 中에서도 特히 下層民들의 자취를 捕捉하는 데 集中하였다. 이들은 忠孝烈 等 儒敎 社會에서 높이 評價하는 價値를 實現하였지만 身分이 微賤하여 世上에서 湮滅될 處地였다.

結城 黃里에 사는 李琴師의 집안 來歷과 이름을 모른다. 얼굴을 본 적이 없고 그 사람을 잘 모르니 그의 音樂을 알지 못하는 것이 當然하다. 그런데 李琴師가 언제나 거문고를 잡고 곁에서 演奏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 것일까? 金箕書의 글 때문이다. 事實 金箕書도 그 사람을 잘 모른다. 親舊의 別莊에서 한 번 演奏를 들었을 뿐이다. 더욱이 成海應에게 李琴師에 對해서 이렇다 할 言及도 없었다. 그런데도 成海應은 李琴師의 音樂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意境이다.

音樂을 듣지 않고도 만들어진 無形의 形象은 마음으로 感動하여 이미지[想]가 생기고 그로 因해 形成된 것이다. 成海應은 李琴師의 演奏를 들은 적이 없지만 金箕書의 글을 읽고 感動받아 뛰어난 節操를 느낄 수 있었다. 이때 生成된 意境은 ‘神’의 境地이다. 李琴師는 비록 죽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音樂은 成海應의 글을 通해 生動하게 傳해진다. 成海應은 自身이 體驗한 ‘意境’과 ‘神’의 境地에 到達하는 過程을 뛰어난 筆致로 描寫하였다. 音樂에 對한 理解와 纖細한 感性이 있어서 可能하였다. <마음으로 듣는 아름다운 소리>는 그의 藝術的 感性과 文學的 力量을 보여주기에 不足함이 없는 作品이다.

<永川 朴 烈婦와 忠僕 萬石>은 抑鬱하게 죽은 永川의 朴 烈婦에 對한 訟事 事件을 素材로 한 記事다. 朴 烈婦가 自身의 潔白을 밝히기 위해 郡守 앞에서 옷섶을 풀어헤쳐 가슴을 보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過程이 생생하게 描寫되어 있다. 相當히 破格的이지만 이런 決行을 하지 않고서는 ?痛함을 解決할 수 없는 狀況이다. 金祖述이 管理들을 買收하여 法網에서 벗어나는 場面, 아내와 訣別하면서까지 主人의 ?痛한 죽음을 밝히려는 奴僕 萬石 等의 모습이 몇 番의 轉換을 通해 劇的으로 再現된 構成이 뛰어난 作品이다. 이 事件은 當時 永川을 비롯해 全國的으로 非常한 關心을 불러일으켰으며, 朝廷에서도 査官을 派遣하여 調査할 程度로 커다란 社會的 이슈가 되었다.

이 글의 核心은 論評이다. 朴 烈婦 訟事 事件은 事案이 分明하여 쉽게 解決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被疑者로부터 賂物을 받은 下級 管理의 거짓말과 눈가림, 이에 속은 郡守의 어리석음, 再搜査의 命을 받았음에도 直接 調査하지 않고 엉터리 狀啓를 올린 査官들의 일處理 方式, 嚴正하게 調査하여 事件을 解決한 同僚 따돌리기 等 온갖 不正과 腐敗로 因해 解決이 어려웠던 것이다. 地位 高下를 莫論하고 刑을 執行하는 管理들의 無能함과 腐敗의 實相을 赤裸裸하게 暴露한 成海應의 冷徹한 洞察과 이를 풀어내는 論理가 明快하다.

h******1 2024.06.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