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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 책장의 근동 컬렉션이 꽤나 화려해졌다. 평소에도 늘 이집트에 관심을 가지는 나는 아예 책장 한칸을 근동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 두었는데, 슬슬 빈자리를 메꾸기 시작해오는 책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기도 하고 제대로 시간 내어 전부 체득할 것을 생각하니 까마득 하기도 하다.
이 글을 들어가며 저자 야마다 시게오가 고맙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몇자 적은 것이 있어 인용해보자면, "서구학회가 이끌어온 '아시리아' 연구에 대해 일본 연구자가 쓴 책을 선택해, 한국어로 번역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독자를 만나게 된 것은 큰 기쁨이자 영광이다." 나도 그렇다.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것에 큰 재미를 느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시리아를 세가지 시대적 구분을 통해 서술한다. 아수르 시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국가 - 고아시리아, 영역국가로 성장해가는 중앙시리아, 그리고 아리시라의 제국기 신아시리아 시대이다. 아시리아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긴다. 그들이 남긴 삶의 기록은 우리에게 전해져서 현대의 인간이 과거를 바라보는 도구가 되어준다. 시대를 거슬러 사유하게 하는 인간의 틀로서 작용하는 것을, 아마도 아시리아인들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아시리아의 흥망은 비록 많은 역사 기록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사료는 다다익선이요 시각도 거거익선이다. 많은 자료에서 하나 추가 된 이 책이 단순히 늘어난 자료로 보이기 보다 이 책은 오랜만에 역사학도로서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글이였다. 당대의 정치는 단순히 시대의 유산으로 물러나는게 아니라 각국에 차용되고 후대에도 선례로 남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몇가지 기억해야할 점이 존재한다. 모든 기록물은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이며, 모든 기록물을 절대 믿지 말아야한다. 랑케가 주장하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는 내가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사나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면 1차사료를 가끔은 성배처럼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기록마저 결국은 사람의 손과 생각을 거친 것이다. 인터넷의 모든 기록이 도리어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선택의 고민을 불러오듯이, 과거의 기록 또한 기록한 이가 처한 시대의 배경과 맥락을 고려할 것을 이야기 해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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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제국’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흔히 로마 제국, 몽골 제국, 이슬람 제국, 대영 제국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열 손가락으로 다 세어 보아도 ‘아시리아 제국’은 나올 확률이 적겠다. 세계사 교육이 많이 확장된 지금에도 아시리아 제국은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이 전부다. “기원전 7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 대부분을 정복하고 이집트까지 위협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정복지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과도한 세금을 걷는 강압적 통치 때문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멸망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사 1 교과서 중에서> 이 시기의 역사를 가르치는 부분에서 중심축은 아시리아가 아닌 페르시아다. 아시리아의 무자비한 정복 정책과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을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다. 넓고 방대한 세계사를 한꺼번에 다루자면 어쩔 수 없는 축약이지만 때로는 축약이 비약이 되곤 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각 문명, 제국,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책은 그래서 반갑다. 역사는 기록의 학문이다. 따라서 기록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 중요하다. 구약성서에도 아시리아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기록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아시리아의 시점에서 기록된 기록물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량의 점토판과 거기에 새겨진 쐐기 문자는 아시리아에 대한 풍부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고, 이 책은 방대한 기록에 의거 도시 국가 아수르의 탄생부터 제국의 흥망성쇠를 차근차근 풀어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원래 방대한 쐐기 문자로 유명한데, 유독 아시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포악하고 잔인한 정복 정책으로 일관되어 있다. 단적인 이미지가 제국 전체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어버린 셈인데, 정복 전쟁에 대한 평가를 아시리아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아시리아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평가라고 본다. 같은 역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입체적인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오래 유지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제국의 지배 방식이라는 포맷을 형성한 것은 분명 아시리아 제국의 공적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원리일 뿐. ‘아시리아 제국의 광역 지배는 뒤를 이은 대영역 국가인 신바빌로니아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여러 제도에 영향을 주었다.’ (174쪽 중에서) 초기 아수르 상인들의 아나톨리아 무역에 대한 기록이나 아수르와 바빌로니아 지역에 대한 균형 있는 통치 방식을 고민한 부분, 왕명표와 연대기, 림무표 등의 편년 기록,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등을 통해 아시리아가 가진 정치, 경제, 문화적인 응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여전히 역사가 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고대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은 ‘대역 왕’ 의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일식과 월식 때 행해진 이 의식은 왕을 대신해 흉조가 암시하는 불운을 떠안고 희생되는 ‘대역 왕’을 세우는 것이었는데, 거친 자연 환경과 수많은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아 염세주의적인 면모를 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종교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요즘 여러 책을 읽으며, ‘기록은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생각하고 있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했던 아시리아인들의 영광스러우면서도 처절한 기록의 역사는 이를 잘 뒷받침해주는 것 같다. 아시리아의 제국의 한계점은 책에서도 언급하듯 ‘늘 확장되는 국가였던 아시리아의 국가 경영이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전쟁을 통한 영역의 확대가 한계점에 다다를 때, 제국은 통치의 엔진이 멈추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제국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가? 근현대의 제국들과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들의 성장 원리들도 같은 맥락이다. 성서 속 ‘잔혹한 정복자’라는 오명은 아시리아를 오랫동안 설명한 주홍글씨와 같다. 사실 나는 이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분명 아시리아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제국에게 그런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제국의 단면을 아시리아를 통해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밝히고 그렇게 문명이라는 것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분열과 갈등, 혐오와 차별, 폭력이 여전히 가득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세계는 이런 힘의 논리 가운데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밝게 빛나는 문명의 빛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이런 책은 더없이 반갑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낱낱이 가르칠 수는 없다 하여도, 적어도 편견 속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라는 없어져도 기록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아시리아제국의역사 #야마다시게오 #더숲 #더숲히스토리 #아시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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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우리가 배운 고대 문명이라 하면 그리스나 로마를 떠올리거나 조금 더 나아가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고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길며 그만큼 수많은 나라들이 역사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아시리아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시리아 하면 떠오르는 게 잔혹한 통치와 니네베 국립 도서관 정도지만, 아시리아는 기원전 수세기동안 존재하며 역사 속에 다양한 업적들을 남겨놓았다. 아시리아의 왕조사는 멸망 전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지만 아시리아 방언의 시대적 변화와 문서 사료의 시대 분포를 바탕으로 고아시리아 시대/중아시리아 시대/신아시리아 시대로 나눈다. 고아시리아 시대는 상업 국가로써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카룸으로, 카룸이란 쉽게 말해 상업 구역이다. 아시리아 국내 뿐만이 아닌 아나톨리아 같은 주변 지역에도 수많은 카룸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주변국들과 다양한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중아시리아 시대 초기만 해도 속국 신세를 면치 못 하던 아시리아는 이후 서서히 도시 국가에서 영역 국가로써 발전해나가며 한때 바빌론을 점령할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아람계 유목 부족들에 의해 잠시 주춤하기도 하였다. 신아시리아 시대는 중아시아 시기 잃어버렸던 영토를 재점령하고 이어서 여러 지역들로 정복 전쟁을 하며 제국으로 나아가던 전성기이다. 샬마네세르 3세, 사르곤 왕조, 아슈르바니팔 등 훌룡한 성군의 치세 아래에서 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아라비아 반도 등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대다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왕위 계승과 확장의 중단에 이어 가뭄과 외세의 공세까지 이어지며 찬란했던 아시리아 제국은 멸망하며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아시리아의 영토를 계승하게 된다. 글에서는 생략하였지만 이 사이에는 아시리아의 찬란한 수도와 문화, 그리고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지내는 복합적인 다민족 국가로써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이를 자세히 기록해놓은 기록들과 거대한 제국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잘 짜인 행정은 왜 아시리아가 서아시아를 지배한 초강대국이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본 도서는 출판사의 지원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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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은 사람들이 그리 많이 알지 못하는 나라다.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역사상의 나라인데 그나마 조금 들어본 것은 성경 속에서다. 그것도 포악하고 잔인한 나라였다는 그 짧은 내용 때문에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사실 한 나라의 이미지라는 것이 한쪽만 있겠는가. 다양한 면이 있기 마련인데 왠지 아시리아는 그냥 안 좋은 느낌만 있었던 것이다. 궁금하고 알아보고 싶은 나라가 많았다. 게다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기에 이 엄청난 나라가 대체 어떤 나라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로마 제국 이전에 페르시아 제국 이전에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나라가 있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그 아시리아라니. 그 성경 속의 포악한 바로 그 나라였다니. 역사를 보는 눈을 한참 더 올리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이번에 나온 이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이다. 사실 아시리아 제국은 로마와 페르시아 이전에 역사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오래 전의 나라다. 관련된 연구가 적을 수 밖에 없고 사실 우리 나라에서 크게 연관되는 부분이 없으니 우선 순위에서도 밀려나서 관련된 책도 없었다. 소개 되는 것이 없으니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은 몰랐던 사람도 관심을 가질 만큼 거의 처음 소개되는 만큼 역사상의 중요하고 대단한 제국이었다. 아시리아 제국의 무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과거에 정말 사람들이 살기 좋았던 환경이었다. 그래서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달시켰고 따라서 관련한 민족, 나라들이 많다. 아시리아도 이 지역의 티그리스강 중류의 도시 국가 아수르에서 시작했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중동 지역인데 최대 판도는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그리고 북부 이집트에 이른다. 그야말로 대제국을 이룩한 나라다. 기원전 2000년 전에 생겼고 기원전 600년 전에 멸망했기에 많은 유적과 유물이 흩어져서 그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저 성경을 비롯한 몇몇 글에서 잔인하다는 부정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20세기 들어서 많은 유적이 발굴이 되면서 이 거대한 제국의 면모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다른 제국들에 비해서 확실히 잔혹한 부분도 있었으나 단순히 그런 것만 있었다면 그 긴 세월을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책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부분 보다는 문화나 상업 등 그동안 알려지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이런 체제 때문에 제국이 살아 있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책은 아시리아 시대를 고아시리아, 중아시리아, 신아시리아로 구분하는데 최대로 번성한 시기는 신아시리아 시대다. 중아시리아 시대는 역사적으로 쇠퇴를 반복했고 관련한 기록이 많이 없기에 고아시리아 시대와 함께 많은 분량이 아니다. 그저 도시국가 아수르에서 시작해서 영역 국가로 서서히 존재감을 나타내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아시리아가 크게 성장하고 그 지역 일대의 패자가 된 것은 신아시리아 시기다. 이때 관련된 기록도 많아서 당대를 복원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실 이 시대는 그야말로 뒷날의 제국들에게 모범을 보일 만큼 통치 체계가 잘 짜여져 있었다. 원래 아시리아는 상업이 발달해서 거기서 얻는 막대한 재력으로 제국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점토판 기록을 남길 정도로 문화가 발달했고 행정 시스템 자체도 상당히 정교했다. 아시리아인은 적었고 상대적으로 피정복지 주민이 많았기에 단순히 억압만 할 수는 없었다. 나름의 강력한 통제 장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관리를 통해 제국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잘 짜여진 행정 시스템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군사적인 능력을 더하고 기록 문화와 부조 등에서 보이듯 여러 예술적인 면들이 종합되어서 제국이 발전하게 된다. 책에서는 고, 중, 신으로 이어지는 아시리아 시대를 잘 설명하는데 아시리아에서 시행한 정책 등이 홋날 로마나 페르시아가 그대로 차용하게 된다. 특히 페르시아는 아시리아가 만들어 놓은 여러 국가 체계를 대부분 수용하였기에 어찌보면 아시리아의 후계 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규모 정복을 통해 얻은 땅과 연락하기 위해 많은 도로를 건설하고 역참제를 실시한 것은 나중에 로마 제국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아시리아가 괜히 세계 최초의 제국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이렇게 2000여년 동안 오늘날 중동 지역의 실력자였던 아시리아는 그 끝을 향해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불꽃이 일었다. 바로 아시리아의 마지막 대왕이라고 할 '아슈르바니팔' 이다. 책에서도 특히 많은 부분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아시리아의 위명을 떨치게 될 여러가지 업적을 낳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치면 세종 대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자신이 여러 면에서 능력이 뛰어났고 정복 군주라고 불릴 정도로 군 지휘력도 좋았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왕립도서관을 세운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모은 3만 점이 넘는 점토판을 통해서 당시에 얼마나 많은 기록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고대의 예술을 오늘날에 알 수가 있고 당대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슈르바니팔 대왕이 마지막 불꽃이라고 한 것은 그의 사후 후계와 관련해서 내전이 일어났고 안 그래도 불안했던 주위 세력들의 연합 공세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 사실 통치를 위한 여러 선진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잦은 반란이 일어났던 것은 기본적으로 억압된 통치 체계가 있었기에 피정복민에게는 가혹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단순히 잔혹한 성격을 가졌기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상징을 가지고 좀 더 수월한 지배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가혹했으면 성경에 그렇게 나왔겠는가. 훗날의 제국들에서 보이는 관용 정책이 아시리아에도 있었다면 더 오래 살아 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랫만에 각 잡고 읽은 책이었다. 그동안 거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나라였는데 의외로 탄탄한 정치 체계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제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최근에 고고학적인 발견과 연구로 많은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데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아시리아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아시리아라는 나라 본연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한다. 고대 제국에 관심 있는 사람, 로마나 페르시아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훗날의 그 큰 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나라가 바로 아시리아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출판사의 '더숲히스토리' 시리즈가 참 좋다. 우리 나라에 적게 소개되거나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의 통사를 펴내고 있는데 평소에 관심 있었던 나라들을 톡 꼬집어서 내고 있어서 참 좋다. 인류의 역사를 더 확장시키는 느낌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해 둘 만한 시리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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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근동(Near East)이라는 표현 자체에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왔지만, 그 역사적 공간이 인류사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달리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도 불리는 이때 인류 역사의 뚜렷한 특징인 영역국가 - 제국, 문자, 상업 등이 일찌감치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이 시기는 동아시아 세계로 비유하자면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하며, 보다 직접적으로 중동과 유럽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필자가 이 시대에 각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필자와 같이 거창한 역사의 흐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남겨진 점토판에 그려져 있는 그들의 생동감있는 삶에 흥미를 갖지 않을 이는 드물 것이다. 최근에는 에아나시르(Ea-nasir)라는 인물이 판매한 구리의 품질에 항의하는 내용의 점토판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어 하나의 밈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단지 고대 근동 세계가 현대에 보여주는 매력의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고대 근동 시대는 언제 끝맺는 것일까? 주지하듯이 역사의 거시적 흐름이라는 것은 일부 미시적 사건으로 끊기거나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시대구분' 논쟁은 항상 역사학의 화제가 된다. 고대 근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데, 설에 따라서 신바빌로니아 제국 - 혹은 알렉산드로스의 정복까지를 하한선으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 반 드 미에룹의 『고대 근동 역사』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에서 책을 마무리하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고대 근동 세계의 '종말'이라고 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분기점을 찾기 어렵다고 할 지라도 대략적인 감은 오기 마련이다. 앞에서 제시한 하한선에서도 볼 수 있듯, 그 경계는 대체로 아시리아 제국 시대의 이전을 넘어서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아시리아 제국이란 무엇이었길래 고대 근동사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것인가? 2. 최근 더숲출판사는 '더숲히스토리' 시리즈를 진행하며,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사들(바빌론, 비잔티움, 히타이트, 무굴 제국)에 대한 해외의 개설서들을 번역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 3월에 더숲출판사는 야마다 시게오(山田重男) 선생의 저작을 번역한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야심만만하게 내어놓았다. 고대 근동의 역사에 대한 책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고대 근동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족한 우리나라의 인문학적 토양을 실감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뼈저리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평 이벤트를 신청하기에 앞서서 책의 대략적인 외적 맥락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시리아사 연구에 대해서는 단지 독일의 에카르트 프람(Eckart frahm) 선생의 이름만을 알았을 뿐이고, 야마다 선생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다만 책 커버의 저자 이력에서는 그가 일본학계 아시리아사 연구의 대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감수자 이희철 선생님은 국내에서도 '중동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므로, 책의 전문성을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이전에 더숲히스토리 시리즈의 단행본들이 모두 양질의 개설서들이었다는 점도 한몫 했다.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고 책을 받아본 후에도 시험을 준비하느라 한동안은 책을 펼쳐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기간 내에 서평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막상 독서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책은 전반적으로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어 문장과 페이지를 넘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유일한 난점으로 인명의 복잡함이 있었지만, 이것은 책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입문을 위한 쉬운 서술을 이어나가면서도 학술적인 요점에 대해서는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국경을 뛰어넘어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모두 참고하고 있는 점이 인상깊었다. 앞서 이야기한 에카르트 프람 선생의 견해도 본문에 종종 인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본서는 입문서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의 핵심인 '쉬움'과 '전문성'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5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독서를 마치면서도 아시리아 제국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출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고아시리아와 중아시리아 시대에 대한 서술이 신아시리아(제국) 시대에 비해 간소하다는 사소한 아쉬움은 있지만, 본서의 제목과 주제가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이므로 이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3. 아시리아 제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통상적으로 무엇을 떠올릴까? 필자의 기억으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아시리아는 단지 한 단락만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최초의 통일", "니네베 도서관" 따위의 긍정적인 키워드도 있는가 하면 "강압과 폭력적인 통치로 멸망"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도 담겨져 있다. 아시리아가 자신들의 물리적 우위를 피복속민에게 강조하려 했던 것은 사실로 이와 관련해 그들이 남긴 벽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놓은 생생한 압도의 예술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폭력 일변도의 '악의 축'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타국 왕의 목을 치고, 포로의 가죽을 벗기고, 사자를 칼로 찔러서 사냥하는 등 부조의 묘사는 오늘날 우리의 등골마저도 서리게 한다. 하물며 당대인들은 어떠하였겠는가? 그렇지만 관점을 바꾸어 "그들이 왜 그러한 폭력을 각인하려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시리아 제국에 대한 인식은 사못 달라지게 된다. 감수의 말에서 이희철 선생은 "아시리아는 기억을 지배하려 했던 제국"이라는 의견을 남겼는데, 위의 질문과 관련하여 실로 적절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아시리아의 폭력적 과시는 오히려 폭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반면 아시리아 제국을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로 기억하게 만드는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시리아 제국은 이전과 본질적으로 달랐는가. 본서의 내용으로 말하자면, 단호하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상업적 도시국가로 탄생한 아시리아는 상업 루트를 군용 도로로 활용하는 수완을 발휘하였고, 이것은 '왕의 길'이라는 도로와 그에 수반한 역참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전 근동의 패권국가들이 단순히 지역 정치체의 패권 인정을 받는데 그친 반면, 아시리아는 직할령을 활발하게 설치하고 그곳에 환관들을 지방관으로 앉혔다. 다른 한편 그들은 지방관에 대한 활발한 감찰을 시행하여 '왕의 눈', '왕의 귀'와 같은 직책을 고안해내기도 하였다. 아시리아 제국은 문화적 소양을 결여한 나라도 결코 아니었다. 사르곤 2세 이래, 센나케리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왕은 바빌로니아의 우수한 문화에 앙모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센나케리브 역시 바빌론을 완전히 파괴하였지만, 이것은 온전히 현실적 필요에 의한 것으로, 이후에는 여러가지 문화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의 후계자 에사르하돈은 태생적인 신체의 결함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가지 주술적 - 문화적 요소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경향의 결실이 바로 상술하였던,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근동 전역의 문화적 유산을 끌어모은 니네베의 대도서관이었다. 한편, 이러한 문화의 결집을 통해 아시리아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통일을 기도할 수도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아시리아는 도서관을 통해 기억을 지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아시리아는 고도의 중앙집권적 제국을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이것은 대부분 후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에서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이외에 피정복민을 사민시켜 지방 세계를 기존과 다르게 재편하려는 시도는, 직후의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계승한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바빌론 유수'는 아시리아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아시리아는 본서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최초의 제국'으로서 이후의 제국들에게 그 전범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4. 아시리아의 획기성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은 그 극적인 멸망이다. 도대체 이처럼 위대했던 제국이 그토록 빠르게 멸망하였는가? 고대의 학자들은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신의 징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현대의 사람들도 종종 아시리아가 폭압적 통치의 응보로 멸망하였다 생각하기도 한다. 폭력적 통치를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겠으나, 대체로 고대의 학설에서 '신'을 '인민'으로 바꾼 것과 다름이 없다. 학자들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자 한다. 야마다 시게오 선생은 왕위 계승의 불안정성, 친위세력 환관의 발호, 부의 과도한 편중, 기후 위기와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시리아 제국을 몰락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요인을 좀 더 강조하든, 분명 제국의 몰락은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갈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이었다. 중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여기서 중국 고대의 진秦 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 제국도 아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전범으로서 다양한 방면에서의 통일이라는 과업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진시황 사후 허무하게 멸망하고 말았으며, 오히려 멸망에 이르는 기간만 보면 아시리아가 더 형편이 낫다고 할 정도이다. 멸망의 원인에 대한 탐구에서도 폭압적 통치라는 주장이 반복되어 왔던 점마저 유사하다.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에 대한 평가는 쉽게 결론지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역사적 위치에 대한 고석이야말로 좀 더 유용하면서도 본질적인 탐구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는 "사람은 처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널리 알려진 격언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진 제국과 마찬가지로, 아시리아 제국은 영구적인 통치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아케메네스 제국은 아시리아를 상당부분 계승하여 보다 안정적인 통치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아시리아 제국도, 아케메네스 제국도 모두 사람이 세운 역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케메네스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아시리아적 사람"의 성공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제국 자체가 갖는 의미와, 이전 - 이후 시대와의 비교를 통한 의미를 고루 음미할 때, 비로소 "아시리아 제국이란 무엇이었나"라는 간단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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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더숲출판사 #더숲히스토리 #야마다시게오 더숲히스토리시리즈의 5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무굴 제국, 히타이트 제국, 비잔티움, 바빌론에 이어 이번 신간은 아시리아. 일전에 읽었던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를 감수했던 이희철선생님께서 이 책도 감수하셨다. 오래 전에 읽고 소장한 책 <히타이트>의 저자시다. 오랜 인연은 돌아돌아 또 만나게 되니 더없이 반갑다.
이래저래 반가운 감정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드는 걱정은…‘역사’라는 비인기장르 속에서(그나마 왕사남 덕에 분위기 좀 탔나 싶지만, 세계사는 좀…) 이렇게 구석진 나라, 역사속에 묻힌 제국에 관련된 도서를 출간하면..출판사는 마진이 남을까..…ㅠㅠ 베스트셀러라는 영광은 없더라도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들에게 관심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야겠다는 소명감도 충만해졌다. 책을 받아든 그 짧은 순간, 여러 감정이 요동쳤던 나의 첫인상 이야기가 길어졌다. (덕후들은 더숲히스토리시리즈 출간과 더숲출판사를 응원합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아시리아에 대해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며 정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유물로 2022년~2024년까지 열었던 상설전시<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가 떠오른다. 보기힘든 쐐기문자와 석판부조들은 책의 삽화와 함께 다시금 내 머리속에 각인되었다. 더불어 작년 <히타이트>특별전이 더해져 오리엔트의 역사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더 높아졌으리라 기대되는 시점에, 최신 고고학적 조사성과와 문자 사료를 토대로 정리된 아시리아 역사서를 만나 더더욱 설레었던 독서였다.
———————- •그리스어명칭으로 아시리아, 아카드어로 ‘마트 아수르’(‘아수르의 땅’이라는 의미) •기원전8~7세기 제국으로 군림한 제국으로, 도시 아수르를 기원으로 발전 •기원전 2000년대 초에 작은 도시국가에서 시작, 기원전 14세기에는 영역국가가 됨 •모어로 아카드어 아시리아방언 사용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기록, 그 외 음성언어로 수메르어, 아랍어, 그림문자 알파벳으로도 기록
-도시 아수르를 중심으로 -아나톨리아의 카네시(현 퀼테페) 점토판문서 상인활동이 활발했음을 알려줌
2. 중아시리아시대(기원전14~11):영역국가 -아슈르우발리트1세가 아멘호테프4세에게 보내는 서신인 아마르나 문서 -투쿨티나누르타1세 바빌론 정복 -행정주분할, 대제상의 거점도시, 일부 왕국자치권 유지 3. 신아시리아시대(기원전10~7) -아슈르나시르팔2세 수도 칼후 건설 -티클라트필레세3세 바빌로니아 통치 아카르어와 아람어 이중언어사용 정착 -사르곤2세 제국건설 및 통일 새수도 두르샤루킨 건설 -센나케리브 바빌론 혼란진압 이후 바빌론 멸망, 예루살렘 포위(라키시유적), 수도 니네베 건설 -에사르하돈 바빌론 재건부흥, 이집트 멤피스함락 -아슈르바니팔 이집트 테베장악, 엘람멸망, 수도 니네베의 성채 쿠윤지크 사자사냥부조상, 국립도서관
•이후, 외부연합세력 및 바빌로니아 공격으로 아수르함락, 니네베도 함락. 기원전612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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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2026년 현재, 중동 전쟁으로 시끄럽다. 우리에게는 전쟁, 석유 등으로 익숙한 지역. 역사적으로는 어떨까? 첫 세계사를 학습하면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시작하게 된다. 바로 그 지역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아시리아 제국은 세계사에서 길게 학습하지 않아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철제 무기와 기마병을 앞세워 기원전 7세기에 상당 부분을 통일함. 도로 정비와 총독 파견, 수도 니네베에 왕립 도서관 건립함. 그러나 강압 통치로 반란이 일어나 멸망 고등학교 세계사 수능특강에서도 저 3개의 문장이 아시리아 제국을 설명하는 전부이다. 더숲 출판사에서 나온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차분히 읽으며 짧게만 학습했던 아시리아 제국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사료들과 연표, 지도들이 곳곳에 들어있어 길었던 아시리아 제국을 알아보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
많은 왕들의 재위기간 동안의 특징이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모든 성문과 성벽에 신들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세계의 중심임을 알렸던 아시리아. 고대 제국답게 신정정치를 통해 강력한 권력을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리아 제국은 구약성서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구약 성서 또한 역사서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서의 서술과 다른점과 같은점을 실제로 비교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나게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만끽할 수 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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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세계사 시간에 단 한줄로 배웠던 나라. 구약 성경에 잔혹한 야만인들로 표현되는 그들이지만 저자는 아시리아를 인류 최초 제국이었다고 설명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아시리아는 19세기에 유물들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구약 성경 속 유대 문명을 파괴하는 괴물로만 기억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도시 국가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BC 8세기 경 최전성기를 누린 아시리아는 BC 7세기 말 갑자기 멸망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왕의 출정 기록부터 상인들의 시시콜콜한 거래 장부까지 약 50만 점의 쐐기문자 점토판 기록을 남긴다. 수메르 문명에서 탄생한 인류 최초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오늘날 읽을 수 있는 형태의 기록으로 남긴 것도 아시리아였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아시리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대 오리엔트사 분야 권위자로 현재 쓰쿠바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감수자 이희철은 튀르키예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튀르키예 역사 전문가다. 중량감 있는 인문, 과학, 역사 도서를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구글 번역기를 능가하는 직역 실력에 종종 감탄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감수자의 주석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법령, 점령 도시를 다스리는 총독의 파견, 세금 징수를 위한 도로 건설.. 이후 등장하는 로마, 페르시아 등 제국이라 불린 국가들은 아시리아가 발전시킨 제도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인류 최초 국립 도서관을 건설했던 지식에 대한 열정, 19세기 이후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시리아 시대 유물들은 그들이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들이 지니는 고고학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아시리아를 단순히 군사강국으로만 여기는 이유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던 구약 성경의 부정적 이미지, 그리고 그리스, 로마 문명을 우월한 서양 문명의 효시로 여기던 서양인들의 시각 때문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기원전 2천년이면 단군 신화가 있던 시기와 비슷하다.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간게 맞다면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먼저 국가 형태가 만들어진 것도 일리는 있지만, 아시리아도 근래 발굴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신화 속 국가로만 여겨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고조선의 의미있는 유물들이 발견되어 신화가 아닌 실제 역사로 인정 받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득한 옛날부터 연도 순으로 1400년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 초반에는 다소 지루했지만, 통사를 서술하기 위한 책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시리아라는 나라가 없어진지 25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시리아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공동체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고 한다. 비슷한 처지의 민족이 유대인들만 있었던게 아닌가 보다. 비교적 최근에 나라가 없어진 여진족이야 아직 만주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나라가 없어진지 오래된 거란족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우리말을 쓰는 이 땅에, 야만의 시대가 아닌 문명시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 #구약성경 #야만인 #헤로도토스역사 #메소포타미아 #여진 #거란 #유대인 #유대왕국 #서평 #도서리뷰 #쐐기문자점토판기록 #수메르문명 #길가메시서사시 #이스라엘히브리대학교 #고대오리엔트사 #쓰쿠바대 #튀르키예 #국제관계학 #구글번역기직역 #법령 #총독 #세금징수 #도로 #로마 #페르시아 #국립도서관 #유물 #고고학 #군사강국 #메소포타미아 #고조선단군신화 #아프리카 #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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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 야마다 시게오 / 박재영 / 이희철 / 더숲 (2026) [원제 : アッシリア_人類最古の帝国_トンボなし] [My Review MMCCLIV / 더숲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세 번째 리뷰는 더숲히스토리 다섯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다. '더숲히스토리' 시리즈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세계사가 아닌 잘 알지 못했던 세계사를 조명한 시리즈로, 지금까지 나온 책은 <바빌론의 역사>(2021), <비잔티움의 역사>(2023),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2024), <무굴 제국의 역사>(2025), 그리고 이 책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가 올해 출간되었다. 그동안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역사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갈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나라에는 이 들의 역사를 집중조명할 전문가가 거의 없는 형편이고, 있다손 치더라도 책을 내어줄 출판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어렵사리 출간할 역사책을 읽어줄 독자가 그닥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적은 '역사에 관심이 생긴 독자들'조차 유명하고 낯익은 역사책을 찾아 읽지, 이름도 낯선 역사책을 굳이 찾아서 읽을 까닭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출간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름도 생소한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읽어야 할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관점 포인트 : 여러분은 <길가메시 이야기>를 알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설로 전해지는 영웅이야기인데 어떤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지 아는가? 바로 '아카드 어'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길가메시'를 수메르인이 지어낸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어떤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바로 '아카드 어'라고 한다. 그리고 '아카드 어'를 쓰는 민족이 바로 '아시리아 인'이다. 그들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던 <길가메시 이야기>를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기록'을 남겼고, 이 '점토판 기록'이 오늘날 가장 최초로 <길가메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 것이다. 만약 아시리아 인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구전은 언젠가 끊겼을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길가메시 이야기>를 몰랐을 것이다. 좋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길가메시 이야기>를 몰라도 된다. 모를 수도 있다.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길가메시 이야기>를 전했던 '아시리아 인'에 대한 오늘날의 이미지는 매우 포악하고 잔혹한 짓을 많이 한 민족으로 정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성경>속에 아시리아에 대한 표현이 남아 있는데, 딱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속에 아시리아 인은 북이스라엘 국가를 침략해서 멸망시켰고, 남유대 국가를 침공했다가 오랜 시일이 지나 전염병이 퍼져서 결국 패배해서 돌아갔다고 적혀 있다. 그럼 <구양성경>은 누가 썼는가? 바로 유대인이 쓴 '기록'이다.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후 아시리아는 멸망하고 사라진 뒤, 후세 사람들은 무엇으로 아시리아 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기억할까? 다름 아닌 <성경>속 '구약 이야기'를 통해서 아시리아 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을 침략해서 멸망시키고 해코지한 민족을 '위대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남겼다'고 기록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잔인하고 난폭했으며 야만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적어 놓았을 것이다. 왜냐면 역사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 갈라진 그리스도교를 믿는 서구인들은 <성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아시리아 인'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단다. 오늘날 메소포타미아 고대 유적을 발굴하는 유적탐사팀이 '아시리아 인'들이 남긴 '점토판'을 분석한 결과, 아시리아 제국이 로마제국처럼 초기에는 '공화정 체제'를 만들어 민주적인 제도로 집정관을 뽑아 지도자로 삼아 정치를 이어나갔고, 훗날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자 자연스레 왕이 등장해서 한껏 넓어진 국토를 다스리는 제국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이를 지탱하는 경제체제도 갖추고, 시민들은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기면서 '문명인'과 다를 바 없는 풍요로운 문화를 누리며 살았다는 기록이 생생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유대인이 살던 지역은 초라한 변방에 불과했고, 강대국이 주변국을 정복하며 제국의 역량을 어김없이 발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자연스러웠기에 '아시리아 제국'을 한낱 야만인처럼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적절치 못했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을 통해서 들여다 본다. 물론 그 '기록'이 완벽할 수는 없고, 때로는 너무 빈약해서 진면목을 살펴보기에 너무 부족할 수도 있고, 때로는 '승자의 일방적인 기록'이나 '패자의 악의적인 왜곡'으로 잘못된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는 팩트체크를 위해서 '교차검증'을 하고 있으며 '하나의 사료'나 '한쪽의 사료'만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라고 섣불리 평가내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여러 기록이 '한 목소리'로 공명을 이룰 때, 비로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사책을 읽으며 다양한 해석을 하며 '역사의 필요성'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객관적 사실'만을 역사라고 부르지 않는 까닭이다. 그 사실을 토대로 '역사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진정 역사책을 읽는 까닭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성경>만이 유일하게 남은 기록이었다면 현재까지도 '아시리아'는 어두운 이미지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에 남긴 기록이 온전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 '왜곡'이 심한 기록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질문한 것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은 <성경>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종교적 권위를 가진 '기록'이고, 그 기록에 의해서 '왜곡된 거짓'을 진실인냥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름 아닌 '힘이 센 강자의 의도'대로 그냥 믿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물론 내가 '강자에 속한 집단'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약자 집단'이고, 멸망한 줄 알았던 '아시리아인의 후손'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짜뉴스에 의한 혐오와 차별을 쏟아지듯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더구나 '역사'에 관심도 없으니 제대로 된 항변도 할 수 없고, 그저 당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반대로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자도 '역사적 진실'을 바로 알고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부끄러운 짓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서게 될 것이다. 또한, 약자도 '역사적 진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에게 쏟아지는 옳지 못하고 부당한 억압과 차별, 그리고 폭력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이런 부끄러운 행동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옳지 못한 일을 바로 잡을 수도 있다. 나가는 글 : 대한민국은 지난 100여 년간 엄청난 격동의 역사를 보냈다. 망국의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식민지 백성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며 독립을 이뤘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완벽한 굶주림을 겪어야 했고,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겨우 굶주림을 면했구나 싶더니, 민주주의가 탄압당한 군사독재가 펼쳐졌고, 그 어둡고 처절했던 시절을 민주화항쟁으로 극복하고 이뤄낸 대한민국이 드디어 선진국이 되고, 진정한 강대국으로 성장해서 전세계 인류의 공영과 평화를 이룩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부강한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약소국의 설움'을 당했던가 말이다. 그때마다 고개 숙인 대한민국 국민들을 일어서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랑스런 우리 역사'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활동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외적의 침략에는 분연히 맞서서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우리 역사의 끝에 전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힘을 과시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란 말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자랑스러워 해야 하고 세계 만방에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역사를 잘못 배운 이들이 부끄러운 짓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자국의 역사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다른 강대국들의 비위를 맞추어 '자국의 역사'마저 먹칠을 하고야 마는 멍충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끼리는 얼마든지 싸워도 좋다. 그것이 실리를 두고 싸우는 것이든, 명분을 두고 의견을 다투는 것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어이 없게도 우리땅에서 '다른 나라 국기'를 들고서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자국 정부'를 흔들고, '자국민을 헐뜯는' 멍충이를 어떻게 봐줘야 한단 말인가? 이들은 역사를 잘못 배운 이들이다.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라는 한 울타리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세계속에서 한국이 맥을 같이 할 수 있고, 한국사를 배우는 것으로 세계사를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사는 '위대한 역사'로 가치를 높여 다루고, 그런 위대한 역사를 이끌어간 몇몇 강대국들 위주의 '편협한 세계사'를 배운다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관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면 심각한 왜곡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세계사'를 서양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절대 아니다. 비록 세계사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중심적인 서술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 서양의 역사만이 바르고 옳은 것이고, 서양 이외의 역사는 비주류이고,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에 세계사와 한국사는 '더불어'서 같은 맥락으로 역사적 흐름을 비교분석하고, 어디에서든 딱 들어맞는 '보편타당한 역사관'을 갖춰야 한다. 이는 아무 역사책 어느 곳을 펼쳐도 다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보아도 '아시리아의 흥망성쇠'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고, 흥한 이유와 망한 이유가 한 눈에 보인다. 그 까닭은 다름 아닌 '똑같은 인간'이 벌여놓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나들어도 '인간이 사는 모습'은 매한가지다. 아시리아 인이 살아가는 모습과 대한민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유별나게 달라보일 것이 없다. 물론 기원전 23세기와 서기 21세기라는 반만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는 보일 수 있어도,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작게는 '오늘날 중동 국가의 현안'을 파악하기 위한 교양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미-이란 전쟁이 휴전을 꾀하는 와중에도 '이스라엘'이 전쟁을 확전시키려는 까닭을 '아시리아 제국 내의 민족적 갈등과 해결 방법'을 엿보면서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크게 보길 바란다. 한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흥하는 원인과 망하는 원인이 오늘날의 한 국가에서도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할 때의 모습에서 현 미국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도 머지 않아 멸망할 징조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원인을 해결하고 막으면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처참한 말로가 오늘날 미국이 처한 상황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아시리아 제국이 위축되는 시점에서 부상한 '메디아 부족'과 미국의 위세가 꺾이고 있는 시점에서 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물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한낱 '메디아 부족'과 견주기엔 적당하지 않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하고 미국이 나름 대처를 잘 한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역사는 늘 그런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아주 흥미로운 역사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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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교과서를 펼치면 그리스, 로마, 이집트가 고대사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잠깐 언급되더라도, 아시리아는 기껏해야 '잔인한 정복 국가' 정도의 수식어로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수천 년을 버텨온 제국치고는 너무 초라한 대접이다. 이 책은 바로 이 공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갖는 의미는 단순히 '재미있는 고대사 책 한 권'을 넘어선다. 국내에서 아시리아의 통사(通史)가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집트나 그리스·로마에 관한 통사는 시중에 넘쳐나지만, 인류 최초의 세계 제국이라 불릴 만한 아시리아를 정면에서 다룬 단행본은 지금껏 없었다고 하니, 그 의미만으로도 이 책은 반길 일이다. 책은 시대순으로 탄탄하게 짜여 있다. 고아시리아 시대의 상업 도시국가에서 출발하여 중아시리아, 신아시리아 시대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군사력과 행정 시스템, 왕위 계승, 외교, 신앙과 문화가 차례로 다뤄진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점토판 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헤로도토스나 구약성경에 기대지 않고, 아시리아인 스스로 남긴 기록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 관행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아시리아를 '성경에 나오는 악당 국가'가 아닌 그 자체의 맥락 속에서 읽어내려는 시도가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진다.
역사책을 주로 읽는 독자로서, 세계사의 시야를 넓히는 책들이 조금씩 한국에도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메소포타미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유럽사와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지는 날이 멀지 않기를 바라며,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그 흐름의 소중한 한 걸음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