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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갈매기'를 읽었을 때, 이것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깊이 치명적인 아픔 같은 걸 느꼈다. 재능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고,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열에 달아 하는 뜨례플례프의 모습 같지 않아 본 예술가 지망생은 몇 명이나 될까. 보름 밤 강아지 모양 길길 날뛰면서 뜨리고린같은 기존에 이름 있는 작가들을 무시하거나, 동경하거나, 혹은 콤플렉스에 빠져 스스로 허둥거린다. 니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여신처럼 동경하며 평생을 두고 자신의 예술 속에서 모자란 부분을 환영으로 채워 간다. 마치, 단테의 베아트리체처럼.
예술가들은 자기 세계에 너무 깊이 침잠해, 그 열병을 깨치기 전 까지는 스스로도 모를 그 좁은 세계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 치며 서서히 죽어 가는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살리에르의 마음에 깊이 동감하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예술이나 그런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음악을 듣는 귀는 있으되 재능이 없는 살리에르의 그 광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살리에르가 작곡을 포기하고 음악 비평을 하면 좋지 않았겠느냐, 했다.
서로 길이 다른 예술가, 스스로의 세계에 사로잡힌 격정적인 어린아이들, 자라지 않는 그들, 예민하게 날이 선 채 아름다운 호수 속에서 썩어 가는 자신을 비명지르는 그들. '갈매기'는 그들에 관한,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한 예술가의 길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한없이 유아적인 그들의 소유욕과 집착과 결여 속으로 숨고 도망치고 매달리는 모습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러면서 그래도 '저 너머'로 날아 보련, 하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폭우를 뚫고, 표면이 일렁이는 호수를 등지고 물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날개 젖어도 날아라, 하고 말하는 것처럼. 발버둥은 그만두고 이제, 자라지 않으면 안된다. 거울 속의 자신만을 들여다 보다가는 한없는 균열만을 겪게 될 일.
속을 긁어내고 껍질만 남은 갈매기의 박제가 아니라, 날개 젖어도 하늘을 나는 살아있는 갈매기이고 싶다, 라고. 나는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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