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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감성'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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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승병장 영규의 전쟁 안휘 2026 상상마당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임진왜란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 있던 인물 기허당 영규 대사의 삶과 전투를 중심에 놓고 재구성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서사를 넘어 호국불교의 정신, 의병과 의승군의 치열한 항쟁, 그리고 당시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함께 조망하며 깊은 역사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특히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희생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오늘의 시선으로 되묻는 데에서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의 서사는 승병장 영규 대사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출가한 그는 묘향산에서 서산대사 휴정의 문하에 들어가 20여 년간 수행과 수련을 쌓으며 선장무예의 대가로 성장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수행자의 삶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방식으로 신념을 실천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행동하는 믿음’의 의미를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작품의 핵심 축을 이루는 사건은 청주성 탈환과 금산성 전투이다.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중봉 조헌의 의병과 영규 대사의 의승군이 힘을 합쳐 청주성을 탈환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변변한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채 선장무예와 결연한 의지로 적진에 맞서는 의승군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이 승리 이후 펼쳐지는 현실은 씁쓸하다.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던 관군이 공을 가로채고 의병과 승군을 천대하는 장면은 당시 권력 구조의 부패와 무능을 날카롭게 폭로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금산성 전투에서 절정에 이른다. 1만 5천의 왜군 정규군을 상대로 단 800명의 의승군이 맞서는 상황은 명백히 중과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서 이기겠다”는 조헌의 결의에 응답한 영규 대사는 끝내 출정을 선택한다.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이 결단을 단순한 무모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사무퇴의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싸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 패배와 승리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멸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싸움은 결코 패전으로만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아울러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전쟁의 이면에 자리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한 이후 불과 보름 만에 한양까지 진격하는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관군의 무능, 사농공상과 반상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계급 질서, 그리고 실용을 외면한 성리학 중심의 국가 운영은 모두 이 비극을 낳은 근본 원인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은 이 작품을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는 성찰적 텍스트로 확장시킨다. 무엇보다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의 가장 큰 성취는 기록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인물을 생생한 역사적 주체로 복원해낸 데 있다. 희귀한 사료와 연구 성과, 그리고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사실의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전설에 가까웠던 영규 대사를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낸다. 그 결과 독자는 한 인물의 삶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희생의 의미를 함께 사유하게 된다.
결국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전쟁의 기록이자 인간의 기록이며, 동시에 시대에 대한 비판적 증언이다. 이 작품이 끝내 환기하는 것은 ‘참된 애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영규 대사와 800 의승군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영웅담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질문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승병장 영규(靈圭)의 전쟁>은 묵직한 울림과 깊은 사유를 남기는 역사소설로 평가할 수 있다. #승병장영규의전쟁 #안위 #상상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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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방 토호들이 난무하던 봉건사회 일본을 얕잡아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주목할 마냥 지도자도 없을뿐더러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수준이 낙후하다고 사람들은 여겼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난세는 영웅을 낳았고, 그는 대륙으로 눈을 돌렸다.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기에 공통된 외부의 적은 효과적이다. 조선은 그 역할을 떠맡을 운명이었다. 임진왜란과 이어진 두 차례의 호란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도 영웅은 탄생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육지에서의 거듭되는 패전으로 모두가 절망할 때 조선의 수군만은 달랐다. 장군의 이름과 거북선을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헌데 전쟁은 장군 한 명이 치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가 기억 못하는 많은 치열함을 우린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중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적진으로 뛰어든 경우가 존재한다. 평온하던 시절 논밭을 일구던 이들이 그랬다. 살생을 부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여겼던 승들도 일어섰다. 사명대사 유정, 서산대사 휴정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자는 금산에서의 패배를 주목했다. 그곳엔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우다 사망한 의병 700명을 기리는 칠백의총이 존재한다. 왜군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열세임이 분명했다. 실제 결과도 전멸이었다. 승리를 기분 좋게 기려도 좋으련만 하필 왜 금산전투를 다룬 것일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들추는 일도 필요함을 그는 잘 알았다. 의미의 재부여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듯하다. 흩어진 이름들을 목놓아 부르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고경명, 조헌, 영규대사. 사실에 근거했을 터이나 상상력이 적잖이 가미되었을 거다. 동시대를 살았어도 타인의 삶을 전적으로 알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 덕에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전운이 감돌던 당시 조선 또한 그랬다. 제 권력 추구에만 열을 롤리느라 진실을 바라보지 못했다. 적의 직접적 가격에 앞서 이미 국운이 기울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조헌은 끊임없이 상소를 올리며 왕의 선정을 촉구했으나 그의 뜻은 중간과정에서 끊임없이 꺾이었다. 그저 듣기 좋은 소리를 하기 바빴던 이들이 있었으니, 조헌의 상소는 위험을 과대평가한 것처럼 여겨지기 딱이었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를 벼렸다. 영규도 결이 비슷한 인물이었다. 남들보다 거구였던 그는 사찰에서 성장하며 호국 선장무예를 익혔다. 그는 사찰을 지키기 위한 무예로 나라를 지켰다. 지난해 금산 보석사에서 열렸다는 선장무예 수련회가 영규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 생각하자 코끝이 찡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뜻은 길이 남았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갈등을 첨예하게 그려냈다. 승려가 살생에 앞장서야만 하는 현실이 일차적으로 다루어졌다. 평온한 시절의 수련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전쟁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아니다. 영규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 중에는 그가 몸 담고 있는 사찰의 주지가 품은 것도 있었다. 단순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만 한 게 아니었으니, 영규가 부처의 법리를 어긴 파계승인 것처럼 도처에 소문을 퍼뜨렸다. 승군의 조직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오늘날에도 비슷하겠으나 당시에는 더더욱, 소속된 절을 떠나 승이 홀로 존재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비난이 초래할 고립은 사회적 죽음과도 같았다. 외부의 적(왜군)보다도 어찌 보면 더욱 강력한 내부의 적에 나는 일말의 불편함을 느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무엇일까.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침묵함으로써 민중이 뿌리째 뽑힌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관군의 무능력 또한 저자의 레이더를 피하지 못했다. 왜군을 물리치고 성을 장악하는 일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았건만, 관군은 모든 공을 제 몫으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의 노고는 그들에 의해 철저히 버려진다. 그들은 썩은 동앗줄을 부여잡고 큰소리친다. 제 몸을 지키겠다며 북으로 떠난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을 추구했기에 그들은 죽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했지만 역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정의와 부조리. 나는 지금 어디에 두 다리를 딛고 섰는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진정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700년을 뛰어넘어 인물들이 내게 물었다. 어째 세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만도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