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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 글을 읽는 재미는 생각의 독특함이나 문체의 발랄함, 내지는 창조적 직조를 위한 시작 단계에 얼기설기 접어든 자의 설레임에서 보통 비롯된다. 류가미의 『라디오』는 이런 점에서 사실 그렇게 신통한 편은 아니다. 할로겐 조명 아래서 졸린 눈을 부비며 읽기에는 잔재미가 부족하고, 양팔 벌려도 닿을 것 같지 않은 책상의 한 가운데에 펴놓고 보기에는 삶에 널어 놓을만한 통찰이 부족하다. 하지만 풍성하게 등장하는 신화적 상상력,허구와 실재의 틈을 조밀하게 기우고 있는 스토리, 읽는 이의 감상을 너무 성급하게 건드리지 않는 침착한 호흡 등은 인정해야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라디오 진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조금씩은 라디오랍니다.상대에게 다가가는 채널만 찾아낸다면 우리는 상대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 상대가 울부짖는 늑대라 해도 떠도는 유령이라고 해도 설령 내 앞에 있는 당신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무슨 소통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 대한 보고서 같은것으로 라디오가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 라디오라는 보다 커다란 개념이다. 수신과 송신이 가능한 영혼의 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해야 할까, 아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삶과 죽음의 통로라고 해야 할까, 뭐 그렇다.
라디오 진, 나는 열두 살 엄마가 깨져서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이후 사랑을 찾아 떠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외할머니가 살고 있던 은둔자의 읍 근처에 위치한 기억의 집에 거처를 삼게 된다.그곳에는 고양이 앨리스가 있으며 이층 다락방에는 소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인 문수가 있다. 그 집에서 라디오 진은 자신이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라디오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전파를 쏘아 보낸다. 그리고 첫 번째 손님으로 고양이 앨리스의 주인이기도 한 마녀 마마의 방문을 받는다. 그 후 기억의 집을 찾아온 예언자 미셸, 오토바이를 타는 닉, 혜성과 크롭 서클을 조사하러온 비밀요원 가스퍼, 엘콘, 발사살, 집시 여인 릴리스 등을 만나게 된다.
성장 이후 라디오 진, 나는 후원자와 같은 문수 아저씨와 함께 은둔자의 읍을 떠나 제국의 수도인 얼음과 강철의 도시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에서 어부를 만나 사랑과 배신을 겪는다. 상처를 받고 정신병원에 있던 라디오 진, 나는 문수 아저씨와의 결혼이라는 행위로 정신병원을 나올 수 있게 되고 고향과도 같은 기억의 집으로 귀환한다. 그리고 말을 잃은 나를 문수 아저씨는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 후 사라진 엄마의 환생이기도 한 어린 승려 트롱파와 얼음과 강철의 도시에 살던 시절 어울렸던 고양이씨의 방문이 있고 라디오 진, 나는 문수 아저씨와의 사랑을 느끼면서 말을 되찾는다. 하지만 쇠락한 문수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고 난 그를 찾아 영원의 세계에 도달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백분의 일 정도로 축소해 놓으면 이런 이야기가 될까. 나름의 은유와 상징을 지닌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라디오 진, 나의 이야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많은 어두운 면을 성실한 성장과 근원적인 라디오로서의 능력으로 헤쳐 나간다는 설정은 성장 소설의 맥락을 갖추고 있고, 세상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여러 등장인물의 설법을 통해 드러낸다는 면에서는 구도 소설의 맥락을 갖추고 있다.
길고 지루한 다리를 가진 벌레 한 마리 기어가는 것이라도 지켜보는 사람처럼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재구성 할 수 있다는 오만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세상은 꽤 희망적이다는 낙관적 세계관이 어설픈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인상깊은구절]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예감이 현실로 드러나거나, 자신의 생각이 저절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마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랍니다. 혼란스러운 상태만 진정된다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마음은 무선 통신기 rodio cummunicator처럼 자신의 생각을 보내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요. 또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