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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의 상호관계, 사랑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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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이라는 이 야릇한 화학약품 냄새 물씬 나는 제목은 운명, 그리고 자연의 필연, 시대의 경향, 계기와 관계의 형성을 아우르는 당시 자연과학에 경도된 ‘괴테’의 실험의지가 반영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사실 오늘에 이러한 비유는 진부하고 조잡한 상상에 불과하다. 다만 18세기 작가의 시대에 화학적 원소간의 결합, 즉‘선택적 친화력’과 같은 특질은 인간관계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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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이라는 이 야릇한 화학약품 냄새 물씬 나는 제목은 운명, 그리고 자연의 필연, 시대의 경향, 계기와 관계의 형성을 아우르는 당시 자연과학에 경도된 ‘괴테’의 실험의지가 반영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사실 오늘에 이러한 비유는 진부하고 조잡한 상상에 불과하다. 다만 18세기 작가의 시대에 화학적 원소간의 결합, 즉‘선택적 친화력’과 같은 특질은 인간관계를 조명하는데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괴테의 이성간의 인간관계에 대한 실험적 탐구는 자못 엄숙하고 진지하며,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서로 사랑했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했던 연인이 각자의 동반자와 사별과 이별을 거친 후 다시 재회하여 행복에 겨운 삶을 시작한다. 남작‘에두아르트’와 ‘샤로테’는 그네들의 성(Castle)을 중심으로 산책로를 정비하고 정원을 가꾸는 등 새로운 삶의 즐거움으로 충만해있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훌륭한 능력을 묵히고 있는 친구를 돕기 위해 자신들의 성으로 불러들이고 싶어 한다. 마침내 부부의 삶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던 샤로테의 반대를 회유하고 친구 ‘대위’와 함께하는 세 사람의 생활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삶의 주체인 냥“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의 활동과 만족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들의 삶은 이미 우리가 그것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이미 짜여진 계획들에 의해 진행되는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침 기숙학교를 떠나 어디로든지 받아들여져야 하는 샤로테의 수양딸인 ‘오틸리에’를 자신들의 성에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쯤에 이르면 오늘의 독자인 우리는 스토리 전개를 예상하고도 남을 정도가 되지만,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샤로테’와 ‘대위’라는 교차결합이 이루어질 것인가? 이들을 결합시키는, 즉 ‘선택적 친화력’이 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하는 관점으로 나아가면 소설 내내  흥미로운 탐사가 되며, 이와 관련하여 쏟아내는 금언(金言; Aphorism)들을 새기는 재미는 만만찮다.

 

열정과 절제의 균형을 찾아내는 샤로테와 대위와는 달리, 동정과 배려, 연민에 취약한 에두아르트와 순수한 열정에 휩싸이는 오틸리에의 사랑은 이미 절제되지 않는 격정으로 치닫는다.

에두아르트의 거침없는 열정은 샤로테의 이성적 회유와 절제의 요구에 이르지만, 오틸리에의 보호를 위해 에두아르트는 스스로 성을 떠난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고, 숭고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법률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기 거부했던 샤로테의 우려에 대한 에두아르트의 인간관계의 실험을 자만하는 자기의식의 불가변한 확실성에 대한 단언의 오만함을 알기에 그렇다.

“여보, 의식이라는 것은 결코 믿을 만한 무기가 아니에요.”

 

한편 작품 속 ‘오틸리에의 일기’는 수많은  경구들을 포함하는 삶의 사색에대한 보고(寶庫)이다. “인간은 오로지 보는 것을 중지하지 않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적인 빛이 일단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빛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두아르트를 향한 오틸리에의 지고지순한 사랑, 온통 세상을 밝히는 그 사랑의 열정이 느껴진다.

 

샤로테의 출산과 운명의 첫 희생자로서의 아기의 죽음은 작품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성을 떠나 전쟁에 참여하고, 외로운 극기의 생활을 보냈지만 오틸리에를 향한 사랑이 소원해지기는커녕 더욱 공고해진 에두아르트의 사랑은 샤로테를 배반할 수 없는 오틸리에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이 되어버린다.

현실적으로 만족 될 수 없는 인간의 욕구들, 모든 이끌림의 상호관계, 삶의 불가항력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결혼이란 문명의 시작이자 정점”이라는 빛나는 성찰이 되지만, 죽음의 비극까지 몰고 오는 이 ‘이성의 시대’에 만들어진 선택적 친화력은 결코 문명의 손을 들어주지만은 않는다. 역시 대문호의 시대를 넘어서는 사유가 삶의 근원적 통찰을 향해 도도히 흐른다. ‘사랑’을 초월하는 삶의 본질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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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사랑, 그리고 친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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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사랑’에 대하여>괴테의 친화력에서는 주요인물인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샤를로테와 대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랑과 관계를 화학작용인 친화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풀어낸다. 젊은 시절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러 길을 돌아 다시 만난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평범한,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샤를로테의 조카 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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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사랑’에 대하여>

괴테의 친화력에서는 주요인물인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샤를로테와 대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랑과 관계를 화학작용인 친화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풀어낸다. 젊은 시절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러 길을 돌아 다시 만난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평범한,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샤를로테의 조카 오틸리에와 에두아르트의 친구인 대위가 등장하며, 평화로운 일상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사이, 샤를로테와 대위의 사이 속 작용하는 친화력이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 사이의 인력을 약화시킨다. 책을 읽다보면, 샤를로테와 대위와의 관계는 계속해서 절제하고 그 관계에 대해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결국 서로를 밀어내게되지만,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는 서로에게 매우 감성적이며 절제하지 못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1부 제 8장의 각주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간의 애정이 점점 더 뚜렷하고 강해지는 반면, 샤를로테와 대위의 애정은 처음부터 다소 체념적인 상태로 시작되고있다. 이로써 이 소설의 애정은 한편에서는 억제할 수 없는 열정으로 나타나고(샤를로테와 오틸리에),다른 한편에서는 체념을 동반한 우정으로 머물면서(샤를로테와 대위) 양극적인 형태로 펼쳐진다. 그럼으로써 낭만주의적 열정과 고전주의적 절제가 대조되고있는 것이다.’를 보면, 이러한 구도가 이해된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구도에 의문을 가졌었다. 1부 1장에서 나오듯, 결혼을 서두른 것은 에두아르트였다. 자신의 단점을 생각하며 그와의 결혼에 대해 망설인것은 오히려 샤를로테였다. 나는 이 구절때문에 에두아르트의 열정은 샤를로테를 향해있다고 추론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샤를로테에게 쏟았던 옛 사랑이 무색하게, 에두아르트의 낭만주의적 열정은 줄곧 오틸리에를 향한다. 소설이 끝을 향해갈수록 에두아르트의 행보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갔다. 그는 오틸리에와 사랑하기 위해 아내인 샤를로테와 자신의 친구인 대위 사이에 친화력이 작용하길 바라고, 오틸리에에게도 그것이 사실인 양 이야기한다. 에두아르트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엇일까. 더 좋은 혼처를 얻을 수 있음에도 망설임없이 샤를로테를 택한 에두아르트, 그러나 그는 오틸리에에게 끌림을 느낀 뒤 샤를로테의 안위를 전혀 생각지 않는다. 또한 샤를로테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것을 겉으로 꺼내 자신의 부정을 내보이는 것만을 꺼린다. 나는 그가 자신의 부정을 인정해 완벽한 자신에 흠집을 내는 것을 꺼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샤를로테의 오틸리에를 내보내자는 말에 오틸리에를 내보내지 말라고 하며 차라리 자신이 떠나겠다고 이야기한다. 샤를로테와의 관계에서 짙었던 이기심이 오틸리에를 위해선 기꺼이 누그러든다. 그의 사랑에는 희생과 이기심이 공존한다. 그의 이러한 행태를 보며 그의 성격에 대한 생각을 했다. 스스로가 너무나 중요한,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은 누가 그 행위로 인해서 누가 어떤 영향을 받든 하고야 마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렇기에 그런 그에게 사랑이란 그러한 자만과 이기심의 억제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두아르트는 시 낭송 시에 자신의 시집을 조금이라도 보면 격노하는, 자기애가 매우 큰 남자이다. 뒤에 나오는 자신의 플루트 연주에 대한 오틸리에의 거짓말인 평가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의 성정을 잘 나타낸다. 그는 대위와 알고 지낸 시간이 길고, 그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랑했던 아내의 반대까지 무릅쓰며 집에 들인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이 사랑한지 얼마되지않은 오틸리에의 이 한마디에 모욕감을 느끼며 분노하다니, 이는 그가 얼마나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큰지를 보여준다. 에두아르트가 오틸리에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이와 연관될 것이다. 샤를로테와 사랑에 빠진 어린시절, 샤를로테는 그에게 많은 것을 맞춰주었으리라는 추측을 했다. 샤를로테가 공원 부지에 대한 에두아르트의 지적을 들었을 때 그녀는 에두아르트의 지적에 기분나빠하긴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창조물을 옹호한다. 비난의화살은 남자들에게로 돌린다. 이 지점에서 샤를로테는 자아의 색채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훗날 대위와 멀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부분, 또 에두아르트의 거부에도 오틸리에를 내보내려하는 부분에서도 그녀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잘 드러난다. 그런 그녀에게 에두아르트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그러니까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진 시점에서는,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서로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달콤한 사랑의 장막에 가려져있던 서로의 모습을 채 보지 못한채 각자 다른 인연을 맺었기에 다시 만났을 시기 의심없이 서로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샤를로테는 샤를로테 본연의 모습을, 에두아르트는 에두아르트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려진 단점들이 서로에게 드러났을 것이다. 에두아르트는 본인의 지휘 아래서만 움직이지 않는 샤를로테에 대한 애정이 은연중 옅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지쳐있었고, 그들의 친화력의 결속은 느슨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인력을 가진 대위와 오틸리에라는 사람이 그 결속에 쉽게 들어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갔을 것이라는 짐작이 되었다. 오틸리에는 자아의 색이 거의 없는, 이렇다할 장점이 없는 백지같은 사람이다. 대위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잘 갖춰진 예의에 기반해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네 사람의 인물특성을 보면, 자아존중감이 높은 에두아르트의 짝은 그의 색을 담을 수 있는 오틸리에,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 줄 아는 샤를로테에게는 그를 존중해줄 수 있는 대위가 더 강한 친화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에두아르트의 행적도 어느정도 이해가능범주에 들어오게된다.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해준 것은 어린시절 짧은 사랑을 느끼게한 샤를로테가 아닌,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르게까지 만든 오틸리에였을테니까. 반면 샤를로테의 대위와의 사랑이 중점적이지 않게 제시된 이유는, 그녀와 대위의 친화력이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친화력으로 인해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둘도 사랑을 하지만,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사랑처럼 격정적이거나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은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한다. 윤리적 잣대에 비추어보면 이들의 결론이 옳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사랑’도 그렇게 마무리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전주의적 체념을 할 수 있었떤 이유는 이들의 사랑이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사랑에 후행되었기 떄문이다. 즉 만일 에두아르트가 오틸리에와의 인력에 끌려 샤를로테와 정신적 분리를 이뤄내지 않았다면, 이 관계는 생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한 부가적 장치로 그들의 관계를 설정하였기 떄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낮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처음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이해되지않던 에두아르트의 사랑에 대한 고찰을 하고나니, 그와 사랑한 오틸리에는 어떤 사랑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 싶어졌다. 그녀가 에두아르트에게 느낀 사랑은 샤를로테가 에두아르트에게 가진 관계유지를 위한 어떤 당위성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에 묘사된 오틸리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계속해서 묘사되며, 그녀에게 남편을 빼앗긴 샤를로테의 입 통해서도 끊임없이 언급된다. 샤를로테는 오틸리에로 인해 자식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기는커녕 절망하는 오틸리에를 위로한다. 이 책에서 오틸리에는 어떤 존재인가. 1부에서 오틸리에는 기숙학교 여교장의 편지와 조교의 동봉편지로 묘사된다. 오틸리에는 친절한 소녀이다. 그러나 완벽한 소녀는 아니다. 학습속도도 느리고,과한 절제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샤를로테의 서술로는 그녀는 예쁘고, 착하지만 어딘가 안쓰러운 소녀이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초상이 담긴 팬던트를 차고 다닌다. 그녀에게는 ‘부모의 부재’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편지들에서 묘사되는 결여들이 그녀에게 존재하는 것같았다. 오틸리에는 늘 차고 다니던 아버지의 팬던트를 에두아르트의 곁에 있을 때 이따금씩 벗으며, 이후 미장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을 완전히 벗어버린다.나는 이것이 오틸리에가 부친의 빈자리를 에두아르트로 채우려는 무의식이 작용했다고 추측했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는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난다. 오틸리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기때문에 또래집단에서도 충분히 교제상대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젊은 날의 에두아르트처럼 금전적 목적으로 나이많은 남성인 에두아르트에게 다가간 것도 아니다. 토론 중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오틸리에의 사랑은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쉽지않다. 나이가 많은,또한 자신을 아끼는 양어머니의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녀의 사랑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생각하다가 일전에 들은 ‘엘렉트라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는 여자아이가 모친을 증오하고 자신의 부친에게 성적 애착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오틸리에의 사랑이 부모의 부재속에서 얻게된 외로움이 양부모(에두아르트 내외)에게서 엘렉트라 컴플렉스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녀의 사랑을 보는 관점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소설의 묘사에 따르면 오틸리에는 꽤나 가엾은 소녀이다. 제대로된 부모의 사랑이 결여되어있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던 사랑도 빈자리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지시와 지도가 삶의 지시표가 되어주곤 하는데, 오틸리에는 이 지점에서의 애착형성이 제대로 되지않아 기숙학교에서도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현했으리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오틸리에에게 에두아르트라는 존재는 그녀의 부재하는 애착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에두아르트는 자기 주장이 강한남자로, 그의 자기주장이 오틸리에에게는 부모로부터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을 다가왔을 가능성이 없지않다. 그의 권위적인 모습을 봄으로써 오틸리에의 사랑이 기인했다는 가정이다, 소설의 결말부로 가며 이 생각이 더욱 짙어진 것은 샤를로테의 아기가 오틸리에의 실수로 죽고 난 뒤 오틸리에의 태도를 보면서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 아기를 죽인 것에 대해 속죄한다. 오틸리에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그 과정에서 에두아르트의 사랑을 밀어낸다. 오틸리에의 사랑에 본인만을 생각했더라면, 단순히 에두아르트와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했더라면 아기가 죽은 것과는 별개로 에두아르트의 사랑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절절하게 자신의 여자가 되어달라는 에두아르트의 요구에 고개를 가로젓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후 죽음을 택한다. 나는 이것이 그녀 스스로 에두아르트에게 느끼는 감정의 형태를 자각했거나, 또는 자신이 어떤 미래를 가졌을지 모르는 ‘어린 아기’에게서 그 삶을 빼앗았기 때문에, 어린 스스로를 그곳에 투영해 그렇게 괴로워하고 죽어간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했다. 요약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에두아르트는 부성애를 채워줬던 인물이며, 동시에 그녀가 누군가에게 부성애를 뺴앗는 경험을 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니 오틸리에의 처지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초반에는 샤를로테에게 감정을 이입해 소설을 읽어나갔지만, 오틸리에의 비중이 높아지며 자연스레 그녀에게 더 이입하게 된 것같다. 친화력을 읽고 느낀 것은,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과 친화력을 느끼고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형태는 두 사람이 공유할지라도 다른 형태를 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나도 나와 친화력으로 맞닿아있는 사람과 공유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의 형태에 대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분석해보며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기에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s********3 2026.0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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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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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관심을 끄는 일에,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그러나 원래 인류의 연구 대상은 인간 자체이다" /228 영화 '비거플래쉬'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던 중 <친화력>과 연결지어 영화를 소개한 글을 읽게 되었다.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궁금했다.그리고 '친화력'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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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의 관심을 끄는 일에,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그러나 원래 인류의 연구 대상은 인간 자체이다" /228

 

영화 '비거플래쉬'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던 중 <친화력>과 연결지어 영화를 소개한 글을 읽게 되었다.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궁금했다.그리고 '친화력'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친화력 속 이야기는 영화 '비거플래쉬'에만 국한 되는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인류의 연구 대상은 인간 자체라는 문장을 마주 한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친화력'에서 괴테 선생이 하고 싶었던 말을 찾아낸 것 만 같아서.인간에 대해 궁금하고,끝임없이 연구를 하고 싶었으니 당연히 평범한(?)듯한 모습에서는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이해할 수 있을까?를 따져 보고 싶었던 거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는 사랑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서로의 반쪽과 헤어지고 난 후 다시 만나게 된 에두아르트와 사로테...그렇게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았던 그들에게 새로운 남녀 한쌍이 나타난다.당연히 제 3자의 개입을 원치 않았던 샤로테의 의견은 무시되었고..결과는 우려가 현실로.그러니까 막장에 가까운 설정으로 소설은 진행되는 것 처럼 보여 준다.그러나 소설을 쓴 이는 대문호 괴테가 아니던가? 그는 여기에 수많은 상황들을 창조해 냄으로써 에두아르트는 정열적인 인물로,사랑 앞에서는 불가항력의 무엇이 있다는 것으로 오틸리에를 만들어 낸다.남이 하면 바람,내가 하면 로맨스라던데..괴테 역시 '사랑'이란 우리가 알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는 것 아닌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알수 없는 무언가의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친화력 되겠다.불가항력적인 자연법칙과 인위적인 도덕법칙 사이에서 우리는 끝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것.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움직여 지고 전자의 성향이 더 강한가,후자의 성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않은가..에 대해 주장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작자의 실제 경험이 녹아 들어 있다는 설명도 읽었지만.우리가 바람을 피는 이들에게 가장 크게 들이대는 잣대가 '도덕'이고,그들의 항변은 반대로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걸 감안하면..재미있구나 싶다.그러니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고 싶었을 테지..그리고 작가가 내린 결말이란 결국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을 연상시키는 '죽음'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다. 물론 죽음만이 답이 아니라는 부분도 그려냈긴 했지만 말이다.(자유롭게 흘러가야 하는 이들에게 규범은 곧 궤도 이탈을 말한다고 했으니..혹,괴테의 물의 기운이 강한 분이었을까?^^) 문학적인 재미가 매우 컸다고는 말할수 없을 것 같다.그럼에도 잘 읽혀진 건 괴테가 진정 인간에 대해 연구한 수많은 분석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때로는 작위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고 하고,또 가끔은 냉소적이다 못해 염세적이다 싶은 느낌을 받을때도 있었지만 '사랑'에 대해,그리고 인간의 수많은 모습들에 대해서는 적나라하게 만났다는 느낌 특히 오틸리에의 일기를 통해 쏟아 내는 생각들은 거의 필사 수준이었는데..다만 아쉬운 것은 그녀의 변화 과정에 대한 개연성이라든가 더 깊은 사고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그렇기때문에 소설로 읽는 친화력은 다소 지루하고 밋밋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그러나 아포리즘을 찾아 가는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메모를 하기 위해 멈추는 시간들이 제법 되지 않을까 싶다~^^

메모 중 일부를 조금 소개해 보면 이렇다

 

우리는 즐겨 미래를 내다본다.그이유는 우리가 그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뭔가 확실치 않은 것을 침묵 속에 기원함으로써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들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다.전달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의 문제이다.

자기가 남을 얼마나 자주 잘못 이햐하는가를 안다면 아무도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반복할 때 그 내용을 바꾸는 까닭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공박과 아첨은 둘 다 대화를 그르친다

가장 기분 좋은 모임이란 그 안에서 구성원 상호간에 밝은 마음이 두루 존중되는 그런 모임이다.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스스로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는가를 통해서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우스꽝스러움이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우리의 감각과 연결되는 도덕적 대비에서 생겨난다

감각적인 사람은 간혹 우습지 않을 때 웃는다.그를 자극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의 내적인 만족이 표출되는 것이다.

오성적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이성적 인간은 거의 아무것도 우스꽝스럽게 여기지 않는다./187~189

w*******i 2016.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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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친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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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적 사랑과 낭만주의적 사랑을 하는 네 남녀의 이야기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샤를로테와 대위 이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파우스트로 잘 알려진 괴테의 작품으로서 외국에서는 친화력 한 작품을 가지고서도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 질정도로 생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장 전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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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적 사랑과 낭만주의적 사랑을 하는 네 남녀의 이야기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샤를로테와 대위

이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파우스트로 잘 알려진 괴테의 작품으로서 외국에서는 친화력 한 작품을 가지고서도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 질정도로 생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장 전개, 이미 결혼 한 부부가 서로 다른 남성과 여성에게  '선택적 친화력'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화학적 개념인 친화력 개념을 괴테는 인간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려 하였다.

화학에 아무런 개념적 지식에 없다고 하더라도 무리가 되지 않는 책이다.

본능적 사랑을 좇아 결혼이라는 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낭만주의적 인물의 대표 에두아르트와 결혼의 신성성을 강조하고 절제와 체념으로 자연적 본성인 친화력을 부인하고자 나서는 샤를로테 부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변화과정은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여겨 봐야할 대목일 것이다.

괴테라는 작가를 보고 마냥 어려울 것이라 단정짓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7****j 2015.07.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