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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1952)』를 통해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세계적인 문학가 어느스트 헤밍웨이에게 그가 인정한 단 한 명의 문하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이였던 아널드 새뮤얼슨이 헤밍웨이가 쓴 「횡단여행」을 읽고서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1934년 봄에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키웨스트를 가기 위해 차편을 구걸해 가면서 3200여 킬로미터를 여행하게 되는 순간부터 헤밍웨이를 만나 1년 동안 헤밍웨이와 그의 가족, 그를 찾은 방문객들과 함께 키웨스트는 물론 쿠바, 멕시코만류가 흐르는 바다 위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문에서 보면 이 책은 아널드 새뮤얼슨의 딸이 아버지의 사후에 받은 유품인 상자에서 헤밍웨이와 관련한 빛바랜 편지와 사진, 항해일지와 헤밍웨이와 자신의 대화 등을 기록한 원고를 발견하게 되고 그 모든 자료를 읽고 아버지와 헤밍웨이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는 사실, 아버지의 원고가 지니는 가치를 생각해 출간을 결심했던 것이다.
서문에는 이러한 과정과 아널드 새뮤얼슨의 전기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본문으로 넘어가면 아널드 새뮤얼슨의 시점에서 헤밍웨이를 만나러 가는 과정과 그를 만나 1년의 생활을 함께 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헤밍웨이는 아널드가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서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1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에스콰이어 지에 실린 아널드의 글에 대해 헤밍웨이가 축하 전보를 보내게 되는데 그 메시지를 보면 헤밍웨이가 아널드와 그의 작품에 대해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앞으로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대문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로부터 작가 수업을 받은 인물이자, 헤밍웨이가 유일하게 인정한 단 한 명의 문하생이 헤밍웨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남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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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헤밍웨이의 작가수업 : 작가가 전하는 삶의 용기 신경숙의 표절논란은 우리나라의 문단현실을 심연 밖으로 꺼내 보이는 사건이다. 대중의 인기와 익숙한 작가의 표절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럴 수 있었겠다, 어쩔 수 없었겠다’고 바라보는 행위는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세상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타협하는 시선은 우리 사회의 정치에서도, 자신의 일상에서도 비겁성을 키워가는 폭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을 속이고, 세계를 속이고, 지인을 속이고, 자신을 속였던 행위는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녀에게 헤밍웨이는 말한다.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p.33 이 책은 저자와 헤밍웨이의 1년동안의 추억을 담은 회고록이다. 작가의 글에 반해 직접 찾아갔던 아널드 새뮤얼슨도 대단하지만, 눈빛만 보고 그를 받아준 헤밍웨이도 만만치 않다. 가난한 그를 받아주어 일자리를 주며 그의 글을 봐주고, 일상을 함께한 그들의 우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헤밍웨이는 글쓰는 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많지는 않다. 다만 어떤 태도를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똥 같은 걸 팔게 되면 똥 같은 걸 계속 쓰게 돼. 행여 글이 나아진다 해도 독자들은 언제나 첫인상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지. p.71 그의 삶은 현실정치보단 일상의 정치를 보여주는 삶이다. 비겁성과 방어성을 거부하려 했던 공격성이 마구마구 적혀 있다. 그가 아널드에게 건 낸 말은 곧 자신이 어떻게 살고자 하는 의지이리라.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 상대의 입맛을 맞추는 소설은 쓰지 않겠다. 생계를 위해 소설에 매달리지 않겠다. 무엇을 하든 두뇌 노동자는 되지 않겠다. 절대로 살아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않겠다. 죽은 작가들과 겨루겠다. 사나이가 되겠다. 이처럼 이 책은 용기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항상 기억하겠다. 소리치며 머리 속에 박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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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우리에게 온 탄생비결이 놀랍다. 미국에서는 이미 절판되었던 책을 역자가 유학시절에 마을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다시 세상에 나온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이미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서서 부나 명성을 모두 얻었던 그 시절, 헤밍웨이를 무척이나 존경했던 한 작가지망생이 헤밍웨이와 1년간 함께하면서 쓴 회고록형식의 글이다. 사실 제목은 작가수업이라고 나와있긴 하지만, 작가수업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헤밍웨이를 만나게 된 사연부터 시작해서 그와 1년간 함께하면서 낚시, 자연, 인간관계등 헤밍웨이를 밀착해서 들여다볼수 있는 회고록에 가까운 책이다.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나 괜찮은 헤밍웨이를 만날수 있었던 책이다.
아널드는 작가지망생이다. 그는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이란 단편소설을 읽고 작가에게 푹 빠져버린다.그리고 헤밍웨이를 무조건 만나야겠다는 일념하나로 5200여킬로미터를 여행해서 헤밍웨이가 살고있던 키웨스트까지 힘겨운 기차여행을 한다.자신을 문전박대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의 생각과 달리 헤밍웨이는 첫날부터 그를 너무나 편하게 대해준다.단지 이것저것 글쓰기에 관해서 몇가지 물어볼 생각에 갔던 아널드는 그곳에서 헤밍웨이의 새요트인 필라호를 관리할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와 그후로 1년이란 세월을 같이 하게 된다.특히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낚시이야기는 엄청 인상적이다.얼마나 헤밍웨이가 낚시광이었고 스포츠맨이었으며 여러 다방면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인정어린 사람이었는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너무나 즐거웠다.어마어마하게 큰 새치를 낚기 위해서 무려 3개월이란 세월을 쿠바 아바나항구에서 배에서 먹고자며 매일 낚시대를 드리우는 그는 그저 이웃집 부자아저씨 같기만 하다. 그는 낚시를 즐기면서도 아널드가 쓴 글을 봐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글은 경험을 통해서 나오므로 풍부한 경험을 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선 사람들의 생각깊이 들어가야 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글을 쓰지 말라는 조언도 한다. " 절대로 살아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그들을 따돌릴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의 어색함이라네." P33 그에게 읽어야 할 책들까지 세심하게 적어주고 자신의 글에 조바심을 내는 아널드를 위로하기도 한다.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낚시하는 수기를 써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그래서인지 아널드에 의해서 쓰여진 이 책은 무척이나 현장감있게 박진감있게 재미있게 쓰여져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에게서 엄청난 글쓰기 수업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펼친 책이었는데 사실 엉뚱하게도 헤밍웨이라는 작가를 더 좋아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세계적인 대문호는 이럴것이다라는 기존의 내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린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탈하고 정이 넘쳐흐르는 헤밍웨이를 만났다.이렇게 정이 가득한 그가 왜 말년에 우울증으로 인해서 권총자살을 했을까 싶어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다.의욕넘치고 자신감넘치고 늘 밝고 아낌없이 베풀어주었던 전성기시절의 헤밍웨이를 만날수 있었던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었다.이제 그가 남긴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볼 일만 남은 셈이다.이 한권으로 너무나 친숙해지고 편안해진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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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헤밍웨이에게 작가 수업을 받은 사람이 있다?? 정말 부럽기 그지 없는 일일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아널드 새뮤얼슨이 행운의 주인공이다. 1년동안 그과 함께 한 이야기속에는 정말 곳곳에 보석같은 팁들이 그에게 전수된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헤밍웨이란 작가가 워낙 유명하지만, 그의 글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새삼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음악을 전공한 나의 경우, 유명작곡가들의 삶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과목이 있었다. 모짜르트나 베토벤, 라흐마니노프등...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점임을 느껴보았기에 이 책이 더욱이나 인상적이였고, 고전에 좀더 다가갈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p.31 무엇에 몰두하고 실력이 쌓이기 위해 만 시간의 법칙이 한창 유행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시간만 채워서는 절대 예술의 완성도를 올릴수 없음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사실 이 책은 작가수업이라는 책 제목처럼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생각보다는 많지않다. 그러나 딱딱한 이론적인 수업보다는 함께 생활하면서 던져주는 팁들이 진정한 작가비결을 가르쳐준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로 하는 수업에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리라. 헤밍웨이와 바다에서 쓰는 항해일지, 그리고 경험들은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수업시간이였을것이다. 하루는 수백마리의 쇠돌고래떼의 멋진 광경을 보게 된 날이였다. 엄청난 감격에 젖어있는 저자에게 헤밍웨이는 말한다... "그걸 써볼 생각이랑 말게, 묘사가 불가능해. 그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수 없어."p.172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대상자에게 그 감격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인데, 이 글귀를 보면서 헤밍웨이가 얼마나 수많은 글을 또 쓰고 또 쓰고 또 다듬고, 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수 있었다. 그리고 감동을 전할수 없는것들을 냉정하게 인정하는것 또한 중요한 덕목임을 느낄수 있었다. "항해일지 쓰는게 재밌습니다."(중략) "좋은 연습이야. 자네나 나나 똑같은걸 보지.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항해일지를 쓰다보면 내가 어떻게 기록하는지 보게 되고, 무얼 주의 깊게 봐야하는지 배울거야. 치밀해지는 법을 배우고, 문장을 다루는 요령 같은 것도 배우게 될 걸세. 내게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구술 연습이 되니까."p.175 문구를 인용하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많이 언급했지만, 수많은 생활속에서 한번씩 대화속에서 전해주는 기술들이다. 사실 헤밍웨이의 인간적인 모습이나 생활상. 인품들도 볼수 있는 책이여서 매우 인상적이고 재미있고, 또 다시 읽고 싶은 책이였다. 진정한 작가가 된다는건 분명 힘든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감격을 주고 힐링이 되어주고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것은 매우 값진 일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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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에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읽고난 이후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좋아했다.
영화도 멋졌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어찌나 청순하고 이쁘던지, 내가 다 설렜다.
먼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었을 때는 아니었다. 물론 영화 속 록 허드슨은 잘생겼다.
예전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헤밍웨이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가 쿠바에서 새치를 낚는 사진을 봤다.
미국 키웨스트부터 쿠바 아바나가 그의 주 무대였다. 그때부터 쿠바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끌렸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의 작가수업]에 붙은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1년’이라는 부제에 말이다.
이 책은 작가지망생 아널드 새뮤얼슨이 1934년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이라는 작품을 읽고 그를 만나기 위해 키웨스트에 갔다가 1년동안 함께 한 회고록이다.
아널드는 살아생전에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았다. 헤밍웨이에 대한 기억을 그저 간직했다.
유작으로 남은 이것을 그의 딸이 고심 끝에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헤밍웨이가 아널드에 대해 쓴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 일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아널드는 헤밍웨이가 자기를 알아봐주었다고 기뻐했단다.
이 글에서 ‘당신네 통신원’은 헤밍웨이 자신이다. 이것은 [에스콰이어]지에 기고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뛰어난 파수꾼인데다 선상에서 일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열성적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민첩해야 할 때는 굼떴고, 이따금 두 발과 두 팔 대신 발만 네 개인 듯 했다. 흥분하면 긴장했고, 뱃멀미는 구제불능이었고, 일을 시키면 촌놈같은 반감을 품었다. 그래도 시간만 넉넉하게 주면 늘 기꺼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서 우리는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는데, 그 별명은 결국 마이스로 길이가 줄었다. 바람이 한바탕 몰아치기만 해도 그는 사지의 균형을 잃고 버둥거렸기 때문에 한번은 동승한 당신네 통신원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이스, 자네는 확실히 무지하게 대단한 작가가 될 걸세. 다른 일엔 눈곱만큼도 쓸모가 없으니까.” 반면 그 친구의 글쓰기는 착실하게 향상됐다. 언젠가는 작가가 될 만한 그릇이었다]
‘발만 네 개’, ‘일을 시키면 촌놈같은 반감을 품었다’는 정말 웃음이 나온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주변인들을 지독하게 다루는 헤밍웨이에게 이 정도는 애정표현일 듯 싶다.
쿠바의 아바나까지 필라호를 타고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멕시코만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헤밍웨이는 아널드에게 본 것에 대한 묘사를 제대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리고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p.87)]
다행히 아널드는 그 해 1년동안 제법 잘 따랐던 것 같다. 작가수업이라지만, 헤밍웨이가 아널드의 질문에 답을 해준 것은 많지 않다.
사실 그는 거대한 새치를 잡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안다.
그 후에 헤밍웨이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1952)를 쓰고 플리처상(1953)과 노벨상(1954)을 받았다는 것을.
그래도 이 책에 기록된 헤밍웨이의 조언을 읽어 볼 필요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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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세 개만 여기에 인용하겠다.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헤밍웨이가 손가락으로 내 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 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매일같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전부 다시 쓰게. 얘기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싶으면 쓰기 전에 바로 앞 두 세장 정도를 되짚어 읽어본 후에 시작하게. 그리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거라네. 검토할 때 잘라버릴 만한 건 모조리 잘라버리게. 무얼 내팽개쳐야 할지 아는 게 핵심이야. 잘하고 있는지 여부는 뭘 버리느냐에 달려 있다네. 다른 작가가 쓰더라도 정말 재미있겠구나 싶은 걸 내다버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걸세.”(p.31~32)]
나도 한번 해 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하다보니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더란 말이다. 좀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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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지인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마음껏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그 때문에 욕을 많이 먹기도 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 같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과 함께 낚시하는 얘기를 좀 써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괜찮다마다. 쿠바에 돌아온 후, 겪어보니 그런 개자식이 따로 없더라고 해도 좋아. 그건 자네의 특권이니까.”(p.73)]
헤밍웨이가 경험한 것들은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 소설은 어떻게 써야된다는 말인가. 바로 이때 알고 있는 실존 인물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를 재미있는 상황에 던져놓고 액션을 만들어내
[“최고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나요?”
“아니야, 최고의 이야기는 꾸며내는 거라네. 액션을 꾸며낼 수 있어야 해. 소설이 될 만한 일을 실제로 삶에서 벌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열에 하나 정도야. 자네가 자네를 소재로 쓰면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는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쓰면 천 번을 죽고도 계속 쓸 수 있지. 자네가 아는 사람을 하나 골라 그의 나이와 전력을 바꾸고 그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라로 그를 옮겨놓게. 그래도 그는 실존 인물인 거야. 그를 재미있는 상황에 던져놓고 액션을 만들어내. 꾸며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네.”(p.115)]
나도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가식이 벗겨지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어떤 상황에 밀어넣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겠다.
상상만으로도 신이 나는 것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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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헤밍웨이는 떠나는 아널드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이보다 더 잘 쓸 순 없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보내지 말게. 근사한 걸 썼다 싶으면 원고를 갖고 이리 내려와. 언제라도 기꺼이 살펴보고 조언해줄 테니. 그게 지금부터 6개월 후든, 1년 후든, 2년 후든 오기만 하면 잠잘 곳은 우리가 꼭 마련해주겠네. 아무튼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p.319)]
나는 절대 걱정하지 않는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건강' 오직 그것 뿐! 오늘의 컨디션이 좋으면 만사 오케이! 운동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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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리뷰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로 돌아오겠다.
[마에스트로 : 제가 작가가 될 것 같습니까? 당신네 통신원 : 그걸 무슨 수로 내가 알겠나? 재능이 없을 수도 있지.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모를 수도 있고, 써낼 수 있어야 좋은 얘깃거리가 있는 거지. 마에스트로 : 그건 어떻게 알죠? 당신네 통신원 : 써. 5년을 매달리고도 형편없다면 그때 가서 자기한테 총질을 하라고. 마에스트로 : 날 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네 통신원 : 그럼, 나한테 와. 내가 쏴줄 테니까. 마에스트로 : 고맙군요.(p.323)]
모두가 헤밍웨이의 최후가 생각날 것이다.
건장한 체구에 복싱과 낚시를 좋아하고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고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았으며 잘난 체를 하기 좋아하고 허세도 센 헤밍웨이가 자기 자신에게 한 일을 말이다.
그것을 처음 알았을 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저 유명한 [노인과 바다]의 구절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자신이 쓴 이 글처럼, 헤밍웨이는 예전에 창조했던 위대한 작품들을 더 이상 뛰어넘지 못하는 패배보다는 스스로를 파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노쇠해가는 자신을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아널드의 딸이 소개글에서 언급한 ‘이 이야기는 인생의 가혹함이 어떤 대가도 요구하기 전, 그들이 열정적이면서도 냉정한 자신의 본성을 충실하던 시절에 벌어진 일들이다.(p.13)’라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정말 그랬다. 1934년 헤밍웨이는 35살, 아널드는 22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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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헤밍웨이, 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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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활력이 넘치는 그들이 미끼를 물은 청새치들과 씨름을 하고, 탐욕스런 상어들이 쫓아오고, 쇠돌고래들이 뛰어오르던 그 해 쿠바의 여름바다에 영원히 살아 있다.
그 시간이 노인과 바다에도 흘러 들어갔다.
[E.H.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날의 쇠돌고래들은『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어부의 꿈 속에 등장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지 않았다. 그 대신 십오륙 킬로미터나 길게 뻗어 있는 엄청난 쇠돌고래떼의 꿈을 꾸었다. 짝짓기 때였고 쇠돌고래들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는 뛰어오를 때 수면에 생긴 바로 그 구멍 속으로 도로 떨어지곤 했다.”(p.173)]
아, 언젠가는 쿠바에 꼭 가서 그 바다를 보고 말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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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바다를 얼마나 사랑했던 걸까..이 책의 제목은 <헤밍웨이의 바다>여야 한다.인내심을 발휘하며 읽어야 했다."작가수업"이라는 말에 혹해서 본다면 조금 힘들게 읽을수 있을 것이다.이책은 번역가의 말대로 대자연,바다,낚시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글이다.낚시며 바다에 전혀 관계도 없고,관심도 없는 나는 무척 힘들게 읽어야했는데,좀 익숙해지고,바다의 매력에 빠질때쯤 이야기는 끝나갔다.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이말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아널드 새뮤얼슨 이라는 처음 듣는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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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던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어떤 방식으로 글이 전개 될까 기대하게 한 건 헤밍웨이의 어떤 스타일이 어떻게 표현되어 나올지에 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무작정 읽고 무작정 써라, 라는 식일지, 글 쓰고 나면 오류를 지적할 지, 라는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젊은 아널드가 헤밍웨이와 함께 했던 일 년 이라는 시간이 그려진다. 바다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거장, 헤밍웨이와 바다에서 함께 보낸 시간 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책 한 권 전체를 통틀어 전개되는 바다 낚시, 헤밍웨이와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독자도 그 속에서 같이 낚시를 하게 하고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듣게도 한다.
젊은 아널드 새뮤얼슨,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열차 지붕 이라는 불안하고 온전치 못한 차편 이라도 마다 않는다. 당시는 한참 경제 공황으로 일자리가 없어 너나 할 것 없이 부랑자 같이 지낼 수 밖에 없던 시절, 기차의 검은 연기까지 온몸으로 맞는 힘든 여정 끝에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헤밍웨이와의 만남, 그의 생김새, 키가 크고 덩치 있는 그가 아널드를 맞이하던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하면 어떤 말을 할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어떻게 이해해 줄까, 가슴 떨리던 첫 만남, 그리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것저것 챙겨주던 헤밍웨이, 그의 책들이 꽂혀있던 방, 읽어 보라며 적어주던 책 몇 권. 젊은 아널드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헤밍웨이는 아널드가 기대하지 못했던, 함께 지내면서 바다에 나가 낚시도 하고 글도 쓰자던 제안을 하고 아널드는 그의 요트에서 지내게 된다. 바다에서의 낚시하는 모습, 요트에서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전반적으로 전개되어 지고, 특히 쇠돌고래 들이 나타나서 점프하던 그 모습은 글로써 접하는데도 흥분하며 읽어가게 하는 벅찬 장면 이었다. 독자인 나까지도 아널드처럼 펄쩍 뛰어 가며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으니까.
"그걸 써 볼 생각일랑 아예 말게. 묘사가 불가능해. 그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E.H 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몇 년 후 그 날의 쇠돌고래들은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어부의 꿈 속에 등장했다."
요트 위에서의 생활과 낚시를 통해서, 아바나 항구 도시에서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그 생활이 아널드에게 좋은 글감이 되어 줄 거라던 헤밍웨이의 조언들, 작가 지망생이라면 느꼈을, 재능이 있기나 한 건지에 대한 불안감, 쓴 글을 읽으며 덧붙이거나 빼주기도 했던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한 과정들이 교실에서의 수업에 비교할 수 있을까.
"자네나 나나 똑같은 걸 보지.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 보냈던 일 년은 아널드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독자로서도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 바다 낚시를 하고 아바나 항의 그 사람들과 만났던 유익했던 시간으로 남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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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새뮤얼슨과 헤밍웨이의 만남... 그리고 탄생한 '헤밍웨이의 작가수업'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읽는 내내 인생에 있어 어쩌면 자신이 꿈꾸는 어떠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녹초가 되도록 글을 써대도 읽고나면 자신의 글에서 악취가 풍겼다고 고백하는 아널드에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빛이요, 등불처럼 느껴졌으리라.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마치 노숙자처럼 그렇게 그는 헤밍웨이가 살고 있다는 키웨스트로 내려간다. 그 어떠한 것도 수중에 가진 것 없이, 그는 볼품없는 옷차림과 모습을 하고, 헤밍웨이의 집 문을 두드렸으리라. 자신의 전부를 걸고, 그곳까지 왔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순수했는가를 느끼게 하는 키웨스트로의 여행길.. 그저 자신이 이야기를 쓸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띔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찾은 헤밍웨이의 집에서 그는 일년이란 시간을 함께 지내며, 삶을 나누고 작가수업을 받게 된다. 하루 일달러.. 그러나, 아널드에게 있어 헤밍웨이와의 함께하게 된 시간의 가치는 그것을 넘어서 아널드의 평생의 작가의 길을 올곧게 걷게한 원동력이요, 힘이 되었음을 .. 이 책을 읽으며, 헤밍웨이의 작품으로써가 아닌, 헤밍웨이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를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싶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나 또한 아널드처럼 이야기를 쓸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소하고, 소소한 팁같은 것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삶 자체로 글을 이야기한다.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도,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이 두뇌 노동자와 같은 삶을 살아선 좋은 글을 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나이가 되어야 해!" (p.166) 헤밍웨이의 친구 로페스가 아널드에게 해 준 이야기는 작가의 삶은 그저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다에서의 삶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읽는 내내, 낚시를 알지 못하는 나란 사람 또한 돛새치가 낚시릴에 걸렸을 때의 느낌처럼,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낚시를 하며, 한번씩 아널드와 헤밍웨이가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작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들이 주어졌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떠한 글의 기교가 아닌, 눈을 이용해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고스란히 글 속에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끔은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 대충 껴맞추듯 글을 작성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제가 작가가 될 만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아지고 있어. 무척. 소질이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날 거야." "제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지.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알아." . . . "꾸준히 써보게. 그렇게 낙심하지 말고. 자네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쉽게 낙심하는 사람이야. 그게 천재의 징후일 수도 있겠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해..... (p.312) "어떤 장소에 관해 그곳에서 멀어지기 전에 쓰는 건 금물이야. 떨어져 있어야 균형 잡힌 시각이 생기거든. 무엇을 본 직후에는 그걸 사진처럼 묘사해서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 좋은 훈련이지...." (P.313) 우리도 늘 이런 고민을 한다. 하고 싶은 일과 목표가 생겼을 때.. 제가 이것을 할 만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세요? 나 또한 서른이 넘어 새롭게 배우며 시작한 일을 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다. 경력이 쌓여야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라며 이야기해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아널드처럼 그저 묵묵히 이 길을 갈 뿐이지만.. 그래도 늘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며 내가 발견한 것은 빛이었다. 그리고 희망이다. 그래.... 어니스트가 아널드에게 해 준 말처럼, 꾸준히... 그리고 낙심하지 말고 그것외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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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릇, 소설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는 경우가 많다. 부코스키도 그랬고. 솔제니친도 그랬고. 황석영, 현기영의 소설도 그랬다. 그 외 무수히 많은 이들의 소설에서 자전적 요소와 그를 통한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서 조각배 한 척에 의지하여 거대한 청새치.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 산티아고와 헤밍웨이를 같은 사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헌데.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난 시기의 헤밍웨이는 가난한 노인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는 매우 성공한 작가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헤밍웨이의 지인 로페스 멘데스의 말처럼 그는 의리와 열정이 넘치는 사나이었다. 166. "무얼 하든 절대 두뇌노동자는 되지 말게. 사나이가 되어야 해! 항상 그걸 명심하게. 그게 내가 어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고, 어니스트가 날 좋아하는 이유라네, 항상 그걸 명심하게, 절대 두뇌 노동자가 돼서는 안 돼. 그건 자네한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야. 사나이가 되어야 해!"
열정적인 사나이 헤밍웨이는 매년 여름이 찾아오면 글작업을 하던 키웨스트를 떠나 쿠바의 이바나로 향했다. 자신의 보트 필라호를 타고, 몇 명의 사람을 고용하거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몇 달 동안 청새치 사냥에 나섰다. 낚싯대와 보트에 의지하여 청새치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청새치의 피맛을 보고 달려드는 상어를 가차없이 쓰러트리는 모습. 손가락이 베여 손이 퉁퉁 부어도 붕대를 감고 매일같이 낚시를 나가는 모습. 이 모든 것이 헤밍웨이를 사나이로 묘사하는 서사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노인과 바다>의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의 문장에 담긴 의미가 헤밍웨이가 이바나에서 낚시를 하는 시간 동안 주의를 둘러 보고, 실제로 겪었고, 성찰했던 삶의 교훈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2. 사나이 헤밍웨이가 필라호를 타고 청새치를 낚으러 나섰던 시간 가운데 1년 동안을 아널드 새뮤얼슨은 함께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키웨스트로 향했던다고 고백한다. 의리가 넘치는 헤밍웨이는 그런 아널드를 매정하게 돌려보내지 않았고,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30.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 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서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32.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해. 32. "모르는 건 쓸 수 없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는 건 시야. 공간과 인물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얘기가 진공 속에서 벌어지게 되지. 창작은 써가면서 하는 걸세. 그 날의 글쓰기를 끝낼 즈음에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알겠지만 그 이야기 다음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네." 33.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83.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신문 잡지의 취향에 맞게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제대로 쓰고 싶다면 어떤 잡지에 보내건 간에 이야기를 거기 입맛에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해. 난 이야기를 탈고할 때까지 출판에 대해선 일절 생각하지 않아..이야기는 정확히 자기가 마땅히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는 거지 출판사 편집자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게 아니야. 87.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자네들이 매일같이 글쓰기 연습을 하겠다면 쓴 걸 훑어보고 잘못된 걸 말해 주지." 314. 최상의 글쓰기는 절대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서 들은 말 중에서 필요한 어휘를 고르게. 그것들은 수세기의 검증을 거친 말들이야.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중략) 글이 나아질수록 더 힘겨워져.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거야. 만약,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헤밍웨이의 삶의 정수가 담긴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을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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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교과서 같아요 언어를 지배해본 사람만이 가르칠 수 있는 방법들에 놀랍니다... 그가 말한 글쓰기의 치밀함은 어떻게 터득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에 대해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