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 시인에게는 기억하는 시간이 많다. 그는 이 많은 시간을 요리한다.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다듬어 버무린 다음 예감이라는 모양으로 미래의 접시에 요리를 담는다.
이 시인을 발견한 계기가 있다. 나는 신형철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두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 절묘한 수에 오금이 저릴 정도다. 그래서 그는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에 그의 시화집 [인생의 역사]를 읽었다. 부록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에 대한 발문을 발견했다. 유독 눈길이 갔다. 바로 돌 하나 던져 새 세 마리를 잡았다. 그의 시집과 수필집을 찾고, 구매하고, 읽었다.
시집은 어렵다. 특히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하는 시집들은 더 어렵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뿌연 안개 속 틈 하나를 발견해서 얻는 깨달음의 무게는 묵직하다. 그 깨달음은 항상 내 앞에 놓은 밥상을 엎어버린다. 그리고 새로 놓인 밥상에는 처음 먹어본 듯한 새로운 요리가 하나씩 있다. 요리의 맛은 가관이다. 절묘하다는 말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다. 우리나라 시 백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 형질 같은 것이 박준의 시에는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시에는 미덕이 있다고도 한다. 내가 본 그의 미덕들을 정리해본다. 그에게는 그리움이 있다. 그에게는 심미안이 있다. 그에게는 무심함이 있다. 그의 시는 뒷모습이 보인다. 그의 시에는 유별난 ‘나’가 있다. 그 ‘나’는 작은 것에 반응하고, 그 차이를 요리하고, 만든 차이를 음미하다 못해 애인으로 삼는다. 당사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그의 시에는 시간들이 있고 그는 시간을 항상 돌아본다. 돌아본 시간들은 미숙했지만 서로에게 공평했고, 나른한 일상이 있고, 작은 욕심도 보이고, 낙관의 기운도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들이 가는 마지막 목적지는 평화다. 박준에게는 준비성이 많다. 그는 현재를 불러서 다독이며 미래를 지시한다. 신형철은 그런 박준의 마음을 ‘현재를 미래에 선물로 주려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누구에게? 바로 자신에게. 박준은 두 삶을 산다. 신형철의 말을 빌리면 아픈 일들을 잊지 않으려는 삶과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들에 대한 예감으로 버텨내는 삶이라고 고백한다. 이런 두 삶을 살려면 두 배 이상의 사랑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박준은 삶이 두 개 듯 사랑도 두 개다. ‘아픈데 가렵다’고 하는 배려의 사랑과 ‘가렵고 아프겠다’는 공감의 사랑이다. 박준은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기다렸던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 회상과 예감을 오간다.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고, 그를 아프게 할 말과 행동을 걸러내며 준비한다.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그런 돌봄이 그에게는 있다. 박준은 요리사다. 박준에게 요리는 ‘당신이 먹으면 좋을 것을 좀 만들어 두는 일’이라고 신형철은 말한다. 요리 역시 미래에 혼자 미리 갔다 오는 일이고, 당신을 데리고 한 번 더 그곳에 가는 일이니 박준에게 요리는 돌봄과 같다. 그에게는 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세상에 흔한 작은 것들이다. 그 작은 것들은 나름대로 다름이 있다. 다름은 누군가를 반대편에 두는 일지만 틀림처럼 벽이 없다. 반대편은 내가 서있는 곳과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알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일들이 이 시집에서 벌어진다. 신형철의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아마도 ‘작은 차이들의 연인’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람 같다.
이런 박준이 가진 마음씀들이 결국 사랑이 아닐까? 그가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이 시집이 내게 준 보살핌은 내가 겪었던 어느 누구의 돌봄보다 따스했다. 박준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닮은 고마움으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
|
[ 선잠 ]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그해 봄에 ]
얼마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의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 손과 밤의 끝에서는 ]
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에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 생활과 예보 ]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마음, 고개 ]
당신 아버지의 젊은 날 모습이 지금의 나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잔돌을 발로 차거나 비자나무 열매를 주워 들며 답을 미루어도 숲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먼 이야기 이를테면 수년에 한 번씩 미라가 되어가는 이의 시체를 관에서 꺼내 새 옷을 갈아입힌다는 어느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서늘한 바람이 무안해진 우리 곁으로 들었다 돌아 나갔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옷을 툭툭 털어 입으며 당신을 보았고 그제야 당신도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으로 맞이하지 않아도 좋았을 날들이 어어지고 있었다
[ 호수 민박 ]
민박에서는 며칠째 탕과 조림과 찜으로 민물고기를 내어놓았습니다
주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제 점심부터는 밥상을 물렸고요
밥을 먹는 대신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물에서든 뭍에서든 마음을 웅크리고 있어야 좋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동네의 개들이 어제처럼 긴 울음을 내고
안개 걷힌 하늘에 별들이 비늘 같은 빛을 남기고
역으로 가는 첫차를 잡아타면 돼지볶음 같은 것을 맵게 내오는 식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승이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이곳은 공간보다는 시간 같은 것이었고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장마 ]
그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 잠의 살은 차갑다 ]
깊은 잠에 빠진 살은 차다
간장에 양지를 졸이는 꿈을 며칠 이어 꾼 것을 두고 나는 마음으로 즐거워했다
으레 그럴 때면 외투를 한 겹 더 입었다
겨울옷들의 소매는 언제나 길고 나는 삐져나온 손끝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욕실의 치약과 굳은 치약을 힘주어 짜냈을 안간힘에 대해 생각했다
물건을 새로 뜯지 못하는 나의 버릇을 병이라기 보다는 몸가짐이라 부르고 싶었다
이 겨울과 밤과 잠과 아직 이른 순 洵과 윗바람 같은 것들은
출현보다 의무에 가까웠으로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 소/라/향/기 ... |
|
박준의 시는 항상 온기와 함께 물기를 머금고 있다. 곳곳에 한숨과 눈물, 그리고 밥 냄새, 사람 향기가 배어있다. 그의 시를 읽고 들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의 따뜻함은 태생적인 것일까? 환경적인 영향일까?
그가 조곤 조곤 말하는 단비, 영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인다. 한없이 어리고 젊은 시절의 추억을 부르는 그의 시는 여전히 강하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를 쓴다고 시가 좋을쏘냐 소월의 것인 듯 윤동주의 것인 듯한 이런 시가 더 지내다보면 기형도가 될 지도 모르는 그의 시가 무릎꿇게 하고 오래 울게 할 지도 모른다. 무릎끓은 사람의 어깨를 안게 할 지도 모른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거듭 거듭 세상에 말을 건넨다
-단비-
올해 두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좋은 세상- ___영아
눈은 다시 내리고 나는 쌀을 씻으려 며칠 만에 집의 불을 켭니다
섣달이면 기흥에서 영아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얻은 휴가를 서울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잔업이 많았고 지지난달에는 함께 일하다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느라 서울 구경도 오랜만일 것입니다
쌀은 평소보다 조금만 씻습니다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 머지않아 낡음을 내보이겠지만
영아가 오면 뜨꺼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 문득 서럽거나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세상모르고 먹을 것입니다
|
|
장마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엽서를 모으던 때가 있었다 한 장에 백 원 천 원을 들고 열 장을 사서 돌아나오는 길에는 세상의 모든 그리움의 말을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펜을 들고 이름을 쓰려다 망설이다 엽서를 책 속에 끼어 놓았다 아무말이나 적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적지 못한 말은 지금의 슬픔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다짐은 우리는 혼자일 것이라는 예언이다
낮과 밤 -박준 강변의 새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떠나는 일이었다 낮에 궁금해한 일들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답으로 돌아왔다 동네 공터에도 늦은 눈이 내린다 한숨 자야 하루를 보냈다는 실감인 날이었다 오전에 일을 잊기위해서라도 낮에서 밤으로 바뀐 걸 보고야 잠이 드는 시간 흐린 하늘을 날아 새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눈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새들이 날아간 그곳에는 낮과 밤이 존재할까 모든 의문을 묻은 채 잠이 든다
입춘 일기 -박준 비가 더 쏟기 전에 약국에 다녀왔습니다 큰 길에는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제 시내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凄然이 가까워졌다면 기억은 멀어졌다"라는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비를 맞듯, 달갑거나 반가울 것 하나 없이 새달을 맞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불빛보다 사람보다 문 닫은 상점이 더 많았습니다 임대와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1월을 걸어 2월 지나 3월에는 봄을 만날 것이라 예감합니다 봄이 먼저 와 있을 것이라는 편지가 도착하기 전까지 달려가겠습니다 아득한 오늘에서 선명한 내일의 일로 기다리겠습니다 |
|
시집은 일찍 사두었는데 바로 만나지 못하고 이제야 봤습니다. 박준 첫번째 시집은 2012년에 나왔는데 두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군요. 그동안 박준이 시를 안 쓴 건 아니겠지만, 첫번째 시집은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알았는데 두번째 시집은 나오는 거 바로 알았습니다. 저는 시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알았지만, 나오기 전부터 나온다는 걸 안 사람도 있었겠습니다. 박준 시집이 나오길 기다린 사람이 그랬겠습니다. 저는 나오면 볼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온도가 그리 높지 않은 마음이군요. 많은 것에 그런 반응입니다. 어쩌다 한번 조금 들뜨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 덜 기대하기. 이런 말하는 것 자체가 아직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제가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괜찮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한번 한 말인데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시도 가끔 봤어요. 알고 본 건 아니고 그냥, 잘 몰라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시를 만나지 않은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 시간 없이 줄곧 봤다면 나았을지. 그건 모르겠군요. 예전보다 지금 제가 책을, 시를 잘 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우니(이 말도 여러 번 했군요). 전 시는 언제 누가 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나이 성별을 떠나서. 제가 살았을 때 어느 정도나 시를 만나고 책을 볼 수 있을지. 여전히 많이 보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깊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잘 모르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잊는다 해도 책 보는 게 낫겠지요. 그 안에 시가 있다면 더 괜찮을 듯합니다.
한국말로 시를 쓴 지 일백년쯤이 되었군요. 이런 건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는 늘 있었다 생각한 건 아닌지. 조선시대에는 한시를 썼겠습니다. 한글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선시대에도 한글로 쓴 시 있지 않았을까요. 황진이 생각나는군요. 조선시대에 한글로 쓴 소설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지금도 시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70, 80년대에 더 많이 좋아했다는 말도 있지만, 70, 80년대는 시대가 그랬으니. 일제강점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할 때 시인은 한글로 시를 썼습니다. 그때 시는 공부 시간에 배워서 어렵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제 상징 은유, 이밖에 어떤 말이 있던가요. 다 잊어버렸네요. 학교 다닐 때라고 그런 걸 잘 알았던 건 아니군요. 시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시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이론대로 시를 쓰지도 않겠지요. 그저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걸 쓸 거예요.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단비>, 36쪽~37쪽
앞에 옮겨 쓴 시에서 단비는 개겠지요. 개라고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과 살아서 개는 일찍부터 새끼와 떨어지는군요. 어미와 떨어진 새끼는 다른 집에 가서 밤새워 울 듯합니다. 그래도 동물은 어릴 때 어미와 떨어져도 씩씩하게 삽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도 언제까지나 자식을 걱정하지요. 그런 마음 애틋하게 보면 좀 낫겠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48쪽~49쪽
이 시집 제목이 담긴 시예요. 누군가한테는 아픈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다른 해와 다르지 않게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고 장마를 맞겠지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과 갑작스러운 일. 2019년이 저만 슬픈 해는 아니었겠군요. 해마다 다른 곳에서 아프고 슬픈 일을 만나는 사람 많을 듯합니다.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슬픈데. 더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거 더 슬픕니다. 별 말 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를 먹는 건 슬픔을 안고 그것과 함께 사는 거군요. 어릴 때는 막연히 생각했던 건데. 박준은 저보다 더 일찍 그런 일을 겪었군요. 이 시집에도 그런 마음을 나타낸 시가 보입니다. 그것이 맞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흐르는 건 막을 수 없겠습니다. 거기에 휩쓸려 다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텐데.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들고 강으로 간다
-<천변 아이>, 73쪽
배가 고파도 아이는 게를 불쌍하게 여겼군요. 어릴 때는 그러지요. 그런 마음이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모든 먹을거리한테 고맙다고 해야겠습니다. 식물, 동물 다. 욕심내지 않고 딱 자신한테 있어야 하는 만큼만.
저도 몰랐는데 박준을 문학계 아이돌이라고도 하더군요. 재미있는 말입니다. 시인에도 그런 사람 있어도 괜찮겠지요. 예전에도 그런 시인 소설가가 없지 않았겠습니다. 여기에는 한철만 담기지 않았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말합니다. 지금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건 신형철이 쓴 해설을 보고 그렇구나 했습니다. 지나간 날이라 해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 찾아오기도 한다는. 예전에는 몰랐던 걸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기도 하잖아요. 지금 일은 언젠가 나중에 다가오기도 하겠습니다. 기억과도 같군요. 어떤 시간은 그곳에 남아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흐르는 건 멈출 수 없다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겠네요. |
|
1. 아주 오래 전이었어. 마냥 순진한 아이가 있었어. 그애는 세상에 "나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몰랐지. 그리고, 세상이 자기를 싫어할 줄도 몰랐어.
그해 우리는 /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 같은 음식을 먹고 /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 "선잠" 일부
그래, 오늘은 그 아이에 대해 얘기해 볼 거야! 남들이 하는 일들은 그 아이도 다 해보겠다는 다짐을 했지. 그 전에,
내 소개를 하지! 안녕 나 "다이어리"야. 2018년도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니, 거의 1년만이지! 그 동안 뭐하고 살았느냐고?
온몸으로 온몸으로 /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 "84P"일부
그래, 긴긴 시간이 있었지.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지나고, 겨울을 온몸으로 견디는 중이야. 나의 시간도 이렇게 가고 있지. 그 아이처럼 말이야.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 "여름의 일" 일부
그때 그 아이는 누군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상처받곤 했지. 비가 쏟고 걸음도 지척이는데, 그 울음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는 몰랐어. 서럽고 서러워서 그냥 울기만 하던 때.
가장 오래 // 기억하게 되는 꿈은 //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 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 태몽일 거라며 당신이 웃었습니다 - P.44
그 아이에게 웃어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몰라. 그러나 그 아이는 분명 기억하지. 그 사람의 웃음이 자신에게는 한줄기 빛이었음을. 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태몽처럼, 그 사람은 그 아이 대신 아파했고, 그 아이 대신 기도했어.
외롭지? 그런데 그건 외로운 게 아니야 가만 보면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외로운 거야 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게 아니다. - P.58
아이는 그 사람이 대신 아파해주고, 또 그 자신을 보고 웃어주기 시작하자,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지. 아이는 점점 더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세상이 자기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지.
아픈 와중에도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웃고 웃다 보면 새벽이 가고 오한이 가고 흘린 땀도 날아갔던 것인데 영은 목이 점점 더 잠기는 것 같다고 하고 아아 목소리를 내어 보고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까지 따끔거린다 하고 언제 한번 경주에 다시 가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 "나란히"일부
비로소 아이는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어.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으므로 나쁜 사람도 있다는 걸.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마냥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는 것도 깨닫기 시작했지. 아이는 점점 더 자라, 정치를 이해했고, 경제를 이해했고, 국제정세를 이해하기 시작했지.
점점 귀가 어두워지는 것 같을까 // 좋은 일들을 나쁜 일들로 잊을까 // 빛도 얼룩 같을까 //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버릴까 // 그래서 나도 버릴까 - "안과 밖" 일부
아이는 세상을 점점 더 이해할수록 자신의 귀가 어두워지는 걸 느꼈어.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살인까지 하는 사람을 보았으며, 나라의 살림을 맡은 사람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보았어.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고,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
이 겨울과 밤과 잠과 / 아직 이른 순과 윗바람 같은 것들은 // 출현보다 의무에 가까웠으므로 /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 P.87
싸우는 사람들,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불안 같은 것은 없어 보였지. 그런데 아이가 점점 세상을 알아갈수록 아이는 한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어. 불안해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사실은 내면 속에 저마다의 불안을 한아름 안고 있다는 것. 결국,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는 것을.
달갑거나 반가울 것 하나 없이 새달을 맞고 있었습니다 - "입춘 일기"일부
아이는 그제서야 깨달었어. 자신도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안은 죽는 날까지 계속 가져가야 할 슬픔인 것을. 그 불안을 기도의 힘으로 간신히 간신히 극복해 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불안을 열정으로 잊어보려는 사람도 있고, 그 불안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소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끝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 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인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 "세상 끝 등대 3" 일부
아이는 이제 세상을 너무 잘 알아. 그래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게 되었지. 아이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애쓰지도 않지. 누구에게나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아무리 나쁜 사람도 마음 속에 존재한 불안은 어찌하지 못하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존재한다는 걸 아이는 이제 알지.
아이의 에너지가 나 "다이어리"에게 전해져와서,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해봤어. 그럼, 나 "다이어리"에게도 어느 정도의 불안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어. 그 불안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무언가를 이룩하려고 더 노력하게 되니까. 지금 나의 불안이 나의 미래를 더 크게 만들거라고 난 믿어. 그럼, 오늘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마음에 드는 시집이 또 나타나면 다시 돌아온다!
I'll be back!!
|
|
'영감같다'는 말은 나이보다 늙고, 느긋하고, 옛것에 천착하고 속깊고 통찰있고 달관하며 또 그리고 뭐가 있을까 좋은 뜻 나쁜 뜻이 함께 섞여있다. 물론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두 가지 결이다. '영감같다'는 뜻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나이보다 나이들어버렸고, 이순이 넘은 시인에게서 보이는 우울의 정조를 넘어선 관조와 여유로움 너그러움이 언뜻언뜻 박준 시인의 시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상관없다, 시인의 물리적 나이와 시의 정조는 그다지 큰 상관이 없다. 물리적 나이보다는 물리적 체험, 정신적 경험이 시의 정조와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래된 자들만이 깨달은 어떤 느낌, 태생이 그랬어야 느낄 수밖에 없는 도회의 입으로는 도저히 맛을 느끼기 어려운 향토의 토박이의 고장의 맛을 느끼는 입이었다. 그래서 좋다. 산문집보다는 시가 좋았던 이유기도 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모던한 사람도 아니고 포스트모던한 사람은 더 아니어서 우리 시대 시의 양식으로 모습으로 느껴야 하는 세련된 감각이 버거웠다. 뜻을 알기는 커녕 느낄 수 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다. 되려 양식이나 형식으로 이 시대의 모던함을 표현하면 뜻이 아니라 그 텍스트의 모양 자체를 그대로 그야말로 보기만 하면 되니 그런 시들이 오히려 더 직관적으로 더 다가올 때도 있었고, 숨겨진 의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게 한 시들을 보면 반가웠고 뜻은 알기 어렵지만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그 이미지나 느낌들을 느낄 수 있는 시들까지도 괜찮았는데 그런 시들을 빼고는 도저히 이 시대의 시들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이 시대의 세련미와 이 시대의 감각을 나는 잘 모르니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도회의 맛이 아니라 고장의 입이다. 그러니 박준 시인의 시가 이렇게도 마음에 천착할 수가 없다. 평론가는 근사하게, 나의 '영감같다'는 느낌을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조금 먼저 사는 사람 우리보다 일찍 온 사람, 그래서 우리의 시간보다 앞서서 살았던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나이든 자라고 한다. 젊은 우리는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들을 나이든 자는 알 수도 있었겠다. 많은 이들이 좋다고 할 시들은 빼고 여기 실린 어떤 시들도 다 좋았지만 인상적이었던 시 몇 편 다 올린다. 참여라고 하면 이렇고, 사회의식이라고 하면 이렇다. 문상 한밤 울면서 우사 밖으로 나온 소들은 이곳에 묻혔습니다 냉이는 꽃 피면 끝이라고 서둘러 캐는 이곳 사람들도 여기만큼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냉이꽃이 소복을 입은 듯 희고 머지않아 자운영들이 와서 향을 피울 것입니다 '집단 살처분의 현장'에 묻힌 소 그 땅위로 올라온 냉이 봄의 기척이 들리면 먼저 보이는 냉이는 시간이 지나면 하얗게 꽃이 피고 세어버린다. 냉이 꽃이 하얗게 피면 봄도 며칠이 지났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논둑으로 논으로 보랏빛 자줏빛 자운영꽃이 핀다. 자운영꽃이 핀 다음은 논을 간다. 풀씨를 뿌려 키운 자운영꽃은 조사료로 이용되는데 소먹이다. 시를 읽으며 시인이 이 과정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행 열차 자리는 비좁고 우리는 난민 같았습니다 종일 앉아만 있어도 손톱 밑이 검어지는 마음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었습니다 열차는 오래전 죽은 영부인이 태어난 군郡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큰 바위 밑 석굴을 공양간으로 삼고 있다는 절도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해의 끝은 낡고 비려서 데워진 구들이라면 어디든 가서 눕고 싶었습니다 곧 터널로 들어갑니다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몸짓은 언제나 느린 것이라 생각하다가도 달 구경하듯 별 구경하듯 객실의 흐린 독서등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KTX에 타, 속도는 빠르지만 여전히 지치고 끊임없이 소진해가야 하는 삶을 사는 치열하고 복잡한 사회를 사는 우리가 마음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자 난민같다고 말했나 옥천 어디쯤을 지나 내려가는 길이었나보다, 남행열차였으니 낡고 비리다는 표현으로라면 어디 바닷가로도 가려나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몸짓을 생각하는 모양을 보니 어디로 가려는지 알 것도 같았다 독서등이 흐렸단다, 흐렸단다. 오늘 마늘을 한 접 더 사오는 것으로 남은 겨울을 준비합 니다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 들여야 할 것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반쯤 낡았고 반쯤 비어 있 는 채로 새해를 맞습니다 어제는 '들'이라 적어야 할 것 을 '틀'로 잘못 적었지만 고치지 않았습니다 달라질 것 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내일은 바람이 잦아든다고 하니 구경을 겸해 뒷산을 오를 것입니다 며칠 전 내린 큰 눈 이 아직 나무들 위에 쌓여 있을 테고 그러다 어디서 바람 이라도 불어오면 날리는 백매白梅를 함께 보았던 사월도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겨울 준비가 마늘 한 접을 더 사오는 거라고 한다. 아마 겨울 준비로 마늘 한 접 더 사기를 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쯤이나 되려나보다, 일흔도 넘은. 달라질 것이 이제 많지 않다는 말, 아련하기도 아쉽기도 그러나 어쩔 수 없기도 한 말 뒷 산에 올라 며칠 전 내린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지난 봄 보았던 사월의 백매가 부럽지 않듯이 다시 올 봄의 백매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이러니 '영감같다'는 거다. '영감같은' 박준의 시다. 영감같은 건 시인 박준일까, 시인 박준이 쓴 시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
|
‘그해’라는 시어를 보면 나는 이성복 시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어가 아니었던가.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그해 가을」, 「1959년」 등등. 이성복의 ‘그해’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그날」)아하는 삶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정확한 지점이 있었다. 이제 '그해'는 박준으로 더 기억되는 시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박준의 ‘그해’는 미인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시공간에만 쓰인다. 시공간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없음’의 지대다. 미인이 영영 떠나 화답을 바랄 수 없는 화자가 추도 연서(戀書)를 보내는 제사(祭祀)의 영역이다. 있었던 일이었지만 결코 완료는 되지 않을 것이기에 좋았었다고 말하지 않고 ‘좋았을’(「마음, 고개」, 「가을의 제사」)이라 말하고, ‘좋을’-‘들어가고 있을’-‘도착했을’-‘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숲」) 것이라는 가정 시제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물건을 새로 뜯지 못하는”(「잠의 살은 차갑다」) 버릇이 몸가짐처럼 되었다 말하듯이 죽음과 깊은 상실을 복기하는 특성은 박준의 독특한 시적 정황이 되었다. 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은 독자라면 더 잘 이해할 것이다. 두 번째 시집이 나오기 전에 나왔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산문집에서도 느꼈지만 그 특성은 이제 바깥을 보듬는 힘으로 더 넓어졌다. 가족부터 마을 사람들까지 두루 살피며 음식을 나눠 먹는 풍경이나 '새끼 거미'(백석 「수라(修羅)」)가 가족을 잃을까 염려하던 백석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괜찮아져라 괜찮아져라”(「안과 밖」), “쌀은 평소보다 조금만 씻습니다”(「좋은 세상」-영아)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이 박준의 시에서는 빛이 난다. 그는 어떤 빚이 있어 이런 빛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이 비슷한 상황을 우린 레이먼드 카버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도 만난 적 있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빵집 주인이 따뜻한 롤빵을 건넸고 그들이 그것을 먹으며 잠시나마 기운을 차리던 것을. 백석, 허수경, 박준이 시에서 건네는 음식 풍경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면서도 주변과 읽는 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과잉된 내적 발화와 온갖 작법의 실험으로 가득한 작금의 시들 속에 박준의 시가 이렇듯 인기를 끄는 것은 자신과 주변을 동등이 그리고 잔잔히 살피는 이 마음 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말을 하고 있음에도 박준의 시에서는 들으려는 귀가 더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인 거 같다. 그가 쓰는 형용사와 부사만 봐도 늘 대상을 더 살핀다. “불을 피우기 미안한(형용사) 저녁이 삼월에는”(「삼월의 나무」), “겨우(부사)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84p」), “가. 그냥 가지 말고 잘(부사) 가.”(「사월의 잠」) 등등. 읽은 이를 놀라게 하고 뽐내며 이기려고만 드는 멋진 수사와 문장들은 사실 읽는 이에게 스트레스다. 세상과 문제점을 비판하긴 쉽지만 편안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문장이야말로 한 수 위다. 이것은 어떤 시적 기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다. 이것은 몸가짐이고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배운다고 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럴 수 있기까지의 시간과 경험을 모두 똑같이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에게 시에게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시를 문장을 읽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 좀 해보자. 시에 놀라운 발견과 전이(轉移)만 요구할 것도 아니고, 감성을 채워주는 서정만 바랄 것도 아니다. 혼잣말을 출판까지 할 이유가 없는 이상 시도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전하는 말이다. 죽은 이에게 더 공손하듯 편지로써 더 공손하듯 시에서 시를 통해 더 그러하려는 박준은 한국시에서 귀한 미인(美人)이다. 자신의 말이 진정 바라는 사람됨을 전하고 있는지 마음을 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집이었다.
|
|
좋아하던 작가들(이석원, 박준 요 두 작가 신작에 실망했습니다.)이 쓴 신작들 보고 요새 실망하며 느낀 것인데 작가라는 직업은 다이버, 잠수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수부가 바다 밑에 들어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무섭게 느껴진다면 은퇴해야하듯 작가도 전작보다 더 좋은 작품에 대한 고뇌와 연구를 게을리한다면 펜을 꺾는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좀 심할까요? 작가라는 직업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얕은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독자에 대한 일종의 배임행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 그런 건지요? 특히 시나 에세이 류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 더욱 그게 느껴집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이번 박준 시인의 작품은 전작보다 얕은 고민과 탈고속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문단으로 마무리되는 시들이 많고 작품을 2,3번 읽어도 작가의 정서를 어떻게 작품으로 포장하려는 노력보다는 본인의 막연한 정서를 대충 풀어놓고 던져버린 느낌이 듭니다. 박준 특유의 색감을 기대하는 독자는 더 깊은 심해로 안내해주길 원했건만 왠지 자신의 이름이라는 브랜드로 독자에게 그 몫을 맡겨버리고 손을 놓은 느낌이랄까요. 작가를 위시한 셀럽지망생이 넘쳐나는 요즘 또 하나의 훌륭한 자질을 가진 작가를 잃지 않길 바랍니다. |
|
―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22)를 읽고정갈하고 슬픈 곡조의 정서를 골라서 잘 쓰는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는 것은 자신을 갈고닦아 정제된 마음을 적은 시어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시 본문에서 골라낸 문장들인 소제목들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모두 시집의 제목이 되어도 망설임 없이 골랐을 것이다.누군가에서 쓴 편지 같은 시들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장마」를 읽으며 이 시집의 제목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 있겠습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밑줄을 긋고 귀 접기를 했다. 슬픔을 말하지 않겠다는 문장과 다르게 이 시집은 슬픔으로 버무려진 시들의 묶음이다. 그 슬픔이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흘러넘쳐 장마가 되었기에 함께 장마를 볼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편지들이었다.편지 형식의 글들이 갖는 특성이 다정해서 쉽게 읽힌다는 설명도 기억났다. 이 시집을 읽으며 ‘정말 그렇구나!’하고 한 발짝 더 감겨들었다. 모든 시가 편지로 읽혔고, “우리들의 천국”은 어디쯤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했고, “당신”(「그해 봄에」)은 누구일까를, “그해 봄에”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혹시, 시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나였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음 시를 보자.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처음 던진 질문은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내게 고개를 돌려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일부마지막 연에서 다음 장을 넘길 수 없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 맘 같지도 않은 일들’이 어찌 봄에만 있으랴, 온 생애를 걸쳐 퍼석거리는 자갈밭 길을 ‘이마저도 행복’이라고 다독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특히, 봄에는 더 그런 것 같다. 4월, 5월로 상징되는 굵직한 현대사를 가진 우리이기에 봄에는 ‘이대로 대책 없이 또 한 해를 죽지도 못하고 살아내야 하나?’ 그런 어쩌지 못하는 생에 대한 생각들이 읽힌다.
시집 전체적으로 낮고 슬프고 아프다. 비어 있지만, 어딘가를 과거에서 미래까지를 연결하려고 애를 쓰는 마음을 보내고 있다. 당신을 그리워하며 ‘나 여기 있다’라고 가라앉힌 밀도 높은 슬픔의 밀들로 편지를 쓰고 있다. 왠지 모르게 목젖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가 「숲」을 읽으면서는 참았던 눈물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시인이 오래전에 보냈던 말들이 내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고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고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쓸 것이므로 슬픔에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숲」 부분무언가 알 것 같은 슬픔이 굴러다니는 시집이었다. “맑은 당신의 눈앞에, 맑은 당신의 눈빛 같은 것들이” 알 것도 같은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가득한” 편지들이었다.시 편마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꼭 있었다. 멈춰서 다시 읽고, 밑줄 긋는 순간이 좋았다. 이 시집을 읽은 것이 그런 문장을 발견한 나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문장을 숨겨 둔 시인과의 놀이 같았다.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도 있었다”(「우리들의 천국」), “더 오래여도 좋다는 듯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메밀국수」), “떠나는 일보다 머무는 일이 어렵던 가을이었다”(「능곡 빌라」),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호수 민박」) 등 시 속에 이런 빛나고 멋진 문장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시인이 애초부터 이 문장들을 붙잡고 시를 써 나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가장 좋았던 문장은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여름의 일」)이다. 알 것 같은 슬픔이 적힌 시집을 읽던 여름이었다.첫 번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에서는 자기 내면을 향한 격정의 슬픔이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당신’을 향해 더 낮고 깊은 슬픔 속으로 걸어 들어간 긴급 구조요청 같았다. 내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그가 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둘러 손을 내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