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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한 역사가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읽었습니다. 예일대학 역사학과의 티머시 스나이더교수가 뉴욕대학에서 유럽근대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토니 주트교수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20세기를 생각한다>입니다. 토니 주트교수는 지난 4월 <기억의 집; http://blog.yes24.com/document/8021311>으로 라포르시안 독자들과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기억의 집>은 저자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동안에 발표한 글들을 묶어서 사후에 내놓은 책인 반면,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스나이더교수가 예일대학에 잠시 머물던 2009년 1월부터 여름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주트교수의 집을 방문하여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스나이더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을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라고 정의하고, “이 책은 유럽과 미국의 근대 정치사상사이다. 주제는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正義)다. (…) 이 책은 정치사상의 한계(그리고 쇄신능력)와 정치 영역에서 지식인들의 도덕적 실패(그리고 의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9쪽)”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세기를 생각한다>는 [북소리]에서 이미 소개했던 버나드 루이스교수의 <100년의 기록; http://blog.yes24.com/document/8105305>처럼 토니 주트교수의 삶과 학문의 세계를 집대성한 기록입니다. <100년의 기록>의 저자 버나드 루이스교수가 유대계인 것처럼 토니 주트교수 역시 친가와 외가 모두 동유럽에 뿌리를 둔 러시아 유대인으로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발생한 유대인 학살사건 이후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冒頭)에서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밝히고, 출생경위와 성장과정을 정리하여 자신의 학문적 배경을 설명하는 모양새가 닮아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주트교수의 전공이 유럽의 역사이기 때문인지 유럽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까지 이야기가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자는 유대인 문제가 자신의 지적활동이나 역사 연구에서 결코 중심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가운데 유대인 문제를 빠트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억의 집>이 개인적인 삶에 관한 기록이었다고 한다면 <20세기를 생각한다>는 학문적 성과는 물론 자신의 철학이 형성된 과정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면, 책읽기도 환자 사례를 경험하는 일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평생 보기 힘든 사례를 누군가는 잇달아 경험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첫 번째 사례를 경험하면서 공부한 깊이 덕분에 다른 의사라면 놓칠 수도 있는 희귀 사례가 진단되는지도 모릅니다.
사전에 질문의 요지를 건네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하였고 때로는 장난기도 섞여있었지만, 두 사람의 정신적 도서관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잘 분류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녹취한 자료는 스나이더교수의 서문과 주트교수의 에필로그를 비롯하여 모두 9개의 장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 점에 대한 스나이더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장은 전기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토니의 생애와 20세기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현장들, 말하자면 유대인과 독일인의 문제인 홀로코스트, 시오니즘과 그 유럽적 기원, 영국의 예의주의와 프랑스의 보편주의, 마르크스주의, 유럽과 미국의 사회계획 등을 관통한다.(13쪽)” 책을 읽어가면서 철학은 물론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에 나온 다양한 저작물의 핵심내용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기억용량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히틀러의 파시즘이 느닷없이 등장해서 세력을 얻은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만,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등장했던 것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면서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정치적 방식으로 유럽대륙은 물론 심지어는 영국에서도 부상할 정도였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1930년 전후에 맞은 경제위기에 무능력한 정부에 반발하여 파시스트동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지만 1936년 폭력을 유발하고 공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대중적 호응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귀족들까지도 히틀러의 파시즘이 공산주의나 무질서를 막아줄 보루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트교수는 사회주의 성향인 가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저들을 탐독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작동방식과 이유를 놀랍도록 훌륭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1960년대까지도 지식인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고 합니다. 무정부주의나 개혁주의, 심지어는 자유주의까지도 당대의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기독교와 다윈주의와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주트교수처럼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917년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은 공산주의가 보인 행태에 실망한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운동에 관하여 알고 있던 것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1909년 팔레스타인의 데가니아에 처음 세워진 키부츠는 재산을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거주지로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주민들의 의식주와 복지·의료 활동 등에 쓰이고, 남은 재산은 키부츠에 재투자된다고 합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키부츠는 개인적인 생활과 사적인 소유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에는 200개 이상의 키부츠에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다음백과, 키부츠(kibbutz),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2k1158a)
이스라엘 독립 직후에 외국에서 자란 유대 청년들을 키부츠로 끌어들이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디아스포라에서 돌아온 유대 젊은이들을 나약하고 현지에 동화된 삶에서 구원하여, 착취당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생명력 넘치는 유대인 농민을 창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주트교수가 키부츠 운동에 빠져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시오니즘이란 유대인성의 허식적 형태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아들의 선택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결국 1967년 6일 전쟁 직전에 소집된 예비군을 대신하여 키부츠에서 일할 자원자 모집에 호응하여 이스라엘에 도착한 주트교수는 이스라엘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국수주의자 이스라엘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종족차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아랍에 반대했으며, 가능하다면 어디서든 아랍인들을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키부츠에 정착하려던 생각을 접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유럽에 파시즘이 대두된 배경을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만, 스페인 내전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총선에서 승리한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군부가 주도한 군사반란으로 인민전선 연립정부의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반민주세력인 지구와 교회의 호응을 얻어 1939년 반란군이 마드리드를 점령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공화파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아나키스트 등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어 정부는 오히려 세력 간의 균형을 깨는 상황을 우려하여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http://blog.yes24.com/document/7967304>에서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내전의 양상은 스페인 사회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따라 카탈루냐 대 마드리드, 남부의 토지 없는 노동자들 대 서부의 중간 계급 지주들, 가톨릭 세력이 강한 지역 대 반교권주의 지역의 대결구도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가 병력·탱크·비행기 등을 보내 반란군을 지원하고, 프랑스와 멕시코 정부는 공화파에 장비와 물자를 공급하면서 국제전의 양상으로 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4만여 명에 달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좌파진영 인사들은 국제여단의 이름으로 공화파 편에서 싸웠습니다. 1936년 10월 스탈린이 공화파 지지를 선언하면서 복잡해졌습니다. 내전 초기 주변세력에 불과했던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공산주의자들이 지역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좌파의 다른 경쟁자들을 억누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지 오웰이 쓴 <카탈로니아 찬가; http://blog.yes24.com/document/8047985>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의 시가전의 배경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버나드 루이스 교수는 <100년의 기록>에서 오늘날의 역사연구 역시 과학적으로 상당히 진화했으며, 무분별한 자유보다는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법을 선호하기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주트교수는 역사라는 학문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그리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발명하거나 이용할 수는 없다(333쪽)’라는 전제입니다. 이는 보기보다 명확하지 않지만, 지성인에게 혹은 견문이 넓은 독자에게 진실로 들린다면 그것은 좋은 역사책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과거를 무시하는 일보다도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인용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례로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무처장이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미국의 전후 독일 점령을 인용하여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을 들었습니다. 상세한 설명을 더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사담 후세인이 히틀러의 환생이라는 비유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와 기억에 관한 비유도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기억이 역사의 배다른 형제라고 비유합니다. 유대인학자들은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다음과 같이 기억(zakhor, 자코르)에 관하여 강조해왔다고 합니다. “국가 없는 민족의 과거는 늘 다른 민족의 목적을 위해 기록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유대인에게 주어진 의무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352쪽)” 그런데 저자는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과거 자체와 혼동되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즉. “유대인의 과거는 집단적 기억에 유용한 과거 일부와 융합된다. 그러면, 당대 최고의 유대인 역사가들의 저술들이 있음에도, 유대인의 과거에 대한 선택적 기억은, 다시 말해 고난과 추방, 희생의 기억은 유대인 공동체의 기억된 내러티브와 합체되어 역사 자체가 되어 버린다.(352쪽)” ‘이와 같은 감성은 실제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라고 저자는 우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 역사학계에서 고조선 등의 상고사에 관한 기록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학자의 입장 때문인가 봅니다. 자료로 입증되지 않은 역사는 가능성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저자는 마지막 장을 사회민주주의에 할애하였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은 “현존 정치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로드베르투스와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제창한 국가사회주의를 모체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카를 마르크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을 접목하여 만든 사회민주주의는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위한 혁명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기본원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스웨덴·영국(노동당) 등 서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집권하여 현대 유럽 사회복지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대공황의 기억, 파시즘의 경험, 공산주의의 공포, 전후 호경기 등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구빈법은 노동을 명령했다. 구제를 받으려면 지역의 구빈원에 가서 경쟁 노동 시장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해야 했다. 그 취지는 빈곤 구제 이용을 억제하고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빈법은 소위 도움을 받을 만한 빈민과 그렇지 못한 빈민을 구분했으며 경제적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도덕적 범주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구빈법은 실제로 사람들을 가난에 빠뜨렸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재원을 다 써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제지간에 이루어진 대화를 바탕으로 20세기를 되돌아본다. 홀로코스트, 공산주의 실패,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몰락 그리고 지식인의 책무와 역사가의 의미에 대한 수준높은 대화들이 이어진다. <포스트 워>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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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은 이 책에 대한 서평 <냉전 이후: 토니 주트를 추억하며>에서 토니 주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토니는 영국인이자 유대인, 프랑스인이었고 최종적으로는 미국인이었다. 세계인이 아니라 내부에 여러 국민성이 공존한 사람이었다.”
그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른 면에서 보자면, 토니 주트는 공산주의자였다가 시오니스트였으며, 나중에는 사회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된 역사가였다.
다른 방향에서 토니 주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20세기 유럽에 대한 가장 놀라운 저서 중 하나인 『포스트워』를 통해 비로소 유명해진 역사가였으며, 그 이후 당대의 문제에 대해 발언을 숨기지 않는 ‘공적 지식인’이 되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스토리가 있었다. 그렇게 유명해지고, 그 유명세가 가장 높이 오른 시점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정신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대체로 통증이 없고 그래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없는” 질병이 루게릭병이지만, 이제 그는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그를 찾아간 사람이 바로 티머시 스나이더였다. 자서전을 쓰지 않은 토니 주트에게 그 자신에 관한 얘기와 함께 20세기를 관해 ‘대화’를 나누자고 한 것이다.
참고문헌 없이 오로지 그의 기억과 지성을 통해 20세기라는, 그가 헤쳐온 세기를 이야기한다. 주로는 정치에 관한 얘기이지만, 그 정치 이야기 속에는 20세기 서구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진다. 비록 다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지만, 이게 과연 그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된 글인가 싶을 정도로 명료하고 풍부한 것이 바로 이 『20세기를 생각한다』이다. 그는 이 책이 나오고 그리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떴지만, 이로써(물론 『포스트워』를 포함한 상황에서지만) 토니 주트는 20세기를 증언하고 논평한 가장 주요한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칭찬만 하지 않은 서평을 쓴 에릭 홉스봄도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생애를 마쳤다.)
책은 크게 두 가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토니 주트의 생애를 회고하는 부분이고, 또 하나는 티머시 스나이더와 20세기의 역사 속의 정치, 사회, 인물 등에 대해 토의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다. 각 장마다 앞 부분은 토니 주트의 생애가, 그러다 자연스레 티머시의 음성이 들어오는 부분부터 좀더 심각하고, 전문적인 토의 부분이 시작된다. 이러한 배치는 아주 세심한데, 한 역사가의 생애와 20세기의 역사가 그대로 대응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암시하면서, 토니 주트나 티머시 스나이더의 생각이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토니 주트는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옮겨온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가 1948년이니, 말하자면 ‘포스트워’ 세대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생애와 관련해서 몇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갖도록 했는데, 그 당시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동유럽에 대한 관심, 유대인으로서의 자각(그는 대학 입학 전 막 건국된 이스라엘로 건너가 농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물론 그는 시오니즘에 대해 실망하지만), 영국인으로서 성장. 영국인으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의 수학(修學)은 유럽인으로서의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해준다. 우리는 그냥 유럽이라고 하지만, 대륙의 유럽과 영국은 분명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다른 시각은 때때로 대립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부모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 대한 호감.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 국가의 현실에 대한 실망에서 나아가 공산주의 자체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 그리고 1960년대, 사회민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민주주의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그런 희망을 가진 채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그러한 생애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에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식견은 이 『20세기를 생각한다』에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포스트워』와는 달리 대놓고 논쟁을 하기 위한 책은 아니지만, 그의 견해는 직설적이라 모든 사람이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책은 생각을 벼리게 하지 못한다. 깨어있지 못하게 한다. 언제나 긴장하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긴장하면서 읽는 책이 필요하다. 그것도 우리의 최근대사에 관한 얘기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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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터무니없이 바빠졌다. 지금도 바쁘니, 이 책에 대한 제대로 된 서평은 기대할 수 없겠지. 나는 아마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이고, 다시 흥분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점심 시간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책을 사지도, 읽지도, 토니 주트라는 역사학자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 주위에 책을 읽던 사람들이 많았을 때, 그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나에게 소개해주곤 했지만, 지금은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도,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도 ...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특히 인문학 책은 제대로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긴 내가 이상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향해 가던 토니 주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티머시 스나이더. 그가 모아 정리한 이 책은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온, 거의 전공자가 없는 동유럽역사 전공자이면 유태인이며 활발한 기고로 세계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 어느 지식인의 지적 여정이면서 동시에 20세기를 개괄하는 탁월한 지성사이다. 1. 유대인와 아우슈비츠, 이스라엘과 미국 앞서 언급했듯이 토니 주트는 유대인이다. 그는 유대인 사회의 문화를 자세히 알고 있으며, 젊은 시절 이스라엘에 가서 공동체 생활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는 유대주의와는 거리를 둔 세계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왜 유대인들이 20세기 초 비난, 공격, 학살의 대상이 되었는지 언급한다. 19세기말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독일어를 구사하던 유대인 지식인들이 왜 희생양이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유대인 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한다. 아우슈비치의 비극에 대해, 그리고 이 비극을 현대 이스라엘은 어떻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아랍 사회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며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가를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과 현대 이스라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유대인이면서 유대주의와 이스라엘을 철저히 분석한 탓에 그는 유대인 사회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2. 역사학자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분석들을 읽다보면, 문학비평가의 글보다 역사학자들의 글이 더 정확하고 깊이 있으며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마 컨텍스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의 차이 탓일 게다. 토니 주트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파트릭 모디아노는 노벨문학상은 받는데, 아직도 밀란 쿤데라는 받지 못할까 늘 의문스웠다. 이 점에 대해 토니 주트가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에 대해 언급하며 쿤데라를 싫어하는 체코 지식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간 쿤데라의 탁월한 작품성에 대해서만 이해했지, 그가 점하고 있는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선 간과해왔던 것이다. 토니 주트가 이야기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가는 아서 케스틀러일 것이다. <<한낮의 어둠>>이 번역되어 있으나, 나는 아직 읽지 못한 탓에 깊은 공감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토니 주트는 작품과 작가의 태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특히 조지 오웰에 대한 분석은 읽어볼 만하다. 작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케인즈, 하이에크, 에릭 홈스봄, 알튀세르 등에 대한 언급은 재미있었다. 에릭 홉스봄은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하면서 보수적인 학계에서 머무는데 성공하였다고 말하고 알튀세르에 대해선 형편없다고 비난한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문화연구라는 흐름은 더 이상 호소력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몇 문장을 옮긴다면, '하이에크의 정치적 자폐성으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정책들 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명백하게 나타난'다고 욕하며, '루이 알튀세르 같은 당 이데올로그들은 몽둥이를 들어 이를 공격했다. 마르크스주의에는 인식론상의 단절이 있다는 주장, 마르크스가 1845년 이전에 쓴 글은 무엇이든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다는 그 주장은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공격한다. 이런 토니 주트의 가감없는 지적들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지적 경향을 무분별하게 수입하고 읽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 현실 정치 '진실을 말하자면,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의 봄이 참사로 끝난 뒤에 정치로부터 벗어나는 탈정치 현상(여론의 개인화)이 매우 현저해졌다.'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마치 한국 사회도 광우병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시위 이후, 그리고 세월호 이후, ... 탈정치 현상이 이어지고 여론이 개인화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치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 사회가 비판적 활력을 잃어간 것처럼 말이다. 토니 주트가 유럽 사회의 정치적 지형 변화에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끊임없이 한국 사회의 20세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민족자결주의와 파시즘 간의 연결고리를 읽으며, 한국 민족주의도 이런 영향권 안에서 생겨났음을,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진보적 지식인들의 희안한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약간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책 후반부의 내용들은 한국 자본주의와 정치 상황의 암울한 전망을 하게 만들었다. '카지노의 논리란 결국 금융 차원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형태이다.' '돈이 돈을 낳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 정치는 경제를 이기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필수 요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정부라면 바로 다음 선거에서 그들을 쫓아내려는 정당에 밀려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4. 좌파 이 책 속에서 토니 주트는 자유주의자로 읽힌다.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도리어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종종 현실에 비판적이면 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한다. 진보적이라고 하면 마르크스에 대해 우호적일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동시에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정부에 우호적일 것이라 믿는다. 이 얼마나 편협하고 무식한 태도인가. <<평평한 세계>>를 쓴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저널리스트들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을 지적하며 토니 주트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그러면서 경제 대신 정치에 무게 중심을 둔다. 그렇다고 해서는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도리어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좌파의 어리석음을 개탄한다. 가령 사르트르같은 이들. 어쩌면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위기는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하는 데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진보라고 하면 좌파여야 하고 사회주의자이거나 마르크스주의자여야 한다고 믿는 건 아닐까. 자유주의자이면서 진보적일 수 있으며 보수주의자이면서 사회의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이 점에서 내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돌이켜 보았다. 대부분 현실 비판적인 책들은 마르크스주의자이거나 스스로 진보 좌파라고 하는 이들의 책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그 책들 대부분은 너무나 반-자본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너무 이상적이어서 너무 공허했다고 할까. 문득 지금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위기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에만 매몰된 채 달려가기만 한 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은 여기에까지 미쳤다. 책은 꽤 두껍고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20세기 지적 흐름이나 그 흐름이 가지는 함의를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나의 경우, 너무 바쁜 시절 이 책을 읽었던 탓에, 다시 여유로워지면 다시 읽을 계획이다. 그 때 같이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제법 긴 서평을 적어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