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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말은 넘쳐는데 정작 말해야 할 때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면서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피하기 바쁘다. 진실 앞에 눈감지 않는 용기가 있을 때 잠든 세상을 깨우는 참된 말이 나온다. -56쪽
하루하루 새로운 게 쏟아지는 시대,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콘텐츠가 범람하는 것처럼 말 또한 경쟁 시대다. 말 잘하는 사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주목받는다. 오죽하면 화술의 기술 즉 말을 잘하기 위한 학원과 책까지 출판될까. 그러나 그것에 반하기라도 하듯이 묵언수행집이 나왔다. 저자는 건강상 피치 못해 묵언 수행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모든 게 급변하는 세상에 이런 책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오히려 이런 책을 통해 진짜 말 잘하는 법, 필요한 말과 말을 아끼는 법 등을 생각해보게 된다. 도대체 하루에 내가 뱉어내는 말 중에 정말 온전히 필요한 말은 얼마나 될까, 또 불필요한 말은 얼마나 많을까. 말을 하기 싫어도 하고 살아야 하는 구조 속에서 피곤했던 적 한 두 번이 아니다. 작금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번 공감할 듯 싶다.
책은 묵언 수행을 주제로 한만큼 많은 글이 존재하지 않는다. 묵언하면서 생각도 단순하게, 삶의 반경도 극히 단순하게 바뀌어버린 탓이다. 그래서 별로였느냐고. 처음에는 그랬다. 여백의 공간을 쉬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자의 간단명쾌함에 저절로 공감의 제스춰를 취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끊임없는 말을 쏟아내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피로했는지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三思一言,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라는 말이 있다. 말을 하기에 앞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말을 뱉어내면서 오히려 역류할 지경에 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공감하기 어려울뿐더러 마음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대신에 말을 아끼면서 필요한 말만 적재적소에 던지는 사람의 말은 경청하게 된다. 매번 생각을 거듭하고 말을 내뱉어야지 다짐하면서도 머리보다 입으로 먼저 던져지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호수에 돌을 던져보았다. 낮은 물은 흙탕물이 되지만 깊은 물은 잠시 파장이 일었다가 이내 고요해진다. 작은 물고기들은 놀라 물 표면에서 움직이지만 큰 물고기들은 깊은 물 속에서 요동하지 않는다. 살다가 돌을 맞거든 깊은 물처럼, 큰 물고기처럼 살아갈 일이다. -37쪽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 속에서 말은 꼭 필요한 것임은 틀림없다. 말이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지 않은가. 말을 못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낫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에 말은 항상 그 사람의 표적이 된다. 말이 많아지면 자기과시나 자기비하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말이 많은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흔히 화술이 좋다는 건 말의 기술, 즉 스킬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말은 진정성은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관계와 소통의 측면에서 본다면 스킬보다는 말에 진정성이 있는 사람, 믿음을 주는 사람이 정말 말 잘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보태어 따뜻한 격려의 말, 희망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또한 말을 통한 소통의 참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해본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인가. 아닌가. 겉으로만 보면 전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말을 잘하는 사람일까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딱 잘라 뭐라 말하기 모호하다. 상대나 대화 주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변수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어찌 됐든 요즘 시대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반대의 경우보다 각광받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무턱대고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말은 본능이다. 저자는 묵언 수행을 함으로써 내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사색과 성찰을 기반으로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고 주변 사람과 환경을 다시 보게 된다. 그 상황과 환경을 통해 나 역시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게 책의 미덕이다. 스피치커뮤니케이션 강의 첫 시간에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말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러 오신 분은 강의신청을 잘못했으니 정정하세요." 그 이유인즉 내 강의는 말 잘하는 기술이 아닌 말의 본질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말을 기술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내 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다. 말은 그 사람의 그릇만큼 나오고 깊이만큼 나오는 것이다. 말을 잘하고 싶으면 기술을 배울 것이 아니라 내면부터 채울 일이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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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어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묵언을 실천하면서 겪고, 느꼈던 것에대해 쓰여있다.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다니...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지은이의 묵언 결심은 우연히 찾아왔다. 목이 아파서 병원을 찾으니 성대종양이라고 듣게된 지은이. 강의 하는 사람이 목소리가잘 나오지 않으니 공포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학생들은 본인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사용하며 강의를 한다. 병원에서는 가장 좋은 치료법이 가급적 말을 하지 않는것이라고 듣게된다. 방학이 시작되었고, 최대한 말을 삼가면서 살아보자 결심한다. 일단은 목을 살리는게 급선무였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묵언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알게해주고, 말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어간다. 시작한 날 부터 마지막 날 까지 총 43일간의 묵언 일기가 하루하루 적혀있다. 각 장마다 짧은 글귀가 써있기도 하고, 약간의 에세이같은 문장을 넣기도 했으며, 그냥 스치듯 지나갈 것 같은 생각의 단편을 적어놓기도 했다. 여백이 많은 사람이라고 지은이를 칭하는 평론가도 있었는데, 책 역시 여백이 많다. 그래서 한글자 한글자 전하고 싶은 말을 확실하게 전한다. 말만 줄인게 아니라 글도 줄여버린 것 같지만 핵심만 짚어내서 더 좋게 느껴졌다. 각종 미사여구를 써가며 글이 길어진다고 꼭 좋은 글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지은이가 묵언을 마치고 가장먼저 한 일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거라고 한다. 얼마나 벅차 올랐을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것에대한 뿌듯함과, 말의 소중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험한 기쁨.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를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 급할때는 필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하니, 사회생활이 불가능한것도 아니었다. 묵언을 통해 얻은 경험이 앞으로 그의 커뮤니케이션 강의에 어떻게 보탬이 되고 생각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다.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라면 뭔가 느끼는게 있을거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더욱 커다란 의미를 새겨준 편석환 교수의 책을 읽을 때는 한번에 몰아서 읽지말고, 조금씩 아껴서 음미하듯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여백과 여유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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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이 책의 작가는 어느날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과 주변에 알리고 묵언 43일에 들어간다.
언틋 무모한 듯도 보이는 묵언을 수행한 이는 대학에서 광고홍보를 가르치고 있는 편석환 교수라는 사람. 우리는 공기를 호흡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말을 하며 사는 것에도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사실 저자도 그러했고 그의 직업이 광고라는 말이 중요한 일을 가르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거다. 어느날 병원에서 성대종양이란 진단을 받은 후 되도록 말을 아끼라는 처방을 받은 편석환씨는 그렇게 타의 반으로 묵언(黙言)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도 어색하고 주변에서도 불편해했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 10여일이 지나자 작가 자신부터 적응해갔다. 책은 묵언 1일, 묵언 2일 이러한 식으로 챕터가 이루어지며 마치 독자인 내가 작가의 지인이 된 듯 지켜보는 재미(?)가 느껴진다. ‘그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산 건 아닐까 진짜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그만해야겠다.’ 남들은 하지 않는 유별난 수행을 하고 있는 만큼 작가는 진지하고, 묵언을 통해 날마다 느끼는 것들을 과장하지 않지만 날카로운 정신 속에 펼쳐놓는다. 그러나 진지한 글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을 전혀 하지 않음으로 인해 작가가 겪는 실제적인 일들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연속 묵언 삼일째 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났는데 휴지가 없어 난감해 하는 일, 음식을 하다 뜨거운 것에 데였는데 저도 모르게 ‘아 뜨거워’ 할뻔 했던 일 같은 것. 그렇게 원초적인(!) 그리고 소소한 일들을 꾸밈없이 허심탄회하게 펼쳐놓는 글들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말을 하지 않다보니 저절로 ‘슬로우 라이프’를 보내게 되는 편석환 작가. 짤막 짤막하지만 때로 촌철살인이고, 때로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혼탁한 현대인을 꿰뚫어보는 글편들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변화는 발전이고 진보이며, 정체는 퇴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오늘 같지 않는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여전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여전하게 살아도 좋다.’ (p. 38) 편석환 교수가 가르치는 커뮤니케이션은 소통과 관계의 학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관계의 출발은 자기 자신이라고. 자기와의 대화에 소홀한 채 타인과의 대화에만 몰입하면 말로 인한 관계의 어그러짐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걸다보면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레 생각이 정리되며 행동하는 힘이 생긴다.’ (p.46) 말을 신중히 하는 것도 중요한데, 말을 해야 할 때와 안 해야 할 때의 타이밍도 중요함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세상에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말해야 할 때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면서도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피하기 바쁘다.’ (p.56) 묵언을 하신지 보름을 훨씬 넘기면서 가족과 소통하는 데 말이 굳이 필요없음을 작가는 알게 되었다. 몸짓과 표정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심지어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가도 적어가거나 바디 랭귀지로 했는데 불이익은커녕 친절한 응대를 받았다는 대목들은 훈훈하게까지 느껴졌다. 말이란 건 이쪽과 저쪽이 의사소통을 하는 하나의 도구이고 가장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사람의 관계는 표정과 몸짓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묵언은 대화 이전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말에 둘러싸이면 묵은 생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p.151) 그래서일까. 저자의 묵언 수행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머리를 깨끗하게 비우는 어떤 행위로 느껴졌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한 묵언은 개강을 하며 자연스레 종료되었는데, 43일이란 시간은 어떻게보면 길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도 뭐 그렇게 획기적으로 확 변한 것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느낀 깨달음들은 나에게 잔잔한 반향을 남겨 주었다. 어디 산으로 가거나 특별히 칩거한 것도 아닌, 일상을 영위하면서 묵묵하게 목표를 이룬 작가의 뚝심도 굉장하고, 가족과 지인들도 대단해 보였다.^^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싶으면 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나부터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면 상대방도 그 마음에 화답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묵언 39일 中) 짧지만 임팩트있는 글들, 즉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책들을 종종 읽는다. 이어령의 <길을 묻다>,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같은 책들이 그러했는데 이 책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도 그러한 감동을 전달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각을 정돈시키며 정신을 맑게 하는 글이었다. 캘리그라피와 일러스트들이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어서 눈도 평안해지는 독서였다. 정제된 문장들은 소위 파워 논객이라는 SNS의 글들을 읽는 것 못지 않은 깊이와 따뜻함을 담고 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 책이었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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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대화'라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분명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때로 각자 앞만 보고 이야기하는 일방통행이었고, 때로는 격려와 응원이 담긴 말이였음에도 상대방이 화를 내는 충돌사고도 일으켰다. 이런 일들이 조금씩 빈번해지고 '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 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던 때, 나는 이 책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기도 했고, 말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까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너무 심오한 내용이면 어떻하나~ 살짝 걱정도 하면서 책을 펼쳤다. 그 걱정은 몇 장 안 읽고 금세 사라졌다. 소제로 적힌 '43일간의 묵언으로 얻은 단순한 삶'.. 이 말이 이 책의 전부를 얘기해주는 걸..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혼자 사는 싱글이라.. 약속 없고 영화보러 나가지 않는 주말에 하루종일 집에 있다 보면 가끔 깨어있는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안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혼자 살기에 가능한 일이고, 게다가 어쩌다 하루일 뿐이다. 헌데 가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이 43일간의 묵언이라.. 이건 작가님보다 작가님 가족들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과연 그 작가님에 그 가족들~!!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다 읽고 나서 책을 보니 참 지저분했다. 뭔~ 포스트잇을 그렇게 많이 붙였던지.. 모르던 내용도 아니고 이미 알지만 알고만 있던 것들이 양심에 콕콕~ 찔려서 붙이고 붙인 게 생각보다 꽤 많다. 그러다 보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에 또 읽었다.
몇 개만 살짝 맛보기로 올리려고 했는데, 추린다고 추린 게 이 만큼이다. 이렇게 추려서 여기 올린 것 중에서 내가 느낀 것만큼 변화하는 게 얼마나 될까.. 생각과 행동이 늘 항상 같이 가지 못하는 게 아쉽고 가끔은 후회스러우면서도 쉽게 일치하지를 못한다. 휴식만 해도..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쉬었던 게 언제였는지.. 분명 쉬는 날이 있었음에도 나는 늘 뭔가 좀 바쁘고 다음 날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늘 나 자신을 지키면서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위기가 닥치면 그 날이 마지막일 것만 같고,, 나는 생각해서 한다고 했던 행동이 상대방에게서 좋은 결과로 반응이 오지 않을 때의 실망하고.. 이건 정말 내 만족을 위한 행동이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도 한 번 굳혀진 실망감은 쉽사리 풀리지가 않는다. 문장 하나 하나 이렇게 콕콕 나를 되돌아보게 하니.. 어찌 다시 안 읽을 수가 있겠는가..
방학이 없는 나는.. 작가님처럼 묵언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말을 조금 줄여보기로 한다. 되도록 적게 말을 하되, 필요한 말은 꼭 제때 할 수 있도록.. 이번 여름 실천을 한 번 해볼까 한다. 단, 블로그에 글수다는 패스~!!^;;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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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변에 능한 사람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잖아도 “빨리빨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에둘러 표현하거나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하는 글보다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발언에 찬사를 표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분야 교수다. 그의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을까. 상상만으로도 나는 그가 부러웠다. 헌데 그에게 뜻하지 않은 아픔이 찾아왔다. 워낙 많은 말을 해야만 하는 직업 탓에 발생한 성대종양. 단순히 목이 아프기만 하다면야 좋으련만, 목소리가 갈라지고 급기야 쇤 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병원에선 당연히 말을 말라는 조언을 했다. 강의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서 목소리를 제거하면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때마침 방학이 찾아왔고, 자의반 타의반 그는 묵언 수행에 돌입했다. 말보다는 글에 강하고, 그다지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편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 말을 손가락으로 꼽는 게 가능할 정도로 말없이 지내고도 있다. 그런 나에게도 ‘전혀 말하지 않기’는 어려운 과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픈 게 사람의 심보 아닌가. 침묵에 능한 존재에게도 강제된 고요는 깨트리고 싶은 법이다. 저자는 43일간 묵언을 실천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무래도 일상생활 가능 여부다. 제 아무리 혼자 사는 사람이라 하여도 이따금 말을 하기 마련이다. 물건을 구입하러 가게를 들르는 아주 단순한 행위를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등을 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말이다. 첫 순간에 저자의 걱정이 하늘을 찔렀던 건 당연했다.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머릿속으로 숱하게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그는 필담을 활용했고, 말을 않는 그를 사람들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끌어안았다. 아직 우리 사회가 따스한 곳이라는 뜻하지 않은 사실에 눈뜰 수 있었다. 동시에 이제껏 흘려온 많은 말들로부터 비롯된 잡음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됐다.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말들을 그간 얼마나 많이 내뱉어왔던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우린 너무나 쉽게 쏟아대고 있다. 결국에는 후회하리란 걸 잘 알면서도. 묵언은 한 인격에게 성숙도 선사했다. 음식을 시켜먹을 수 없는 이에게 가능한 선택은 직접 해 먹는 것이다. 티도 안 나면서 끊이지 않는 집안일은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든 줄 모른다고 했다. 저자는 세 끼를 연달아 요리를 해 먹으며 비로소 밥 한 끼의 진정한 가치를 느꼈다. 한 끼를 해결하기가 무섭게 다음 끼니를 고민해야만 하는 처지. 어찌 보면 비루해 보이지만, 그 비루함이야말로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끼니를 해결하며 알게 되는 인생의 참맛은 아무나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말이 주는 쾌감만은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꾹꾹 눌러오던 마음도 이따금 넘친다. 스마트폰 액정에 자꾸만 코를 박게 되고, 평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SNS로 마음이 향했다는 그의 심경 고백(?)에 나는 소통이 사람의 본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학기가 시작됐고 그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스스로도 43일간이나 말없이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 것처럼 말 않는 자에게도 시간은 평등하게 흘렀다. 말 하지 않고 살면서 그의 삶에선 많은 군더더기들이 제거됐다. 괜한 말이 야기했던 께름칙함이 사라졌고, 내리 사람을 만남에 따른 지출도 줄었다. 인간관계를 군더더기라 표현하는 건 옳지 않겠지만, 감정에만 충실한 나머지 부닥치고 보는 식의 관계로부터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었던 것만은 진실 같다. 책 제목이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다. 묵언을 시작하던 시점에 적합하면서 동시에 묵언을 완성한 지금에도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 말이 단어 하나조차도 허투루 입에 담지 않겠다는 다짐이 선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내뱉는 다짐 같아 보였다면 지나친 몰입이려나. 소리로 쏟아내지 아니 한 말은 부치지 아니 한 편지와 같다. 밀봉을 했어도 조심스레 뜯어 내용을 고칠 여지가 내겐 남았다. 아낄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말, 말에 얽매여 자유를 모르던 영혼에게 지혜는 그렇게 찾아왔다. |
![]() 저자가 누군지는 잘 모르는데, 강단에서 스피치커뮤니케이션과 광고를 가르치시는 분이란다. 그런 분이 43일간 묵언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들과 소감을 적은 책이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그저 묵언을 결심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들춰보니 성대종양이 있었고, 가장 좋은 치료법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며, 때마침 방학을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상황이 받춰주지 않을 때 혼자 묵언을 한다는 건 주변 사람이 더 힘들 수도 있는 일이다.
묵언 첫 날.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안 하기로 결심한 건 단지 '말' 뿐인데 아예 할 일이 없다니. 우리 삶은 정말 말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3일째. 휴지 없는 웃픈 상황을 맞았다. 말로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막막함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닐 터. 그렇게, 새삼 깨닫고 생각하게 된 내용들이 단순하게 적혀 있다. 입을 닫으니 귀가 예민해진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지독한 길치라서 물어봐서 길을 찾곤 했는데, 당연했던 일상이 사람들의 배려로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 휴식은 온전한 쉼이어야 하는데 요즘에는 쉬는 것도 열심히 한다. 마치 일하듯이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안 되면 짜증을 낸다. 그것은 쉼이 아니라 일의 연장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어야 진짜 쉬는 것이다. # 호수에 돌을 던져보았다. 낮은 물은 흙탕물이 되지만 깊은 물은 잠시 파장이 일었다가 이내 고요해진다. 작은 물고기들은 놀라 물 표면에서 움직이지만 큰 물고기들은 깊은 물속에서 요동하지 않는다. 살다가 돌을 맞거든 깊은 물처럼, 큰 물고기처럼 살아갈 일이다. # 사람들은 남을 설득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입을 너불댄다. 그렇지만 설득의 방식에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변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기다리다보면 상대방의 마음이 변할 때도 있지만 내 생각이 변할 때도 있다. 자기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누군가 변한다면 기다림은 그 자체로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마지막엔 이렇게 묵언노트라는 공간이 있다. 여기에 각자 자기의 경험을 적을 수 있다. 난 요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게 정말 필요한 말을 하며 말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피곤해서 쉬고 싶어서였구나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묵언의 경험은 새삼 나의 말하는 습관과 내용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저자도 이렇게 글로 적었기에 43일을 버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글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인데, 만약 글마저 못썼더라면 스스로 답답해서 그만두지 않았을까? 그래도 묵언을 더 하고 싶지만 개강이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는 걸 보면, 묵언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보다. 묵언의 경험을 엿보고 자신의 '말'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기에 좋은 책 같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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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게을리하지말아야할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며 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않게 되고
삶이 좀더 성숙해진다.
나를, 내 살아온 삶을 정리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네 저는 편석환교수님께서 저술하시고 <가디언출판사>에서 펴낸
이책 <나는 오늘부터 말하지 않기로 했다>를 읽고 특히, 윗구절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네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 이것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져야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43일간의 묵언으로 얻은 단순한 삶..."
네 저는 이책의 책표지에 나와있는 윗글을 읽고 진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아니 대학에서 광고홍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스피치커뮤니케이션과 광고를 강의하고 계시는 분이 어떻게
43일간씩이나 묵언수행을 하실 수 있으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글고 그 43일간의 묵언수행으로 얻으신 깨달음은 무엇이셨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찬찬히 책을 읽어나갔는데 이책은 짧막짧막한 이야기들이 페이지를 메꿔
여백도 많아 책속에서 <여백의 미>까지 느끼게한 좋은 책이었습니다.
먼저, 저자의 묵언의 수행동기부터 궁금해졌습니다.
저자께서는 병원에서 <성대종양>을 판정받으셨고 최대한 말을 하지않는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는 병원측의 답변을 듣고 그러면 성대치료도 할겸 또 이번의
<묵언>을 통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도 돌아볼겸해서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근데, 말이 43일이지 이는 매일 다람쥐챗바퀴 도는 사람들에겐 쉽지않은 일인데
이를 감행한 저자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책은 정말 순식간에 읽혀졌습니다.
한글자한글자 한줄한줄 읽어나가면서 그 내용들을 곱씹으며 나갔는데도 글들이
다 쉬운 문장으로 이뤄져있고 저자께서도 군더더기없이 술술 이야기들을 풀어
내셨기에 그야말로 쉽게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고 묵언을 하는 중에 친구를 만났는데 서로의 상황을 직시하고 다 큰 어른들
끼리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는 대목에선 저도 가슴이 왠지 찡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짧막짧막한 이야기들이 흡사 사람들을 일깨우는 잠언같이도 느껴졌고
정말 저자께서 이세상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바로 그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 43일간의 묵언중에 어머님께 자주 연락을 못드린 거에 대해
죄송스러워하는 마음 글고 같이 지내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도 배어있어
저자의 따스한 가족애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책은 대학원에서 스피치커뮤니케이션과 광고를 강의하고 계시는
분이 강의를 함으로써 말을 함으로써 후학들을 가르치는걸 직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이 43일간의 묵언을 통해 느꼈던 마음의 소리와 얻어낸 영혼의
속삭임을 있는그대로 써올리신 <묵언의 수행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책은 다람쥐 챗바퀴도는 이 사회생활속에서 너무나도 바삐
움직어 숨돌릴 틈도 없는 분들에게는 청량제같은 역할을 할 책이라
생각되었고 또 나는 지금 잘살고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고 계신 분들께도 한번쯤은 꼭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생각나네요~
바로 현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다음의 글이...
인생에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해야한다.
지금하지않으면
오늘도 못 하고 내일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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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만큼 관련 서적이 넘처나기 때문이다. 하긴.. 고대 철학자들도 인간관계 때문에 철학을 하지 않았겠는가...? 인간은 '말'로 관계를 맺는다. 이메일을 주고받고 톡을하고 sns에서 떠들어 대는 것도 모두 '말'이다. 관계가 힘들다는 것은 '말'로서 상처를 주고 받음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안하면 어떨까? 여기에서 출발한 작가는 실제로 '말'을 하지 않고 살아보기로 한다. 뭐..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으므로 가능했겠지만 부럽다. 그런기회를 가져볼 수 있었다니.. 이 책에는 여백이 많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 점점 비워지는 마음처럼 빈 공간이 많다. 시처럼 짥막짥막하게 씌여진 글들이 가끔은 큰 울림을 주기도 하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짧은 교훈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다 아는 말이네 하며 읽을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지 못하는 삶을 뒤돌아보며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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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과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말을 하는 시간이 많았던 저자는 어느 날 성대 종양을 진단받고 말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말을 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 어떻게 말을 줄이고 생활할 수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학교에서 재직하는 교수였기에 학기가 끝나고 방학에 접어들며 한 달 남짓 묵언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강제성을 띤 묵언인지라 첫 시작에서 말을 통한 소통이 단절된 생활에 약간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런 우려를 깨고 말을 줄이고 생각의 깊이를 넓히자 일상에서 의외의 수확을 경험한 저자가 그 기억이 사라질까 아쉬워 활자로 남긴 기록물이다. 책은 저자의 43일간의 침묵을 보여주듯 여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한편으로 간결한 깨달음을 적어 놓은 듯한 일본 특유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한다.
묵언의 시간동안 얻은 생각들 중에서 4일 차에 적어 내려간 ‘의도’에 관한 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특히 ‘때로는 결과보다 의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내 경험에서 얻은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에 내가 한 말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내가 그 친구에게 ‘악의’를 갖고 행동하거나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내가 한 친구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고 도대체 저 사람은 나에게 왜 저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훗날 내가 그날의 기억을 고백하자 그 친구 역시 절대 악의적인 의도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날 뿐이었다. 앞선 두 경험은 나에게
‘역지사지’란 어떤 자세인지를 확실히 깨우쳐주었다. 내가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오해를 하고 스스로 상처받는
날이 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악의도 없이 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같이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악의’로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뿐이다. 저자가 말한 ‘의도’라는 말에서도 바로 그런 의미를 짐작해봐야 한다. 우리에게 상처가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상대의 행동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상대가 나에 대한 ‘악의’로 행한 것이 아님을 상기한다면 결코 오해하거나 갈등을 불러올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저 누구나
하는 실수일 뿐, 그럴 때에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나누며 관계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계기로 발전시켜야
한다.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말’은 꼭 필요하지만, 우리는 더 많이 듣기 위해서라도 말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말을 줄인다고 해도 우리 안에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수없이 교차하고 내 안의 나와 끊임없이 언어를 통해 대화한다. 어떤 의미를 규정하고, 한정 짓는 언어의 경계를 넘어 느낌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궁금한 마음이 든다. 저자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묵언의 시간에도 외출을 하며 지인들을 만나 관계의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저자가 경험한 ‘묵언’의 시간 속에서 말이 아닌 눈빛과 교감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얻게 되는 유대감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경험 중 하나이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는 정말 편안하고 믿음직한 상대일 것이다. ‘말’은 분명 큰 힘을 갖고 있다. 가볍게 뱉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큰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말 앞에서 더 신중해지고 무거워질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무언가를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살면서 말에 압도되어 지치는 언젠가 한 번쯤은 시간을 비워내듯, 말을 비워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이다. |
SNS에 사람들이 중독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하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일이 줄어들지만, 카카오톡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해서 다양한 SNS에서는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이건 딱히 좋은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되면, 항상 부정적인 일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SNS에 중독된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근처에 없으면 당황스러워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물론, 어디까지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10대 청소년 사이에서도 단체 카톡 방을 읽지 않으면 따돌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사람들이 오프라인의 외로움을 SNS에서 풀려고 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고. 지나친 말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오프라인에서 말을 주고 받기가 거북하여 인터넷이라는 다른 공간을 이용하지만, 그 공간에서도 말 실수로 다툼이 번지거나 친구를 끊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강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말이 가진 무서움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이 책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커뮤니케이션 교수가 43일간의 묵언으로 얻게 된 단순한 삶의 원칙을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SNS에서 쉬지 않고 말을 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그렇게 의미 없는 말하기를 멈추고, 잠시 말하지 않는 경험을 해보게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해서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마트에서 계산하기 위해서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물건만 올려두면 알아서 바코드를 찍어주고,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이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를 통해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는 요즘에 상처 받지 않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풍이 몰려오는 이번 여름 휴가에 무리해서 바깥으로 향하지 말고, 집에서 묵언 수행을 하면서 보내는 경험도 독특한 즐거움이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