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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속죄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자음과 모음
"진정한 속죄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자음과 모음" 내용보기
제목에 대한 생각십자가는 가장 잔혹한 사형 도구다. 그것이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부터는 희생, 구원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서 뭔지 모르는 공허한 느낌이 내 삶에 함께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얘기가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느낌 소에 내 삶이 반추되었다. 이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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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한 생각

십자가는 가장 잔혹한 사형 도구다. 그것이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부터는 희생, 구원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서 뭔지 모르는 공허한 느낌이 내 삶에 함께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얘기가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느낌 소에 내 삶이 반추되었다. 이 제목은 책속의 내용 중, 살인자의 사형과 관련된 부분 속에 나오고 있는 구절이다. 살인자의 속죄와 관련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있는 듯하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1958년 오사카 출생. 추리소설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능력을 드러낸 이야기꾼이다.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비밀>, 나오키상을 수상하게 한 <용의자 X의 헌신> 주오코론 문예상을 수상한<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 등이 번역되어 많이 읽혀졌다. 이 책은 이선희 번역으로 자음과 모음에서 나왔다.

 

줄거리

살인 사건으로 딸은 잃은 나카하라는 그 일로 인해 아내 사요코와 이혼을 한다. 그리고 딸의 잔영으로 괴로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나카하라에게 사요코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요코는 이혼을 한 후 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는 가운데 도벽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사오리란 여인을 알게 된다. 그 여인이 도벽을 하게 된 과정을 추적하는 가운데 그녀는 살해 된다. 그 속에 많은 일들이 있게 되고, 그 과정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통해서 펼쳐진다.

 

주인공 나카하라는 전부인의 죽음을 조사해 나간다. 전 부인을 죽인 사람은 사쿠조란 사람이다. 그를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의사인 후미야를 알게 된다. 이 후미야가 장인인 사쿠조를 위해서 피해자에게 사죄의 편지도 쓰고, 용서도 구한다. 그런 속에서 후미야와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임신을 한 상태로 죽으려고 하는 아내를 후미야가 구해주고 그를 아내로 삼아 아이도 낳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어릴 적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의 차원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후미야는 건실한, 능력 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여학생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 놀음을 한다. 상대는 위에서 도벽으로 취재 대상이 된 시오리란 여학생이다. 시오리는 그 사랑으로 잉태를 하게 되고, 결국 아이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어쩔 수 없어 죽여 나무의 숲 속에 묻게 된다. 물론 둘이 함께 그렇게 한다. 그 후 후미야는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된다. 그런 과정 속에 둘의 성장 환경이 달라지고 둘은 서로 다르게 살아간다. 시오리는 그 일로 인해 도벽을 가지게 되고, 상처 입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 후미야는 범죄를 고통스러워하면서 의사의 삶을 살아간다.

 

한편 후미야는 그 나무의 숲에 가끔씩 들러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는 중 그곳에서 죽으려고 하는 여인과 만나게 되고, 그 여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게 된다. 결국 그 여인을 속죄의 차원으로 자신이 거두어 같이 부부의 연을 맺어 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시오리에 대한 취재가 이루어지면서 후미야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드러날 상황이 된다. 그런 이야기가 이루어지던 때에 그 집에 와있던 장인인 사쿠조는 생각하게 된다. 이제까지 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피해만 줬는데, 저 사람을 죽여 딸의 가정을 지켜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후미야 아내에겐 참으로 부담스러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딸에게 남기는 왜곡된 사랑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어린 아이를 죽이고 속죄의 시간을 산 후미야,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사쿠조의 재판이 열리게 될 것을 얘기하는 장면이 마지막이다. 수십 년이 흐른 간난 아이 죽음의 문제로 당사자들을 구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내용이 적혀 있고, 사쿠조는 그런 일이 있었단 전제하에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결국 나카하라는 전 아내의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 죄를 묻기 위해 조사를 한 것이 결국 죄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

 

감상

이 글은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로 인물들의 고통과 속죄의 의미를 통해 사형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글이다. 피해자가 자신이 가진 고통의 보상으로 어떻게든 가해자에게 사형을 가하려는 심리를 그려내면서 그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가해자의 일부가 고통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용을 그려내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속죄가 되는가도 생각해 보게 한다. 결국 사형만이 가장 좋은 속죄의 방법이 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글을 통해 끊임없이 던져지는 인간에 대한 심판의 질문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죄가 가지는 속성과 그로인해 겪는 인간들의 고통을 말이다. 궁극적으로 죄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든 타인이든 용서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용서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용서의 생각을 해보았다.

j****3 2016.03.16.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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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공허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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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단순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평소 내가 가졌던 부당한 사회규범에 관해 그는 약간의 해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광고회사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든 평범한 회사원 나카하라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강도에게 잃고 만다. 잠시 반찬거리를 사러 아내가 나간 사이에 침입한 범인은 아주 죄도 없는 소녀를 목을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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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단순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평소 내가 가졌던 부당한 사회규범에 관해 그는 약간의 해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광고회사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든 평범한 회사원 나카하라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강도에게 잃고 만다.

잠시 반찬거리를 사러 아내가 나간 사이에 침입한 범인은 아주 죄도 없는 소녀를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오래전 노부부를 살해하고 복역중 가석방으로 풀려났던 사내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겨우 몇 만엔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하다니.

그 뒤 나카하라 부부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깊은 상처뿐이었다.

당연히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건은 범인의 변호사의 적극적인 변호로 무기징역으로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결국 사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범인.

남겨진 피해자의 가족들이 짊어진 아픔의 무게는 너무나 엄청났다. 결국 나카하라와 아내인 사요코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11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카하라에게 형사가 찾아오게 된다. 전부인이었던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이혼 후 초반에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요코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된다.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던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장례에 참여하면서

사요코의 살해사건뒤에 숨은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세 살 무렵 병으로 엄마를 잃은 사오리는 일로 바쁜 아빠를 대신하여 살림을 돌보게 된다. 늘 외롭던 여중생인 사오리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한 학년 선배인 남학생 후미야를 알게되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린 두 중학생의 철없는 사랑은 훗날 커다란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법이 존재한다. 법원 앞에서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든 동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스티티아(라틴어: Justitia) '정의의 여신'은 법이 만인 앞에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죄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살인한 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가장 합당한 처벌처럼 보인다. 나역시 잔인무도하게 연쇄살인을 하고도 사형당하지 않는

범인들을 보고 분노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막상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고도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알고 허탈해진다. 죽은 아이도 돌아오지 않았고 범인에게 사죄의 말도 듣지 못했다.

다만 더 이상 재판에 휘둘리기 귀찮으니 죽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답변외에는.

'사형'이 살인자에게 최선이었을까. 사요코역시 사형제도 폐지론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커다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만약 갱생을 확신하고 풀어주었던 범인을 사형시켰더라면 자신의 딸은 죽지 않았을까.



 

 

사형제도에서 유일하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은 '범인은 이제 누구도 다시 죽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라는 답만 얻을 뿐이었다.

단지 그 하나의 증명이라도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형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과연 살인자에게 가장 합당한 처벌은 무엇일까.

 

아이를 잃은 부부의 아픔과 11년 후에 아내가 살해되는 기이한 사건뒤에 숨은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의 플릇도 훌륭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는 사회에 던지는 숙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인자의 인권도 보호되야 하는가..하는 의문으로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사요코가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꼈던 사형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라는 결론에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의 결말이

있어야 한다'에 또 다른 숙제를 떠 안은 느낌이다.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른 추리작가와 차별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범인을 쫓는 것을 넘어서 독자에게 또 다른 공을 넘기는 방식.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수 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때린 놈은 발뻗고 못잔다지만 실제로 교도소안에는

공허한 십자가를 진 무심한 범죄자들이 수두룩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인간은 인간의 죄를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게 처벌할 수 없다...이다.

최근 몇 년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h********5 2015.1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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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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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빠르면 스포일 수 있음, 전 사실 읽으면서 거의 바로 눈치 챔.)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가 있고, 너무 어려운 주제라 회피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중요한 것도 알겠고, 사람들이 많이 논의한 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너무 무겁고, 논의하기에 힘들다 보니 피하고 싶은 마음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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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빠르면 스포일 수 있음, 전 사실 읽으면서 거의 바로 눈치 챔.)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가 있고, 너무 어려운 주제라 회피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중요한 것도 알겠고, 사람들이 많이 논의한 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너무 무겁고, 논의하기에 힘들다 보니 피하고 싶은 마음만 인다. 아, 그런 문제가 있지.. 그래, 힘들겠다 라고만 하고 넘기고 싶다. 그렇다고 덮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덮어놓고 모른 채 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렇게 언급되지 않으면 다들 묻어 두기만 할 주제다. 당장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은 아니기에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를 나눠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어려운 사안의 전달 방식이다. 꼭 비문학 형태로, 리포트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아니라서, 누가 읽던 각 잡고 이제 이 사안에 대해서 알아볼까? 하는 책이 아니라서 더 유용하다.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 시작했는데, 저자의 주특기의 추리에도 깊이 빠졌지만, 전하고자 하는 그 주제에 자꾸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내용이 힘들어도,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로운 소설이라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 저자가 대단하구나를 다시 한 번…

어떻게 살인 사건 자체에 이렇게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을까? 본인이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을까? 천재는 천재구나 하며 감탄.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살인 사건에 대해서 재밌는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생각이 깊기도 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주는 것도 좋다.

 

 

이 책에서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살인 사건, 속죄, 교도소 수감과 사형이 될 것 같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표면적인 이야기만 듣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거기서 이야기가 끝난다. 화제성이 있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 짧게나마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조두순 급(?)은 되어야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는지 감시(?)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그 뒤로 묻히고, 사람들도 있었던 일조차 잊게 된다. 결국 당사자들만의 문제. 형이 집행되는 것도 책에서 나온 것처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려나? 가장 중요한 건 범죄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속죄할 수 있게 하느냐는 점이다.

  •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묵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도 사형에 처해지는 것도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다. 범죄자가 징역을 산 후 사회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건 굳이 예시를 들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물론 사회가 그런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다시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수감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저자는 ‘공허한 십자가’라는 표현을 썼다. 이토록 공감되는 표현이라니. 그들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한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리라. 처음이 어렵지 뭐든지 반복되다 보면 어떤 것이든 점점 생각이 없어진다. 책에 나온 살인자가 몇 번 반복되고 재판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스로 사형도 나쁘지 않다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미도 되지 못했으리라.

  •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씨,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감옥에 가야 한다고? 가족과 헤어져서 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한번 말해봐. 당신이 지금 자수해서 감옥에 가면 뭐가 좋지? 그냥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잖아?

진정한 속죄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자신의 잘못에 있어서 어떤 책임을 가지고 의무를 가지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지를 저자는 조명하고 있다. 꼭 교도소에서 수년을 보내고, 사형에 처해져야만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많은 경우에 집행유예에 처해지는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사회에서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배경인 걸까? 그만큼 그들이 그러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마 그런 훈훈한 이야기는 화제가 되지 않아 우리가 알기 어렵거나 그런 경우가 거의 없거나…

정말 이 책 덕분에 다양한 부분에서 의문이 생기고 궁금증이 생기고, 생각하게 된다.

 

  초반에 변호사에 대한 언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종종 궁금했다. 왜 저런 흉악범도 변호를 받지? 모든 인권이 중요하다지만, 저 변호사도 그래서 하는 건가? 국선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대로 해야 하니까 하는 건가? 그러면 자신이 그 사람을 변호할 의사가 없으면 제대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텐데 괜찮을까?

  • 변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카하라는 화가 난다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왜 이 사람은 히리카와를 구하려고 이렇게 기를 쓰는 것일까? 왜 사형을 피하게 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일까? 만약 그의 아이가 똑 같은 꼴을 당해도 범인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쓸까?

물론 책 속에서 이 변호사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그 의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속이 아리는 느낌이었지만… 한번쯤은 궁금해하지 않을까? 저런 흉악범을, 저런 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변호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그 내부 이야기들이 더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유족은? 그 유족은 어떤 마음일까?

  • 그자가 후회를 하든 말든, 반성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속죄하는 마음이 싹트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한 조각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유족은 여러 가지 형태로 수도 없이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사실.. 유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내 일이 아니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게 이렇게 티가 난다. 선량한 척 하는 차별주의자라는 단어가 떠올라 심장이 콕콕… 유족이라는 말이 익숙(?)해 진 건 세월호 유족들 때문이다. 아, 그래 저런 사건 뒤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지 라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게 어떤 의미일지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전과 다를 수 밖에 없음은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사요코는 범죄자가 사형에 처해진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건 분명하다고 이야기 한다. 범죄자의 사형이 피해자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오히려 법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처럼.. 유족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심장을 떼어낸, 상실감에 아프지 않은 세포가 어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소설 속에서 그 뒤로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책을 마무리 해서 냈을까? 그 내용이 에필로그로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 생각. 아마 저자도 뭐라 쉽사리 정리하기가 어려워 저자들이 채우길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잔뜩 던져둔 생각 거리들을 독자들이 직접 고민하고 생각하여 자기만의 결론으로 사요코의 책으로 채우길 바라는 마음.

 

YES마니아 : 로얄 g********o 2021.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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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를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인자를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용보기
몇 년전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ㅣ푸른숲 ㅣ2005>를 읽고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주르르륵 흘리기도 했다. '죄는 미우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어떤 범죄의 경우에는 그 사건의 잔인함이나 무자비함에 치를 떨게 하기도 한다. '절대로 용서를 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살인자를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용보기

몇 년전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ㅣ푸른숲 ㅣ2005>를 읽고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주르르륵 흘리기도 했다.

'죄는 미우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어떤 범죄의 경우에는 그 사건의 잔인함이나 무자비함에 치를 떨게 하기도 한다. '절대로 용서를 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적도 있다.

사형제도는 유지되어야 할까? 아니면 폐지되어도 될까?

피해자의 유족이 가해자를 심판할 수 있을까?

가해자들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기는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공허한 십자가>를 읽으면서 스쳐간다.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ㅣ 비채ㅣ 2014>를 읽은 지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소설로 나오다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창작열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다작을 배출하고 있다.

흡인력 강한 추리소설들이 대부분이기에 그의 작품이 출간되면 무의식적으로 읽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인생 30주년을 맞은 2014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그만큼 공을 들여 쓰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는 나카하라에게 일어나는 2사건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 찾기가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11년 전에 혼자 집을 지키던 8살 딸이 살해를 당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아내와 이혼을 하고, 다디넌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애견장례업을 하던 중에 아내가 길에서 칼에 찔려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카하라에게 일어나는 딸의 살해사건 그리고 아내의 살해사건.

아내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동안 자신은 딸의 살해사건 이후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지만, 아내는 딸의 사건을 계기로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사형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딸을 죽인 살인범은 강도살인죄로 수감되었던 전과자인데, 가석방 중에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에게 사형이 적용되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나 유족이 검찰처럼 구형 의견을 말하거나 피고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제도인 '피해자 참가 제도'에 대한 내용도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 우리는 듣고 싶네,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말을. 가령 사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 사형이라는 말을 울려 퍼지게 하고 싶네, 그 마음을 이해하겠나?" (p. 181)

나카하라의 전부인이 살해당한 후에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여론은 여전히 공존한다.

"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는 말은 이런 사건의 유족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웅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 (p. 188)

" 흔히 '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 (p. 190)

아내는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사형폐지론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또한 도벽에 관한 내용을 담은 글도 쓰고 있었는데, 그녀의 죽음은 여기에서 단초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사형을 집행받게 되는 사람들은 사형을 형벌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다만 사형이 집행될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범인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형은 무력한 것이다.

만기 출소를 하는 범인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교도소에서 속죄를 하였을까? 그렇다면 재범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교도소의 갱생시스템이나 사회의 편견은 그들을 다시 범죄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 '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p. 212)

그렇다, 그들은 공허한 십자가에 묶여 있다가 다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사형제도의 모순과 갈등을 다루던 이 소설은 나카하라가 전부인의 살해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남녀 중학생이 저지른 21년 전의 범죄로 옮아간다. 둘만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낳은 영아를 살해해서 수해에 묻어 버린 사건이다. 그 사건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범인이 나카하라의 전부인을 살해한 것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사회문제를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흥미롭게 파헤친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 속죄, 형벌, 청소년들에 의해서 발생되는 영아 살해사건, 묻혀졌던 살인사건에 대한 훗날의 형벌제도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끝까지 읽어야 그 진실을 알아 낼 수 있는데, 이 책도 여기 저기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은,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다.

그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n******5 2015.10.0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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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내용보기
예전에 13계단이라는 책을 읽으며 사형 제도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공허한 십자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도, 소재도 다 다르긴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형제도와 범죄, 그리고 그 상처를 않고 살아가는 것들 이 모든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히가시노 게이고 자체가 워낙 타고난 이야기 꾼이다 보니 이 작품 하나에도 온갖 소재가 다 들어가서 중간에 읽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내용보기

예전에 13계단이라는 책을 읽으며 사형 제도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공허한 십자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도, 소재도 다 다르긴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형제도와 범죄, 그리고 그 상처를 않고 살아가는 것들 이 모든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히가시노 게이고 자체가 워낙 타고난 이야기 꾼이다 보니 이 작품 하나에도 온갖 소재가 다 들어가서 중간에 읽다보면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워낙 흡입력이 커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공허한 십자가 보급판을 구매해 읽은 시기와 비슷하게 그의 또다른 책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선물받아 읽었었는데, 확실히 예전 책인데다가 작위적이고, 좀더 자극적인 스토리 라인이라서 영화같은 이야기다-하고 그냥 말았었는데 그에반해 공허한 십자가는 그의 작품세계가 한차원 높아졌다는 느낌을 준다. 소재의 자극성을 떠나, 독자에게 어떤 제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끔 만듬으로서 작가로서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YES마니아 : 골드 r***m 2015.09.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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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할까?
"살인을 저지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할까?" 내용보기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책임이 있는 업체 임원들에 대해 선고된 판결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서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처사이고, 이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가 눈에 들어왔다. 살인죄 등으로 고소당한 피고인들에게 내려진 형량은 무죄에서부터 징역 5~7년에 그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할까?" 내용보기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책임이 있는 업체 임원들에 대해 선고된 판결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서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처사이고, 이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가 눈에 들어왔다. 살인죄 등으로 고소당한 피고인들에게 내려진 형량은 무죄에서부터 징역 5~7년에 그쳤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와 시민단체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건수는 총 5341건이고, 이 중 1112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참사의 책임이 징역 7년이라니. 피해자 가족들이 원통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사에선 국민 80% 이상이 징역 20년 이상, 50%이상이 무기징역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조사)도 소개했다. 아마도 설문대상이 피해자 가족들이었다면 더욱 가혹한 형벌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법원이 제조사 책임자들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면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풀렸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그 원통함이 해소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으리라. 가해자들이 아무리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가족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이 입은 깊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 몇 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다.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린 한 평범한 가장이 겪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회에서 합의된 법과 형벌의 모순, 죄값을 치르는 것과 용서, 범죄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겪게 되는 일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카하라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어린 딸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는다. 나카하라는 그의 아내 사요코와 함께 딸을 살해한 범인에게 사형선고를 받아내지만 딸을 잃은 고통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 잃어버린 딸이 떠오르는 괴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11년 후 나카하라는 헤어졌던 아내마저도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들의 딸을 잃은 사요코의 부모, 즉 나카하라의 장인장모도 나카하라와 사요코가 그랬던 것처럼 살인범이 사형을 받게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사요코의 부모가 나카하라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과정에서 나카하라는 자신과 헤어진 후 아내 사요코가 살인 피해자 가족모임에서 사형을 받아내는 걸 돕는 활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형폐지론에 반대하는 책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나카하라는 아내 사요코가 남긴 원고를 읽으며 당시 딸을 잃었던 사건으로 생긴 상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나카하라는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사요코의 원고와 기사를 추적하게 되는데, 이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사요코의 살인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내의 살인 사건은 더 오래 전에 있었던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의 주인공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중학생 시절 치기어린 사랑으로 낳게 된 아이를 두려움 속에서 살해했던 사건을 숨긴채 20여 년을 살아왔다. 당시 아이를 낳았던 사오리라는 여성은 그 때의 죄책감으로 인해 엉망인 삶을 살아오다 우연히 나카하라의 아내 사요코를 만난다. 사요코와 상담을 하는 도중 사오리는 당시의 일을 고백하고 만다. 사요코는 사오리에게 자수를 권하지만 사오리는 당시 아이를 임신하게 한 남학생 후미야까지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을 걱정하며 망설인다.


사요코는 소아과 의사가 되어 있는 후미야를 찾아가 역시 자수를 권한다. 그 때 과거의 죄값을 20년 동안 치르면서 성실히 살아왔던 후미야의 삶을 망치게 될 것을 두려워한 그의 장인이 사요코를 살해하게 된 것이었다. 나카하라는 이 과정에서 사요코와 자신이 딸의 억울한 죽음의 죄값을 위해 간절히 원했던 가해자의 사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요약된 줄거리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사건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도록 구성했다. 한 번 책을 펼치면 쉽게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었다. 단순히 긴박감 넘치는 추리 소설로서도 충분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결론을 내리기 무척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을 통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재판과 처벌로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의 원한을 풀 수 있는가?',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살인자가 죽음으로 속죄할 수 있는 걸까?', '사형은 최소한 재범은 막을 수 있으니 필요한 것일까?', '사형이 집행되어도 피해자 가족에겐 달라질 것이 없으니 사형은 무력한 것일까?'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죄값을 치르며 살아왔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했다면 법적인 처벌은 없어도 될까? 아니면 자수를 해야 하는걸까?', '교도소에서 갱생을 가장한 이들이 석방되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갱생은 없다는 전제에서 형벌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살인자가 교도소에서 반성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과 삶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구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일까?'


어느 물음 하나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살인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라면 나 역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가해자를 죽이도 싶을 것 같다. 소설 속의 사요코가 '사형은 아픔을 씻기 위한 최소한의 통과점'이라고 했던 것처럼. 또 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이토록 가벼운 처벌을 내리게 만든 검찰과 재판관들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항의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과 함께 최근에 크게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던 재심 사건들이 떠오른다. 잘못된 판결로 수십 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 또 독재정권 당시 권력의 입맛대로 서슴없이 저질러졌던 사법살인의 역사도 생각이 난다. 사형이든 징역이든 지금 우리가 합의한 사법시스템에는 불완전한 요소가 너무나 많아 보인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도, 가해자들이 진정한 속죄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판결로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기까지 한다.


게다가 재판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에 휘둘리며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요즘과 같은 상황에선 사법체계가 필요한 것인가라는 극단적 의문도 품게 된다. 또한 사형이 그 자체로 모순되는 것처럼 징역이라는 처벌제도에도 맹점이 존재한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아무런 반성도 없이 단지 형량을 채웠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부여하는것 같은 처벌제도는 소설의 제목처럼 정말 '공허한 십자가'일 뿐이다.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이야기의 마지막에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의 이 한 마디에 사법/형벌 제도의 한계 혹은 모순이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속죄하게 해야 하며 처벌을 내려야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다만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희미한 실마리 정도만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에 맞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는.


지난 해 말부터 지금까지 대통령과 비선실세를 중심으로 저질러져 왔던 수 많은 죄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권력을 이용한 인사청탁, 사적이익 추구, 뇌물 등 그 범죄의 숫자를 세기도 힘들지경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것을 원할 것이다.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300여명의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선 책임있는 자들이 밝혀지고 그들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겠다.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진실'이고, 책임 있는 자들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깊은 반성과 사죄가 아닐까 생각된다. 참사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내가 사건의 결말이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참사의 책임자들이 '공허한 십자가'를 지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e*******7 2017.0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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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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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공허한 십자가입니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한테 빠져서 작가님이 쓰신 책들을 하나,둘 사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공허한 십자가는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의 어린딸이 살해되고시간이 지난후 이혼한 사요코가 살해를 당하고 살인범이 자수하면서 단순우발적인 사고인것처럼 보이던사건이전남편인 나카하라에 의해 숨겨저있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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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공허한 십자가입니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한테 빠져서 작가님이 쓰신 책들을 하나,둘 사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공허한 십자가는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의 어린딸이 살해되고

시간이 지난후 이혼한 사요코가 살해를 당하고 살인범이 자수하면서

단순우발적인 사고인것처럼 보이던사건이

전남편인 나카하라에 의해 숨겨저있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형제도에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도되고 이책을 잘읽었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무거운 주제인데 특유의 글솜씨로 인해 몰입감있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보급판이라고 해서 저렴한가격으로 재출판되었으니

한번 읽어보시는것도 좋을거 같네요

YES마니아 : 로얄 h******5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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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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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책이 아닌가 싶다 꼭 읽어보길..백야행을 읽고 일본드라마로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또 영화화 드라마화도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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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책이 아닌가 싶다 꼭 읽어보길..

백야행을 읽고 일본드라마로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또 영화화 드라마화도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m****1 2015.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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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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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문 213p)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와 같이 자식을 둔 부모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형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조두순이 12년의 형량을 받고 나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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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문 213p)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와 같이 자식을 둔 부모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형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조두순이 12년의 형량을 받고 나왔을 경우 피해자는 20대의 꽃다운 나이가 된다. 사건에 대한 상처도 아물지 않은 기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아갔던 범인은 죗값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 (본문 445p)

 

얼마 전 딸아이는 학교에서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사형제도가 없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과 사형제도로 인해 법의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로 갑론을박을 펼쳤다고 한다. 글쎄....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도를 무조건적으로 찬성했던 나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구치 사오리는 한 학년 위인 육상부원 후미야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와의 인연이 계속되어졌으며, 그로인해 그녀는 그에게 더욱 끌렸고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중학생 사오리와 후미야의 풋풋한 만남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가 경시청 수사1과의 사야마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카하라의 기억 속의 사야마는 11년 전 딸 마나미의 살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였다. 11년 전, 딸은 아내 사요코가 잠시 시장을 간 사이에 살해당했고, 범인은 부부의 바람대로 사형을 당했다. 범인의 변호인은 상고를 했지만, 범인 히루카와는 모든 게 귀찮다는 이유로 취하한 탓에 결국 사형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부부는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응어리를 날려 보낸다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등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 상실감만 더해졌으며,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건이 끝났을 뿐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통감했다. 결국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던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나카하라는 사요코와 이혼을 한 후 이모부의 제안으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며, 이혼 후 1년이 지난 11년 동안 서로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사야마는 전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를 살해한 사람은 마치무라 사쿠조로 단순히 돈을 뺏앗을 목적이었으며 다음날 바로 자수를 하였다고 한다. 나카하라는 이혼 후 사요코가 대학 동창인 잡인 편집자의 주선으로 잡지의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여성의 패션이나 미용에 관한 글을 썼던 사요코는 소년범죄라든지 노동환경, 사회문제에 관한 글도 쓰게 되면서 여기저기 취재를 다녔으며, 최근에는 도벽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요코의 장례식에 참석한 나카하라는 사요코에게 일을 소개해 준 지즈코와 사요코에게 개인적으로 신세를 졌다는 그녀와 함께 온 사오리를 만나게 된다. 지즈코는 사요코가 쓴 마지막 기사가 실린 조만간 출간될 잡지를 보내주기로 약속하는데, 잡지를 받아본 나카하라는 도벽에 관한 사요코의 글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 중 자신이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훔친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여성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내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사오리라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게이메이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소아과 의사인 후미야는 장인 어른이 저지른 살해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이혼하기를 권유받지만, 아내 다에코와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에코는 아버지의 부양을 거부했지만 사위인 후미야는 장인을 모른 척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인이 살해한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한다. 다에코가 낳은 아들 쇼가 후미야의 친자식이 낳은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된 후미야 가족의 거센 반발에도 후미야는 다에코와 이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후미야의 모습을 본 동생 유미는 후미야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사요코의 부모님은 피해자의 참가인으로 참석하여 재판을 피해자와 유족의 것으로 만들어 범인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끝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도록 하려한다. 이런 과정에 나카하라는 장인과 장모에게 사요코가 책을 내기 위해 작성하던 원고를 건네받게 되고, 사요코의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읽게 된다. 사요코의 원고를 읽은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흔적을 되짚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도 알지 못했던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사요코의 살해 이유가 밝혀진다.

 

<<공허한 십자가>>는 살인, 형벌, 사형 제도의 존속 등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책에는 두 건의 살해 사건이 일어나다. 11년 전 딸이 살해를 당하고 남은 가족은 범인의 사형을 원한다. 범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유가족에게는 그 어떤 마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번에도 유가족은 범인의 사형 선고를 원한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나카하라이다.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카하라는 앞으로 살아갈 목적이 사라졌다는 공허함을 느낀바 있다. 전 아내의 살해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된 나카하라는 전 장인장모가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바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사요코의 행적을 되짚던 나카하라는 딸을 살해했던 범인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요코의 살해 사건을 관련있는 인물들이 오래 전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두 사건의 서로 다른 범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사형 제도와 형벌, 그리고 범인들의 속죄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생각을 권유한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그 의무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겠지요." (본문 415p)

 

딸아이는 어떤 한 사람의 생명권을 침해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사형 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나 역시 사형 제도의 찬성편에 서 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부양(?)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형 제도의 찬반에는 사실 그 어떤 정답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범인의 사형을 강력이 원했던 사요코 역시 자신이 쓴 원고에서 망설임의 흔적이 보인 것은 이 때문이리라.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한다면 그 우열은 가릴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을 갖는다해도 그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정답은 범인 자신과 유가족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유가족이 되어본 적 없는 내가 범인이 교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말할 수 없으며, 범인이 아닌 이상 사건의 진실이나 속죄의 마음을 알 수도 없으니 말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나카하라가 사요코의 행적을 추적하고 범죄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수많은 복선 속에서 긴박한 전개를 통해 완벽한 몰입을 선사한다. 그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들, 곱씹어지는 생각의 꼬리들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범죄의 해결책이 사형 집행이 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형이 정답인 양 이야기했던 나는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형 제도의 찬성 쪽에 서 있다.

s*****2 2015.09.19.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내용보기
아주 오랜 전에 티비에서 어떤 판사가 죄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그 판사는 죄책감에 시달려 옷을 벗었다고, 사형제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로, 오판을 했을 경우, 진범이 따로 있다면, 앗아가버린 범죄인의 생명은 어떡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사형제도 과연 존폐해야할까? 우리나라는 아직 사형제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도 들어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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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전에 티비에서 어떤 판사가 죄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범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그 판사는 죄책감에 시달려 옷을 벗었다고, 사형제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로, 오판을 했을 경우, 진범이 따로 있다면, 앗아가버린 범죄인의 생명은 어떡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사형제도 과연 존폐해야할까? 우리나라는 아직 사형제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도 들어서 한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기에, 실질적으로 사형제 폐지 국가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해서,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서 살아야만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공허한 십자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단숨에 읽어내려 갈수 있었다. 


엔젤보트라고 애완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카하라는 큰 아픔이 있었다. 사형을 구형받았음에도 모범수로 가석방 된 하루카와에게 딸아이가 살해를 당했다는 것인데, 그 일로 인해서 아내 사요코와도 이혼을 한다. 이제 잊고 지낼만 할때쯤, 전처 사요코가 길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삶을 따라 되짚어 가며, 그녀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서 밝히려한다.


사요코는 딸아이가 있을 때는 집에 있었지만, 딸아이가 죽고 나서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기사를 쓰곤 했었는데, 가장 최근 도벽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 기사에 주인공인 이구치 사오리는 빨간 색에 집착하다. 자신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에 걸맞게 살기 위해 훔친 음식을 먹기로 했다는 사오리, 과연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전처 사요코를 살해한 노인 마치무라 사쿠조의 사위 니시나 후미야가 후지노미야 출신으로 이구치 사오리와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랐음을 알고 난 후부터는 전처의 죽음을 파헤치던 나카하라의 추적이 다시 한번 탄력을 받는다.


사요코와 나카하라는 자신의 아이가 살해를 당했을 때도, 하루카와가 사형을 구형받고, 사형이 집행되었더라면, 자신에게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감형, 과연 그것이 필요한 것일까? 하루카와는 재판에서 상고를 포기하고 결국은 몇년 있다 사형을 당하지만, 실질적으로 사형이 집행되고 법의 댓가를 치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사형이 그 사람의 죄를 목숨으로 갚을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족들은 사형이 집행되길 원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정말로 사형은 집행되어야 마땅한 것일까?


정의감이 넘쳤던 사요코에게 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마치무라 사쿠조는 왜 사요코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건 다 그의 사위이자, 게이메이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 소아과 의사로 있는 니시나 후미야때문이다. 니시야 후미야. 그는 잘 나가는 소아과 의사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21년동안 가슴 속에 자신의 원죄를 묻어두고, 그것을 갚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가봐도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 쇼와 함께, 전자부품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하나에와 함께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이혼하라고, 하나에는 근본도 없을 뿐더라, 아버지 마져 살인자라고 이혼을 종용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에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럴까? 그건 아니다. 


하나에를 처음 만난 것은 아오키가하라의 수해에서였다.  자살하기 좋은 장소라고 한번 들어가며 나올수 없다고 유명 작가의 소설에 나왔던, 그 아오키가하라의 수해. 하나에는 다바타유지라는 30대중반의 남자에게 자신이 모아 뒀던 돈을 사기를 당하고, 그로 인해 임신까지 했지만, 다바타유지는 건널목에서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임신을 한 채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자살을 꿈꾸던 그녀가 어머니가 말해주던 아오키가하라의 수해를 찾았다. 거기서 후미야를 만났다. 누군가의 성묘를 위해서 다녀간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주고 그후에도 그녀를 돌봐주었고, 쇼의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그녀의 남편이 되어주겠다고 먼저 말했다. 후미야는 정말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넓은 대단한 사람일까? 하나에가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연락을 끊고 지냈을 때도, 장인인 마치무라 사쿠조를 책임지겠다고, 모시겠다고 말한것도 후미야였다. 내가 보기에도 후미야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다. 자신의 장인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었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 할때쯤, 이구치 사오리와 니시나 후미야는 계속 서로 사귀고 있었고, 사오리는 임신을 했었다. 중간에 낙태를 해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사오리는 아이를 낳은 후 후미야와 함께 바로 숨을 못 쉬게 해 죽인 후 아오키가하라의 수해에 묻어버렸다. 그후 사오리는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엉망인 삶을 살아왔다. 반면에 후미야는 그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자신 나름 속죄를 해왔다. 가슴 속에 커다랗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말이다. 


마치무라 사쿠조가 사요코를 살해 한 것은, 자신의 딸에게 너무나도 잘해주는 사위 후미야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아버지를 만나 힘들어하는 딸에게 행복이 되어줬던 사위 후미야를 그는 결코 자신의 딸에게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후미야에게 자수하라고 말하려 했던 사요코를 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 건의 살인 사건이 이 책에는 등장한다. 하나의 사건은 자신들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유가족이기도 했고, 한 사건은 사형이 집행되었고, 또 한 사건은 수사중인 사건이었다. 사형, 과연 꼭 필요할까? 일부 많은 사형수들 중에서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조금이라도 감형을 받아보려고 일부러 갱생한 듯한 느낌을 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본성을 대체 누가 제대로 파악할수 있을까? 후미야처럼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잊지 않고, 다른 것을 통해서라도 갚으려고 하는 게 사형보다는 더 낫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유가족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 할수는없다. 하지만, 생명은 소중한 것이기에 사형이 옳다고 말할수는 없겠다.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살아왔을 주인공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특히나 나카하라는 이혼을 하긴 했지만, 딸아이를 허망하게 잃고, 전처마져 그렇게 잃었다는게 그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싶기도 하고, 자신의 딸의 행복을 위해서 사요코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마치무라 사쿠조의 심정이 이해가 안가는 건 또 아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희생해서라도 딸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빗나간 부정도 나쁘다고, 그것이 잘못 된 것을 알면서도 사쿠조를 맹목적으로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년전의 자신의 죄를 자신 나름대로 갚아가고 있는 후미야는 정말로 안타까웠다. 임신한 채 자살을 꿈꿨던 하나에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쇼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었고, 희귀병 아이들을 고치는 걸로 갚고자 했던 후미야. 누가 후미야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만으로도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후에 후미야가 했던 행동들은, 정말로 진심을 담아서 속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그의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았기에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의 집행은 여러 장단점이 있다. 단순히 이 소설을 보고 사형은 꼭 집행되어야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금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법적인 제재 안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쳇바퀴돌아가듯 살면서 자신의 원죄를 갚아야할까? 아니면 법정 구속력없는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죄를 뉘우치면서 주변에 베풀면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그렇게 살아야할까?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아직, 나도 그 답을 잘 모르겠지만, 십자기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또 한번 느낀다.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는 못 사는 것 같다.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바로 자수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볍게 읽으려 시작한 글이었지만, 그 글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생각 할 수 있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나올 법 하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고, 그렇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사형이라는 것에 대해서, 죄를 갚아나가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필요가 있었다. 



"난 당신 남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돼요."


"만약에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며 전 틀림없이 죽었을 거에요. 아이도 태어나지 못햇을 거고요. 그래요. 남편은 분명히 21년 전에 한 생명을 죽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두 생명을 구했어요. 그리고 의사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심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겁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 씨,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과연 누구의 말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이 선택은 분명히 어렵다. 법이라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것 같다.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던데, 과연 법 앞에서 우리가 평등할까? 법 앞에서 평등한게 옳은 것일까? 양심 앞에서 평등한게 옳은 것일까?


d*****1 2015.07.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