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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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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진화론에 관심이 많은 분이 많으실텐데요, 그에 관한 책입니다.서울대학교, Kaist에 있는 창조과학회쪽 분들이 번역하신 책입니다.읽어보면 저자는 전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번역한 책이란게 재미있네요.얼마전 조선일보에서도 소개했던 책입니다.바로 진화론의 맹점에 대해서 공격한 책이죠.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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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진화론에 관심이 많은 분이 많으실텐데요, 그에 관한 책입니다.서울대학교, Kaist에 있는 창조과학회쪽 분들이 번역하신 책입니다.읽어보면 저자는 전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번역한 책이란게 재미있네요.얼마전 조선일보에서도 소개했던 책입니다.바로 진화론의 맹점에 대해서 공격한 책이죠.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옹호하지 않습니다.다만 "생명의 설계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많은 사람들이 진화를 이야기 하면서 원시 생물에서 고등생물까지 그 과정 과정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많은 생물들을 이야기 합니다.그리고 이런 이런 형태로 변화를 해가면 지금의 고등생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d******s 2002.07.20.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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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크나 큰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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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11일, 12일 이틀간 EBS 에서 방연된 법정에 선 다윈에서 다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재판인, 도버 재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책의 저자 미이클 베히가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절하여 재연으로 만들어진 증언 과정을 보고, 이 부분을 추가한다. 그는 증언 과정에서 과학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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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3월11일, 12일 이틀간 EBS 에서 방연된 법정에 선 다윈에서 다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재판인, 도버 재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책의 저자 미이클 베히가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절하여 재연으로 만들어진 증언 과정을 보고, 이 부분을 추가한다. 그는 증언 과정에서 과학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창조론의 재탕이자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지적설계론을 어떻게든, 주류 과학인 진화론과 함께 해 보려는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생각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베히는 그래도 솔직히 한다. (그래도 이성적인 많은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믿고, 지구의 역사가 6000년 정도라고 성경을 직역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의 정의는 이렇다. "검증과 재연이 가능한 가설의 집합", 헌데 베히는 그 증언에서 검증되지 않더라도 추론만으로도 과학이라 하였고, 같은 기준으로 점성술도 과학이라고 하였다. 이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책이라는 점을 인식하길 바란다. 베히의 기준으로는 우리나라 사주, 점등도 과학이다. 그들의 되내임이 지겹기까지 하다.

 

    나는 이 책을 사서 보지는 않았다. 단지,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 (왜 진화론을 반대하는가? 정말 과학적 근거는 있는가?) 때문에 창조론(최근에는 지적설계론이라고 한다)에 대한 책을 두번째로 서점 바닥에서 읽어 보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진화론이 틀렸다는 두가지 대 명제는 이렇다.

   첫번째는 "분자 수준의 생화화적 변화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증거라 한다.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주류 진화론에서 언제 분자 수준의 생화화적 변화를 설명하였는가? 단지 유전자 조합에 의한 분자 수준의 변화체들 중에 자연이나 다른 외부 요인에 의해서 선택되어 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일단, 상대방(진짜 상대방인지 난 인정할수 없다. 수많은 과학적 논거를 바탕으로 한 진화론과 종교적 신념 수준인 창조론이 상대방이라니. 하지만 편의상 이렇게 쓰자)인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거니 마이클 베히의 이해 수준이 그 정도라 치고 넘어 가자. 두번째가 아주 인상 깊은 구절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보아, 종교적인 바탕이 아닌 자연적인 흐름이 지적설계이다". 이게 마이클 베히의 지적설계론에 대한 논거란다. 여기서 자연적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단순한 박테리아 수준의 생명체에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진화론에서 첫 박테리아 수준의 생명 탄생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지층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이렇게 설명되는 가설이 있다. 흥미롭게도 지구상의 산소 농도가 거의 없는 수준에서 1% 수준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그들, 즉 첫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리고, 캄브리아기 생명의 대폭발 시기에도 산소 농도의 추가 증가가 발견이 된다. 헌데 지적 설계론 옹호를 기치로 든 이 책에서 분명 자연적인 설명이 지적 설계론이라 하였다. 여기서 질문을 한가지만 그들에게 하자. 그럼, 그 지적 설계자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라고. 이 질문에 미국 리버티 대학(기독교 근본주의 교육을 지향하는 버지니아주의 대학교. 그 대학의 공룡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공룡뼈에는 3000년전의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왜냐고? 기독교를 바탕으로 보니 창세기에 따라 지구 역사를 해석해야 하니까)의 한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 아닐까요? " 라고. 아니 이런 모순이. 지적 설계론이 아무런 과학적 증거도 없이, 가장 자연적인 흐름이라더니, 가장 중요한 지적 설계자에 대해서는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하다니. 모순의 극치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려면, 그냥 종교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렀으면 한다. 종교의 잦은 과학 영역으로의 발걸음은 언제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서평 제일 마지막의 몇가지 예를 보자). 이 책의 가장 나쁜 점은 소위 명문대 대학원생들이 역자로 나섰다는 것을, 지적 설계론에 은연중에 학문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내기를 하자. 그들 대부분(전부라고 하고 싶지만, 일말의 가능성때문에 대부분이라는단어를 선택했다)이 크리스챤일 것이다. 누가 그런 전략을 썼던 간에, 정말 이러긴 싫지만 그들과 같은 전략으로 대응을 하면, 본 서평을 하는 사람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고등 교육을 받은 분들이 번역을 하였는데, 왜 이 책을 하필 창조 과학회(종교인 몇분이 창립하였고, 소수의 과학자라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도 크리스챤이다)의 감수를 받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oo 목사님 감수" 라고 했으면 솔직하기라도 했을텐데 말이다.

 

    베히가 책에서 지적한 환원 불가능한 생명체의 기관에 대해 알아 보자. 그가 예로 든 것이 박테리아의 꼬리이다. 그는 도이지라는 생물학자가 박테리아의 꼬리에 대해 쓴 논문에서 "그 기관은 마치 인간이 만든 모터와 같다" 라고 말한 부분을 인용하기까지 한다. 베히의 주장은, 그 기관은 여러 단백질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단백질이라도 빠진다면 역활을 할 수 없기때문에 한번에 창조된 것이지 진화된 것이 아니란다. 하지만, 베히가 인용한 도이지라는 학자는 다른 박테리아가 해당 기관의 단백질 하나만을 변형하여 꼬리가 아닌 촉수로 사용하고 있는 예를 들어 주며 베히의 인용을 매우 불쾌해 한다는 일화는 의미하는 바가 많다. 

 

   자 이제 서평을 마무리하기 위해 중요한 예를 들어 보자. "저자인 마이클 베히와 역자들이 다른 시대에 살았다면" 이라는 재미있는 가정으로 아래와 같은 예들을 들며 서평을 마치겠다.

   1) 그들이 400~500년전에 태어났다면,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태양을 관찰해 보니, 천동설이 지구를 설명하는 자연적인 흐름이다" 라는 주제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반대하는 책.

   2) 그들이 약 100~120년전에 미국에 태어 났다면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흑인들을 관찰해보니 지적 수준도 낮고(당연하다. 그 당시 교육을 전혀 못 받았으므로) 아름답지도 못하다(백인들의 관점에서). 고로 인류가 백인종과 나머지 다른 유색인종으로 나뉜다는 교단(그 당시 미국 크리스챤 진영의 주장이었다)의 이야기가 자연적인 흐름이다" 라고 현재의 인류 보편적 상식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 책.

   3) 그들이 약 90년전에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지켜보니 여성들은 힘도 약하고 남성에 비해 지적 수준이 낮고(이것도 교육의 문제였지만) 사회 참여도 적다. 고로 여성들에게 투표건을 주지 않아야 된다는 교단(실제 미국 크리스챤 진영의 주장이었다)의 이야기가 자연적인 흐름이다" 라는 현재 인류의 보편적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책.

 

    이 정도로 서평을 마무리해야 겠다. 아 더이상 자신의 주장을 위해, 자연 현상 수천가지를 잘 설명해 주고 몇가지에 대해 분석 및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진화론에 대해, 그 몇가지를 공격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열중하는 비열한 정치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진화론과 같은 대열에 자신을 무임승차하려는 지적 설계론에 대한 주장(주장이다. 과학이 아니고)에 대한 책을 YES24의 과학분야에서 보고 싶지 않다. 종교서나 인문서등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j*****k 2007.10.0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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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되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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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되뇌임. 이 책의 내용은 이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과학에 대한 오만함, 진화론에 대한 몰이해, 지식에 대한 게으름의 세 박자가 고루 갖춰진 아주 전형적인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 1960년 대라면 이 주장이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아마도 많은 진화론자들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07년이다. 베히를 비롯한 무수한 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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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되뇌임. 이 책의 내용은 이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과학에 대한 오만함, 진화론에 대한 몰이해, 지식에 대한 게으름의 세 박자가 고루 갖춰진 아주 전형적인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 1960년 대라면 이 주장이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아마도 많은 진화론자들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07년이다. 베히를 비롯한 무수한 기독교 계통의 창조론자들에겐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할 엄청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록 과거의 무식한 주장들에 대한 철회는 있었을 지언정, 연구는 없다. 그것이 이들의 한계이다. 환원불가능성? 관측된 종분화의 사례? 진화론자들은 지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 연구하고 있는 것이 진화론이다. 그들은 진화론자이기에 앞서 과학자로서 과학적인 주장, 반론에 대해 얼마든지 열려 있으며 실제로 과학은 스스로 잘못된 주장과 논문에 대해 자정작용을 해 왔다. 더구나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첨단에 서 있는 학문이다. 어떤 일반인도 자신이 현대 물리학에 대해 잘 안다고 쉽게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일반인도 자신이 천체 전문가라고 쉽게 말하지 않으며 어떤 일반인도 자신이 전문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사이비들 뿐이다. 그런데 창조주의자들은 진화론에 대해 그런 주장을 쉽게 한다.
 
모르면 공부를 하시라. 비록 현대의 과학 분야들이 너무 전문화 되어 있어 일반인에겐 이해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도서관은 개방되어 있으며 모든 연구는 공개된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서관 개관 시간에 맞춰 논문을 열람할 수 있다. 그런데 창조주의자들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http://udel.edu/~mcdonald/mousetrap.html
 
http://www.talkorigins.org/indexcc/list.html
 
http://www.youtube.com/watch?v=SdwTwNPyR9w
 
이제 베히의 주장 중 어떠한 것도 더이상 진화론자들에게 치명적이지 않다. 아니, 이제 더이상 환원불가능성을 운운하는 것은 진화론에 대해 스스로 무지함을 밝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아주 잘 팔리고 있고, 또한 매우 인기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걸 본다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런 잘못된 지식이 확대 재생산 되고 어린 아이들을 세뇌 시키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심난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g****h 2007.07.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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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건너편에 있는 인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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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에 있어서, 또는 학문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사실이나 원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하는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고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처음 설정된 가설은 증명되어야만 한다. 진화주의자들은 끊임없는 관찰과 조사, 그리고 실험에 참여함으로 그 과정에 충실했고 열심을 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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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에 있어서, 또는 학문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사실이나 원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하는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고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처음 설정된 가설은 증명되어야만 한다. 진화주의자들은 끊임없는 관찰과 조사, 그리고 실험에 참여함으로 그 과정에 충실했고 열심을 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화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증명되지는 못했다.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한다면 창조론은 진화론의 다른 편에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 두 진영 사이에서 진행되어 왔던 논쟁을 보면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에 비해서 자신들의 신념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설을 증명하려고 하기보다는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머지 몫을 챙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진화론에 대한 괜찮은 반론들이 종종 있었지만 창조주의자들이 진화주의의 벽을 확실하게 흔들지는 못한 것 같다. 마이클 베히가 쓴 <다윈의 블랙박스>는 이런 시기에 나타난 강력한 다윈주의 흔들기이다.
마이클은 이 책에서 <블랙박스>라는 말을 “무엇인가를 하기는 하지만 그 내부 작동 상태는 전혀 알 수 없는 장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다윈이 관찰한 생명체에 대해서 실제로 다윈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생명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지식이나 상상만으로 분석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기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 책을 III부로 구성했다. 첫 부분에서는 그동안 생물학적으로 논의된 진화론이 오늘날 왜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의 과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이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저자는 “오늘날 전자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분자 수준의 세포에 대해서 다윈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육안으로만 사물을 관찰해야 했던 다윈은 이 방면에 대해서 지식이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다윈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II부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분자 수준의 세포에 대해서 장황한 사례를 들었다. 단백질의 조직, 혈액 응고 과정에 나타나는 세포들의 기능, 단백질의 수송 경로 시스템, 면역체계 등에 대한 생화학적 설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생화학자인 저자에게 있어서 세포는 복잡한 기계이다. 그리고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도록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기계의 운동이 순서적으로 진행되어야함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실험적 사례들은 어떻게 진화론이 틀렸는가를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정확한 논리 앞에 생물학적 진화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눈으로 보게 된다. 마이클 베히는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결코 종교적인 편협함을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너무 전문적이다. 그런 면에서 II부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좀 딱딱하고 재미없는 부분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어려움들이 있어도 그것은 새로운 기계를 처음 샀을 때 보는 설명서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생화학에 비전문적인 독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하는 친절함까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승리를 대하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저 한 권의 생화학 책으로서만 기능한다. 그러나 III부로 넘어가면 이 책은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 진화론의 무너짐에 대한 다른 편의 대답으로 마이클이 생물에 대한 지적 설계자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표기는 곧 하나님으로 이름표를 바꾼다. 사실상 이런 제안은 지나간 인류 역사에서 항상 있어왔다. 그렇지만 과학계는 그 제안을 거부했고 고집스럽게 진화론을 살려보려고 했다. 마이클은 그와 같은 과학의 역사까지도 매섭게 몰아친다. 진화론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신적존재에 의한 생명의 기원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과학적 행동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곧 철학에 근거를 둔 관점임을 꼬집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은 또 다른 종교라고 하는 것이 드러난다.
마이클 베히가 이 책에서 끊임없이 묻는 것은 “최초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이다. 과학이라고 하는 폭넓은 범주 안에서 어떤 것은 진화가 확실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최초에 발생했는가?”가 그의 관심사인 것이다. 최초의 사건에 대해서는 관찰자가 없기 때문에 과학적인 증명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적설계>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여전히 대답을 못하고 있고, 생물의 미시세계가 우연의 결과로 보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미시세계의 세포들을 본 한 생화학자의 양심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의 정직한 양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되고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이라는 유익을 얻게 된다.
YES마니아 : 로얄 k*****h 2005.11.1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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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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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베히는 참으로 통찰력있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과학자라 하더라도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너무 쉽게 편견에 사로잡혀버리곤 하는데 베히는 과학자로서의 합리성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판단된다. 그동안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접근함에 있어서는 너무도 단편적인 사실에만 의존하여 창조의 과학성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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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베히는 참으로 통찰력있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과학자라 하더라도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너무 쉽게 편견에 사로잡혀버리곤 하는데 베히는 과학자로서의 합리성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판단된다. 그동안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접근함에 있어서는 너무도 단편적인 사실에만 의존하여 창조의 과학성을 주장함으로 인해 학문적 체계성에 있어서는 진화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진화론도 추정과 가설을 이미 증명된 사실인양 말해온 것 또한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창조론이 진화론에 비해선 체계가 덜 잡혔던 것은 사실이다. 이책이 나온지는 꽤 되었지만 지금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공부하는데 있어서는 필독도서라 생각된다. 모쪼록 창조론자이든 진화론자이든 차분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j***w 2005.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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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돈주고 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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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꽃이에 꽃여 있는 이 흉물스러운 시커먼 책을 보면서 오늘도 후회를 한다. "이 책 살 돈이면 그냥 유니세프나 납세자연맹에 기증하는 게 낫겠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그럴 듯한 말을 생화학자가 말했기 때문에 책으로라도 쓰였지 내용은 그냥 어이 없음의 연속일 뿐.     박테리아 편모 얘기를 하는데, 박테리아 편모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단백질 중에 하나만 빠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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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책꽃이에 꽃여 있는 이 흉물스러운 시커먼 책을 보면서 오늘도 후회를 한다. "이 책 살 돈이면 그냥 유니세프나 납세자연맹에 기증하는 게 낫겠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그럴 듯한 말을 생화학자가 말했기 때문에 책으로라도 쓰였지 내용은 그냥 어이 없음의 연속일 뿐.

 

  박테리아 편모 얘기를 하는데, 박테리아 편모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단백질 중에 하나만 빠져도 편모라는 기능 수행을 못하기 때문에, 저것은 어떠한 "지적 설계자"가 개입해서 만들지 않은 한, 누적적인 진화로 만들어 질 수 없는 부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하신 지적 설계자님은 박테리아 편모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밤새 코딱지 만한 단백질 수십개로 조각 맞추기 퍼즐을 하셨을까?

 

  불행하게도 2005년 도버 재판에서 나왔듯이,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10여가지는 TTSS(Type three secretory system)라는 제 3형 분비계의 역할을 따로 수행하고 있다. 즉 누적적 진화라는 관점에서 편모 단백질의 일부는 이미 완벽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so what?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하나만 빠져도 기능이 아예 없기 때문에 자연 선택의 유리함 (selective advantage)를 가지지 못한다고 우기던 지적 설계론자들의 주장은 허공에 뜬 것이다. 박테리아는 애초부터 편모라는 것을 가지고자 진화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새로운 단백질이 새로 만들어 졌을 때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그것이 처음에는 TTSS라는 일종의 독성 물질 주사기로 작용하다가, 후에 점진적으로 단백질들이 더 결합하여 편모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편모 뿐이 아니라, 혈액의 응고 같은 예에서도 어이 없는 주장, 즉 생각 자체를 해보기나 했을까라는 의심이 드는 주장들이 많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일련의 신호 전달 회로 (signal transduction) 내에 있는 유전자나 단백질의 진화는 한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그것이 한 번에 생겨나야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시"는, 누적적인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 중복 (gene duplication) 현상에 의해 훌륭히 설명되고 있으며, 실제로 혈액 응고의 단백질끼리는 굉장한 homology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_-. 그걸 떠나서, 고작 단백질 몇 개가 우연에 의해 추가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 처럼 생각하면서.. 그런 단백질을 조립하는 존재는 그냥 있는 거라고 하니 반칙도 이런 반칙이 또 있나??

 

  이러한 책이 떡 하니 자연과학 서적으로 꽃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읽고서 낚이는 것이다. 하기사 이미 이러한 마이클 베히 류의 주장은 도버 재판을 비롯해서 talkorigins 에서도 박살이 나 있는 상태인데... 그래도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지 않은가.. 그러니 우연히 이러한 책을 읽다 보면 '오늘도 낚이고낚이고낚이고낚이고 낚이고낚이고낚이고낚이고' 하는 거겠지..

s****e 2009.05.22. 신고 공감 0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