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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보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은근히 긴장감도 있고 전혀 관심분야도 아닌데 공부가 자동으로 되더군요ㅎㅎ 짧은 분량에도 정조와 혜경궁이라는 시대적 포착이 절묘했고, 역사와 풍속과 유명한 인물들을 종횡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멋졌어요. 직접 만나는 것도 부족해서... 현장감 넘치는 방송중계와 편지까지 동원한 화원과 독자의 초현실적인 소통도 좋았고 온통 나비가 날아다니는 자유분방한 삽화도 잘 어울렸던것 같아요. 한양스타일! 인상적이었구요.. 색칠 실습은 뭐랄까... 중견가수가 마이크 떠넘기는 느낌?ㅋㅋㅋ
정성이 담긴 책인것같아서 기분 좋게 읽었구요.. 묘하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림을 한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잘 읽히고 유익하고, 왠지 많은 내용을 덜어내면서 써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거 어른용 책으로 다시 펴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른용이라도 문체는 근엄하지 않게 이대로요. 무리인가요? ㅋㅋ 암튼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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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이 통치이념이었던 조선 시대에는 화가라는 직업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었다. 중인이라는 신분에 분류되어 있기 했지만 중인 중에서도 가장 낮은 부류로 대우받았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도화원'으로 기관이 분류되었는데 조선 중기로 넘어서면서 '도화서'로 기관의 위상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들의 처우도 나빠졌다.
정기적인 녹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험 평가에 의해서 받는 녹봉이 달랐다. 그래서 과외로 그림을주문받지 않고서는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화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지방으로 내려보내 지방관이 화원의 의식주를 책임지도록 하긴 했지만 지방별로 경제적인 수준이 달랐기때문에 모두가 대우를 받으면서 지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김홍도도 말년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을 경우에만 녹봉을 받아 근근히 먹고 살았다고 하니 그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원 중에서는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어진 화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영예로 알았다. 어진 화사가 되어 작업에 동참하게 되면 나중에 품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김홍도도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고 지방 현감으로 승진하여 발령받은 적이 있었다.
임금의 그림이나 글씨는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한지에, 천연물감으로 도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내려왔다고 한다.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던 의궤들도 임금이 직접 보는 용도로 작업되었기때문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관 상태가 우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들이 없었다면 궁궐에서 일어났던 행사나 건물, 인물, 작업 등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진사 역할을 했던 이들이 화원들이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