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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산상수훈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익숙한 말씀이 등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문맥의 의미 정도로만 익숙했던 산상수훈의 말씀이 조금 더 깊이 있게 풀어지면 좋겠다!라는 기대도 있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바는 바로 후자였다. 산상수훈의 몇 구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이곳저곳의 말씀이 덧붙여지고,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지혜와 은혜를 맛볼 수 있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13가지의 키워드에는 기도나 믿음뿐 아니라 행복, 목적 그리고 결혼이나 저항처럼 예상치 못한 내용들도 담겨있다. 각 말씀 하나하나가 색다르게 와닿았기에 매 페이지를 넘기며 줄을 긋지 않은 페이지가 없을 정도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내 모습이 온전하지 못해 하나님을 욕 먹이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내가 교회 다닌다는 말을 숨겨야 할까? 하는 생각 속에서 참 오랜 시간 괴로움을 겪었다. 물론 그 상황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책에는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위로와 조언의 말씀도 담겨있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내 삶의 모든 부분이 분명히 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작은 문제에도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아직도 진행 중인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조금씩 성화되어가는 중에 있는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자. 물론 그에 안주해서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아닌 하루하루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기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뇌 수술을 받으셨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수술대에 오르시기까지 그동안 혼자 마음 졸였던 친구를 떠올리며 수술시간을 앞두고 주변의 교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기도를 모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이 책을 읽으며 기도에 대한 페이지에 한 줄을 읽으며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 단톡방에는 내 친구도 있었는데, 이 구절이 그 친구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계속 함께 기도하고 있다. 매주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공급을 받지만, 신앙서적들 또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다시금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산상수훈 속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 내 삶을 점검해 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말씀에 기대어 기도하는 삶. 바로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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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는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의 말씀 13''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야말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실천적 해설서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육성을 되살려내어 전해주는 책에 이어서 이 책은 '이스라엘 땅에서 말씀 찾기'의 실천편이 되어주니 더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이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말씀들에서도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의 언어가 흐르고 이를 토대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팔복, 소금과 빛, 율법과 진실, 기도와 믿음, 좁은 문과 지혜에 대한 비유들까지 모두 신약과 구약을 넘나들면서 신학적인 지식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더불어 인문학적인 통찰력이 빛나는 책내용이어서 우리의 생활이 예수님의 뜻대로 자리잡으며 말씀을 통한 위로는 물론이고, 새로운 통찰력을 기꺼이 키우게 만들어주는 책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예수님과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성경의 기록을 만날 수 있고, 인간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제자의 길에 대한 안내를 기꺼이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점이 된다. 다른 깨달음을 전해주는 내용들에도 주목하게 되지만, 무엇보다 행복, 목적, 생명,결혼, 진실, 저항, 진심, 기도, 믿음, 세움, 신앙, 방향, 지혜라는 13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알려주니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이 책에 다가서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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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도 익숙한 구절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용보다 형식에 더 익숙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산상수훈처럼 너무 잘 알려진 말씀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문장의 의미를 깊게 바라보기보다 지나치듯 읽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산상수훈은 단순한 교훈 모음이 아니라,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현실과 고민 속에서 전해진 메시지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단순한 성경 해설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책입니다. 저자는 갈릴리 언덕이라는 실제 공간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하며, 예수의 말씀이 어떤 상황 속에서 전해졌는지를 입체적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팔복과 소금과 빛의 비유, 기도와 믿음, 좁은 문 같은 익숙한 구절들도 단순한 종교적 문장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해 설명합니다. 또한 신학적 해석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불안과 관계, 욕망과 삶의 방향 같은 문제들과 함께 다루기 때문에 성경을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 책의 핵심은 산상수훈을 ‘듣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내는 말씀’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이 단순히 위로와 도덕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준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행복과 진실, 믿음과 저항 같은 주제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현실 속 선택과 태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또한 당시 유대 사회의 역사와 문화, 신구약의 흐름까지 함께 설명하기 때문에 익숙했던 말씀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히게 만든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는 익숙하게 읽어왔던 산상수훈의 말씀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 다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주는 책입니다. 성경 말씀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현실 속 삶의 방향과 태도로 깊게 고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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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읽는 이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경전인가? 대부분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 무오류를 이야기하며 성경해독에 생애를 보낸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이야기하신 적이 없다. 성경은 오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수사와 지도자들의 영적체험이 필사로 전달되어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경전이다. 기독교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암울한 중세 암흑기를 보냈지만 누구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이 발전하며 특유의 전파력을 중심으로 시세확장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기독교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모든 이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진정한 복음이다.
작은 언덕,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모인 이들이 특별하다. 대중이 아닌 아프고 병든 자들이다. 너무 아프고 가난해서 한 끼라도 해결해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을까? 생리적 욕구는 모든 이성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복’이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자, 누구든 배부르게 먹고 아프지 않으며 평생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복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부서진다. 복은 하나님 나라를 영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하나님의 가치관이 실제가 되는 땅에서의 복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어떤 가치를 따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에베소서 1장 22절은 예수님의 권위와 통치, 교회의 충만함에 대해 서술한다. 예수님을 믿음에 죄 사함을 받고 산상수훈의 가치에 따라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에게 복은 물질적인 욕구나 욕망을 대변한다. 오래 사는 것,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은 누구나 누리고 싶은 오복이다. 하지만 오복이 한꺼번에 들어올 리 만무하고 하나를 얻는다고 만족하는 법이 없다. 가질수록 허무하고 무기력해지며 공허가 삶을 짓누른다. 복에 대한 진정성이 빠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복을 누리려 하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서‘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복되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받을 것이다 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복을 주거나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로 아브라함을 인정하신 것이다. 산상수훈의 복 되어라 란 말씀도 소유가 아닌 하나님 앞에 엎드린 존재 그 자체라는 의미다. 흔히 팔복을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격이나 조건이라 말하기도 한다. 팔복은 자격조건이나 탁월한 성품, 교회공동체가 지녀야할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팔복의 말씀은 복된 존재에게 복된 은혜가 이미 임했다는 확증이다. 예수님 앞으로 나온 제자 됨이 복이고 예수님 앞에 엎드린 그들이 복 있는 사람이다.
본 책은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 13가지의 은혜를 함께한다. 일상적으로 대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 말씀을 전달한다. 수많은 교회들이 기독교 위기를 이야기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체요 실체적인 장소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교회위기는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막힌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의 욕망이 더욱 거대해져 교회를 찾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원인은 교회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산상수훈의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말씀하신다. 차별과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선 어떤 종교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신성과 실체의 경계선을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교회는 그 기능을 잃어갈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한결 같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 하셨고 공생애과정을 통해 진리를 보여주셨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누구인가? 너는 복이 될지라. 산상수훈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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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93년 3우러, 광명 한우리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자의 소개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만남을 통한 이끄심과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갈망하는 구도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산상수훈을 통해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 더불어 저자는 이런 소원을 말한다. "이 책은 산상수흔의 가르침을 따라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길 소원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저자의 가슴에서 외치는 말씀을 산상수훈의 그릇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함을 독자들은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외침이요, 부르짖음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목표를 세우고 악착같이 덤벼들어 그것을 차지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는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과 하나님이 주신 행복은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행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주어진 것보다 세상 모두가 갖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과 세상 사람들의 차이이다. 이 책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는 것은 진심이 담긴 삶인지를 구별하게 한다. 진심이 담긴 행함과 진심이 없는 행함은 색깔이 다르다. 진심이 담긴 행함은 전심으로 살아가지만 진심이 없는 행함은 전심을 찾기 어렵다. 이는 삶의 진정성 차이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산상수훈의 깊이를 걷게 될 것이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넘을 수는 벽이요, 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 귀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인생들에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산상수훈은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가르켜 준다. 산상수훈은 주님의 삶을 보여준다. 주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산상수훈은 믿음과 생활이 함께라는 것을 말한다. 믿음따로, 생활따로가 아니다. 믿음과 생활이 함께 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삶을 산상수훈을 통해 밝혀주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산상수훈에서 보여준 기도를 '땅과 하늘을 잇는 신비'라고 말한다. 그런데 독자인 나는 산상수훈이야말로 '땅과 하늘을 잇는 신비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싶다. 산상수훈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실제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른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는 삶의 자세와 가치를 새롭게 해야 한다. 무엇을 따르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산상수훈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저자는 자신의 책에 담고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신앙들의 삶을 점검했으면 한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리뷰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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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산상수훈은 그동안 수없이 설교로나 성경으로나 듣고 읽었던 말씀이다. 이러한 산상수훈을 다시금 대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그 산상수훈이 선포되는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삶 가운데 어느 하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시대 가운데 한 사람의 믿음의 백성으로서 예수의 음성을 바로 앞에서 듣게 하는 책이다. 이러한 책의 전개 방식은 산상수훈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이 아닌 어떻게 하면 이 산을 즐겁고 행복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를 알려준다.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시고 우리를 초청하신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고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가 열리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훈이 예수님이 가르치는 말씀이고, 그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산상수훈이다.
저자는 책에서 산상수훈을 “역설적 복의 선언”이라는 단어를 통해 팔복을 앞으로 갖추어야 할 특정한 자격 조건이 아님을 말한다.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복을 위해 고상한 성품을 빚어 가는 수고를 해야 할 이유가 없고, 도리어 살 소망을 잃고 고단한 처지를 살아내야 하는 이들이 복있는 사람이라 부르신다. 그래서 세상과는 전혀 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이 추구하는 인간적 성취나 감정적 만족이 아닌, 오직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가져야 복이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매우 친숙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기준은 사실 팔복의 기준과는 먼 행복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사실 산상수훈을 바라보는 시점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가 산상수훈을 바라보고 따라갈 수 있게 한다. 그 모든 것의 중신은 바로 기도와 믿음이다. 그 모든 행동의 출발점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출발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가능하며, 기도가 여는 종교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비신앙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기꺼이 해내야 할 호흡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산상수훈의 흐름을 따라가며, 믿음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떤 삶을 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길을 안내한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이라는 말씀이 믿음의 자녀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아니라, 거뜬히 지고 나아갈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안내서임을 알려준다.
세상 가운데 믿음으로 살기에 너무나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좋은 책이다. 그래서 산상수훈을 어려워하는 성도들에게,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다시금 산상수훈을 마음에 품게 하는 책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 가운데 변화가 필요한 이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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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언덕에서말씀듣기_권종렬 #샘솟는기쁨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듣기를 읽으며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은 새로운 깨달음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씀들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교회 설교 시간에도 들었던 산상수훈의 말씀인데, 책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니 마치 하나님께서 같은 말씀을 반복해 들려주시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중요한 말을 한 번만 들어서는 잘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 말씀을 두 번, 세 번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단순히 성경 구절을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익숙하게 지나쳤던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연결시켜 조용히 되묻는다. 나는 과연 내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 남의 기대와 시선에 끌려다니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겉으로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라고 외치지만 정작 실제의 나는 누군가의 인정과 평가를 따라 움직이는 조연처럼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가. 책을 읽으며 그런 질문들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 P.52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삶의 목적임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삶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예수님의 시선이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결과와 성취로 사람을 판단한다. 나도 그러하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로 가치를 매기게 된다. 그래서 나 또한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상수훈 속 예수님의 말씀은 정반대였다. 잘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거창히 이룬 것이 없어도, 눈에 띄는 업적이 없어도, 지금의 나 그대로를 품으신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늘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진짜 중심은 불안과 비교,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책 속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네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너라서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음성은 누군가의 거창한 위로보다 더 깊게 마음에 남았다. 또 책은 산상수훈을 사랑과 용서, 온유와 겸손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치열한 삶의 태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세상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낮아지는 자, 섬기는 자,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을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인간을 살리는 힘은 경쟁과 우월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나는 신앙이 거창한 결심이나 특별한 열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까지도 신앙의 일부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신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내게 큰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보게했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천천히 묻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결국 남는 것은 한 가지였다. “애쓰며 살아가는 너를 내가 안다”는 예수님의 조용한 위로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성경 해설서가 아니라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동행처럼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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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렬 저의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듣기』 를 읽고 사람이란 오래 살다 보니 귀한 인연이란 것이 이렇게도 연결이 되어지는 것을 참으로 신비스럽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올해 나이가 일흔 두 살이 되었으니 인생 후반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주변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온세계 만인의 공통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필독서인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추천받아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단기간의 몇 시간이 아니라 8개월 코스로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는 교육인 것이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성경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그 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처럼 일주일에 3일간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의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어색하고 조금 어렵게 느끼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진행할수록 관심과 함께 점차 관심과 함께 천국말씀에 대한 그리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그 실체가 신비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열심히 천국말씀 공부에 매진하고 싶어진다. 아울러 더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기도도 올리고 싶어진다. 이렇게 열심히 천국말씀 성경공부를 열심히 임하면서 기도도 드리는 나 자신에게 저자의 이 책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아주 귀한 만남의 인연이라 할 수 있다. 난생 처음으로 대하면서 공부하는 입장에서 여러모로 생각도 해보는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모습도 들어보았다. 아무래도 문제는 바로 초심을 벗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결국은 원래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새로이 시작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서로 분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다. 바로 그 해답이 이 책에 다 나와있다 할 것이다. 바로 산상수훈 언덕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예수님과 함께 걸음의 무게를 무겁게 하면서도, 도리어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산상수훈의 말씀의 깊이가 책에 다 담겨 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며,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들, 미래의 주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산상수훈을 13가지로 나눠서 설명하는데, 행복, 목적, 생명, 결혼, 진실, 저항, 진심, 기도, 믿음, 세움, 신앙, 방향, 지혜이다. 나같이 처음 출발하는 천국 말씀 공부하는 자세로 임한다든지 산상수훈 언덕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시간을 상기하면서 그 가르침대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백성의 가치 선언이며, 산상수훈 언덕으로 나아가 다시 듣는 실천적인 성경 읽기라 할 때 우리 신앙인들이 반드시 읽고서 생활슥의 습관실천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은 신앙인 스스로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 나라에서 천국말씀을 바탕으로 함께 다 같이 거할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복 받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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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가 가장 좋아했던 말씀이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그가 펼쳤던 비폭력 운동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에서 배우고 빌려온 운동이기도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마하트마 간디에게서 다시 비폭력 저항을 빌려왔다는 점도 무척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이 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모세오경이 구약성경의 등뼈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예수의 산상수훈은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 대표하는 모세 오경을 한층 더 높은 수준(비교 불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산상수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산상수훈이 놀라운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산상수훈을 연구한 학자와 책은 부지기수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말씀을 꼽을 때 산상수훈은 영 순위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만큼 깊고 넓고 높고 풍부한 의미를 캐낼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은 어렵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읽기는 편하고 쉽고 아름답지만 말씀 자체는 깊고 높고 넓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한 분밖에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팔복에서 시작해 원수 사랑으로 끝나는 그 말씀들 앞에서, 읽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택합니다. 지나치게 높은 이상으로 격상시켜 현실과 분리하거나, 반대로 너무 빠르게 실용적 교훈으로 납작하게 만들거나. 권종렬 목사의 이 책은 그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조용한 시도입니다. 책의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 강의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듣기'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그 언덕 어딘가에 앉아, 예수의 말씀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귀를 기울이겠다는 자세입니다. 이 겸손한 제목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목차를 펼치면 구성의 의도가 보입니다. 산상수훈 1부터 13까지, 각 장에 하나의 핵심어를 붙였습니다. 행복, 목적, 생명, 결혼, 진실, 저항, 진심, 기도, 믿음, 세움, 신앙, 방향, 지혜. 신학적 개념어가 아닙니다. 누구나 아는 일상의 언어들입니다. 그 선택 자체가 이미 저자의 방향을 말해줍니다. 산상수훈을 교리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로 읽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중의 언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뚝뚝 떨어지는 책입니다.
각 장의 부제도 인상적입니다. '엎드리는 자가 누리는 은혜', '자기 몫을 다하는 인생', '화목함에 깃드는 풍성', '끝까지 살아남아 사랑하기.' 설교 제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문장들이지만, 동시에 어느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산상수훈을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입니다. 산상수훈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문장마다 배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집니다. 책이란 결국 저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권종렬 목사의 글에서는 급하지 않은 사람의 냄새가 납니다. 논증보다 설득을, 정죄보다 초대를 선택하는 목회자의 체취입니다. 산상수훈을 다루면서도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언덕에 함께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씁니다. 이런 책은 저자의 성품 없이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서 커피 한 잔 들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저자입니다.
에필로그의 제목도 눈길을 끕니다. '변호 말고 통역을 해 보자!' 산상수훈을 방어하거나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청중과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겠다는 선언입니다. 저자가 이 책 전체에서 하려 했던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셈입니다. 산상수훈을 처음 접하는 분께도, 오래 읽어왔지만 새롭게 만나고 싶은 분께도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언덕 위에서 부는 바람처럼, 읽고 나면 무언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 가벼움이 얕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삶 가까이 내려놓은 데서 오는 것임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설교할 계획이 있는 설교자, 예수의 산상수훈에 담긴 정신이 무엇인지 이미지를 그리고 싶은 독자, 산상수훈의 높고 깊고 넓은 가르침의 정수를 빠르게 파악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펼쳐보시면 만족하실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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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예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읽고 싶었다. 성경을 계속 통독을 하고 있는데 신앙 서적과 같이 있으면 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을 살때 하나님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저자는 권종렬이다. 저자는 다양한 만남을 통한 이끄심과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끓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갈망하는 구도이다. 저자는 지성과 영성과 품성이 균형 잡힌 신앙을 강조하며, 말씀과 성령의 조화, 가정과 직장과 교회의 상호작용, 지역과 세계를 향한 비전의 공유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복음적 설교자일 뿐 아니라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이다. 저자는 1993년 3월, 광명 한우리교회를 개척하여 30년이 지나도록 담임목사로 섬기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현장감과 현실감 있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저자는 광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수업을 했다. 저서로는 시편 23편을 중심으로 선한목자를 따르는 인생길을 나눈 『함께하심』과 은혜의 손길 아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마음 치유서 『고장난 마음 정비소』 성경 이해를 돕는 베들레헴에서 욥바까지 인문 기행『이스라엘 땅에서 말씀 찾기』 가 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도시를 인문적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소돔’을 얘기한다. 소돔은 당시 황금처럼 취급되던 소금을 팔던 곳이다. 상업에 근거를 둔 경제 구조이나 땅이 필요 없고, 당연히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태어나 거기서만 계속 산다면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도 적다. 성적인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도시보다 성범죄율이 낮다. 하지만 상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게 형성되었던 소돔은 성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는 당시의 소돔보다 더 고밀화뒤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의 서울이 성적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소돔보다 더 자극적인 도시일 것이다.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지면에 흩어져 살라고 명령하셨는데( 창 9:1),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농업이 아닌 상업으로 돈을 벌던 사람들은 밀도가 높은 도시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다. 롯의 눈에 비친 소돔이 속한 요단 지역은 물이 넉넉해서 여호와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다.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해 동쪽으로 떠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렀다. 요단 지역의 도시에 머무르던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에까지 이르렀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 (창 13:10~13).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으로 간 가인의 불안함이 쌓아 올린 도시가 ‘에녹’이다. (창 4:16~17) 여호와를 대적하는 니므롯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쌓은 혼돈의 도시가 ‘바벨’이다. (창10:8~10, 11:2) 그리고 롯이 넉넉함을 따라 동쪽으로 떠나 선택한 욕망의 도시가 ‘소돔’이다. 롯은 소돔의 감추어진 죄악을 보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넉넉함에 끌려 그곳에 거주했다. 욕망을 따라 선택한 도시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소돔의 죄는 자신의 두 딸을 집단 성폭행의 대상으로 내던지는 롯의 범죄적 행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손님을 환대한다면서 정작 어린 두 딸에 대한 인격 유린과 살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다. ‘소돔의 죄는 동성애’라고 단선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경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동성애는 물론 동성 성폭행을 넘어서 집단적인 성폭행이 용인되고 조장되는 음란의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가 소돔이다. 여기에 더해 상업 속에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던 무정함과 교만함이 소돔의 큰 죄악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 7계명이다. 이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대 교회가 생각하는 ‘간음’ 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누가 간음한 사람인가? 그것은 남의 아내와 성관계를 가진 사람이다. 구약 율법이 간음의 문제를 다룰 때면 상대방이 결혼이나 약혼한 상태인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레 20:10, 신 22:23~24) 이미 결혼한 남의 아내나 약혼한 여자와 신체적, 성적 관계를 갖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결혼에 대한 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여 남의 결혼 관계를 깨뜨리는 일이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모든 음란한 행위를 넘어 음란한 마음의 문제로까지 확장했다. 간음을 소유권 침해의 문제가 아닌 다층적인 성적 관계의 문제로 본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7계명을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라는 10계명과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실제로 훔치지는 않고, 단지 훔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범죄 요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보는 것 자체가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자의 외모나 차림새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음란한 마음 곧 탐욕적 욕망을 문제 삼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관계에 이르지 않았어도 음란한 눈으로 보는 것이 간음이고, 불건전한 신체 접촉을 갖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간음에 넘어지지 않고 순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적 욕망부터 다스려야 한다. 간음의 문제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다윗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사건이다. 부하 장군 아내를 탐한 것이다. 결국 모든 간음의 뿌리는 음란한 마음이다. 마음에 품은 탐욕적 욕망이 간음의 근원이다. 간음, 음행, 음란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제이다. 결혼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유혹하는 손길을 거절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행위가 아주 큰 범죄 간음이다. 탐욕적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한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간음을 이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음욕을 품고 바라보게 하는 음란한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마음에 품은 음욕으로부터 비롯된 간음의 결과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래서 간음으로 넘어지게 하는 눈을 빼어버리거나 손을 찍어 버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 특히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시각적인 문화가 발달된 사회다. 노골적으로 성적표현을 담은 영상물들이 여과 없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음란한 영상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 대로 해도 된다는 음란한 마음을 품게 한다. 그래서 음란물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음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음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될수록 음란한 행위에 빠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을 빼어버리고 손을 찍어 내버리라고까지 하신 것이다. 이 책을 보니까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