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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곁에 두고 싶은 책이 있다. 혼자서 여행을 떠날 때면 속옷 한 장을 덜 넣는 대신 챙겨가고 싶은 책이 있다. 법정스님의 글이 그렇고 신영복님의 글이 그러하며 박남준 시인의 시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며칠전 시보다 더 시적으로 사는 모악산 시인 박남준님의 산문집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우연히 만난 시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누구보다 열성적인 박남준 시인의 독자임을 자처하던 나로서는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해서 서둘러 구해본 산문집의 제목은 '나비가 날아간 자리'. 박남준 시인의 단아하면서도 애절한 시풍과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표지에는 시인이 손수 그린 꽃 그림도 곱게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한꺼번에 읽기가 아까워 한 단락 씩, 두 단락씩 가끔은 먼 산과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담배도 태워가며 천천히 글들을 읽어내려갔다. 고즈넉한 음성으로 속살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시인의 첫 산문집이었던 '쓸쓸한 날의 여행'을 밑그림으로 몇 가지의 글이 첨삭되어 묶인 이번 산문집은 시인의 소년기에서부터 문학청년기, 운동가로서의 삶을 거쳐 모악산에 뿌리내려 사는 모습까지가 담백한 문장으로 투영되어 있다. 그렇게 엮어진 책의 전체적인 품은 단촐하면서도 끈질긴 힘이 느껴진다. 특히 치열한 현실 인식이 바탕이 된 몇몇 글들은 세상에서 도망쳐서 숨어사는 나약한 시인이라는 가십 혹은 편견을 풀어줄 법도 하다.
어쩌면 시인은 각박하고 모순투성이인 현실에 맞서는 방법의 하나로서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고 그런 자신의 삶을 시로 또는 산문으로 승화시키며 세상에 맞서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십 년 동안 모악산 자락에서 혼자 사는 시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였고, 차츰 '그 분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를 거쳐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그분다운 삶이다' 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언젠가는 그가 한국의 스코트 니어링으로 불리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움직이지 마. 그러나 나비는 더 기다려 주지 않고 사르릉 날아 올라버렸다. 갑자기 렌즈의 망막 속에서 나비가 떠나가 버리자 거기 나비가 앉았던 자리가 눈부시게 빛을 뿌린다. 낙엽 부스러기밖엔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거기 철 지난 갈잎들이 부서져 거름으로 돌아가고 깨알 같은 연초록빛 풀씨들이 이제 막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