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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흠모하는 작가 김인숙 씨의 최신작이다. 사실 작년 이맘때 나왔으니까 그다지 따끈따끈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여하튼 내가 최근에야 읽었으니 아직 그 감동의 여운은 유효하다 할 수 있겠다.
사실은 상당히 엉뚱한 이유에서 좋아하게 작가가 바로 김인숙 씨인데 이 작가의 경우에도 내 수집벽은 기어이 또 발동해서 절판된 책들을 제외하고 그녀의 전작품을 모아버렸다. 약관의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대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나이에 비해 작가로서의 연륜이 상당한 그녀는 그에 걸맞게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녀가 언젠가 고백했듯이 초창기의 작품들은 그녀가 아직 프로작가라는 생각이 결여된 상태에서 (대학교 이학년 때 등단아닌 등단을 하게 되었으니) 별 사명감 없이 유희를 즐기듯 발표한 것들이어서 솔직히 문학적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이후로 그녀가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들이 거의 혁명적으로 변화하였고, (비록 그 당시의 작품들 역시 작가의 짧은 연륜 탓에 상당히 조야했던 건 그렇다 치고) 호주 이민 등 개인적으로 큼직큼직한 사건을 겪으며 연륜도 어느 정도 쌓이자 그 이후로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냥 읽고 막 감동해서 좋아하는 수준이라서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온오한 평가를 몇 마디 단어에 축약해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가장 새 작품을 기다리는 작가가 되었다, 김인숙 씨는.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는 이번 작품집의 제목이자 작품집 안에 포함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포함해서 여덟 편의 단편을 수록한 이 책은 최근 김인숙 씨 문학의 엑기스라 할 정도로 내게는 읽는 줄곧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김인숙 씨를 눈여겨보는 이가 있다면 그것마저 내게는 커다란 기쁨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내다보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도 거리는 쨍한 햇살로 밝을 것이고,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고, 어느 거리에선가는 네번째 택시와 다섯번째 택시 사이에서 브라스밴드가 힘찬 연주를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 네번째 택시와 다섯번째 택시 사이의 군중들 틈에 끼어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는 나...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나를 응시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찍고 있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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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소설집 <브라스밴드>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하나같이 현대인의 외롭고 힘든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현대인'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작품집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타인과의 의사소통 부재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찾기에 열중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 끊긴 세상 속에서 무의미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소설 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사람들의 외롭고 힘든 싸움은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세상과의 피할 수 없는 연속상에 놓여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김인숙의 소설집을 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오래전 읽었던 그녀의 소설들에서 보다 이번 소설집을 읽고는 조금 마음이 무겁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은 뒤의 성숙함 탓일까, 혹은 세월이 주는 연륜 때문일까, 그녀의 글이 전보다는 가라앉고 무겁고 보다 현실적이며 어둡게 느껴진다.
내가 너무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몰라도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나와는 다른 세상 속 사람들이라고 생각될 뿐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많이 공감하기는 못했지만 나와는 다를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난과 분노가 훨씬 더 명확해지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 땅에 숨어 있었다.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순간, 내개 더 이상의 피신의 땅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는 잠시 잠깐도 잠을 잘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브라스밴드> |
| 내가 가장 흠모하는 작가 김인숙 씨의 최신작이다. 사실 작년 이맘때 나왔으니까 그다지 따끈따끈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여하튼 내가 최근에야 읽었으니 아직 그 감동의 여운은 유효하다 할 수 있겠다. 사실은 상당히 엉뚱한 이유에서 좋아하게 작가가 바로 김인숙 씨인데 이 작가의 경우에도 내 수집벽은 기어이 또 발동해서 절판된 책들을 제외하고 그녀의 전작품을 모아버렸다. 약관의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대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나이에 비해 작가로서의 연륜이 상당한 그녀는 그에 걸맞게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녀가 언젠가 고백했듯이 초창기의 작품들은 그녀가 아직 프로작가라는 생각이 결여된 상태에서 (대학교 이학년 때 등단아닌 등단을 하게 되었으니) 별 사명감 없이 유희를 즐기듯 발표한 것들이어서 솔직히 문학적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이후로 그녀가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들이 거의 혁명적으로 변화하였고, (비록 그 당시의 작품들 역시 작가의 짧은 연륜 탓에 상당히 조야했던 건 그렇다 치고) 호주 이민 등 개인적으로 큼직큼직한 사건을 겪으며 연륜도 어느 정도 쌓이자 그 이후로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냥 읽고 막 감동해서 좋아하는 수준이라서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온오한 평가를 몇 마디 단어에 축약해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가장 새 작품을 기다리는 작가가 되었다, 김인숙 씨는.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는 이번 작품집의 제목이자 작품집 안에 포함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포함해서 여덟 편의 단편을 수록한 이 책은 최근 김인숙 씨 문학의 엑기스라 할 정도로 내게는 읽는 줄곧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김인숙 씨를 눈여겨보는 이가 있다면 그것마저 내게는 커다란 기쁨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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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의 집을 찾느라 한 동네의 골목길을 모조리 다 헤매었던 때가 있었다. 한여름이었고, 친구의 설명으론 찾는데 문제없을 것 같았지만 골목은 미로처럼 또 다른 골목길들로 이어지고, 비슷비슷한 대문들로는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땡볕만 우글거리는 한여름 낮의 텅 빈 골목길....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난 왠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나른함 속에서의 공포감 같은 거.....말이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술래에게』에서의 '나'는 "삶의 깊숙한 곳에 촌충처럼 들이박힌 무료함의 발톱을 빼낼 수가 없어"서 옆집 여자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심지어는 아파트 11층의 베란다에서 아래로 침을 뱉고는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것처럼 숨기까지 한다. 그러나 술래는 없고, '나'만 혼자서 장독대 뒤에 숨어 오래도록 혼자 남겨져 있다.
『바위 위에 눕다』의 '나'는 영어로 세탁기라는 단어 하나 모르면서도 외국인 수리공에게 세탁기 수리를 맡길 수도 있는, 이 어이없는 소통 아닌 소통으로 인하여 이민생활에서 마치 늘어난 고무줄처럼 잠만 자려 할뿐이다.
마치 자동응답기 같은 타인과의 불통,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텅빈 골목길에서 길을 잃은 듯한 이들은『개교기념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는 이혼하려고 간 법원 앞에서 남편의 교통사고를목격하게 되면서 남편의 피투성이 몸을 본 이후 자신은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에 누구와도 소통할 수가 없다. 이 소설들 속의 그들은 어긋나고, 지리멸렬하고, 헤매이고 있지만, 바로 거기에 엄청난 삶의 집착이 묻어있다. 소통되지 않는 것에의 안타까움과 사라져 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필사의 노력 같은 것, 살아온 生의 억울함....등에서 삶의 자락을 불끈 움겨쥐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80년대와 혼란의 90년대를 보내고 막막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삼십대중반의 작가의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란 쓸쓸한 질문은 "나는 제대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삶의 욕구의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암 선고를 받은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에서의 '나'의 아내가 죽음의 순간에 '브라스밴드'의 찬란한 연주를 꿈꾸듯...이 말이다. 김인숙의 소설에는 세월이 있다. 『78∼'80 겨울에서 봄 사이』,『칼날과 사랑』, 먼길』로 이어지는 "흐르고 있는" 한 세대의 자취가 그대로 있어서 좋다. [인상깊은구절]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삼십 년 만이라는 폭설이 내렸다. 눈을 좋아할 나이는 지났지만, 온종일 틈만 나면 창을 내다보았다. 저녁때는 차바퀴에 체인을 감고, 자유로엘 잠깐 나갔었는데 어떤 차 한 대가 거꾸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차가 무슨 까닭으로 남들 다 앞으로 가는 길을 거꾸로 달려오고 있었는지 그 사연이야 알 길이 없다. 비상등을 켜고 거꾸로 달려오고 있는 그 차를 비켜가면서, 나는 잠깐 '어,어' 했다. 그 이상으로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할 사태였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그 차 생각이 난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
| 김인숙의 [유리구두]를 읽고서 생각했다. 아!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삶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느낌이 있을 수 있구나... 그때 나는 윤대녕과 신경숙, 박상우 등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소설은 그들에게서 볼 수 없던 무언가를 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그녀는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에서 보여준 글들보다 훨씬 젊은 글을 쓰고 있었고 아직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중간쯤 온 듯하다. 이것이면 이것, 저것이면 저것으로 분명한 선을 그을 수있던 시기가 지나고,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달관으로는 아직 이르지 못한 그 어디 중간쯤 그녀는 서 있는 듯하다. 그녀의 관심은 벌써 죽음과 존재 등과 같은 삶의 근본적인 요소들에 도착했으나, 결론은-어쩌면 끝끝내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희미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소설들은 암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일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찾고 싶은 것일까? 알고싶은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그녀는 분명한 해답이 있다고 믿고 있기는 한 것일까? 분명한 색깔을 가진 글들을 기대한다면, 이 소설일 읽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감히 '삶은 이것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삶이 안개속에 떠오르는 박명처럼 희부윰한 희망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의도를 읽어낼 수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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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행하다. 어떻게 보면 몽환적이기도 하고, 상처받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개인이 나온다. 이유없이 불행한 주인공! 권태로운 삶..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자 생기는 안일과 권태.. 대충 그런 느낌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이 등장하는데 어차피 우리의 삶이 이렇게 신산스러운 것인데 소설에서도 이런 비참한 것들을 봐야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작가는 이런 것들을 나타내면서 결국 하고자 했던 얘기는 무엇일까? 괜지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한 번 책을 잡으면 놓치 못하고 읽게 만드는 힘 또한 이 소설이 신산스런 우리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너 심심하지. 사는 게 심심해 죽겠지. 너?" 나는 다시 남편을 흔들어 깨울 수가 없었다. 남편의 그런 식의 말은, 그날 하루 온종일 나를 달궈놓았던 흥분과 전율을 삽시간에 가라앉혀버리기에 충분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심심했고, 내 삶은 너무나 무료했다. 그러나 그것과 방화범과는 같은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내게 심심한 까닭을 물어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