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님의 글은 나에게 있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 분의 고향인 개성땅이 마치 외할머니댁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 분이 살아오신 길을 좋아하는 연예인 사생활처럼 꼬치꼬치 꿸 정도로 독자로서 가지는 마음은 교주를 향한 절대적인 신의를 품는 신자의 마음과도 같다. 늘 가슴 한가운데를 훈훈하게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시는 분에 대한 애정이 끓어 넘치는 날에는 팬레터 한 통 띄워 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노작가에게 그것또한 부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잡았던 펜을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유럽 작가들의 생가를 중심으로 한 문학 기행이다.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과 다정한 해설은 나도 한 번쯤 꼭 가고픈 희망을 품게 만든다.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고 현재의 부유함과 사치함을 경계하는 그 분의 고언에 귀기울이다 보면 낡고 헌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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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문집의 4부, '시인의 묘지'에 실려 있는 <치악산과 면장갑="">이란 제목의 글은,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의 교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혀주는 재미난 글이다. 아, 박경리 선생이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의 발문을 썼었더랬지, 나는 기억을 떠올린다. 그 발문의 글에서 박경리 선생은 <언제고 전화="" 걸어="" '박선생,="" 점심이나="" 한="" 번="" 합시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박완서="">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박완서가 어느 잡지사의 청탁으로 '토지'의 독후감을 쓰게 되면서였다. 그것을 편지글 형식으로 썼고, 그 잡지의 다음 호에는 박경리 선생의 답글이 있었다고. 그리고 두 사람은 또 어느 출판사의 주선으로 갈비집에서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로 친분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박완서 선생에게도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엿보게 되는 박경리 선생의 근면한 생활의 면면도 진정 놀랍다. 토지를 쓰면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그만한 양의 육체노동까지. '토지' 집필에만도 (정신적 에너지의 투여는 물론이지만) 어마어마한 육체적 에너지가 필요했을 터인데... 경탄의 한숨이 나온다...... 이 책에서는 4부에 실린 글들이 재미있는 편이고, 다른 글들은 그저 그런 편. [인상깊은구절] 마침 나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열 권짜리 토지 1,2 부를 읽고나서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감동이라기보다는 전율이나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맛보았다. 특히 서문은 처음엔 무심히 읽었는데 토지를 다 읽고 나서 신중한 마무리 작업처럼, 또는 엄숙한 의식처럼 다시 한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소설에 그 서문이었다.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단지 약간의 재주를 타고난 것 같아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 나에겐 작가의 운명에 대한 냉엄한 계고처럼 들려서 솔직히 무서웠던 것이다. 그가 이룩한 것이 존경스럽고 부러우면서도 그가 그것을 이룩하기까지 당당히 맞서온 고난이 내 앞엔 없기를 바랐고, 있어도 우회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한 작가를 글로뿐 아니라 생활로서도 외경스러워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벅찬 일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독후감으로부터 빨리 놓여나고 싶었다. (p. 246)언제고>치악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