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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막대기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저 하찮게만 여기는 나무 막대기에게도 나름 삶도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사람과 의사소통도 못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지만 생각만큼은 인간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갓 이런 미물도 생각이라는 것도 하고 미래에 대해 꿈도 꾸는데 우리들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꿈도 꾸지 않고 희망조차도 갖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의 일부분에서 회초리로, 똥친 막대기에서 낚싯대로, 그리고 결국엔 꿈을 이뤄 땅에 뿌리 내리는 나무가 되었다는 막대기의 이야기는 이를 잘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저자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데 이는 각박한 도시에서 정신없이 사는 우리들에게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 그 시절엔 비록 지금처럼 문명이 발달되진 않았지만 가족 간에 정이 있었고 품앗이라는 이웃 간의 정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현재 자기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족 간에 정도 사라진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 책은 12가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내용을 위주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소를 몰 때 쓰던 “이랴 이랴”란 단어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어렸을 때 나보다 덩치가 몇 배나 컸던 소를 “이랴 이랴, 어디여 어디여, 워 워”하며 몰았던 기억이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른보다도 몇 배나 큰 소를 조그만 유치원생이 몰았다고 상상해보라! 우습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했던 것은 어린 내가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가 내말을 알아듣고는 앞으로 가거나 멈추었다는 것이다. 주인의 손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말을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주인인 할아버지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진실은 소만 알 것이다. 어쨌든 내게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 그 녀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소녀가 어머니로부터 종아리를 맞는 장면이다. 난 이 장면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무척이나 많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뭘 잘못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녀의 어머니 최씨처럼 나를 때리고 같이 우시던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귀한 자식이 아파서 우는 모습을 보고 어떤 부모가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나의 종아리를 쓰다듬으시며 같이 우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절여온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막대기의 재희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다. 난 이 점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박씨 부부의 딸인 재희는 막대기에 어떠한 애정을 보인 적이 없다. 다만 필요해서 이용했고 심지어 나중엔 버리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막대기가 재희를 사랑했다고 하니 난 이점이 이해할 수 없었다. 똥친 막대기에서 수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을 나중에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고마워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것이 사랑을 느낄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물론 은혜를 잊지 못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게 사랑으로 발전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자가 어떤 의미로 이런 설정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꿈은 인간만이 꾸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물로 생각하는 것들도 나름 꿈을 꾸며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으로서 이런 미물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꿈도 꾸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없이 방황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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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라는 제목을 보니 얼마 전에 동화그림 전시회에서 그림과 함께 봤던 강아지 똥이 떠오른다.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와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의 표지에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발을 씻고 있는 그림이 정겹게 다가온다.
언제나 물과 양분을 주던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태어난 주인공의 편안하기만 했던 생활은 어느 날 농부 박씨의 손에 꺾이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울타리가 되어주던 엄마를 떠나서 홀로 남게 된 주인공은 농부의 손에 들려 좋아하는 재희네 집으로 가게된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재희를 때리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측간에 버려지고 그곳에서 오물을 젓는 똥친 막대기가 된다. 모내기 때 재희의 손에 이끌려 재희를 못 살게 구는 아이들로부터 방패막이가 되었다가 논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재희가 개구리를 잡는 낚시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논두렁에 버려져 죽을 운명에 처했는데 홍수로 인해서 돼지의 등에 떠내려 가다가 어느 곳에 정착하게 된다. 백양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어린가지가 세상속에 내 던져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백양나무 가지인 "나"라는 존재를 지금의 나와 대입시켜 생각해 보게 됐다. 백양나무 가지처럼 나역시 나의 의지대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과 주위 가족들 덕분에 어려움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그러다 어느 날 백양나무 가지가 농부에게 꺾여서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 커감에 따라 가족들의 보살핌을 떠나서 세상이라는 곳에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힘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느 덧 백양나무처럼 햇살이 눈부시게 들고 양분이 충분이 드는 곳에 뿌리를 내리듯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 속에서 부모라는 이름을 같게 되는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하찮은 나무가지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을 의인화함으로써 생각지도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하게되고, 작은 미물이라도 그 존재가치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과 함께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어른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시골정경을 그리게도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결론은 비슷한 <강아지 똥>도 함께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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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남자들만의 모임이 있어서 늦게 온 날, 약속 시간까지 남는 시간 동안 도서관에 가 있겠다는 남편에게 책 좀 빌려다 달라고 했다.
"넌 웬만한 책은 다 읽었잖아. 책 고르기 너무 힘들 거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로 쭉 봐서, 그 중 안 읽었을 만한 책 좀 빌려와."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남편이 자기가 고른 책들을 이야기해준다.
OOOOO. 그 책 읽었어. OOO 그 책도 읽었어. OOOOOOOO. 그 책도 읽었는데. 그것봐. 이럴 줄 알았어. 꼼꼼히 좀 찾아봐. 우리 동네 도서관보다 그 도서관에 책들이 더 많단 말이지. 도서관 내에서는 전화도 못 하고, 너무 힘들단 말야.
그렇게 두 번 더 전화를 하더니 더 이상은 못 하겠단다. 그럼 알아서 빌려오라고 했더니 한인이민사 책 두 권과 함께 빌려온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하고 많은 책 중에 '똥친 막대기'라니... 책을 들고 피식 웃었는데, 읽다 보니 재밌다.
애들이 읽기엔 단어들이 조금 어려울 것 같고(내용 자체는 예쁘고 좋으니깐, 아이들을 위한 주를 각 쪽마다 달아서 아이들용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묘사들이 참 예쁘다. 뭐랄까? 비갠 후의 말간 하늘같은 느낌? 마음이 깨끗해진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이른 새벽부터 산기슭으로 밀려와 머물렀던 안개는 햇살의 발길질에 놀라 산아래로 밀려나 흩어지고 있습니다. 안개가 밀려난 자리에는 이제 봄의 기운들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6쪽).
아침까지는 지난밤의 서늘한 기운이 대지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오를 지나면서 사위는 햇곡식으로 지은 밥처럼 오들오들 생동감 있게 반짝거렸습니다(44쪽).
방문이 열리면서 방 안에 갇혀서 고무풍선처럼 팽만했던 불빛이 썰물처럼 밖으로 밀려 나왔습니다(65쪽).
이야기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백양나무 가지가 엄마 나무에게서 떨어져 나가 소를 모는 나무 막대기가 됐다가, 회초리도 됐다가, 똥친 막대기도 됐다가... 뭐 그런다는 이야기. 똥친 막대기가 다시 봇도랑에 꽂혀 있다가 낚시대도 되고... 그러다 홍수에 떠내려 가고... 말하자면 백양나무 가지의 세상 여행기인데, 결론은 해피엔딩.
왜 작가가 하고 많은 나무 중 백양나무 가지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는 결말.
엄마랑 아빠랑 재희나... 누렁이 황소나 돼지들, 개구쟁이 사내아이들... 그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참 정겹다. 짧은 이야기이고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읽고 나면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화-해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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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는거 같다.그것은토속적이며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많고,지난 시절의 고단 했던 백성들의 삶의 여정,사랑의 본능을 마음껏 보여 주는 애로틱한 묘사라고 생각이 든다.또한 그의 불세출의 입담은 글에서 실타래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마력이 있다. 얇으면서도 삽화를 겹들인 '똥친 막대기'를 읽으면서 역시 시골이 배경이고 두메 산골 밭이나 논이 나오겠고,자연과 순박한 촌민들이 등장하겠지라고 생각했다.불과 20~30년전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시골의 풍경은 봄부터 겨울까지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풀내음과 흙내음,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밥 짓는 소리가 연출되고 사람과 똑같이 배가 고파진 누렁이가 피어 오르는 연기에 조건반사적으로 밥 달라고 짖어 대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시골은 참으로 정겹다! 밥이 떨어지면 옆집에 가서 찬밥 한덩어리라도 얻어 먹고 기억이 나면 갚고 안 갚아도 그만이다.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의 손대신 이앙기가 모를 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똥친 막대기의 존재나 정겨움은 이미 사라진듯 하다. 이 글에서 주인공은 말 그대로 똥친 막대기인데,그의 조상은 백양나무이다.제법 물이 오르고 도톰하게 살이 찐 백양나무 가지는 농부에 의해 싹둑 잘리고 농부의 마음가는 데로 용도가 달라져 감을 알게 된다. 논이나 밭을 갈때 휘청휘청 소 뒤에서 채찍질용으로 쓰이기도 했을테고,재희의 잘못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사랑의 벌로도 쓰였을 것이며,재래식 화장실의 암모니아와 구린 내가 풀풀 나는 똥을 휘젓는 것으로도 사용이 되었을 것이다.말 그대로 만능이었던 것이다. 또한 재희는 말괄량이로서 동네 남자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휘휘 저으며 막대기로 방어 역할을 했으며,재희의 손에 의해 냇가 풀숲에 처박혀져 그의 꿈이 백양 나무로 환생하여 사람들의 온갖 시중을 추억으로 삼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 가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무생물이고 말을 못하는 존재이지만 똥친 막대기는 재희가 자신의 꿈을 발견이라도 한듯 물가에 자신을 놓고 물을 먹고 영양분을 빨아 들여 새로운 꿈이 현실화되고 재희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으로 쑥쑥 성장해 가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 훈훈함을 느끼게 했다. 이젠 시골에 가 봐도 지게나 삽,작대기,쟁기,달구지,재래식 측간등을 볼 수 없게 된지도 오래 되었다.다만 그 시절엔 현대의 모습에서 볼 수 없는 사랑방의 삶의 이야기,훈훈한 정이 질펀하게 살아 있었고 작가는 이를 농밀하고도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고향과 향수,아련한 사랑을 느껴 보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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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박씨네 논두렁 옆 봇도랑에 20년동안 자란 키 큰 백양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백양나무의 옹이 곁가지로 태어난 작은 나뭇가지.
나뭇가지는 튼튼한 어미나무의 곁가지로 평생 평온하고, 순조로운 사람을 살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혹여라도 그런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길 옆을 지나던 앙칼진 화물열차의 기적소리에 일을 하던 암소가 달아나 버리자.. 암소를 잡으려던 농사꾼 박씨가 갑자기 백양나무 곁가지를 꺾어버리고 만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백양나무 곁가지는 고함을 지르고, 호소를 하지만, 박씨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고.... 두려움에 떨던 곁가지는 이제.. 더이상 곁가지가 아니라.. 부러진 나뭇가지 신세가 되고 만다.
이걸로 '끝'이 아닌가? 어미나무에서 떨어져나온 나뭇가지...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없는 나뭇가지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살 곳을 찾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처량하기 그지없는 신세이다. 이제 나뭇가지는 마르고, 말라... 생명을 잃고 말리라....
그런데... 이 천진한 나뭇가지는 부러진 채로 세상을 구경한다. 나무주변밖에 못보던 과거에는 볼 엄두도 못내던 동네길도 보고... 박씨 집에서 가보고, 박씨의 귀여운 딸 재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또 기뻐한다.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지.. 당장 말라 죽을지도 모를 운명앞에서, 재희가 회초리로 맞는것에 더 마음 아파하는 착하디 착한 나뭇가지.
박씨네 울타리에 걸려있던 나뭇가지는 박씨 손에 의해 뒷간으로 보내지고, 박씨부인 최씨에 의해 뒷간의 똥덩어리속을 휘휘 저어지는 서러운 꼴을 당하게 된다. 상상도 못했던 똥친막대기 신세라니... 게다가 언제까지나 그 뒷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미나무의 보살핌 속에 걱정도, 고마움도 모르고 살던 곁가지는 나뭇가지에서 회초리, 회초리에서 이제 똥친 막대기 꼴이 되면서 새삼 어미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한편 끝없는 절망에 빠진다. 다시는 나무가 될 수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한 현실에서...
나뭇가지는 또 세상 밖으로 나오고,
봇도랑 옆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기적이 일어난다. 정말.. 기적처럼 나무가지는 물가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처음 어미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결국은 말라 죽을거라고 짐작했던 하찮은 나뭇가지는 기어이.. 강한 생명력으로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된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작은 나뭇가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꾸던 나뭇가지가 결국 나무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작은 희망을 움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작은 나뭇가지의 기적은 바로 희망이 불러온 것이리라.... 그 희망을 책을 읽는 이들의 가슴속에 살포시 안겨주는, 글과 그림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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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린 아이들은 똥에 관한 동화책도 많이 읽는데다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도 어린 시절에 너무 거부감을 갖게 해선 안된다고 하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그런지 오히려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같지만, 사실 저같은 기성세대에겐 약간 거부감이 드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깨끗한 척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입밖에 내기엔 뭔가 모르게 찝찝한 그런 기분이 든달까요.
..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기분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어미나무의 곁가지로 자라 물이며 양분을 풍부하게 받아들이던 어린 백양나무 가지가 어느날 갑자기 꺾여 의도하지 않은 때에 혼자만의 삶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일들이 무척 흥미로웠달까요. 아버지를 위해 새참을 나르고, 시험을 잘 못쳐서 종아리를 맞고, 소를 집으로 데려가는 어린 소녀의 일상도 담담하니 우리네 시골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같아 평화로웠습니다.
.. 어린 백양나무 가지로 보자면 엄청난 고행이자, 길고 긴 여행길이었겠지만, 사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짧고 담담한 그리 별다르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해가 뜨고 하루가 지나가고 해가 지는 그런 평이한 한 때이지요. 그러고보면 모든 인간의 삶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어떤 이들은 굶기도 하고,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에 눈물짓기도 하잖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백양나무 가지가 사모하는 그 소녀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지요. 그러다 또 내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느냐며 원망하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모든 삶들이 이리도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접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설사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진대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중간중간 기대하지 않던 타인의 선의를 접하게 되면 많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내가 행하는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가 행복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똥친 막대기>는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는 생각은 많이 두텁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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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는 중고등학생들을 볼때면 '저때가 좋을 때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정도로 나도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린것 같다. 이젠 동화를 읽어도 성인을 위한 잔혹동화를 읽어야 할때가 온것 일까. 어느 순간부터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의 동화들도 순수한 마음으로 느껴지지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비채에서 출간된 '길 위의 작가' 김주영님의 첫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는 나에게 잊어버렸던 동심과 아련한 시골집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다. 물론 스타일리시한 화풍으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강산의 그림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천재성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문학을 했다'고 말하는 저자 김주영님은 여러 편의 대하소설을 통해 그만의 떠돌이 의식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했으며 2007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시기도 한 우리나라 문학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대단한 거성이시다. 초라하고 버림받고 잊혀진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저자의 마음이 <똥친 막대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데 너무나 보잘것 없고 외로운 막대기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것 같다. <똥친 막대기>의 주인공 '막대기'는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자라나다가 어느날 소치는 농부에 의해서 잘려나가 그냥 그저그런 '막대기'가 되고 만다. 여기저기로 흘러가다 결국 '똥친 막대기'라는 운명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막대기는 절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는 막대기, 이 막대기야 말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진정한 자아가 아닌가 싶다. 조그만 어려움만 닥쳐도 시작도 하기 전부터 겁을 먹고 망설이는 나에게 있어서 <똥친 막대기>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와 현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용기와 희망, 꿈과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책 <똥친 막대기>. 많은 분들과 이 책의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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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스한 어느 날 한 농부의 손에 의해 어린나무 가지는 일생이 바뀌게 된다. 그저 어미에게서 양분을 받아들이면 되고, 고개만 숙이면 강한 비 바람을 피할 수 있었던 어린 나무가지는 어느 날 사연 있는 기차 경적소리에 놀란 소가 말을 듣지 않아, 회초리로 쓰려고 꺽힌 나뭇가지가 이 책의 화자이다.
그림소설이라고 하지만 동화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표지속에는 어린 소녀가 치마를 살포시 걷어 올려 발을 씻고 있다. 검정색 치마와 고무신이 눈에 들어오며, 현대적인 건물만 들어 서있는 도시가 아닌 옛날 산골 소녀의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소의 회초리로 쓰려고 했던 막대기가 어린 소녀의 장단지를 심하게 매질을 해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꿈과는 전혀 상반된 똥친 막대기가 되고 자신의 인생이 허망하게 똥친막대기로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었던 똥친 막대기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어린소녀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똥친막대기가 새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도움이 된다.
똥친막대기가 무엇일까. 책의 내용을 읽기전에는 전혀 몰랐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름을 몰라 매치가 잘 되지 않았나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우리 곁에 늘 함께있지만 보잘 것 없는 것이라며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서 부터 물건에 이르는 가끔 이용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우여곡절끝에 스스로 뿌리 내릴 곳을 찾아 우뚝 서게 되고 자신의 원하던 새로움 삶을 얻게된 백양나무 어린가지에게도 찬란한 여행에 잔잔한 박수가 쳐진다. 김주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도 살며시 관심이 가게 된다. 책속에 그려진 그림은 내용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우연히 꺽어든 막대기를 막대기로 보지 않고 생명이 있는 작은 존재의 눈으로 본 농촌의 모습, 가식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감탄을 하게 된다. 도시에 있는 많은 현대인들은 농촌은 그리움의 존재이다.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마음속에 담겨있는 그림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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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작가'로 알려진 김주영님의 소설을 사실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림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되어 단숨에 읽어내려간 책이다. 동화같은 느낌을 주는 간간히 그려진 그림들이 참 읽기에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실, 어른이 되어도 빽빽하게 글만 들어찬 소설이나 에세이는 초반부터 조금 질리는 부분이 있기에, 읽기에 좋은 이런 구성의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얼마전, 모 방송에서는 책에 여백이나 글자 크기가 커서 가격이 높게 책정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물론 원작에 비해 다소 과장된 그런 책들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읽어내려가는데 조금은 숨이 트이는 책이 참 좋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책 내용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는 삽화까지 곁들여져,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기차 경적 소리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나는 박씨네 암소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등장하게 된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태어난 어린 막대기가 이 책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의인화되어 표현된 어린 막대기인 '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끼 밴 암소의 회초리가 되기 위해 잘렸다. 한갓 막대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픔도 슬픔도 느낄 수 있는 그런 막대기인 것이다. 게다가 그토록 짝사랑했던 박씨네 딸 재희의 회초리로 사용이 되는 쓰라린 기억을 가지게 된 백양나무 가지는, 이번에는 똥친 막대기로 전락해버리지만, 결코 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만난 재희의 손에 붙들려서 개구리를 잡는 낚싯대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생명의 움이 다시 트는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 길지않은 이야기라 읽기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책이 주는 잔잔한 여운이 길게 느껴졌다. 하찮고 보잘것 없는 그 작은 막대기 하나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 이야기를 통해, 사물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새삼 감탄하며 읽었던 책이다. 또, 그림소설답게 삽화 뿐만 아니라, 책을 읽어가면서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적소리나는 기차 이야기와 암소를 이용해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하고, 새참을 나르고, 토담에 재래식 화장실, 똥을 치는 그런 이야기도 담겨, 시골 풍경이 소리와 함께 전해지며, 마을에서 재희네 가족, 그리고 재희와 똥친 막대기가 되어버린 <나>로 옮겨지는 시선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남겨본다.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다스릴 때 아이에게 회초리를 스스로 마련해 오라고 윽박지르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를 위한 배려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가하는 이중의 형벌일 테지요. 매를 맞는 것은 기왕에 닥친 일이니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맞을 회초리를 마련하는 동안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책속 본문중에서(PP69-70)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읽어보면 또 얻어지는게 참많은 책인 것 같다. 무심코 어릴 적을 떠올리니, 나 또한 회초리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중학교 3학년때인가, 담임 선생님이 모두에게 자신의 회초리를 하나씩 준비해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잘못한게 없는데,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심적부담.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읽어본 이 부분에서, 백양나무 막대기가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뜻을 깊이 새겨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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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인터넷서점에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추천으로 새로운 리뷰들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검색순위에도 몇 날 몇 일을 상위에 링크되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의 책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똥친 막대기라는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났지만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또 이 책의 분야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에서도 꼭 한 번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이런 부류의 책들은 언제 봐도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향수를 자극하고, 복잡하고 힘든 현실에서 잠시동안이지만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의 위안이 되주는 책인것 같아서 부담없이 읽기에도 너무 좋다.
똥친 막대기의 제목을 보면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나 그 윗세대들에게 똥친 막대기는 흔한 단어였을지 몰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다소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필요는 한 것이지만 아주 더럽고, 보잘것없는.. 곁에 두기에도 끔찍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던 것인지 알고 난 후에는 더더욱 유쾌하지만은 않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찮은 막대기 하나의 인생과 그 긴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아내고 있다.
길 위의 작가로도 불리는 똥친 막대기의 저자 김주영은 경북 청송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하룻밤을 자면 다음날의 잠자리를 예측할 수 없었다는 풍천노숙의 삶 속에서 저자는 초라하고, 버림받고 잊혀진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며 작품활동을 하기로 유명한데 똥친 막대기 역시 어미나무로부터 꺽이어 우여곡절 끝에 뿌리내릴 곳을 찾아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연 속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소설인 이 책에서 저자는 가슴에 스며들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언어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양지마을에 새벽마다 화물 열차의 기관사가 엄청난 소음의 기적으로 온 마을을 들썩이는데, 버릇없고 배운 것없는 놈이라며 기관사를 나쁘게만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가 깊은 고요를 깨며 하루도 거르지않고 아침마다 그토록 시끄러운 기적을 울려대던 이유를 알게 된 후부터 그의 속내를 이해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양지마을의 이장님이셨던 부모님께 그만의 안부를 전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기가 참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칠 때도 많았던 나에게 저자가 따끔히 충고를 하고 있는듯 느껴진다. 부모님께서 건강히 살아 계실 때 조그마한 방법으로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효도일 것이다.
곧이어 양지마을 농사꾼 박씨에게 생각지도 않게 꺽여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된 막대기의 여정은 시작되고 소몰이에 사용되었던 막대기는 집에 들여져 박씨의 딸 재희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게 될 때에는 회초리의 모습으로 변한다. 처음 그 모습이 백양나무 곁가지였던 나무 막대기는 이제 처량하기 그지없는 측간의 똥친 막대기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마는데... 막대기는 한 때 푸르른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맑은 하늘과 바람, 나무들이 쏟아내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젠 이루어질수 없는 허망한 꿈이 되어 버리고, 한낱 똥친 막대기를 끝으로 일생을 마감할 순간을 맞게 될 생각으로 절망하고 만다.
하지만 박씨 집안에 모심기가 있던 날. 그 날 재희는 똥친 막대기를 들고 마을로 나가서 놀려대던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휘두르며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봇도랑 언저리에 던져버린다. 똥친 막대기는 더러운 오물이 가득 묻어 있었고, 메말라 가고 있던 상황에 봇도랑의 흐르는 깨끗한 물을 만나는 큰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재희는 다시 막대기에 낚싯줄을 매달아 봇도랑의 수초에서 개구리를 낚는 낚시대로 사용한 후에 막대기를 봇도랑에 버리고 만다. 어미나무의 곁가지로 2년을 살아온 막대기는 언제나 모자람없이 햇살과 비를 맞고,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았지만 고마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여러번의 그 모습이 변하며 막대기는 어미나무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어미나무가 겪어야 했던 길고 긴 고통과 참음의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봇도랑에 몇 일째 비가 그치지 않아 물을 넘쳐나게 만들었고 이제 막대기는 수면위로 떠올라 물결을 따라 끝도 없이 흘러가는 방랑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홍수에 떠내려가던 돼지의 등에 얹히게 되고 일주일 넘게 물결을 따라 흐르다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제 똥친 막대기는 기나긴 여정을 끝마치고, 마지막으로 뿌리를 내려야 할 곳에 정착해서 똑바로 서게 된다. 어미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똥친 막대기도 모진 시련을 꿋꿋하게 견디며 튼튼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보잘것없는 막대기는 또 다른 싹을 틔우고, 수많은 바람과 햇살,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커나가겠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막대기의 모험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 또한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뤄야 하고,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내가 원하던 그 모습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