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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현실적인' 지식인의 '불행한' 선택
"너무나 '현실적인' 지식인의 '불행한' 선택" 내용보기
윤치호 일기를 읽는다. 그는 참 거물이다. 일찌기 일본, 중국, 미국 등지에서 근대 문물을 익히고 돌아와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의 회장을 지낸 개화, 자강 운동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미국 남감리회 신자이자 YMCA 총무를 다년간 역임한 후 연희전문 학장까지 지낸 기독교계, 교육계의 원로였으며, 3.1 운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중일 전쟁 이후 기도교계의 친일을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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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를 읽는다. 그는 참 거물이다. 일찌기 일본, 중국, 미국 등지에서 근대 문물을 익히고 돌아와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의 회장을 지낸 개화, 자강 운동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미국 남감리회 신자이자 YMCA 총무를 다년간 역임한 후 연희전문 학장까지 지낸 기독교계, 교육계의 원로였으며, 3.1 운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중일 전쟁 이후 기도교계의 친일을 주도한 친일파의 대부이기도 하다. 그 집안까지 살펴보자면 더 쟁쟁해서, 서울대 총장을 지낸 윤일선과,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이 그의 당조카이고, 국회 부의장을 지낸 윤치영이 사촌동생이며, 주영공사를 지낸 윤치창이 동생이고, 농림부장관을 지낸 윤영선이 그의 장남이다. 그의 속내를 소상히 알려주는 영문 일기가 번역, 편집되어 책으로 나왔다.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웃는 낯으로 같이 점심 잘 먹고 들어와서 상대방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건 일기가 아니곤 찾아 볼 수 없는 묘미이다. 거물로서의 면모에 걸맞게 그의 일기에는, 당시 최고 지식인이었던 그가 파악한 국제정세, 일제 및 총독부의 동향, 그와 교류했던 '민족 지도자'들의 면모(그는 이광수나 최남선을 '군'으로 부를 정도의 원로였다.), YMCA 등 기독교계의 사정,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수립된 많은 '명문' 사립학교들의 속내 등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친일파'가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그는 일제의 조선인 차별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고(애국가도 그가 작사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국제 정세를 꿰뚫고 있어서, 3.1운동이 미국이나 연합국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임을 예측했으며, 세계대전의 본질이 제국주의 전쟁임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끝내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시대의 압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철저한 '현실주의자' 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주의자였고 또한 성악설과 적자생존을 신봉하는 지식인이었다. 그에게 서양이나 일본은 악하지만 강한, 그렇기 때문에 배워야 할 대상이었고, 조선은 가엾지만 나약한, 그래서 애증이 교차하는(좀더 정확히 말하면 한심한) 그런 대상이었다. 독립 투쟁을 벌이는 '애국자'들을, 오히려 민족에 해가 되는 '몰지각'한 인물, 또는 총구를 겨누고 운동 자금을 뜯어내는 '노상강도'로 인식하는 반면, 일본이 이룩한 '업적'과 이를 가능케 한 '국민성'에는 진심으로 탄복하는 그의 자세는, 일본이 조선을 놓아준다 하더라도 조선은 독립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예견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일본에 협조하며 '때'가 될 때까지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인이 차별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조선인 스스로가 일본인보다 더 충실한 일본인이 되는 길(내선일체!)밖에. 여기에 한 몫 거드는 것이 그의 체질적인 반사회주의 의식이다. 그가 사회주의, 혹은 볼셰비즘에 대해 쓸 때에는 꼭 '짐승같은' '역겨운'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30년대 이후 '민족주의' 세력이 대부분 개량화되어 민족해방운동에서 퇴조한 이후, 사회주의 계열이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체질적인 반사회주의자 윤치호가 독립운동에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걸 '계급적 한계'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의 일기를 읽으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를 비롯해 이광수, 최남선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그런 '현실적' 판단밖에 못했는지. 그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한' 판단을 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가장 '반역사적인' 선택이 되고 말았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그런 반민족적 친일 행위를 저지른 이들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지도자로 행세했다는 것.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사들이 줄줄이 언급이 되는데야, 웬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무색해져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문제는 아직도 개봉되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다. 한번도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제대로 연구되거나 토론되지도 못한 채,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비난과 욕설만 난무한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한다고 난리지만, 우리는 과연 일제 하의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아니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비난과 욕설이 아니라 친일 논리와 감성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극복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윤치호 일기를 읽으며 '현실적' 으로 '가능한' 선택과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적' 선택의 거리를 가늠해본다. 그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만큼 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YES마니아 : 플래티넘 s******m 2001.05.17.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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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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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제청산을 논하면서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시각은 너무나 왜곡되어 있어서 사실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윤치호는 친일 지식인으로서 나름의 식견을 보여주지만 그의 후예가 이 나라의 주연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해방후 친일 잔존세력이 윤치호의 당조카인 윤보선, 친일지주인 김성수, 친일 천주교의 대표 장면, 친일 법조인 유진오 등이 주축을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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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제청산을 논하면서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시각은 너무나 왜곡되어 있어서 사실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윤치호는 친일 지식인으로서 나름의 식견을 보여주지만 그의 후예가 이 나라의 주연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해방후 친일 잔존세력이 윤치호의 당조카인 윤보선, 친일지주인 김성수, 친일 천주교의 대표 장면, 친일 법조인 유진오 등이 주축을 이룬 한민당이다.

 

한민당과 대척점에 이승만이 있었고 이승만의 시대는 그들과의 투쟁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 석사, 프린스턴 박사를 받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미국에서 교수를 하면서 편안히 살 수도 잇었지만 평생을 조국독립에 바쳤다. 독립후 친일파(한민당 등)들, 공산당(남로당, 김일성 등 소련 앞잡이 등)과 싸우면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승만은 국회에 반민특위법을 제안하여 한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했고(김구는 이광수에게 자신의 백범일지 편집과 간행을 전담시켰는데 김구가 집권하였다면 결국 반민특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민당의 주요 인물들을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었다. 또,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하여 한민당의 기반인 토지의 재분배를 시도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햇으며 6.25 당시 장면등이 미국의 등을 업고 벌인 권력 투쟁을 분쇄했다.

 

그는 결국 김성수, 장면, 윤보선, 백낙준, 유진오, 등 친일. 친미파들이 주축을 이룬 한민당(이후 민주당) 세력과 미국에 의해 퇴진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 나라의 기반을 바로 놓은 위대한 선각자였다. 그가 만약 윤치호의 후예들과 타협하거나 이들과 공생하려 했다면 이 나라의 후세대는 무어라고 했을까.

 

윤치호의 일기를 읽은 사람은 제대로된 이승만의 전기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윤치호 일기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김일성은 소련 장교로서 45년 9월말에 원산항으로 입항하여 권력을 잡은 소련 침략의 앞잡이였다.)

YES마니아 : 골드 k********k 2010.03.12.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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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윤치호는 '주관적' 애국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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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어찌되었건 일제시대 조선의 최고 원로로서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본인의 경우 윤치호에 대해서 딱 한 마디로 "친일파의 대부"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다른 독서모임에서는 최소한 윤치호는 기존의 친일파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친일파면 친일파지 무슨 고려할 것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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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치호…어찌되었건 일제시대 조선의 최고 원로로서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본인의 경우 윤치호에 대해서 딱 한 마디로 "친일파의 대부"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다른 독서모임에서는 최소한 윤치호는 기존의 친일파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친일파면 친일파지 무슨 고려할 것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달리 친일파의 숙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스스로 윤치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 <윤치호 일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징검다리였다.

 

 원래 윤치호 일기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계속되어서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특히 영어로 대부분이 쓰여져 원문을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윤치호 일기 중에서 일제시대의 것만을 대상으로 각 주제에 맞게 발췌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 일기를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배열할 경우 흐름을 잡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3.1운동 전후], [만주사변 전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전후], [일제하 조선 기독교와 윤치호], [윤치호가 본 일제하 조선의 자화상] 이렇게 5개의 주제로 윤치호 일기를 발췌하여 구성한 점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단순히 시간 순서로 번역하는 것이 쉬웠을텐데 이렇게 일일이 주제별로 발췌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일단 윤치호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서 최소한 윤치호가 장장 60년 동안 매일같이 영어로 일기를 쓴 점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일상생활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상황은 물론, 국제정세와 국내 정국의 동향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윤치호 일기는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적잖이 나타나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집필 당시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행위를 과장 또는 은폐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드러나는 윤치호의 생각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윤치호의 영향을 받아서 매일 매일 일기를 쓰기로 결정하였다. 일기라 함은 원래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역할도 하지만 윤치호 일기를 보니 역사적 사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윤치호 만큼 역사에 영향을 미칠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준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윤치호 대하여 편역자인 김상태 교수는 "'주관적'으로는 분명히 애국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객관적'으로는 나라와 민족을 저버린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평하고 있다. 아마도 김상태 교수는 윤치호에 대해 이른바 쉴드를 쳐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같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나는 김상태 교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윤치호 일기를 끝까지 읽어본 결과 윤치호는 3.1 운동에 반대하고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했을 때 찬성 의견을 방송을 통해 발표하고 각종 친일 단체에 참여했으며 특히 기독교 YMCA의 친일을 주도하는 등 분명 친일파 대부로서의 행동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주관적'으로는 애국자라는 등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윤치호를 감싸주는가? 설혹 윤치호가 '주관적'으로 애국자라고 하더라도 김상태 교수가 윤치호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이상 어떻게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이른바 지식인이 어떻게 친일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독립협회 회장등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진영의 존경받는 원로로 추앙받던 윤치호가 변절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하나 둘 깨달으면서 존경받는 원로가 사라진 우리나라의 역사의 비참함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읽다보면 윤치호가 조선 민족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함으로써 읽기에 불편한 곳도 곳곳에 있지만 한국 일제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으로써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a******n 2008.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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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인가? 아니 소인배이지.
"거물인가? 아니 소인배이지." 내용보기
한국 근대사, 현대사를 아루르는 거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에서 참으로 알만한 이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일기를 읽어본 결론은, 그는 문약한 지식인으로서 친일도 아니고 반일도 아닌 ''장외인''이 되어 시세를 관망하고 평가하면서 세월을 보냈던 개인일 뿐이었다. 특히 ''물지도 못할 거라면 짖지도 말라.''고 하는 주장은 그의
"거물인가? 아니 소인배이지." 내용보기
한국 근대사, 현대사를 아루르는 거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에서 참으로 알만한 이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일기를 읽어본 결론은, 그는 문약한 지식인으로서 친일도 아니고 반일도 아닌 ''장외인''이 되어 시세를 관망하고 평가하면서 세월을 보냈던 개인일 뿐이었다. 특히 ''물지도 못할 거라면 짖지도 말라.''고 하는 주장은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좌우명으로 인해 반일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비록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친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의 정세에 정통한 그로서 3,1운동을 반대하고 독립운동을 얼치기나 무뢰배, 몽상가의 소행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런 것으로는 독립을 얻을 수도 없고 그저 무고한 생명이나 재산을 축내고 순박한 인민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또 배워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해지고, 결국 일정한 때가 되면 해방,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과연 독립할 있을 것인가에는 심한 회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조선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그의 주장대로 교육에 힘썼나, 아니면 그 교육을 위해서 자금을 대었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핑계거리를 대면서 일본에 반대하지 못하고 장외인으로서 명철보신하면서 일생을 안락하게 산 머리 좋은 한 사람의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다고 밖에는 못하겠다.
YES마니아 : 로얄 k****n 2006.09.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