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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님. 그분의 인생은 19세기 42년, 20세기 25년에 걸쳐 있는데, 이 시기는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영웅이라 불리는 그분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영웅의 삶보다 더 원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독립운동가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새삼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수많은 어려움과 고초를 겪었을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지고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다. 이종일 선생님은 10대에 이미 과거시험을 통과한 인재였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과거시험을 통과해 어린 나이부터 유명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많은 것들을 배워나갔다. 그러나 그의 곧은 의지처럼 다른 사람들은 그 절개를 결코 지켜내지 못하고 친일로 돌아선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 부분 또한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나이에 같이 어울리며 영향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과 다른 길을 간다면 흔들리지 않았을까? 옳은 길로만 갈 수 있었을까? 그 신념을 자신의 의지로만 지키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의 올곧은 의지와 정신은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종일 선생은 대한제국민력회를 조직했다. 또한 선생은 제국신문을 발행하였다. 선생은 많은 일들을 하였고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신문사도 문을 닫게 되었다. 삼일운동 후 일제에 끌려간 선생님은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셨다. 그리고 세상에 나왔지만 그동안의 감옥 생활과 독립운동에 사용한 자금으로 선생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후유증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결국 선생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아사하셨다. 이종일 선생님의 평전을 읽고 그 시대의 아픔을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삶, 그리고 그 시대 언론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 평전을 읽고 선생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오늘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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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 - 순한글신문을 만든 독립운동가》 김상웅 저 | 소동 인물사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의 숨겨진 진실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민까지 함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인물들 중에는 우리가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분들이 많다.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몇몇 유명한 인물들만 기억되지만, 사실 그 시대를 버티고 지켜낸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모여 역사가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한 인물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이종일. 그는 무장투쟁의 중심에 선 인물은 아니었지만, 글과 언론을 통해 민족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다가온 것은 그가 바라본 ‘언론’의 의미였다. 오늘날 언론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이종일에게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빼앗긴 시대에 민족의 생각을 깨우는 힘이었고,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기록하는 저항이었다. 그가 순한글신문을 만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이 일부 지식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 누구나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시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한글로 된 신문 한 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생각할 권리’를 돌려주는 일이었다.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는 종종 결과를 먼저 본다. 독립이라는 결과, 해방이라는 결과, 역사를 바꾼 사건들 !! 과연 나라면 나라를 잃은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힘없는 개인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종일은 펜을 선택했다. 그리고 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록을 통해 사라질 수 있는 진실을 남기고자 했다. 책을 통해 이름만 알고 있던 분의 삶에 대해 기록의 방식으로 촘촘히 읽어나가는 경험 이 여름 독서에 인물 전기 혹은 일제 강점기 역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이종일평전 #언론의길을묻다 #김상웅 #소동출판사 #이종일 #독립운동가 #독립운동역사 #한국근현대사 #일제강점기 #3·1운동 #삼일운동 #독립선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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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임. 나는 다른 주제에 비해 "역사"라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보고, 영상을 찾아보고 공부를 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개론서 등을 읽다보면 역사가 "사람"을 서술하는 여러 방식을 접하게 된다. 교과서와 같은 개론서의 경우 한국사든 세계사든 한 쪽 전체 혹은 소주제의 한 편 전체가 특정인물을 다루는 때가 있다. 혹은 어떤 분야에 대해 한 줄 정도의 업적으로 기록되는 인물들이 있다. 생각해본다. 많은 분량을 할애받고 있는 인물의 업적은 한줄 정도의 분량으로 서술돠고 있는 인물에 비해서 훨씬 더 훌륭한 삶이었을까를.... 이종일이라는 이름. 내 기억에는 한국근현대사 부분, 그 중에서도 근대 신문의 발행에 대한 부분에서 "제국신문(이종일)- 부녀자층이 주요 독자층" 정도로 서술되었던 것을 본 적이 있는 정도. 해당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분에 대한 평전이 있다니 읽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쓴 "김삼웅"이라는 인물이 내겐 오히려 조금 더 익숙한 이름이다. 내가 어줍잖게 역사관련 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보니 이 분이 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책을 그 전에 몇권 읽어본 기억이 있다. "제8대 독립기념관장을 역임"(책 앞날개). "특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 주력해"(책 앞날개) 온 분. 책을 쓴 이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의 연결고리가 보인다. 이 책을 통해 본 이종일. 제국신문의 사장. 정도로만 내가 알고 있었던 인물.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던 독립운동가. "문: 앞으로도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힘 있는 대로 할 것이다."(p189) 피고인으로 신문을 받으면서도 서슴없이 대답하였던 인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학교교사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역사학자 이병도가 자신의 은사였다고 기억하는 사람. 교육, 독립,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던 사람. 그러나 안타깝게도 68세의 나이에 셋집에서 굶어죽은 인물. 3.1운동 이전에도 여러 차례 독립운동을 기획하였던 분.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독립운동가의 안타까운 최후를 또 한번 목격하게 된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씁쓸했다. 책을 덮으며 독립운동가들이 그토록 소원하였던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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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독립이 자주 독립이 아니긴 했지만, 독립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스러져 갔는지 짐작도 못할 정도라는 건 어느정도 생각했었다. 그래도 나는 나름 독립투사나, 독립운동 하신 분들에 대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쓸데없이 자신감에 차 있었나 보다. 그러고보면 나도 김구선생님이나 윤봉길, 안중근 정도의 유명한 분들외엔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면서..... 그래서 이 책이 보이자 마자 읽고 싶었던 거 같다. 어릴적 역사, 국사를 배워오면서도 한번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분. "이종일" 이라는 성함 석자에 정말 이런분이 계셨구나 싶은 죄송함도 어느정도 작동했던 듯 하고. 독립운동 시기의 신문하면 <한성순보>. <매일신보> 뭐 이런건 언뜻 언뜻 들어본 듯 한데 <제국신문>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그 신문을 내신 분이라고 한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인쇄소를 만들고 한자는 어려워 모든 이들이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이가 볼 수 있게 최초로 한글 신문을 만드신 분. 특히나 여자와 천민, 양반, 상인등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라는 논설을 주로 본인이 써서 올리셨는데 동학운동에서 기인한 천도교를 받아들이면서 엄청 생각이 깨이신 분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럼에도 첩이나 기생들은 평등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는 약간의 이율배반적 모습도 보이긴 한다. 하지만 본인이 그 잘못을 뉘우치고 각성하면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하시니 아직은 조금, 아주 조금 사대부적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걸로..... 개인적인 묵암록 정도의 기록은 좀 남았지만 세세하게 남겨지진 않아서 개인사등과 같은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하는 사실이 안타깝다. 가족관계도 아내는 분명 있는데 자식관계에 대한 정확성은 또 없고, 그외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도 제대로 없어서 이분에 대한 자료가 빈약함을 알 수 있어 좀 안타까웠다. 하지만, 3.1운동 독립선언문에 33인 중 한분이시고 그 선언문을 인쇄하신 분이 이 분이라고 하신다. 본인의 인쇄소에서 <제국신문>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자 천도교의 손병희 선생과 함께 여러 종교를 합쳐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일을 했고, 보성사라는 인쇄소에서 독립선언문 몇 만부를 만들어서 서울은 물론 지방까지 우리의 자주 독립에 대한 애국심을 심어주게 한 대단한 분이셨다. 결국 3.1운동으로 감옥에 투옥돼 3년간의 옥고끝에 나오셨으나 제대로 된 집도, 음식도, 돈도 없는 현실에서 몸은 점점 허약해져만 가고 가세는 더더욱 무너지고.... 하지만 다시 제 2차 만세 혁명을 주도하고자 선언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그때부터 모든 것에 힘을 잃으신 모습이다. 결국 68세에 돌아가셨는데 굶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도 친일파가 재 정비 되지 않고 그들이 권력을 그대로 잡게 하더니 지금까지도 그들은 잘 살아오는데 독립투사들이나 그 자손들이 힘들게 산다며 안타까워 하더니 그 사실이 이분의 돌아가심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밥이 없어 콩죽만으로 연명하셨다니..... 이 얼마나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일까. 독립선언문 33인에 오르신 분인줄도 몰랐다. 덕분에 33인의 이름을 찬찬히 둘러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아는 이름이라곤 손병희, 한용운 정도의 독립투사 정도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어간 이들이 새삼 얼마나 많은지 또 깨달은 순간이다.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발췌돼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분들이 되길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