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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윤정모라는 작가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동정심이 없다기 보다는 부러워했다는 표현일 맞을 것이다. 그녀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잘나가는 작가에 8년 연하의 남편과 오붓하고 살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녀의 불행했던 인생과 그 불행 속에서 끝까지 희망을 향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연민과 또 다른 동경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한다. 만약, 그 선택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면, 별로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그 선택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인생은 꼬이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여자에게 '결혼'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자의에 의해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동안 '고삐'나 '밤길'에서 보아왔던 작가의 의연함 꿋꿋함은 자신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작가라는 윤정모보다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자인 '윤정모'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앞으로 남은 그녀의 인생에 더 이상 꼬이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여성은 폐경기 때에 가장 깊은 열망을 갖는다고 한다. 남편이 있는 여성은 외도를, 혼자 사는 여성은 연애를, 그것은 자기 몸속의 난자, 그러니까 그 아기 씨앗이 영구히 사라지게 된다는 데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상대에게 내 열병을 표출한 덕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단 말이에요." 내가 징징대가 내가 존경하는 그 의사님이 말했다. "병 되는 것보단 낫네 뭐." 차리라 병이 되어 혼자 알았으면 백배나 더 나을 뻔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면 폐경기의 혼란을 겪고 난 후 여성에겐 다시는 연애할 생각이 없어지나요?" "갈망은 남아 있어요. 다만 그 불길에 자신이 데일 만큼 뜨겁지야 않겠지. 죽으 때까지 은근하게 남아 있는, 그런 사람이 정상이오." 다행이다. 이젠 용암처럼 끓어 넘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용암줄기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
| 물거품을 일으키며 펄펄 뛰는 잉어 같다. 촉수의 안테나에 여덟개 이상 붉은 불이 켜져 있어 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정거리 안에 침범하면 언제든지 달려들어 파헤쳐 볼 기세이다. 그녀는 지뢰밭만 골라 밟듯이 꼬인 인생을 착착 허들 넘듯 힘차게 건너 왔다. 윤정모는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먼저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러기에 의리와 용기가 충만하며 요즘 젊은 여자들이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상한 결혼도 했다. 그녀의 결혼 동기는 자의식이 강한 작가에게는 좀 의아한 모습이다. 사랑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8살 연하의 남편에게 맞고 살았고 오입도 당했으며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25년이나 버텨냈다. 50대 중반을 넘어섰으면서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기에 실수도 많다. 그녀는 실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작가의 생명력일까. 실수를 통해 인생 실험을 하고 그것을 소설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도약하여 넘어오는 것. <윤정모, 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인생 여정보다는 윤정모라는 사람의 기질과 맹렬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아쉬운 사건도 겪는다. 피를 뜨겁게 하는 사건은 격동의 세월을 지나온 그녀에게 여전히 도처에서 그 붉은 얼굴을 드러낸다. 전도 양양한 유학생의 어이없이 죽음을 보았고 작품 취재 과정에서 IRA 요원을 만나기도 한다. 그녀는 상처가 있으면 부스럼이 나도록 긁어 뜯어 붉은 살을 본다. 안에 담가 곪게 하기보다는 자꾸 밖으로 분출시킨다. 고통과 상처의 바다에 당당하고 힘차게 뛰어든다. 그리고는 빛 속으로 솟구치는 물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올린다. 딸의 영국 유학 생활을 소설의 출발점으로 잡고 있는데 도깨비 같은 두 모녀의 모습이 재미있다. 모녀는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어느새 팔짱을 끼고 고무줄을 하러 가는 단짝친구 같다. 딸은 영어를 못하는 엄마를 대놓고 무시하고 엄마는 부끄러운 늦바람 사건을 고백한다. 딸의 대학 입학 과정은 스포츠 경기같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둘이 발목에 끈을 매고 함께 뛰어 넘어온 전투기록 같다. 사실 윤정모가 딸을 따라 영국으로 간 후 발표된 작품들은 그리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자신의 인생을 들고 나온 이 책도 자극적인 8년 연하의 남편에게 맞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으로 서평이 실리고 책 겉날개가 장식되었다. 그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큰 아픔이고 치부일 것이지만 남편에게 집중하여 이 책을 보고 싶지는 않다. 다사다난한 그녀의 인생에서 남편은 수많은 장애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딸에게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슬픈 굴레이지만 윤정모는 그 속에 고여있기보다는 물거품을 일으켜서라도 튀어 오르려 한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또 어쩌면 그렇게 블랙 코미디의 등장 인물 같은지. 시어머니나 남편, 친정어머니 같은 가족들은 그녀를 뜯어먹으려고 달라붙은 거머리 같다. 다소 과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기가 막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후반부는 창작동기와 과정, 독자들의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독자의 혹독한 평에도 반성은 하지만 움츠려 들지 않는다. 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는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평가받겠다고 다짐한다. 사기 행각으로 잔뜩 빚을 진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딸의 등록금도 마련하지 못한 채 50대 중반의 위기를 맞는다. 그녀는 홀로 바닷가 절벽에 서서 깊은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딸의 '울지 않는 엄마가 좋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다시 신이 난다. 그녀는 새로 내디딜 발걸음에 힘을 실으며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삶의 중력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얻어낸 일보의 전진 아닌가.윤정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