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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고유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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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나라가 분명한, 아주 이국적인 풍경이 넘실거릴 게 뻔한, 정말 먼 땅 중동이 지금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이 시집을 찾아, 주문했고, 읽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중동이라서, 아랍이라서, 그곳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어서다.아랍권 시의 ‘T. S. 엘리엇’이라 불리는 아도니스는 아랍권에서 노벨 문학상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시인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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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나라가 분명한, 아주 이국적인 풍경이 넘실거릴 게 뻔한, 정말 먼 땅 중동이 지금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이 시집을 찾아, 주문했고, 읽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동이라서, 아랍이라서, 그곳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어서다.

아랍권 시의 ‘T. S. 엘리엇’이라 불리는 아도니스는 아랍권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시인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랍의 시는 전복적이고 해체적이며 자유로운《다마스쿠스인 미흐야르의

노래》이후로 예전의 정형시인 까시다의 전통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을

만큼, 그야말로 20세기의 아랍 시의 이정표라 불릴만하다고 하였다.

아도니스는 시리아의 까사빈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다마스쿠스,

베이루트, 레바논을 거쳐 198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 시집에 ‘미흐야르’가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절벽,

심연을 의미하는데, 우리에게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도니스의 미학

체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념처럼 느껴져,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시에서 바람의 왕, 야만적인 성자,

길 잃은 신, 흙먼지의 마법사 등으로 등장한다.

낯선 말[言]들의 기사 등 7개 장章으로 구성된 159편의 주로 짧은 서정시가

실려있다. 마지막 장을 제외한 6개의 장은 모두 시편으로 시작하는 통일된

구성이다. 많은 시에서 고전이나 꾸란, 성경 등의 원천을 끌어낸다.


그가 다가온다. 비무장한 숲처럼, 부정할 수 없는 구름처럼. 어제 그는

한 대륙을 메어 나르고 바다를 다른 자리로 옮겨놓았다.

(중략)

그는 보이지 않게 삶에 스며든다. 삶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그 속으로

뛰어든다. 내일을 사냥감으로 뒤바꿔 필사적으로 뒤쫓는다. 그의 말은

상실 상실 상실을 향해 새겨져 있다.

(중략)

바람처럼 광막하게, 그가 심연 속으로 걸어간다.

- ‘시편’ 중에서


《다마스쿠스인 미흐야르의 노래》는 미흐야르라는 인물의 중심인 만큼,

‘시편’이라는 반복과 통일된 배치를 따라 읽다 보면 선명한 서사를 이루어

나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어쩌면 술술 읽힌다는 느낌을 간혹 받기도

하는데, 아니다, 쉽지 않다.

왜 그런가 물어보면, 시인은 답할 것이다. 주제는 아마 미흐야르, 아도니스가

꿈꾸는 ‘미래의 전형적인 아랍인’으로서의 미흐야르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변주는 어떠할까? 다시 물어보면, 시집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등장

하는 바람과 돌과 불과 불꽃, 구름에다 깃발, 종, 얼굴 등의 평범한 단어들과

오르페우스, 오디세우스, 시시포스, 샤드다드 등의 고유명사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개 숙인다, 슬픔의 가면 아래

시들어가는 얼굴들에게, 내가 눈물을 잊고 지나온

길들에게, 구름처럼 파릇파릇할 때

돌아가신, 얼굴에 돛을 달고 있던 아버지에게

나는 고개 숙인다,

팔려 가서

기도하고 구두를 닦는 아이에게

(내 나라에서는 모두가 기도하고 구두를 닦는다),

이것은 내 눈꺼풀 아래로 구르듯 떨어지는 빗방울이자 번개라고

나의 굶주림이 새겨 넣은 바위에게,

상실의 시기에 내가 그 흙먼지를 짊어졌던 집에게

나는 고개 숙인다―이것들이 바로 나의 집이다, 다마스쿠스가 아니라.

- ‘집’ 전문


이 시에서 나는 왜 고개를 숙이는 걸까, 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아프고

숙연하게 하는 걸까.

시들어가는 얼굴들에게, 눈물을 잊고 지나온 길들에게, 파릇파릇할 때 돌아

가신 아버지에게, 팔려 가서 구두를 닦는 아이에게, 굶주림이 새겨 넣은

바위에게, 그리고 상실의 시기에 그 흙먼지를 짊어졌던 집에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죽음과 굶주림과 상실이, 너무 아파서, 그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살아온, 덧없이 떠돌던 시절들을 떠올리면서 그럴 것이다.


나는 이 고요한 돌을 숭배한다―

나는 돌의 윤곽에서 내 얼굴을 보았고,

돌에서 나의 잃어버린 시를 보았다

- ‘돌’ 전문


나는 천둥의 돌

그리고 사라진 갈림길을 발견하는 신.

나는 달아나는 구름과 비극적인 비의 눈꺼풀에

매달린 깃발.

나는 홍수와 불처럼 나아가는 자,

흙먼지와 하늘을 뒤섞는 방랑자.

나는 번개와 천둥의 혀.

- ‘천둥의 돌’ 전문


두 편의 시를 읽고 나면 환상적인 환희와 강렬한 우울이 공존한다.

어떤 평자는 ‘혁신적이면서도 전통적이고 반종교적이면서도 신화적이며

반항적이면서도 포용적인” 시인이라고 했다.

아도니스의 시들은 어쩌면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며 또는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아름답고 완벽하게 표현된,

아랍 시문학의 걸작이라는 평가가 어긋나지 않는다.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묵시록의 파편들을 읊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다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부활을 기대하게 하는 힘도 다분히 풍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6.05.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