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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고 백여 페이지를 넘어갈 즈음 난 계속해서 책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그만 둘 것인가 망설인다. 일반적인 단편의 삼분의 일 정도의 분량을 지니는 각각의 챕터에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 탓에 그 인물들의 이름 주워 담기에도 용량이 급급이다.
다행히 재스민이라는 주인공과 그의 혈관 속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일인칭의 나레이터 나, 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수많은 인물들을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하지만 1권의 (게다가 이 책은 두 권짜리이기까지 하다) 삼분의 이 정도를 지나가면서,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점차 줄어들고, 대신 앞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거나, 그 주변의 인물의 형상에 옷이 입혀지는 정도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잦아든다.
소설은 뉴욕에 사는 흑인 여성 재스민,그리고 재스민의 몸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기도 한,구체적이지만 추상적인 존재 나,가 동시에 만나는 많은 인물들과의 성적 교감,내지는 감정적 교류 속에서 훑어가는 차이의 이해와 차별의 분석을 담고 있다.
육감적 사고, 그러니까 마음이 시키는 바에 따르기는 하지만 나름의 육감에 믿고 의지하며 그 육감이라는 것이 또 도통한 사람의 그것마냥 아주 멋지기까지 한, 흑인 여성 재스민의 일상을 따라 다니는 일이 사실 그렇게 녹녹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백인과 흑인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등등으로 다양), 동성애 커플 (일반적이지 않음으로서의)과 이성애 커플, 과거의 연인과 현재의 연인 등 다양한 성적, 육체적 관계의 망을 촘촘히 펼쳐 놓은 채 소설은 마음껏 독자를 희롱한다.
야마다 에이미의 다른 작품에서 보여지던 짖궂은 상념의 도약이나 유머러스한 대화법 등등은 현저하게 줄어든 대신 기획 소설 (그러니까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보자면 편집자의 의도와 작가의 흠, 그렇게 써보면 재밌겠군, 하는 오만불손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의 냄새가 난다.
편견을 없애라, 편견은 옳지 못하다, 차이를 이해하고 차별을 불식시켜라, 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학습받은 기분. 일본작가 특유의 글로벌함과 블러드라는 추상적인 존재의 등장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정신적 쾌락이나 평안을 느낄만한 정도는 아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1권 삼분의 이 정도의 지점을 통과하면 끝까지 갈 확률이 높으나, 그 전에 책을 덮어버리면 2권은 늙어 줄을 때까지도 읽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인상깊은구절] 성의 세계로 흩어진 온갖 종류의 기호. 혀는, 사람에 따라 모든 미각을 갖는 것이다. 단, 그것은 납득이 가는 한에서의 일이다. 초식동물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면, 토할 것이다. 육식동물이 풀을 먹더라도, 되새기지 못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눈앞에 있는 것은 먹을 것. 인간만이 때때로 그 인식을 잘못해 실수를 저지른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고, 먹어야 할 것을 혐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