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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장에는 시집이 가득하다. 시집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책등의 연속을 보면 추상적인 회화 한 편을 들여놓고 보는 것도 같다. 부지런도 하고, 어떤 아름다운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는 듯한 좋은 사람들이 수십 년째 꾸준히 이런 시집을 내어주고 있다. 큰 돈과 명성을 가져다주는 지니의 램프도 아닌 것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소박하지만 빨간 석류 같은 사랑 한 덩어리를 본다. 그리고 시인들. 아무리 출판사가 있다해도 시를 쓰는 시인이 없다면 시는 태어나지 않겠지. 스무 살 특유의 혈기와 우울이 버무려진 마음으로 갓 구운 빵 같은 시를 들고 해마다 많은 예비 시인들이 이리저리 원고를 부친다. 몇몇은 시인이 되고, 낙방한 사람 몇몇은 지연된 시인의 꿈을 좀 더 이어 가고, 몇몇은 시와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시인들. 어떤 시인들은 파릇한 시절 시인이라는 이름의 어깨띠를 두르긴 했지만, 강산이 몇 번 바뀌도록 자신의 시만으로 홀로 꾸려진 시집이 없다. 소개에 따르면 이 시집의 주인공 박미란 시인도 그렇다. 스무 해도 전에 등단했지만 20년만에 첫 시집을 냈고, 4~5년이 지나 새로운 시집 <누가 입을 데리고 갔나>를 발표한 것이라고. 그렇게 낸 20년만의 시집은 어떤 말들로 가득했을까? 그때의 그 시집을 읽지는 못했고 나는 새로이 나온 두 번째 시집을 먼저 갖게 됐다. 그리움. 그리움. 그리고 그리움. 그것이 이 시집의 전부라면 전부다. 세상에는 사랑도 있고, 원망도 있고, 싸움도 있고, 죽음도 있지만, 이 시집 속에는 그리움, 그리움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 안의 모든 게 좋다. 그리움은 자주 마음 한 켠에 치명적인 병을 심지만, 그래도 그립고 그래도 좋았던 걸 어떡할까. 겹치며, 오리며, 나는 내 안의 숨겨둔 그 그리움을 백 번도 더 떠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