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10.0
  • 20대 1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3)

리뷰 총점 종이책
전설적인 탐조가를 다시 생각하며 전하는 자연, 새, 인간 이야기
"전설적인 탐조가를 다시 생각하며 전하는 자연, 새, 인간 이야기" 내용보기
전설적인 자연주의자이자 탐조가인 켄 코프먼(Ken Kaufman; 1954 - )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새와 자연에 관한 넓은 지식, 합리적인 생각을 만날 수 있는 탐조 역사의 고전이라 할 책이다.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란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을 이르는 말이다. 오듀본은 현대 조류학/ 생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몇 가지 면에서 윌리엄 스미스(1769 -1839)
"전설적인 탐조가를 다시 생각하며 전하는 자연, 새, 인간 이야기" 내용보기

전설적인 자연주의자이자 탐조가인 켄 코프먼(Ken Kaufman; 1954 - )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새와 자연에 관한 넓은 지식, 합리적인 생각을 만날 수 있는 탐조 역사의 고전이라 할 책이다.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란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을 이르는 말이다. 오듀본은 현대 조류학/ 생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몇 가지 면에서 윌리엄 스미스(1769 -1839)와 비슷한 사람이다. 선구자라는 점,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는 점 등이다. 윌리엄 스미스는 영국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사람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탐험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한다.(37 페이지) 저자 켄 코프먼은 존 제임스 오듀본의 기록이 손녀 등에 의해 가필, 수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저자는 오듀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마치 희미한 조명이 비치는 거울의 방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수많은 이야기와 일화가 우리를 둘러싸지만 그 중 상당수는 서로 모순되며 검증 가능한 사실은 래브라도의 참새처럼 좀처럼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의 세대가 (존 제임스 오듀본 이후) 200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인간 문명의 경계를 벗어난 풍요로운 자연과 생명에 매료된 사람들은 이름에 대한 열정을 오래도록 품는다고 말한다.(38 페이지) 저자는 200년에 걸친 세심한 관찰과 연구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철새의 경로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새를 관찰할 때 보이는 것은 단편일 뿐이지만 그동안 축적되어 온 지식의 틀에 내가 관찰한 것을 끼워 적용하면서 지금 보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118 페이지)


곁가지 즐거움 거리 중 하나가 린네와 뷔풍의 대결이다. 지질학에 관한 책을 통해 우주의 나이가 성경적 분석으로 제시된 약 6000년이라는 주장이 틀렸으며 지구의 나이가 당시 받아들여지던 인식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뷔퐁은 린네를 겨냥해 "다른 사람을 따르기 위해 스스로를 굴복시키고 싶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에 대하여 그들 멋대로 지어낸 생각과 구조를 표현하는 하찮은 표 따위로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존재들을 우스꽝스럽게 연관 짓는 명명론자들의 어설픈 현학을 모방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뷔퐁은 새의 외모만으로는 종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고 행동을 조류를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1890년대 플로렌스 머리엄이 birding이란 단어를 탐조의 의미로 썼다. 1600년대 셰익스피어는 birding을 새 사냥의 의미로 썼다. 저자는 알렉산더 윌슨, 존 제임스 오듀본 등이 훨씬 더 많은 조류 종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을 일러 이 정도의 정밀한 묘사는 새를 산 채로 포획하거나 사냥하여 죽은 새를 눈앞에 두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쌍안경이나 카메라가 없던 시대였다. 저자는 오듀본이 노예를 사고 팔았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새를 사냥했다는 사실에만 분노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듀본은 갓 죽은 새를 눈앞에 두고 깃털 하나하나를 사진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이는 큰 장점이었지만 갓 죽은 새 표본을 오래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작업해야 했다. 특히 더운 날씨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141 페이지)


오듀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새 화가였다. 저자는 살아 있는 새를 관찰하며 스케치 하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일이라 말한다.(107 페이지) 새를 그린다는 것은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자신의 나라인 미국의 50 개주를 모두 방문했다. 저자는 매번 낯선 길로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 같아 낭만과 설렘을 느낀다고 말한다.(267 페이지)


저자는 토머스 제퍼슨이 오하이오 강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명인즉 제퍼슨은 이 강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말은 강의 시각적 매력에 대한 찬사라기보다 교통과 무역에 대한 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표현일 것이다.(115 페이지) 미국의 제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유명 조류학자이기도 했다.(76 페이지) 오듀본 역시 미국의 여러 곳을 다녔다. 1800년대 초의 자연주의자들은 새들이 이동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계절과 새들의 이동 방향의 관계성을 조금씩 알아채기 시작했지만 철새의 규모나 이동거리는 알 방법이 없었다. 책의 원재는 [The Birds That Audubon Missed]다. 오듀본이 놓친 새들이라는 뜻이다. 가령 저자는 오늘날의 탐조가들이 그 옛날 오클리 농장에서 오듀본이 기록한 새들을 보면 그의 분류 방식에 의아함을 느낄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곳에서 붉은눈비레오를 보았지만 붉은눈은딱새라고 불렀고 학명에는 솔새라고 이름 붙였다.


루비상모솔새는 루비상모굴뚝새라고 불렀고 학명에는 역시 솔새라고 이름 붙였다. 한편 솔새의 일종인 휘파람새, 북방흉내지빠귀새, 회색개똥지빠귀를 모두 지빠귀 종으로 분류했다.(160 페이지) 이에는 시대적 차이도 관계한다. 존 오듀본은 잃어버린 도팽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기도 하다. 도팽(dauphin)은 프랑스 군주제에서 왕위 계승자 즉 황태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동네(오하이오 북서부의 이리호 주변)를 세계 솔새의 수도라고 부른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솔새는 열렬한 조류 애호가와 일반인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219, 220 페이지) 저자는 솔새가 지나갈 때, 주변에 나무와 덤불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품고 있을 때 우리는 희귀성에서만 만족감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탐조 입문자에게는 솔새 한 마리 한 마리가 마치 수수께끼처럼 신비롭게 느껴질 것이고 노련한 탐조가에게는 이번 시즌에 처음 또는 오늘 처음 마주치는 솔새 종 하나가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는 지리학 이야기도 나온다. 본토보다 반도 끝에서 종의 다양성이 감소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이 현상은 전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동식물 집단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일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하지만 섬 또는 섬처럼 고립된 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지리적 패턴을 탐구하는 섬생물 지리학의 일반적인 원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섬은 본토보다 종의 이주와 소멸이 더 빈번하다. 기존 생물 종은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우연히 섬에 도착한 새로운 생물 종이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개척가적인 탐험 정신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의 연구로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 뛰어드는 것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뚜렷하게 드러나는 미세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267 페이지)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는 것이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역동적인 플로리다 생태계의 특징이다.(281 페이지) 저자는 도요물떼새를 가장 좋아하는 생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도요물떼새들의 열렬한 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탐조를 시작할 당시 매년 도요물떼새의 종을 파악하고 식별하는 것이 어렵기만 했다. 알아낸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또 의심스러웠다.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오래 전의 일이고 이제는 자신 있게 자신이 보는 모든 도요물떼새의 이름을 댈 수 있다고 말한다.(294 페이지)


저자는 오듀본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즉 자신은 오듀본처럼 능숙하게 다양한 도구와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322 페이지) 저자는 오듀본의 생각을 추측하기도 한다. "미국 청둥오리가 텍사스에서 둥지를 튼다는 사실이 오듀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라는 식으로. 텍사스는 저자가 탐조 역사에서 각별히 여기는 거대한 존재다. 미국 전역의 탐조가들에게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를 뽑으라고 물으면 늘 텍사스가 손꼽힌다.(329 페이지)


북미 오리 종 대부분은 북쪽 지역에서 번식한다. 겨울 동안 걸프 연안 근처의 습지로 방대한 무리가 몰려들지만 대부분 겨울이 끝나기 전에 북쪽 대초원의 연못, 북극 숲의 호수, 심지어 북극 툰드라로 향한다. 봄이 절반쯤 지나면 남쪽 바다는 겨울에 북적거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지친 낙오자만 드문드문 흩어져 으스스할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따라서 추운 북동부 해안의 상징인 미국 청둥오리가 텍사스 걸프 연안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337, 338 페이지)


새로운 발견을 위해 자연주의자들이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장으로 나가도 바로 눈앞에서 새로운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인간의 일생은 너무 짧아서 생물의 다양성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전부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작은 시도도 우리의 일상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 사냥 이야기가 또 나온다.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새와 관련해서다. 1963년 봄에는 갤버스턴섬에서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해 가을 9월 초 카리브해 동부의 바베이도스 섬에서 한 사냥꾼이 에스키모 쇠부리도요를 사냥했다. 이 새가 아직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는 이 표본을 보관하다 나중에 박물관으로 보냈다. 저자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새를 기다린다고 말한다.(352 페이지)


저자는 나그네 비둘기나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와 같은 종에 대해 우리는 그저 다양성의 한 조각 즉 하나의 개체군만이 아니라 이 대륙이 자랑하던 풍요로움을 잃었다고 말한다.(353 페이지) 프랑스의 자연주의자 조르주 퀴비에는 멸종이라는 개념이 낯선 1800년대 초에 멸종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주장을 폈다. 조르주 퀴비에는 지질학에서 격변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저자는 예전의 풍요로움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고 묻는다. 글쎄, 이들 대신 우리가 나타났다. 인간들 말이다.


특히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이 북미 대륙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고 이 대륙은 예전만큼 많은 야생동물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조류 종 개체수를 과거 수준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헌신적으로 노력해도 토지의 수용 능력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362 페이지) 이런 말을 들어보라. "야생 비둘기와 마도요 등을 학살했던 파괴적 인간들은 그들이 없앤 자연의 풍요로움처럼 오래전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 탐욕과 어리석음은 여전히 살아남아 더 교활하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더 잃으지도 모를 경이로운 자연을 생각하면 분노 하며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며 올바른 일이다."(363, 364 페이지) 백번 공감한다. 


저자는 오듀본이 연구 내용을 표절하고 내용을 지어내는 등 부정을 저지른 것은 틀림없지만 지식 추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점 역시 분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듀본은 노예제 찬성론자, 백인 우월주의자, 과학 사기꾼 등으로 여러모로 끔찍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듀본의 예술적 스타일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이제 영원히 내려놓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실험이긴 했지만 이제는 끝이다. 진정한 예술을 창조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려 하지 말고 내면의 비전을 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421, 422 페이지) 오듀본의 작품처럼 예술적이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큼 유명해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틀림없는 나만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발견은 공동의 경험이며 이 경험이 공유되는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새로운 조류 종을 정의하려면 유전자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러한 DNA 분석은 실험실의 전문가들만이 실시할 수 있다. 저자는 거의 모든 지식 추구 과정과 마찬가지로 조류 연구에서도 발견한 많은 이들이 함께한 모험과 공유된 경험, 공동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454 페이지)


이 부분에서 생각할 책이 있다. 카밀라 팡의 [궤도 너머] 라는 책이다. 생화학자 카밀라 팡 역시 이 책에서 같은 논조를 선보였다. 카밀라 팡은 “과학은 혼자서 개척하고 씨름하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발견을 위해 함께 비옥한 토양을 파헤치는 일에 더 가깝다. 공동연구는 거의 언제나 바퀴를 부드럽게 널리는 윤활유이자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다.”라고 말했다. 수렴하는 부분이 충분하다. 450 페이지가 넘는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그 만큼 압도적인 탐조 즉 지적 탐험의 소산이다. 흥미 있게 읽은 책이다.

m******1 2026.03.21.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오듀본!
"오듀본!" 내용보기
나는 이 책을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 가지로 나눠서 독후감을 적어 본다. 1.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어린 시절 ‘새 박사’로 윤무부 교수란 분이 있었다. 아마 40대 이상이면 다 알지 않을까? TV에 나와서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새에 관해서 말하곤 했던 윤무부 교수는... 모든 새를 딱 보면, 울음소리를
"오듀본!" 내용보기

나는 이 책을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 가지로 나눠서 독후감을 적어 본다. 


1.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어린 시절 ‘새 박사’로 윤무부 교수란 분이 있었다. 아마 40대 이상이면 다 알지 않을까? TV에 나와서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새에 관해서 말하곤 했던 윤무부 교수는... 모든 새를 딱 보면, 울음소리를 딱 들으면 다 알아맞힐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은, 커서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분들을 알게 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였다. 그분들이라고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윤무부 교수에 대해서 들은 얘기도 있었다. 물론 훌륭한 분이었다. 


존 제임스 오듀본. 내 기억의 차례로 보자면 오듀본이 ‘미국의 윤무부’이지만, 정확한 시대적 순서로 보자면 윤무부 교수가 ‘한국의 오듀본’이라고 불려야 맞았다. 그러나 많이 다르다. 오듀본은 불멸의 이름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윤무부협회 같은 게 없는 이상, 미국에 오듀본협회가 있고, 그 규모와 권위가 말도 못하게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1800년대 초중반에 전설적인 조류학자였던 오듀본은 단지 조류학자로서만이 아니라 놀라울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새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 누구라도 그의 그림을 한 번이라도 봤을 것이다. 그게 오듀본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일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프랑스 나폴레옹 휘하의 장교 아버지를 둔 오듀본은 징집을 피해 미국으로 보내지고, 그는 새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성공에 대한 열망, 경쟁심,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사나이였다. 뛰어난 그림 솜씨도 지녔던 오듀본은 《북미의 새》와 《조류학 전기》라는 책으로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켄 코프먼이 밝히는 오듀본은 남의 경험과 발견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고, 보지도 않은 새를 본 것처럼 그리고 신종으로 발표하곤 했던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이 책은 우선 한 위대한 조류학자의 본 모습을 자세히 뜯어보는 책이다. 




2. 사람은 한 가지 면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인간학의 측면에서. 


그렇다면 오듀본은 우리가 버려야 할 인물인가? 노예 제도를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여겼던 인물이기도 했고, 학문의 엄격성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으며, 보았음직한 많은 새들을 놓쳤고, 잘못된 분류로 후대의 연구에 적지 않은 지장도 가져온 조류학자가 오듀본이었으니 우리는 그를 이제 기억의 한켠에서 지워야 할 것인가? 


오듀본의 실체, 즉 그의 많은 결점을 낱낱이 캔 켄 코프먼은, 그러나 자신은 오듀본을 매장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인간적인 잘못은 그것대로, 학문적인 오류는 그것대로 인정하고, 그런 오류를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길이라는 것이다. 인종 차별을 옹호하고 지키려 했던 남군의 장군 이름이 붙은 새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에 대해서 켄 코프먼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것이란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듀본이라는 이가 이룩한 많은 업적들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인간은 한 가지 면만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3. 분류학의 복잡하고 미묘한 측면에서. 


주로, 아니 거의 새의 분류와 명명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찬 책이다. 그래서 사실 그런 부분은 ‘글자’는 읽었지만, ‘글’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다. 새의 분류 자체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이 책의 분류학적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자면 몇 달이 되어도 마지막 장을 덮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꼭 그런 식으로 읽을 필요는 없는 책이라 본다. 나는 분류학의 복잡 미묘한 측면에서만 이해를 하더라도 충분히 잘 이해하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생물의 분류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종의 개념, 혹은 종의 범위/구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종(species)이야말로 분류 내지는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면서 쉽지 않은 개념이다. 어디까지를 같은 종이라 봐야할지는 늘 논란이 되는 지점이다. 얼마나 다른 것을 다른 종으로 봐야할 지에 대해서 오듀본과 그 이전, 이후의 조류학자들은 논란을 벌였고, 그것은 새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또한 발견자로서의 권리의 문제도 있다. 켄 코프먼이 어린 시절 ‘발견’이라는 말을 자주 쓰다, 선생님으로부터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받은 것처럼(좀 심하긴 했다!), 어떤 종의 발견은 대단히 엄격하면서 민간한 문제다. 단순히 새로운 새를 보았다 해서 그 사람이 그 새로운 새의 발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새로운 새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냥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 새로운 새가 왜 신종인지 밝혀야 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규칙에 맞게 학명을 붙여야 한다. 분류학은 쉬운 학문이 아니다. 


4. 켄 코프먼의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켄 코프먼은 작가 소개에서부터 ‘전설적인 존재’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새를 좋아했고, 10대에는 히치하이킹을 통해 미국, 캐나다 전역을 돌아다니며 새를 관찰했다. 이 때의 경험은 책 중간중간에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의 도전이었다. 


또 다른 도전도 있다. 그는 이 책과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오듀본처럼 그리기. 이에 관해서는 각 장(chapter)의 사이사이에 ‘막간’이라고 해서 ‘새를 그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짧게 짧게 전하고 있다. 오듀본은 새를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갓 죽은 새를 고정시켜 마치 살아 있는 모양처럼 만들고 그것을 그렸다 한다. 켄 코프먼은 그런 방법은 쓸 수 없었다(그건 불법이다). 대신 사진을 두고 그렸다. 오듀본이 그린 스타일을 흉내내고, 그의 그림 도구와 기법을 써서, 같은 크기로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백한다. 그건 ‘비전 임파서블’이라고. 전설은 절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면서, 왜 오듀본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술이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게 아니라 자신 내면의 비전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다 내가 아는 조류학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책 너무 재미있네요. 꼭 읽어보세요.” 

개인적인 책 추천을 잘 하지 안는 나지만, 이 책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나는 그냥 넘겨버린 많은 장면들을 그는 의미를 두고 읽을 것이다. 읽고 난 후 그의 감상을 꼭 듣고 싶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자연주의자들이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장으로 나가도, 바로 눈앞에서 새로운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 인간의 일생은 너무 짧아서 생물의 다양성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전부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작은 시도도 우리의 일상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6.04.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카우프만, 존 제임스 오듀본 지음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카우프만, 존 제임스 오듀본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존 제임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의 이름은 북미 조류학사에서 거의 신화에 가깝다. 1827년부터 출판된 그의 대작 <아메리카의 새들(Birds of America)>은 실물 크기의 수채화로 그려진 435점의 조류 초상화를 담고 있으며, 이후 200년 가까이 조류 예술의 기준점으로 군림해 왔다. 그의 그림은 자연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카우프만, 존 제임스 오듀본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존 제임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의 이름은 북미 조류학사에서 거의 신화에 가깝다. 1827년부터 출판된 그의 대작 <아메리카의 새들(Birds of America)>은 실물 크기의 수채화로 그려진 435점의 조류 초상화를 담고 있으며, 이후 200년 가까이 조류 예술의 기준점으로 군림해 왔다. 그의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포착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불멸의 작업에도 빈자리가 있었다. 19세기 북미의 자연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기록하려 했던 오듀본이, 분명히 마주쳤을 법한 수많은 새를 그리지 않았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켄 카우프만(Kenn Kaufman)의 신작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오듀본의 전기를 다시 쓰거나 그의 실수를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책은 초기 북미 조류학의 역사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면서, 과학적 발견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우연적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카우프만은 발견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카우프만이 그리는 19세기 초 북미 조류학의 세계는 순수한 지적 탐구의 공간이 아니었다. 알렉산더 윌슨(Alexander Wilson), 찰스 루시앵 보나파르트(Charles Lucien Bonaparte), 존 타운센드(John Townsend) 같은 자연학자들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기록하려 했던 그 시대는, 명성과 금전적 이익, 그리고 학문적 선취권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장이기도 했다. 특히 오듀본과 윌슨 사이의 필라델피아에서의 갈등은 이 시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카우프만은 이를 '필라델피아에서의 불화'라는 장에서 생생하게 다루는데, 그것은 개인적 반목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적·사회적 권력 구조가 빚어낸 필연적 충돌이었다. 이 시대의 자연학자들이 새를 '발견'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조류 관찰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쌍안경도 없이, 때로는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채집해 온 표본 하나에 의존해 종을 동정하거나, 이미 기술된 종을 새로운 종으로 잘못 발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카우프만은 도요새류, 솔새류, 개똥지빠귀류 등 당시에도 혼란스러웠고 지금도 여전히 조류 관찰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분류군들을 추적하면서, 그 혼동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마트폰도, 이베드(eBird)도, 심지어 제대로 된 쌍안경조차 없던 시대의 조류학자들이 이 작은 생명체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공감 어린 시선이 책 전반에 흐른다. 오듀본의 실수 중 일부는 정직한 오류였지만,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미 기술된 새를 새로운 종인 것처럼 발표하기도 했고, 동료들의 경험을 자신의 것인 양 삽입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워싱턴의 새(Bird of Washington)'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새를 완전히 만들어내기도 했다. 카우프만은 이러한 행위들을 단순히 시대의 산물로 용인하지도, 그렇다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단죄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듀본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예술적 천재성과 도덕적 결함, 대담한 탐구 정신과 노예제도에 대한 가담이라는 모순적 요소들을 모두 안고 있는 복잡한 역사적 인물이다.

책의 중심부에는 오듀본이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기록하지 못한 새들의 이야기가 자리한다. 스웨인슨개똥지빠귀, 회빰개똥지빠귀, 필라델피아비레오, 카스피해제비갈매기, 달팽이연, 캐롤라이나박새, 두꺼운부리멧새, 커크랜드솔새 등이 그 목록에 포함된다. 이 새들이 놓쳐진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는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아서, 일부는 비슷하게 생긴 종과 구별하기 어려워서, 또 일부는 단순히 지리적·계절적으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1837년 오듀본의 텍사스 방문 이야기다. 그는 정부 선박을 타고 갤버스턴과 휴스턴 지역을 방문했는데, 오늘날 조류 관찰자들이 환상적인 철새 이동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바로 그 지역, 그 시기에 있었다. 그러나 오듀본은 루이지애나와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고 해안을 따라 200마일만 더 내려가면 만날 수 있었을 수많은 새로운 종들을 외면했다. 카우프만은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는다. 만약 오듀본이 그 200마일을 더 갔다면, 초록어치나 다른 남부 텍사스 특산종들을 담은 그림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책 속에 생생히 펼쳐진다. 카우프만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은 '발견'의 개념 자체에 대한 재고다. 유럽계 자연학자들이 '발견'했다고 기록한 수많은 새들은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이미 알려진 존재들이었다. 카우프만은 이 점을 명시적으로 지적하면서, 진정한 발견이란 누군가에게는 재발견에 불과할 수 있음을 환기한다. 이는 과학적 발견의 역사에 내재된 식민주의적 시각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비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부분은 카우프만이 오듀본이 놓친 새들을 직접 오듀본의 화풍으로 그려보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오듀본이 사용한 것과 같은 도구와 종이를 구해 수채화로 15종 가까운 새들을 그리려 시도했고, 그 과정을 '삽화가를 따라서(Channeling the Illustrator)'라는 짧은 막간 장들에 기록한다. 이 시도는 처음부터 겸허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카우프만은 자신의 최선의 시도조차 오듀본의 가장 부족한 작품 수준에 겨우 도달했을 뿐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 실패의 경험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오히려 직접 붓을 들고 씨름하면서 카우프만은 오듀본의 그림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새를 포착하는 방식, 식물과의 구도, 화면 속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법 등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그는 오듀본의 천재성을 학술적 분석이 아닌 실천적 경험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카우프만이 가장 어렵게 느꼈다는 식물의 묘사, 그리고 결국 마감 기한에 쫓겨 포기해야 했다는 두꺼운부리멧새의 에피소드에서는 예술 창작의 본질적인 고충이 유머와 함께 전달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카우프만은 과거에서 현재로 시선을 돌린다. 조류의 분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여전히 발견의 기회가 살아있다는 점을 그는 힘주어 강조한다. 그 상징적인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거머리잡이새(Limpkin)다. 원래 플로리다에 국한되어 서식하던 이 새가 외래 사과달팽이의 확산과 함께 북쪽으로 분포를 넓혀, 이제는 오하이오에 있는 카우프만의 집에서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에서도 발견된다는 이야기는, 생물 지리학의 역동성과 함께 시대적 변화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맥락에서 카우프만이 제시하는 현재 조류학의 발견 도구들은 인상적이다. DNA 연구, 울음소리를 통한 종 동정, 아종의 재분류, 이베드를 통한 집단적 관찰 네트워크 등은 19세기 자연학자들이 꿈꿀 수도 없었던 방식으로 조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고 있다. 클라크딱따구리(Clark's Grebe)가 서부딱따구리(Western Grebe)로부터 별개의 종으로 분리된 것이 불과 40여 년 전이며, 그 이전에 이미 1850년대에 기술되었다가 잊혀졌다가 재발견된 사례는, 발견이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함께 반복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카우프만이 가장 힘주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과학적으로 새로운 종이 아닐지라도, 내가 처음으로 어떤 새를 눈 앞에서 목격하는 순간은 나만의 진정한 발견이다. 그 순간의 경이로움은 200년 전 오듀본이 처음 헨슬로참새를 만났을 때의 설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카우프만은 이러한 개인적 발견의 경험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과의 유대를 이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 아침이라도 밖에 나가보라고 권한다. 오늘 자연으로 나갈 보고자 한다. 새소리가 기대된다. ^.^

p****r 2026.03.2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욕망이 가득했던 미국 탐조가의 이야기
"욕망이 가득했던 미국 탐조가의 이야기" 내용보기
윌슨을 보며 새로운 땅에서 동물을 발견하고 지필하는 일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듀본을 보면서 앞서 작성한 '윌슨'에게 열등감을 느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어찌보면 나라도 들 것 같다. 하지만, 오듀본의 욕망은 과장되고 욕심이 어긋날 정도로 커져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욕망이 가득했던 미국 탐조가의 이야기" 내용보기
 윌슨을 보며 새로운 땅에서 동물을 발견하고 지필하는 일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듀본을 보면서 앞서 작성한 '윌슨'에게 열등감을 느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어찌보면 나라도 들 것 같다. 하지만, 오듀본의 욕망은 과장되고 욕심이 어긋날 정도로 커져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1*****h 2026.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발견이 남아 있을까?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발견이 남아 있을까?" 내용보기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도서제공 #서평단멸종을 상상하지 못했던 풍요의 시대를 살았던 19세기 조류학자 이야기—종의 보존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발견이 남아 있을까?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생애를 통해 탐조라는 낯선 분야를 알아보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새를 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발견이 남아 있을까?" 내용보기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
#도서제공 #서평단
멸종을 상상하지 못했던 풍요의 시대를 살았던 19세기 조류학자 이야기—종의 보존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아직 새로운 발견이 남아 있을까?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생애를 통해 탐조라는 낯선 분야를 알아보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새를 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발견’이라는 인류 공통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찾는 일에는 순수한 탐구심뿐만 아니라 경쟁심과 욕망, 그리고 때로는 과장과 왜곡이 함께 존재한다. 오듀본이 개인적 성공을 위해 무리한 약속을 하고, 자신의 발견을 부풀리고, 연구를 가로챈 일화들은 과학자 역시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그동안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알려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 이 책은 그 생각을 조금 바꿔놓았다. 정말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일 역시 하나의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풍요 속에서 멸종을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와, 자연 보호와 종의 보존을 고민해야 하는 현재를 비교하면 씁쓸함이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이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h********9 2026.03.2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연은 하나
"자연은 하나" 내용보기
#도서협찬 📚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by켄 코프먼  🌱 가장 매혹적인, 지금 읽어야 할 자연사 이야기!  위대한 과학자이자 문제적 인간,조류학자 오듀본의 생애로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다. 🌱~하늘의 새를 보면 자유가 느껴진다. 인간이 새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의 상당수는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새를 사랑한 두 남자가 있다. 첫번째 남자
"자연은 하나" 내용보기

#도서협찬 📚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by켄 코프먼



  🌱 가장 매혹적인, 지금 읽어야 할 자연사 이야기!

  위대한 과학자이자 문제적 인간,

조류학자 오듀본의 생애로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다. 🌱


~하늘의 새를 보면 자유가 느껴진다.

 인간이 새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의 상당수는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새를 사랑한 두 남자가 있다.

 첫번째 남자는 이 책의 저자인 켄 코프먼으로 자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존재로까지 꼽히는 인물이다.

 이미 10대시절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누비며 새를 탐사하여 탐조분야의 고전이 된 <킹버드 하이웨이>를 썼다.

 두번째 남자는 첫번째 남자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현대 생태학의 아버지' , '현대 조류학의 아버지' 라 불리는 19세기 미국의 대표 조류학자이자 화가인 존 제임스 오듀본 이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붙힌 국립오듀본협회가 있을 정도로 그가 남긴 업적은 크다.


 그러나 '존 제임스 오듀본', 이 사람의 행적은 다소 기이하고 후대의 해석도 갈린다.

 "누구라도 그날 새벽의 오듀본을 봤다면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듀본이 새에 대해 가지는 열정은 놀랄만하지만 그가 내세운 몇몇 결과물은 표절과 오류,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조류연구의 특성과 지적탐구에 대한 욕망, 

사회적 명성에 대한 갈구 등이 합쳐진 현상들이며 그것 또한 자연의 하나로써 불완전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새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종류의 새 이름과 그들의 특징들을 따라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런데 보다보면 오듀본을 비롯하여 코프먼 그리고 새를 연구하는 여러 조류학자들도 모두 대자연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생물로써 각각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 먹는 것이 죄가 아니듯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찌보면 오듀본은 아주 순수한 사람이다. 그저 많이 알고 싶었고 많은 인정받고 싶었다.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

 스스로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으며 그는 행복했으리라.


 이 책은 새에 관한 책이자 인간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이었다. 

 다양한 조류학적 지식이 담긴 위인전 같다가도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책 같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재미로 가득차서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던 책, 알찬 독서시간이 었다.

 


@ellevenbooks

🔅< 일레븐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 #켄코프먼 #일레븐

#존제임스오듀본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y****2 2026.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내용보기
출판사 제공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장 매혹적인, 지금 읽어야 할 자연사 이야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커커스리뷰』 『북리스트』 『퍼블리셔스위클리』 강력 추천 ‘현대 생태학의 아버지’ ‘현대 조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세상을 떠난 지 약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 그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내용보기




출판사 제공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장 매혹적인, 지금 읽어야 할 자연사 이야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커커스리뷰』 『북리스트』 『퍼블리셔스위클리』 강력 추천


‘현대 생태학의 아버지’ ‘현대 조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세상을 떠난 지 약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 그의 삶을 현대의 조류학자 켄 코프먼이 남다른 통찰로 재해석한 책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고 싶은 모두를 위한 자연사 이야기로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아침, 태양이 이 우중충한 지역을 활기차게 비추려 애쓰고 있을 때, 나는 여기저기 보이는 작은 계곡 중 하나에 우연히 들어섰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도 내 눈을 즐겁게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미국 핀치의 음색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유럽의 카나리아와 숲종다리의 음색을 합친 듯한 소리로 노래하는 이 새의 감미로운 음색이 내 귀에 준 감동에는 비할 것이 못 됐다.” 19세기 미국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조류학 전기에 나오는 생동감 있는 장면은 링컨참새를 발견한 것을 묘사했습니다. 낯선 지역에서 예리한 학자가 노랫소리를 듣고 이제껏 알려지지 않던 종을 찾아내 탐험대 동료의 이름에 붙였는데 이 이야기가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존 제임스 오듀본은 1785년 아이티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자연에 대한 흥미를 보였고 그의 부모는 프랑스 출신으로 오듀본은 어린시절부터 조류와 자연을 관찰하는데 몰두했고 자연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기는 것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보이고 미국 대륙을 종단하며 다양한 조류 종을 기록하고자 했으며 이는 단순한 탐구를 넘어 그가 평생 추구했던 삶의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각 지역의 선주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들을 분류하고 이름을 불러왔음에도 오늘날 조류학자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테면 큰까마귀가 ‘코르부스 코락스(Corvus corax)’인 것처럼 말입니다. 1758년 스웨덴 자연학자 칼 폰 린네가 <자연의 체계> 제10판에서 그렇게 이름 붙이도록 분류 체계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체계는 ‘종속과목강문계’와 같은 계층 구조가 있으며, 동식물 종에 대해 두 단어로 된 라틴어 고유 이름을 부여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우선순위’, 즉 가장 먼저 붙여지는 이름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19세기 조류학자들이 ‘최초의 발견’에 집착한 이유입니다.


오듀본은 당대 조류학의 거물이던 알렉산더 윌슨에 대한 질투로 ‘무리수’를 두곤 했는데 그중 유명한 사례가 ‘워싱턴의 새, 팔코 와싱토니’입니다. 북미에는 검독수리와 대머리독수리라는 두 종의 독수리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두 종 모두 성숙하면서 깃털 패턴에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 그 시절 연구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오듀본은 이에 더해 일반 대머리독수리보다 거대한 갈색 독수리의 존재를 주장했고 그의 비판자들은 진위를 의심했지만, 오듀본이 실제 표본을 들고나올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허구임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업적으로 위기에 빠진 오듀본이 출판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경이로운 새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정합니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었던 셈인데, 그는 탐조 여행을 떠나기 전 신문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할 정도로 자기 연출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표현하고자 하는 나의 열렬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책은 현대의 조류학자인 켄 코프먼이 세상을 떠난 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미국 자연사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존 제임스 오듀본을 남다른 통찰로 재해석했습니다. 오듀본이 수많은 새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탁월한 화가로서 그 새들을 그련낸 인물이기에 북미의 새는 학문적인 성취와 예술적 완성도가 결합되어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150만달러에 팔리며 당시 인쇄본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습니다. 노예를 소유했고,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을 드러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발견을 극적으로 부풀리거나 사실과 다르게 꾸미고, 다른 사람의 업적을 훔친 정황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광기어린 집착은 한 인간의 전기를 넘어 자연을 소유하고 분류하려 한 근대의 욕망 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로 사라져간 새들에 대한 상실감까지 함께 담아내어 책은 생동감 있게 파헤칩니다. 새의 발견과정과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들여다 보는 좋은 계기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y*****9 2026.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Team 깃과 부리, 어서오세요 사기와 협잡 그리고 경이와 사랑의 역사에.
"Team 깃과 부리, 어서오세요 사기와 협잡 그리고 경이와 사랑의 역사에." 내용보기
바람을 타고, 땅을 박차며 새를 본 적이 있는가? 미련도 불평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수십일에 걸쳐 날아가는 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가하면 날개는 그저 장식이거나 숫제 달리지도 않은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이 기묘한 생물을 뭉뚱그려 새라고 부른다. 철마다 노래하고 창공을 가로지르며 깃과 부리를 지닌 그들을. 얼음땅에서 적도의 사막까지, 밀림에서 바다까지, 전
"Team 깃과 부리, 어서오세요 사기와 협잡 그리고 경이와 사랑의 역사에." 내용보기

 바람을 타고, 땅을 박차며 새를 본 적이 있는가? 미련도 불평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수십일에 걸쳐 날아가는 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가하면 날개는 그저 장식이거나 숫제 달리지도 않은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이 기묘한 생물을 뭉뚱그려 새라고 부른다. 철마다 노래하고 창공을 가로지르며 깃과 부리를 지닌 그들을. 얼음땅에서 적도의 사막까지, 밀림에서 바다까지, 전 지구의 목록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어진 이가 있었다. 그 자신도 방대한 경험과 하늘을 찌르는 명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학계는 경탄했다. 그의 이름은 곧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얼마나 진실이었을까.


 p.40 '내게 새로운 것'과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것' 사이에는 큰 도약이 있다. 전자는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후자는 자존심과 경쟁, 심지어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발견의 동기는 순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동기가 없다면 이 책의 이야깃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새가 '과학계에 알려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우리는 '누구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p.317 세상 곳곳으로 탐사를 나서본 자연주의자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시선에서 이동이란 얼마나 더디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그 아름다운 비행도 물론이거니와, 이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도 땅으로 내려앉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수년간의 연구로 밝혀진 새들의 이동에 대한 지식은 이런 마법 같은 느낌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경탄하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산과 물은 죽어가고 있다. 불과 수십년 사이 수많은 종에 인간의 손에 의해 '절멸' 딱지가 붙었다. '생태 복원'은 헛된 희망으로 불릴 뿐이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인가. 되돌릴 수 없는 좌절의 길인가. 저자의 말을 조금 바꾸어 돌려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그 잔을 깨지기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니 손을 모아 그 경이를 감싸안고 지켜내야 한다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내야만 한다고.


 우리 자신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곳에 놓여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 또한 그것의 일부인 자연을 탐구하는 일의 본질적 어려움은 우리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과 그를 부정할 수 없음에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데에 기인한다. 더이상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지식과 추정과 '발견'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오듀본의 일화는 우리에게 오래된 물음을 던진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p.199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부유한 (잠재적) 후원자나 영향력 있는 자연주의자, 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아첨하기 위해, 기존의 솔새를 새롭게 그려내고 이름 붙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처음에는 이런 해석이 너무 냉소적이고 부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듀본의 생애를 깊이 탐구하고 난 지금은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p.364 뉴저지 습지를 떠돌던 수천 마리의 클래퍼뜸부기는 사라졌고, 펜실베이니 아의 모든 나무 위에 떼 지어 앉아 있던 붉은머리딱따구리도 더는 볼 수 없다. 아무리 바람이 좋다 한들 뉴올리언스를 지나가는 수만 마리의 검은 가슴물떼새 비행 행렬도 다시 오지 않는다. 잔은 벌써 절반이나 비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잔에 남은 것은 여전히 경이롭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다양한 조류라는 보물이 남아 있다.



 인간 오듀본은 물론 결함투성이었다. 사기꾼이자 인종주의자였다. 그의 순진한 자의식은 사죄와 성찰이라는 양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와 문명세계의 잘려나간 시야에 자연은 발견되고 발명되었다. 완벽한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있다.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끝이겠습니까? 무엇을, 누구의 이름으로 끝이라 부르겠습니까.


 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과거의 유산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지혜를 나의 세계에 포섭하는 폭력을 멈추어야 함을 깨달을 때, 사람이 아니라 업적을, 동시에 위대한 업적이 짓밟고 선 자리를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자가 말하는 발견의 기쁨, 새가 온몸으로 가로지르고 누비는 세계의 아름다움, '그를 그 자리에 있는 그대로 두는' 길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고요한 외침. 아, 새다.


 p.420 오듀본은 노예제 찬성론자, 백인 우월주의자, 과학 사기꾼 등 여러모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 (…) 오듀본은 나에게 영웅도, 롤모델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의 작품까지 버리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p.456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과학적으로 새로운 생물을 발견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각자의 기억에 남는 마법 같은 순간은 자기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기적은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평도서제공: 일레븐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자연사 #탐조 #신간추천

s*****7 2026.03.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연사] 조류탐사에 생을 바친 오듀본은 누구인가?
"[자연사] 조류탐사에 생을 바친 오듀본은 누구인가?" 내용보기
오듀본은 모든 방면에서 어떻게든 윌슨을 능가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윌슨의 <미국 조류학> 같은 딱딱한 어투를 피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에 <북미의 새>라는 쉬운 제목을 붙였다. 학술적인 주제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조류학 전기>라는, 윌슨의 책보다 좀 더 학구적인 제목의 책도 준비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오듀본의 새 그림은 윌슨의 그림보다 훨씬
"[자연사] 조류탐사에 생을 바친 오듀본은 누구인가?" 내용보기

오듀본은 모든 방면에서 어떻게든 윌슨을 능가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윌슨의 <미국 조류학> 같은 딱딱한 어투를 피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에 <북미의 새>라는 쉬운 제목을 붙였다. 학술적인 주제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조류학 전기>라는, 윌슨의 책보다 좀 더 학구적인 제목의 책도 준비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오듀본의 새 그림은 윌슨의 그림보다 훨씬 크고 극적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


1803년 프랑스의 부유한 해군 사령관은 자신의 십대 아들이 나폴레옹의 군대에 징집되는 걸 막고자 사업 목적으로 사두었던 펜실베이니아의 농장에서 잠시 살도록 했다. 그런데, 18세 소년은 이웃집 16세 딸 루시와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실패한 구멍가게와 제분소 주인을 거쳐 부자 고객들의 초상화 그리기와 미술을 가르치는 일로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했던 힘든 여정 속에서도 루시는 항상 남자의 곁을 지켰다.

켄터키에서 수년 동안 사업 부진을 겪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새鳥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실력을 키워나갔다. 루시는 남편의 작품이 우수하다고 확신했다. 1824년, 경비를 마련한 두 사람은 루이지애나에서 필라델피아로 갔다. 이곳은 당시 미국의 과학과 인쇄술의 중심지였기에 새 그림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일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는 북미 조류에 대한 종합 연구서 <미국 조류학>의 저자 알렉산더 윌슨의 고향이었기에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초짜 이방인이 난데 없이 나타나 윌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실수를 저지르자 모든 기회의 문이 닫히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남자는 새 그림 포트폴리오를 들고 영국으로 향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다. 자연주의자, 학자, 예술인, 귀족 등은 남자의 그림에 찬사를 보냈고, 몇 달 만에 판화가, 인쇄업자, 채색가 등이 팀에 합류해 첫 번째 컬러 판화 세트가 제작되었다.

1827~1838년에 총 435점의 컬러 도판을 제작 출판했고, 1831~1839년에 삽화가 실린 모든 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은 5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두 대작은 <북미의 새>와 <조류학 전기>이며, 비로소 존 제임스 오듀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남자는 윌슨보다 더 다양한 새 종을 다루고자 했다. 그는 무모하게도 구독자들에게 400종의 새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팠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새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고, 당시 북미 동부에서 알려진 조류가 400여 종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을 발견해야만 했다. 1년 전, 그는 플로리다 남부의 야생을 탐험하던 중 미보고된 새 몇 종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캐나다 북동부의 '래브라도'로 향하려고 스무 살 아들과 또래의 청년 4명으로 탐험대를 꾸렸다. 이후 노련한 선장과 선원을 고용해 돛대가 2개인 범선 리플리호를 빌려서 출항했다.

일행은 해안에 도착한 후 야생 탐사에 나서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핀치였다. '톰의 핀치'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탐사 내용의 일부가 허구라는 지적을 받고 있어 안타까움마저 든다. 아무튼 상세 내용은 <조류학 전기> 2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오듀본이 그린 '링컨참새')


이제부터는 책의 저자 켄 코프먼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생물들의 이름에 푹 빠져 있었다. 마당에 나가 달팽이나 벌레, 꽃이 핀 잡초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할 수 없을 경우엔 동물과 나무에 관한 그림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의 무심한 한마디가 저자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넌 그걸 발견한 게 아니야.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게 아니라면 발견이라고 할 수 없어.” 도대체 이 말이 다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 아이에게 마치 초를 치는 소리 같지만, 사실 이는 맞는 말이다. 미기록된 종이 아니어야만 비로소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셈이다.

새에 열광하는 변방의 한 청년,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참고 자료가 부족했던 오듀본에게 윌슨의 책은 마치 기적처럼 보였다. 오듀본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구독 신청서에 서명하려고 하자 파트너 로지에가 프랑스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듀본, 친구여. 왜 굳이 이걸 구독하려고 하나? 내가 보기엔 자네의 그림이 훨씬 더 훌륭하다네. 또 자네는 이 신사만큼 미국 새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주장에서 그림에 관한 부분은 사실이었을지 모르지만, 미국 새를 잘 안다는 부분은 적어도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쨌든 오듀본은 펜을 내려놓았고 결국 윌슨의 책을 구독하지 않았다. 윌슨은 오듀본의 그림을 살펴본 후 출판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왔는데, 아니라고 답하자 매우 놀라워했다.

(백로, 위는 켄 코프먼 아래는 오듀본이 그린 그림)

새를 그리는 화가나 삽화가라면 누구나 존 제임스 오듀본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새를 관챃라고 그림을 그려온 저자에게도 오듀본은 당연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림을 많이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예술가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대상을 한번 보면 바로 쓱쓱 스케치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력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살아있는 새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새를 보면서 스케치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오듀본은 퍼키오멘 크리크(밀 그로브를 지나 흐르던 스퀼킬 江의 지류)로 내려가 처음 마주친 새인 목도리물총새를 사냥해 집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북미의 새> 판화를 포함하여 그가 평생 사용하게 될 방법이었다. 나무판과 철사, 핀을 활용해 아직 부드럽고 유연한 갓 죽은 새를 적절한 위치와 자세로 고정하고, 나무판의 격자를 이용해 전체적인 비율을 확인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오듀본은 새들을 실물 크기로 그렸기 때문에 예술용 나침반과 구분선을 사용하여 날개의 너비, 발톱의 길이 등 새의 디테일을 측정하고 이를 그림에 그대로 반영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오듀본은 정확하면서도 정교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저자가 오듀본에 관한 6권의 전기와 그의 에세이<내가 새를 그리는 법>을 읽고서 알아낸 내용이다. 요즈음 새를 그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화가라면 분명히 조류보호협회로부터 고발당했을 것이다.


오듀본, 스스로 명성에 오점을 남기다

책을 읽는 동안 오듀본의 명성 뒤에 가려진 진실을 접하는 순간 왜 인간이란 이렇게 욕심덩어리일까?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저자 켄 코프먼의 지적에 따르면 오듀본은 알렉산더 윌슨의 '아메리카참매' 표본을 훔쳤고,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독수리 그림을 베껴 새로운 종으로 발표했으며, 그가 발견했다는 새로운 종들 중 다수도 약간 그림만 변형했을 뿐이었고, 심지어 그저 평범한 '작은머리딱새'를 자신이 발견했는데 윌슨이 표절했다고 비난까지 했다. 특히, 후원자나 명망 높은 사람의 이름을 따 새로운 종이라고 발표한 그의 도덕성은 민망할 정도이다.

#생명과학 #자연사 #조류탐사 #에세이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켄코프먼 #일레븐
5****0 2026.05.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내용보기
이 서평은 사전 서평단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위대한 발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진행형이다. 그 이전에 지나온 역사중에도 조류에 관한 발견과 탐구는 오래동한 이루어져왔다. 이 책은 '현대 조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사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회자되는 위대한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업적과 동시에 드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내용보기

이 서평은 사전 서평단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위대한 발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진행형이다. 그 이전에 지나온 역사중에도 조류에 관한 발견과 탐구는 오래동한 이루어져왔다. 이 책은 '현대 조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사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회자되는 위대한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듀본의 업적과 동시에 드러난 거짓과 실수를 가볍게 보지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꾸준히 연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켄 코프먼의 시선에서 웅장하고 매력적이게 만들어낸 역사 탐험기 같은 저서이다. 존 제임스 오듀본의 열망과 야망, 잘못된 집착과 집념에서 온 과오와 거짓이 훗날에 밝혀졌음에도 어떻게 여전히 그가 위대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지 더불어 조류에 관해 알지 못했던 역사와 그림 기법, 새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대백과사전 같은 책.

e******u 2026.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