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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철학책’이면서 ‘자기 계발서’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앎과 이해에 관한 인식론, 그 이해를 올바르게 사용하며 훌륭한 삶을 살려는 ‘덕 인식론’을 다루기 때문이고, “너무 심한 멍청이나 얼간이가 되지 않는 법”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자기 계발’의 경계에서, 저자는 선을 그어 구분하기보다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이 둘을 통합합니다. 번역서 제목은 이를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 여겼습니다. 저자는 북유럽을 대표하는 철학자인데요. 대중적 관심사에 집중한 철학 저술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덜 멍청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철학》은 이전 저작보다 ‘풍자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현실에 만연한 ‘바보(Stupidity)’, ‘멍청이(Idiocy)’, 이 둘을 합한 ‘바보 멍청이’를 구분지어 설명합니다. 언어적 개념과 특성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최소한의 철학”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주관적 견해를 넘어 보편성 확보를 위해 관련 철학자들의 사상을 근거로 삼습니다. 마지막 두 꼭지는 앞선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저자가 멍청했다고 여기는 철학자들, 즉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아감벤 등의 삶과 사상을 살피고, ‘바보 멍청이’같은 백악관, 특히 트럼프를 분석·비판합니다. 책은 먼저, ‘바보(Stupidity)’에 대해 다룹니다. 이는 단지 지능이 낮거나, 지식이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생각하기’가 멈춘 상태와 태도를 말합니다. 이들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거나 분석·비판하는 과정 없이 수용하거나, 아예 멀리합니다. 때문에 주변 일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자동적’ 반응을 할 뿐입니다. 악의는 없으나 사유가 없기에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상황을 오판하게 됩니다. 둘째, ‘멍청이(Idiocy)’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멍청이’는 사고하지만 이를 ‘오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고를 적용함에 있어 ‘잘못된 방향’이나 ‘자신만의 폐쇄적 혹은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똑똑한 바보들’이라 말할 수 있는데요.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더 교묘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오류를 방어합니다. 이들의 논리적인 언어는 타인과 소통을 위함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성벽을 쌓는 도구일 뿐입니다. 즉 자신의 사고를 오로지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만 사용하는 ‘지성인’을 일컫습니다. 셋째, ‘바보 멍청이’를 설명합니다. 이는 ‘바보’와 ‘멍청이’를 합친 모습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바보), 자신의 오용된 논리로 합리화 혹은 매몰된 상태(멍청이)를 말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생각 혹은 판단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 심지어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이들의 극단적인 논리·정보, 가짜 뉴스를 자신의 사고 능력을 동원해 견고한 확신 혹은 신념, 심지어 진실이나 진리로 둔갑시키는 이들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의 극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세 가지 상태를 설명함에 있어 구체적인 예와 함께 철학적, 아니 상식적인 해결책들을 제시합니다. 해결책을 관통하는 “제1원칙”은 “비판적” 사고를 통한 “자기비판”입니다. 스벤센은 “비판적이라는 것은 결국 이성의 현미경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라 정의하며, 이는 세 가지 상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자, 지속해야할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결론으로 저자의 말을 대신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철학의 가장 기본은 자기 성찰이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 생각을 갈고 닦는 과정이다. 아무도 그 일을 나 대신 해줄 수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당신이 얼마나 멍청하거나 바보인지 또는 둘 다 하는 바보 멍청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몇 페이지를 더 할애해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정도다.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물론 그 과정이 시지포스(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결코 이기 수 없는 게임일 것이다.”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