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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3학년때였고, 따라서 그 해는 내가 68혁명(혹은 위기?ㅋ)을 처음 접한 해이기도 한 셈이다. 포디즘이 어느정도 안정적인 틀을 갖추어 제1세계 노동자들은 전반적인 경제적 풍요로움에 젖어 그 혁신성을 잃게 되었던 서구의 60년대,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탈권위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학생들이 감행한 근본주의적인 비판과 행동은 당시의 나에게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여졌고, 일종의 동경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사실 1968년은 인류사에서 굉장히 신기한(?)해인 것만은 사실이다. 인류가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지배'를 기획하고 그 기획을 어느정도 실현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종종 보여지는 사실이지만, 1968년만큼은 전지구적 차원의 '저항'의 기획이 세계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친, 어찌보면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해로 기록될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여기서의 '전지구적'이라는 말은 지극히 서양중심적인 담론임을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1968년의 저항은 분명히 정치적으로 '실패'한 흐름이었다. 레이몽 아롱의 말마따나 이들의 혁명적 기운은 드골의 연설한번으로 완전히 잠재워졌고(덕분에 프랑스 우익은 이어진 총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다) 독일 SDS는 고작 수배 해제를 조건으로 학교로 돌아왔다.(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은 '적군파'로 남아 테러행위를 일삼게 된다) 체코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는 소련의 탱크가 프라하에 진주함과 동시에 없던일이 되어버렸고, 미국은 부도덕한 보수주의자인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무정부주의적 좌파 몇몇은 국가에 대한 불신을 가교삼아 신자유주의자로 변신하여 그들의 국가에서 그들이 예전에는 그렇게도 비난해 마지않던 레이건같은 존재가 되었고,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사회라는 모토에서 사회는 사라지고 그저 이기적인 개인만 남아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혁명은 다른 여느 혁명과 마찬가지로 실패한만큼 이뤄내고 만 것은 사실이다. 실패한 혁명은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혁명의 기억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모두들 자연스레 그러한 흐름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은 그 실패가 처절할 수록 더욱 공고한 기반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그런 점에서 난 진정한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라고 믿는다) 68년 이후 분명 인류는 이전에는 보지못했던 억압과 부당한 권위를 비판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목소리가 없었던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갖게 되었으며, 인간의 관계는 한층 민주적이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은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상식'이 되어있다. 저자인 타리크 알리와 수잔 왓킨스는 이러한 68혁명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여 그 해에 일어난 일들을 나열하듯 서술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역사가 오늘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그때만큼의 희망조차 보이지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무언가 자극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글쎄, 모르겠다. 그 해의 '사실'들만을 서술한다고 했지만, 사실을 선택하고 서술함에 있어서 저자가 개입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때문에 저자들의 '사실'에 대한 나름의 '중립적인' 선택과 서술은, 그들이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늘을 살고있는 독자에게는 분명 죄다 매혹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할 것이다.(대표적으로 내가 그랬다) 하지만 사실, 68년의 대학에는 하버마스가 '좌파 파시즘'이라고 지적한 요소가 분명히 존재했었고, 진지한 기획없이 '저질러진'부분도 적지 않았음이 사실이었다만 책에는 그러한 현상들에 대한 서술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책은 일견 과거를 통해 현재를 고찰하고 반성하여 새로운 변혁운동을 추동하기보다는 외려 혁명을 스타일리쉬하게 '소비'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처럼 보여지기도 한다.(또한 돌이켜보건데, 실제 68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기보다는 '소비'되어 온 것이 사실인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1968년의 흐름에 언제나 벗어나 있었고,(당시 우리에게 베트남전 참전은 이슈꺼리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야당 당수들도 베트남 파병에 대해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시대를 역사적 경험으로 '느껴보지'못한 우리에게는 어찌되었건 소중한 책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이 책만으로 그치지 말고 68과 관련된 다른 진지한 이론서를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바람은 나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바람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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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사람들에 따라서 1968년 혹은 68년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리고 68혁명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기분이 들뜨게 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물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도 1968년에 대한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여전히) 갖고 있고, 그 1968년 전후에 있었던 혹은 그 기간 동안 생겨나고 변화되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때늦은 68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그래서 무언가 ‘미쳐 돌아간 시대’였다고만 말하게 되는 1960년대 후반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시대에 대해서 논하는 것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접하고 있기는 / 접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하는 처지였었고, 그런 무지함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1968년에 대한 일종의 사건 기록부와 같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이런 부족한 지식들을 채워줄 수 있는 만족스러운 기록일지라고 볼 수 있다(번역자는 그 이상의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만족은 준다). 저자인 수잔 앨리스 왓킨스와 타리크 알리는 1968년 한해에 한정해서 그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그리고 발언들과 여러 자료들로 1968년에 대해서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있다. 저자들은 1968년의 흔적들을 다시금 회고하며 미화되거나 오해되고 있는 1968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때 바로 그 시대의 상황과 실제 사건들을 글을 통해서나마 접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와 서유럽 그리고 남아메리카와 북유럽을 중심으로 1968년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 순으로 중요한 사건과 상황들을 풀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읽다보면 단순히 1968년에만 한정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저자들이 엮은 내용들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고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당시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만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간간히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고 있거나 저자들의 입장은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든 결국 1968년에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은 혁명의 달성이 아닌 패배로 끝이 났고 그 이후 여러 방식으로 그에 따른 반격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반격에 대한 저자들의 입장과 미래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끝으로 내용을 마치고 있다. 단순히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한 꼼꼼하고 상세한 기록으로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때 그 시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자들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상황들로 인해서 지금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책의 끝부분에 번역가의 해제가 워낙 자세하게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쓸데없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1968년에 벌어진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어차피 읽을 사람은 어떻게든 읽게 되기 마련이고, 안 읽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읽지 않기 마련이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
| 난 그런 것에 관심 없어. 그들이 원하는 건 권력이야. 그들도 권력을 잡게 되면 마찬가지일 테니까. 파르티잔에 가담했다가 혁명 뒤 공산당 관리가 된 농민 청년 얘기 들은적 없소? 어쨋거나 그 사람은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언덕 위에 큰 집 짓고 멋진 가구와 큰 차까지 사더니 바닷가에 여름 별장도 한 채 갖게 되었지. 어느해 여름인가 그사람이 늙은 어머니를 보러 마을에 온 적이 있었어. 잠깐동안 그가 자랑을 늘어놓는 걸 그 사람 어머니가 듣고는 이렇게 말했지. "얘야, 정말 잘 했구나 멋진 가구까지 딸린 그런 큰 집에서 살다니. 큰 차도 몰고. 해변에 여름 별장도 있고......하지만 얘야. 만약 공산주의자들이 와서 그것을 다 가져가 버리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니?" 1968년 6월 2일, 유고의 베오그라드에서 생닭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왜 적은 그렇게 기회가 많았는데도 나를 쏘지 않았을까? 왜? 백인 동료들은 쏘면서 나는 내버려두었을까? 흑인들이 그들처럼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내 뜻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리라는 걸. 1968년 7월 1일. 베트남전 참전 미군 테리 위트모어 1968. 정확한 제목은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정말 너무나도 멋진 책입니다. 정말 우연히 나온지 한참 뒤에야 보게 되었는데요. 책의 내용과 구성은, 1968년의 달력을 다시 쓴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어떤일이 있었는지 기록되어 있는거죠. 매 달마다 있는 사진과 부제가 완전히 절 매료시켜버렸습니다. 이것은 차라리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아닌가....68혁명의. 1월 '어이 LBJ, 오늘은 몇명의 어린애들을 죽였나?' 68년의 베트남 구정대공세.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물러나고. 세계적인 NLF(북베트남해방전선) 지지시위. 말하자면 68년은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 싸웠던 나날들인거죠.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눈물날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것이 누군가의 피로 이루어졌다는거니까요. 'ho, ho, ho chi min! NLF will win!' 전지구적인 시위와 유혈진압.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 상황. 이건 차라리 제2의 르네상스가 아닌지. 5월의 프랑스학생혁명. 라땡지구의 수비대들. 프라하의 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체코의 프라하.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체코의, 사회주의의 미래를 걸고 소련서기장 브레즈네프와 회담을 벌이는 상황. 인간적인 사회주의가 용인되느냐 마느냐, 프라하에 봄이 오느냐 마느냐. 무릎꿇고는 살지않겠다고 탱크앞에 몸을 던진 프라하 시민들. 이대목에서 전 울어버렸습니다. 동-서파키스탄의 연합혁명. 아유브 칸의 퇴위. 멕시코 민중들의 봉기. 68멕시코올림픽에서의 블랙파워. 주먹쥔손을 들어올리다! 선수자격 박탈의 위협에도 블랙파워 시위는 다음날에도 계속되고. 말콤엑스, 마틴루터킹의 암살. 흑인폭동. 블랙팬더당의 대두. 미국의 주방위군. 그리고 탄압. 포르투갈 젊은장교들의 반식민운동. 'know thy enermy' 이것이 ratm의 노래로 이어졌겠죠?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1인1표가 아니라 재력대로 스물몇표도 가질수 있는 말도 안되는 상황. 마오의 대약진운동의 실패. 권력을 지키기위해 소년들을 선동한 문화혁명. 결국 그 말미엔 겉잡을수 없게 된 홍위병을 탄압하게되고. "왜 여성은 안 된단 말인가?". 아듀 드골, 세계의 메이데이. 정말 '극적이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1968년의 세계를 뒤흔들었던 혁명.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 피흘리며 싸웠던 그 투쟁의 역사가 이 한권에 고스란히 들어있었습니다. 보면서 대한민국의 민중투쟁사도 알고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68년의 한국에서는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68년 10월에 종로정비사업으로 근처의 몸파는 여자들을 다 쫓아내고 지금의 종로가 된걸로 알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69 1970 1971 이렇게 계속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인데요. -_-; 쓸게 없으면 삼년치 한묶음이라도 좋습니다. e-book의 시대 디지털이 어쩌니 하지만 역시 이런게 종이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깊은 여운. |
| 난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근 30년을 이땅에서 자랐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1968년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의미없는 여러해 중의 하나였다. 초, 중, 고를 거치면서 그리고 대학생활 중에도 68년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해였다. 아버님이 월남참전용사였음에도... 국사, 세계사, 사회...등등 각종 교과과목에서 철저히 외면되어 온 68년이 궁금해진 것은 얼마전이었다. 프랑스 사상가나 문화의 소개가 붐을 이루면서 어느샌가 68혁명이니 68세대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도대체 68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래서 찾아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1968년"...무시무시한 한해였다...도대체 빨갱이가 판친 해가 아닌가...(^^) 1968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것... 되새기고 뒤집어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행동하는 것... 타리크 알리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1968년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였으며, 정치와 문화 그리고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성공'이나 물질적 소유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소망의 인간적인 측면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경제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후기에 68을 겪은 세 명의 변화된 모습을 본다. 힐러리 클린턴, 까르도수, 반다라 나이케... 그들의 기사를 보면서 우리의 4.19세대 정치인들의 타락한 모습이 결코 우리 정치의 후진성때문이 아니구나. 벌써 우리 정치계는 세계화 되었구나 하는 자조를 하게 된다. 그럼 광주를 겪은 386들은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난 우리, "68년"을 알게된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책의 제목을 다시 읽는다면 1968 희망의 시절, 그후 지금 분노의 나날이 되지는 않을까... |
| 68혁명은 서구와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곳곳을 강타한 충격적 사건이다. 그러나 68혁명이 차지하는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68혁명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것 같지 않다. 물론 여러 사회과학 서적 혹은 저널등을 통해 68혁명이 내포하고 있던 의미와 혁명 정신이 어느 정도 소개된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68혁명을 다루는 서적은 만나기 어렵다. 68혁명은 정말 "튀는" 혁명이었다. 정치적 논쟁뒤에는 마약과 로큰롤, 섹스가 "난무"하고 있었다. 국내의 학계가 이러한 이단적 혁명을 다루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성급하리라... 68혁명은 프랑스 혁명 혹은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처럼 뚜렷한 목표아래 진행되던 혁명은 아니었다. 굳이 68혁명에 대하여 의미부여를 한다면 반권위주의 혁명 정도가 될 것이다. 1968년경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은 억압적인 정치체제,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반기를 들며 자신들만의 해방구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민주화 운동도 아니었고, 러다이트 운동과 같이 반문명적인 행위도 아니었다. 68년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였지만, 동유럽의 파시즘적 공산주의에도 반대하였다. 그들은 "보수"라고 불리워질 만한 모든 것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난하였다. 그들의 혁명은 비록 유토피아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도 개인을 억압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RATM이라든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상기해보라.. 그것들의 원조는 68혁명이다.)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혁명의 열기와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책은 1968년 1년동안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하여 혁명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마치 일지처럼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묘한 흥분과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마저 준다. 특히 역사의 한순간을 장식했을 명장면들을 사진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독자들에게 또 다른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동안 68혁명을 제대로 다룬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쏠쏠한 즐거움은 제법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맹점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분명 읽는 재미,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혁명의 원인에 대한 천착은 없고, 신문 사회면을 펼친 것 처럼 계속되는 사건의 기술은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물론 68혁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하여 가슴으로 혁명을 느끼게 되는 환희를 맛볼 것이다. 하지만 68혁명을 미처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대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궁금증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혁명 초심자"들은 이 책을 필두로 하나둘씩 등장하게 될 68혁명 관련 서적에서 그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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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읽은 인문 사회과학 서적 중 으뜸이었다. 제목대로 1968년 노도와도 같이 세계를 휩쓴 그 리버럴했던 기억을 순차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한 역작이다.
67년 말 체 게바라의 죽음을 시작으로 68년에 일어났던 범상치 않았던 사건들에 대해 평가 분석하고 있는 저자의 학구적 노력에 숙연함이 절로 들었다. 한 편의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역동감과 현장감이 넘쳐흐른다. 얘기는 많이 들어 왔어도 도대체 정확히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거의 알지 못하던 1968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68년에 전 세계가 앓았던 그 열병이 현대사회에 각 분야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베트남전, 프라하의 봄, 빠리의 라탱지구를 내달리던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함성 등이 어떤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주기도문) - 1968년 1월 23일 독일의 학생들 우리의 자본이시여, 서방세계에서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투자가 임하옵시며,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월 스트리트에서도 이익을 내고 이윤을 증가시켜 주옵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자본의 회전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의 채권자들에게 신용을 베푸는 것처럼 우리의 신용을 늘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파산하지 않도록 하옵시고, 노동조합의 위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지난 200년 동안 이 세계의 절반은 권세있는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것이었사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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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잡지를 보다가 ‘1998년, 새우깡이 400원이던 시절…’이라는 문구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가까운 과거로 여겼던 1998년이라는 시간이 이미 7년이나 지나버린, 다른 누구에게는 꽤 오래된 기억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하루 하루가 참 더디게 지나가는 것만 같아도, 즐거웠던 시간들 혹은 힘들었던 시간들 모두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저만치 뒤로 흘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그 사실 만큼은 적어도 변함이 없다. 변화하는 것은 그 사실 자체가 아닌, 그 사실을 바라보는 현재의 눈이다.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1968’은 제목 그대로 1968년에 있었던 전세계적 격변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해놓고 있는 책이다. 하루 하루 ‘1968’이 재생하는 그 해 365일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자본주의와 독재권력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격렬히 저항했던 전세계 민중들의 모습이 점점 명확하게 다가온다. 1967년에 사망한 체 게바라가 남긴 혁명에의 불씨를 가지고 시작한 1968년 그 해, 베트남은 구정공세를 통해 미국을 패퇴시켰고, 파리에서는 민중들의 꼬뮌이 만들어졌으며, 프라하에는 잠시나마 봄이 왔고 이어 소련군이 왔다. 미국에서는 흑인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격렬히 일어났고, 이후 펼쳐지게 될 다양한 사회운동의 씨앗이 배태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문화혁명, 포르투갈의 반식민운동, 멕시코의 민중봉기, 아일랜드의 투표권 운동, 파키스탄에서의 혁명…… 도저히 지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들이 그 해에 일어났다. 자본과 권력에 대해 ‘보다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전세계적인 연대가 만들어 낸 치열하고도 눈물겨운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약속을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해가 1968년임을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68년을 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기존의 미국/유럽 중심의 68혁명이 아닌, 그야말로 전세계적인 움직임을 고르게 담는 시도가 있다는 것은 주지할 만 하다. 엄혹한 독재정권 시대였다면 감히 나오기 어려울 만큼의 권력에 대한 저항과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지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보다 인간적이고 양심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의 끈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광범위한 시공간적 대상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자본주의와 그것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여러가지 부작용들에 대한 비판 기제로써, 1968년에 전세계 민중들이 만들어냈던 또다른 ‘세계화’는 충분히 되짚어 볼 만한 사건이다. 68년 파리 이전에 수많은 혁명들이 있어 그 길을 밝혀준 것처럼, 월드컵과 촛불 집회, 탄핵 반대 집회 등 새로운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시대의 사람들에게도 1968년은 잊혀져서는 안될 인류사의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PS. 이 책은 2001년 3월, 책이 발간되자 마자 생일 선물로 친했던 대학 동기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다. 한창 사회과학학회를 열심히 할 때였고, 후배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2학년 때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받는 생일 선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부끄럽게도 만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학회 커리와 비슷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제대로 책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다. 어느 새 지나가버린 지난 4년간 훌쩍 성장해버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채로 그 언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아무튼 선물받은 책은 그때그때 읽자. ^^ |
| 1968년이라는 유럽의 변화의 시기를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1968년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유럽의 이야기를 또 전세계적인 화두로 만들려는 시도는 아닐까라는 의문으로 1968에 대하여 나는 외면하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판단을 하기 어려운 시대에 사례가 필요하였다. 그것이 1968이었고, 이책은 1968을 다룬 책중에서 가장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결국 이 책은 완결된 주제를 가지고 다룬 것이 아닌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 사례집이다. 따라서, 1968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권하는 바이다. 다만, 스스로 의미찾기가 귀찮다면 다른 책을..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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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갛게 표지되어 있는, 5공 6공 시절이었다면 읽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될 것만 같은 빨간 책을 읽었다. 저자의 시각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있는 정치 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이 뜨거워지고 '행동'에 대한 문제를 자꾸만 상기시키는 일면 거북하면서도 빠져들어가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빨갱이'라며 총부터 겨눌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읽어보라. 빨간책이지만, 그렇게 규정되어지지만 - ... 하지만 사실은 단지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고자 하는 지난 역사 속의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1968년은 전 세계에서 유토피아적 이상을 위한 민중의 소리가 터져나온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의 한해였다. 5.18과 일련의 여러 운동들이 그저 군부 정권에 의해 탄압되고 언론에 의해 외곡되며, 단 한가지의 사고 방식이 다른 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박탈하는 지난, 그리고 모습을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왜 우리는 이러한가. 왜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정의를 추구하지 못하고, 권력층의 부패에 고통받는가. 만을 생각하며 우리 사회의 가능성에 대해 기본적 신뢰를 상실한 사람이라면, 그래, 가슴속에 이 지독한 패배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1968년의 세계의 모습을 살펴볼만 할 것이다.
물론, 책을 읽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엄청난 단결과 봉기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욕구와 요구와 생각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저항과 운동은 거의 대부분의 실패로 끝나고 세계는 결국 과시와 경쟁과 효율만이 추구되는, '인간'이 없어진 천박한 자본주의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운동은 실패할뿐인가. 라는 회의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의미는 그러한데서 찾을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우리가 흔히 '대중'이라 일컬으며 그 사회, 정치적 의식 수준을 무시하여 취급하는 바로 그들! 바로 그들이 경이적인 정치의식수준과 평화에의 갈구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강력한 단결력을 통해 제국주의가 형성한 강력한 억압과 최면의 파시즘의 성곽을 깨부수고자 한 것이다. 민중의 힘은 제국주의의 잔인한 총과 최류탄 앞에 와해되었다. 그러나, 68년의 역사는 우리가 스스로 평가하는 '대중'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사실은 상당히 평가절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비단 우리의 역사만이 억압과 탄압, 부패와 독재의 역사인 이유는 우리 '한민족' 혹은 '아시아'의 열등성에 기반한 태생적 정치문제라는 패배주의적 시각과는 다른, 전 세계적으로 자행되었던 당시 권력층의 민중에 대한 기만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기반한 민주사회의 성립과 실현의 이야기. 독단과 독선, 기만을 피하기 위한 저항권의 실현이 가능한 청사진을 지녀 우리가 선택했다는 현 사회 체제는 단지 우리의 피상적 확신일 뿐일지 모른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 있어 약자의 목소리를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정부가 서민을 외면하는 정책을 펼치고, '떡값'을 비롯한 각종 권력 부패가 공공연히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저항권은 커녕 그에 대한 불만을 한데 모아 힘으로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우리는, 어쩌면 시민이 아니라 잘 짜여진 정치권력이 만들어놓은 적당한 타협선에서 만족하는 좀비(zombie)라 일컬어져야 할 듯 하다. 배운대로 이야기하면 '빨갱이'가 되거나 '고리타분한 샌님'이 되어버리는 사회. 왜 나는 타협부터 배워야 하는가. 나의 주장에 대한 논리를 펼치고 토론하며 공부하기 전에 왜 이미 사회가 타협 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나의 이 고민들은 정말 반사회적이며 사회의 일면만을 보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혁명적 기운은 쇠퇴하고 더 이상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할 친구를 찾기 힘든 세상에, 나는 그러한 화두를 함께 고민할 68년을 살고 있는 동지들을 만났다. 나는 바로 지금 이 곳에서 그들과 함께 '꼬뮌'을 상상한다. 많이 두렵고 떨리며 조심스럽지만, 언젠가 리얼리스트가 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1968년 1월 23일 독일 학생들이 나눠주던 전단. <우리의 자본이시여,="" 서방세계에서=""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투자가="" 임하옵시며,=""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월="" 스트리트에서도="" 이익을="" 내고="" 이윤을="" 증가시켜="" 주옵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자본의="" 회전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의="" 채권자들에게="" 신용을="" 베푸는="" 것처럼="" 우리의="" 신용을="" 늘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파산하지="" 않도록="" 하옵시고,="" 노동조합의="" 위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지난="" 200년="" 동안="" 이="" 세계의="" 절반은="" 권세있는=""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것이었사옵니다.="" 아멘.="">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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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도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가?
그 사건들이 당시에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 어떤 관계성을 맺었는가?
왜 우리는 68을 혁명이라 칭하는가?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정치적 급진주의가 전염성을 갖고 세계화 되었던 역동적인 1년을
시간순으로 서술한 저서이다.
1960년대는 저항의 시대였다.
제일먼저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이 베트남의 해방투쟁에서 전개되었다.
2차세계대전이후로 세계 정치, 경제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에게 베트남의 해방투쟁은 미헤게모니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중국 견제, 인도네시아의 천연자원 독식 , 아시아에서의 미패권의 공고화를
다지려는 미국의 의도는 베트남 해방전선의 치열한 공격앞에서 주춤하고 있었다.
미패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 이 도전에 연대하기 위하여 반전평화세력들이 미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조직되었다.
두번째은 소련과 구좌파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출발한다.
러시아혁명이후로 소련은 부패했다.
소련을 비롯해서 사회주의권의 국가들이 변질되었다.
더이상 이들 국가들은 노동자와 민중의 국가가 아니었다.
국가의 권력은 소수의 관료들가 독점하고, 사전검열이 시행되면서
출판과 결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스스로의 조합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운영할 권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여기에 악화된 경제적인 문제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숨통을 조였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 앞에서 구좌파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처음엔 학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국은 폭력을 수반한 공권력으로 화답했다.
분노한 학생들과 민중들과 노동자들이 시위를 조직했다.
어떤 곳에서는 쉽게 진압되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확산되었다. 그리고 체코에서 두브체크를 중심으로 한
개혁정부가 들어섰다.
세번째은 자본주의와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60년대 후반 대학내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든 권력과 금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학내 비민주의적인 문제로부터 인종, 이주, 성적, 제국주의와 제3세계 착취 , 전쟁과 식민주의 수많은 주제들이
집회에서 광장에서 강당에서 거리를 메웠다.
68년도의 이러한 도전과 행동들은 일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가의 문제가 그곳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들과 연계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혁명이 휩쓸던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체코의 개혁에 찬성하는 혁명세력들의 지지가 있었다.
이 안에서 모든억압과 권력에대한 분노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저항과 분노는 68년도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그때 거리를 메웠던 저항세력들은 어디로 갔는가?
68년의 일련의 사건들이 남긴것은 무엇인가?
그 이후로 세계은 좀더 나아졌는가?
정치적 급진주의는 각국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들이 내앞의 현실에 놓여 있다.
[인상깊은구절] 공동체의 상상력을 방어하라. - 벽위에 갈겨진 낙서들중에서 |